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79화 (79/135)

내 딸은 국힙원탑 79화

비행기에 탑승하기 하루 전.

정성수 차장님이 나를 따로 부르더니 이런 말을 건넸다.

“내일 돌아가시죠?”

“네. 맞아요. 정 차장님은 언제 돌아가시나요?”

“저희도 그날 같은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갑니다.”

“그래요?”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실 땐 일반석에 앉아 오셨죠?”

“네. 왕복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주셨는데 가장 앞자리 제공이라니.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감사를 표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프레스티지석으로 가실 겁니다.”

“네?”

그는 나와 하연이가 찍은 영상이 한국에서 대박이 나자 그룹에서도 우리의 성과를 인정했다면서 좌석을 프레스티지석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저희는 일반석으로 충분한데..”

“뭘요. 수속처리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내일은 편한 마음으로 하연이와 같이 비행기를 타시면 됩니다.”

와. 프레스티지석이라니.

사실 올 때 앉았던 곳도 무척이나 좋은 곳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좌석이라 공간도 넓고, 타고 내릴 때도 빠르게 탑승해서 일찍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프레스티지석은 또 얼마나 좋을까.

정 차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발리 노선은 일등석이 없거든요. 그래서 아쉬운 대로 프레스티지석으로 잡아드리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도 퍼스트 클래스에 비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혼자서 앉는 구조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으니 하연이랑 함께 가기에는 더 좋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연이와 함께 의자를 180도로 눕힌 채 프레스티지석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돈 많은 자의 여유로구나.

앉자마자 승무원이 환하게 웃으며 나와 하연이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하연이에게는 뽀로로 기념품을 주고 내게는 와인 리스트를 건넸던 것.

이게 다 공짜라니.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정 차장님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와인 좋아하시면 레드 와인에 있는 항목 중 첫 번째 게 제일 좋습니다.”

“그래요?”

“네. 이중에서는 가장 비싼 와인이죠. 목 넘김도 나쁘지 않고요.”

사실 와인은 잘 모른다. 그다지 먹을 기회도 없었고. 하지만 정 차장님은 해외 파견도 종종 나가신다니까 와인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골라준 보르도 레드 와인을 골랐다.

곧 투명한 글라스에 붉은 와인이 1/3쯤 담겨 나왔다.

하연이는 상큼한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데 마셔도 잘 모르겠다.

묵직하면서도 씁쓸한 뒷맛.

‘나는 그냥 소주가 제일 좋네.’

비행기에서 소주가 제공되지 않는 건 소주를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오래지 않아 식사가 제공되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식사라니.

위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배부르게 밥을 먹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승무원이 나를 깨우더니 이번에는 아침을 주문하란다.

‘아니 얘네들은 나를 돼지로 만들 셈인가?’

배가 불러서 아침은 그냥 패스했다.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내렸고, 우리는 이세미 씨와 정성수 차장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무척이나 반갑고 정겹다. 포근한 나의 집.

역시 아무리 해외가 좋아도 집이 최고구나.

나는 짐을 풀자마자 유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주가 한국에 도착하면 반드시 전화하라고 했으니까.

- 어? 한국 번호네? 한국에 들어온 거야?

“응. 지금 집에 와서 바로 전화하는 거야.”

- 하연이는?

“자기 방에 들어갔어. 짐 풀고 옷 갈아입겠대.”

- 별일 없었지?

“덕분에. 내일부터는 하연이도 다시 어린이집 나갈 거야.”

- 그래. 피곤하겠네. 푹 쉬고. 내일 봐~

나는 그녀와의 전화를 끊고 하연이 방으로 들어갔다.

하연이는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편한 복장을 하고선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하연아. 고생 많았어.”

“아빠도오요.”

“우리 하연이 덕분에 진짜 한 달간 잘 놀다 왔네. 하연이는 즐거웠어?”

“우응!! 최고오!!”

헤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이렇게 여행을 가자꾸나. 한신 그룹에서도 자기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의 호텔과 리조트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으니.

간단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나는 하연이와 함께 아래에 있는 회사를 찾았다.

회사가 멀면 또 모르겠는데 바로 아래에 있으니 직원들에게 간만에 얼굴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잘 키워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고.’

하연이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가니까 모두가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와! 사장님! 얼굴 완전히 까매지셨는데요?”

“꺄아! 하연이 왔구나! 귀여워!”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김소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죠?”

“네. 아무런 문제 없이 300% 풀가동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장님이 고생 많으셨네요.”

“제가 뭘요. 그나저나 영상 정말 잘 봤어요. 발리 음식 5인분 드시는 거 보니까 사장님 앞으로 먹방을 전문으로 찍으셔도 좋을 것 같던데요?”

윽. 먹방이라는 말에 또다시 위장이 아파 온다.

‘다시는 먹방 따위 찍지 않으리.’

나는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 뒤 이런 말을 꺼냈다.

“그동안 저 없이 일하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 정도에 야유회를 가면 어떨까 싶네요. 다들 일정 어떠세요?”

“야유회요?”

“와! 좋아요!”

사장인 나만 한 달간 자리를 비웠으니 직원들에게도 무언가 보상을 주고 싶었다.

