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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72화 (72/135)

내 딸은 국힙원탑 72화

“두 분이 이렇게 예쁜 사랑을 하시니까 하연이도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저렇게 예쁜 거겠죠?”

“아니 저기..”

“저도 빨리 아버님 같은 좋은 남잘 만나면 좋겠네요. 그럼 뒤에서 목도 주물러주고 그럴 텐데. 하아. 어디 좋은 남자 없을까요?”

그러자 톱 배우 정일식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오빠 아직 솔론데.”

“피이. 오빠 여자 좋아하기로 유명하잖아. 난 그럼 사람은 됐어. 하연이 아버님처럼 한 여자만 보는 남자랑 결혼할래.”

“원래 남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정착하지 못하는 법이야. 안 그런가요? 하연이 아버님.”

이것들이 세트로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명진 대표까지 거들고 나선다.

“작금의 한국에서 출산율 저하는 심각한 위기의 증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일라 씨.”

“네?”

“저는 어떻습니까? 40대인 정일식 씨보다는 제가 아일라 씨와 나이 차이도 훨씬 덜 나는데.”

“대표님. 일식 오빠는 원래 아무 여자한테나 들이대서 기자들도 이제 시큰둥해요. 하지만 대표님은 말 가려가며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내일 자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싶지 않으시다면.”

“하하. 정치인에게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것만큼 또 좋은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딘가 아쉬워하는 눈빛.

TV에서 봤을 때는 진지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허당이다.

아무튼 유주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으니 내가 상황을 정리해줘야겠다.

“저기 저랑 유주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네? 두 분 결혼한 사이 아니셨어요?”

“유주는 하연이 어린이집 선생..아니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오늘 따라왔고, 저는 미혼부예요.”

미혼부라는 말에 아일라가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아 맞아! 나 기사 본 거 같아. 어쩜.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녀가 연달아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온다.

정일식은 빠르게 자기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미혼부셨군요. 제가 신인들 사정은 잘 몰라서. 성급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한명진도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했다.

“제가 경솔했군요. 사과드립니다.”

무슨 단체 청문회도 아니고.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기사가 몇 개 나가긴 했는데 모를 수도 있죠. 하연인 이제 막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아이고, 유튜브 외의 채널에서는 잘 활동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머. 그럼 하연이는 주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건가요.”

“네. 사실 연예인이라는 말보다는 유튜버라는 말이 더 친숙해요.”

“그러셨구나. 요즘은 유튜브에서 먼저 뜬 다음에 연예계로 진출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래도 실제로 그렇게 활동하는 친구를 보는 건 처음이네요.”

“카메라를 들고 계셔서 뭔가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군요. 유튜브라. 저도 요즘 채널 하나 만들었는데 이게 방송보다 더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일식이 오빠 유튜브도 해? 생각보다 빠른데?”

“왜. 요즘은 연예인이라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잖아. 사람들이 TV 대신 유튜브를 보니까. 하루빨리 진출해서 분위기 익혀야지. 너는 유튜브 안 하냐?”

“행사 뛴다고 바빠. 유튜브 할 시간이 어딨어?”

“너도 빨리 여기로 본무대를 옮기는 게 좋을 걸?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유튜브 시작한 지 좀 됐어.”

“그래? 그럼 한번 알아봐야겠네.”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이런 걸 사업으로 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컨설팅이랄까. 유튜브를 하려고 하는데 잘 모르는 연예인들에게 유튜브에 대한 기본적인 강의를 해주고, 컨셉이나 방향에 대해 상담해주는 일 말이다.

물론 이들은 대형 기획사를 끼고 있으니 그들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기획사의 규모가 작거나 신인이라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곰도리형제단도 이제 연예기획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일반인보다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유튜브 컨설팅 사업을 하는 것도 괜찮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메모 앱을 열어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그런데 유주가 옆에서 그걸 보더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야. 김진형. 너 진짜 회사 사장님 다 되었구나?”

“왜? 괜찮은 생각으로 보여?”

“응. 완전 괜찮은데?”

후후. 내가 이래 봬도 아래에 딸린 식구만 4명이 있단다.

아무튼 하연이 촬영은 무사히 끝났고, 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한 다음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유주가 옆자리에 앉고, 하연이는 뒤에 있는 카시트에 태운 뒤 차를 움직였다.

상준이에게 싸게 산 외제차는 확실히 성능이 좋았다.

엑셀을 조금만 밟아도 차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간다.

유주가 또다시 잔소리 스킬을 시전했다.

“야야. 좀 천천히 움직여. 뒤에 하연이도 탔잖아.”

“차가 좋은 걸 어떡하냐. 조심할게.”

“진짜 김진형 인간 됐다. 외제차에. 회사 사장에. 하연이처럼 예쁜 딸도 있고.”

“푸훕. 전에는 그럼 인간이 아니었단 이야기네?”

“말이 그렇단 이야기지. 그나저나 아까 다친 덴 좀 괜찮아?”

유주의 말에 하연이도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하연이를 향해 웃었다.

“문제없어.”

“다행이다. 그런데 아까는 솔직히 깜짝 놀랐어.”

“왜?”

“무슨 총알이 튀어나가는 줄 알았거든. 진심 이 차보다 더 빠르더라.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몸이 먼저 반응하던데? 뇌로 생각을 하기 전에 말이야.”

“몸이? 진짜 애 아빠라는 건 대단하구나.”

생각해보니까 나 좀 쩌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번개처럼 몸을 움직여 슬라이딩으로 하연이를 구해내다니.

어깨가 으쓱거리는 와중에 뒤에서 하연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래도오 조심해에.”