물론 혹자에 따라서는 회사 야유회가 출근하는 것보다 더 싫을 수도 있겠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떠나 자유롭게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가지면 단결력도 좋아지고 기분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던 것.

다행히 모두가 다음 주 수요일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그날 야유회를 가면 좋겠다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오케이. 그럼 그날은 하루 쉬는 걸로 하고. 어디가 좋을까요? 각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봐요.”

다음 주면 벌써 6월이니까 너무 확 트인 곳은 더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하연이 등하원을 하려면 서울에서 너무 먼 곳도 곤란하고.

여러 가지 장소가 나오는 가운데 김지환이 청계산은 어떠냐며 의견을 꺼냈다.

“청계산은 어떤가요?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

“청계산이요? 거기 등산하는 곳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회사 야유회 장소로도 괜찮아요. 큰 운동장이 달린 식당들이 꽤 많거든요.”

운동장이라. 나쁘지 않다.

그저 산에 가서 밥만 먹고 오기에는 어딘가 심심하니까.

우리는 다수결에 따라 김지환이 제안한 청계산에 가기로 결정하고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오세영과 조유리가 짜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계약이요?”

모두들 궁금하다는 얼굴로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신 그룹에서 우리랑 영상 제작 계약을 맺자고 하는데. 어떠신가요?”

“한신 그룹이요? 거기 비디오쉐어랑 연간 계약을 맺었을 텐데?”

김소라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녀에게 정 차장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그녀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비디오쉐어를 나와서 여기 오길 잘했네.”

그러게. 거기 있었으면 기약 없는 내일에 고통받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사내 여론은 모두 하자는 쪽이었다.

한신 그룹과 같은 대기업과 계약을 맺으면 안정적이기도 하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이 되니까.

“기존에 하던 업무에 이어서 일이 추가되는 건데 정말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대신 월급도 올려주실 거죠?”

오세영이 나를 보며 찡긋 윙크를 날린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월급을 올려달라니.

당돌한 게 오세영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일한 자기 더 많은 돈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상황을 봐서 올 여름쯤에 연봉조정을 한번 해봅시다.”

“와아아아!!”

모두가 사무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다.

월급쟁이에겐 연봉 인상만큼 신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냥 올려줄 생각은 없다. 그만큼 더 많은 일거리를 던져줄 테니 다들 기대하라고.

#

다음 날 아침.

하연이를 등원시켜주면서 나는 유주를 만났다.

그녀에게 하연이에게 선물한 것과는 다른 디자인의 라탄백을 건네자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젓는다.

“뭐야. 뭘 이런 걸 가져왔어. 난 됐어.”

“하연이가 고른 거야. 선생님 꼭 줘야 한다고.”

“하연이가? 그럼 받아야지. 제자가 주는 걸 거부하는 나쁜 스승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녀는 쇼핑백에서 라탄백을 꺼내 어깨에 걸쳐 매고는 내게 물었다.

“어때? 잘 어울려?”

“그래. 잘 어울리네.”

“히히. 고마워, 진형아. 하연이도. 선생님이 잘 매고 다닐게.”

“웅!”

하연이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표정을 보인다.

선물도 전했겠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유주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 진형아.”

“응?”

“혹시 지금 잠깐 괜찮아?”

“지금? 응. 괜찮은데. 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

“한번 읽어봐.”

내용을 보니 자신들을 MCN(Multi Channel Network)이라고 소개한 곳에서 보낸 이메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평소 신유주 님의 유튜브 영상을 잘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랄라룰루’라는 MCN으로 신유주 님을 저희 회사 방송인으로 모시고 싶어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유주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자기네 소속으로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유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

“나야말로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본 거잖아. 이거 괜찮은 거야?”

랄라룰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MCN 회사였다.

초기에는 게임 방송인 위주로 모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인터넷 방송인은 물론 몇몇 연예인까지 영입하면서 연예 기획까지 넘보고 있는 대형 업체.

‘도대체 유주의 뭘 보고 영입하겠다는 거지?’

내가 알기로 유주는 줄기차게 춤추는 영상만 자신의 채널에 올리고 있었다.

어찌나 어색하고 보기가 부끄러웠던지 처음 몇 번 보고는 더 이상 들어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자 수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어서 안 그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유주야. 너 요즘도 그 이상..아니 춤추는 영상 올리고 있어?”

“응. 그거 말고는 안 올리는데. 왜?”

“그렇구나. 랄라룰루는 엄청 유명한 MCN 회사야.”

“그래? 이름은 얼핏 들어본 것 같은데 내가 그쪽은 잘 모르니까.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

괜찮은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유주에게 연락했다는 것은 유주에게서 무언가 가능성을 보았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하긴. 이 세상에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많아도 유주처럼 이상하게 추는 사람은 드물잖아? 그런 언밸런스함을 사람들은 오히려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주를 우리 곰도리형제단에서 영입하면 어떨까?’

어차피 우리도 연예 기획사를 표방하고 있고, 유튜브라면 나 역시 자신 있는 채널이었다.

나는 유주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주야.”

“응?

“너. 내 동료가 되어라.”

“뭐 뭣?”

유주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빠르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연이를 국내 최정상 가수로 만들고, 유주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겸직으로 하는 댄서로 만든다면.

연예 기획사 겸 MCN의 영역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괜찮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