으이구! 아빠가 어떻게 조심할 수 있겠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누구보다 빨리 하연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러려고 그 지옥 같은 운동도 하고 있는 거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느새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다.

한국도 이런데 따뜻한 발리는 어떠할까?

발리에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에 설렜다.

#

김진형의 차를 타고 집 앞에서 내린 신유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하연이 부모님이라고? 나랑 진형이가?’

외부에서 보기에는 우리 두 사람. 그렇게 보이는 구나.

하연이가 내 딸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자신보다 더 많이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연이도 나를 무척이나 따르고, 나 역시 하연이를 좋아한다.

김진형은? 그건 잘 모르겠다.

분명 한때 사귀던 남자였고, 무슨 연유에선가 갑자기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진형이를 좋아하는 걸까?’

명백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더 속이 상한다.

‘어쩌지. 진형이에게 진지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아 볼까. 아니지. 내가 지금 미쳤나?’

지금 진형이에게 ‘나 아직 너 좋아하나 봐’ 따위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겠는가.

헤어진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게다가 그는 하연이의 아빠였다.

그와 사귄다는 말은 즉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엄마와 아빠를 비롯한 주변 친척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쏟아낼 말들이 두렵기만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무언가 불안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아. 대체 하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안긴단 말인가.

그나저나 오늘 촬영장에서 만난 아일라 말이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형이가 미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빠르게 태세 전환.

자신의 연락처라며 진형이와 번호를 교환하던데 그때 그녀가 보인 웃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분명 진형이가 마음에 든 눈치였어.’

이건 여자로서 직감이었다.

자신은 기성 연예인이고, 상대는 떠오르는 신인 연예인의 아빠. 게다가 부인이 없는 미혼부.

‘진형이와 만나게 되면 외부에 정보가 유출될 일 없이 엔조이할 수 있단 거겠지.’

어후. 상상만 해도 싫다.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 좀 봐라.

물론 진형이가 그렇게 가벼운 사람도 아니고 지금은 하연이밖에 모르는 딸바보라지만 남자라는 생물은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예쁜 여자가 꼬리 치면 넘어가는 거 말이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할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적당한 인물이 떠올랐다.

상준 씨의 여자 친구이자 자신의 대학동창이기도 한 송재희.

#

“무슨 일로 네가 연락을 다 준다고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어?”

“응.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모르긴. 이미 반쯤 기운 것 같은데?”

“뭐?”

신유주는 송재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송재희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진형 씨. 아직 좋아하는 거지?”

“몰라.”

“모르긴. 백 프론데?”

“하아. 그래도 그걸 어떻게 말해.”

나 아직도 널 좋아하는 거 같아.

저번에도 들었지? 우린 금실 좋은 부부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연이 혼자 키우기 힘들지? 우리 지금부터 같이 힘 내보자.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신유주는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 전생에 이토 히로부미였나 봐.”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런 거 같다고.”

“푸핫. 최근에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긴 말이었어. 신유주, 제법인데?”

“농담 아냐. 진짜 나 힘들어.”

신유주가 힘없이 말하자 송재희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주었다.

“지금부터라도 접점을 조금씩 늘리면 어때?”

“접점?”

신유주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반문한다.

송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진형 씨와 너 사이엔 하연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잖아.”

“그렇지?”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해봐.”

“그러니까 어떡해?”

“하연이 상담을 핑계로 어린이집 끝나고 자주 집에 놀러 간다거나. 아니면. 음.”

송재희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다음 주에 두 사람 발리에 여행 간다고 그랬지?”

“응. 원래는 베트남이었는데 갑자기 발리로 바뀌었어.”

“흐흐. 참 재주가 좋다고 해야 할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그러니까 너도 거기 따라가는 건 어때?”

“뭐? 거길 따라가라고? 미쳤어? 어린이집은 어쩌고?”

“그거야 네가 적당히 둘러대야지. 갑자기 일 생기면 널 대신해줄 보조교사 같은 건 없니?”

“있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운데, 이건.”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자기가 빠지면 나를 애타게 찾을 반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다.

하루 이틀 정도면 모를까 며칠씩이나 어린이집을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건 불가능해. 다른 건 뭐 없을까?”

“그러엄. 이건 어때?”

“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애랑 둘이서만 발리에 가면 분명 외로울 거야.”

“에이. 지금도 하연이랑 둘이서만 사는데 외롭긴 무슨.”

“아냐. 발리는 유명 관광지잖아.”

“그렇지?”

“그런 곳에 4살짜리 애랑 둘이서만 간다? 분명 여기서는 느끼지 못한 외로움을 물씬 느끼게 될 걸?”

“그런가?”

“그래. 나도 예전에 제주도에 혼자 한달살기 할 때 그랬거든. 경치는 너무 아름다운데 서울 살 때보다 괜히 더 외롭더라.”

“흐음.”

“그러니까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공략해봐.”

“공략?”

신유주가 반문하자 송재희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입을 뗐다.

“수시로 전화해. 하연이 핑계로.”

“수시로?”

“응. 그래서 하연이는 잘 지내냐, 너는 좀 어떠냐, 음식은 입에 맞냐. 이렇게 연락을 취하면 진형 씨도 너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할 걸?”

오호라. 그거 괜찮은 생각이다. 하연이를 핑계로 전화하는 거니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을 테고.

신유주는 송재희가 한 말을 잊지 않겠다는 듯 메모 앱을 켜서 그녀가 한 말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오늘 스튜디오에 갔을 때 진형이가 뭘 그렇게 적나 궁금했는데 이런 목적이었구나.

확실히 메모 앱을 사용하면 까먹을 일 없이 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한번 해보자, 신유주. 넌 할 수 있어.’

그녀는 각오를 다지고는 메모 앱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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