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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71화 (71/135)

내 딸은 국힙원탑 71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샙니까?”

“하하. 어서 오세요. 그런데 뭘 그렇게 들고 오셨어요.”

“다른 집도 아니고 하연이네 초대 받은 건데요. 늦었지만 집들이 선물입니다.”

그는 좋은 향이 나는 디퓨저 세트와 커다란 흰색 곰돌이 인형을 가져왔다.

하연이가 제 몸보다 큰 곰돌이 인형을 얼싸안고 좋아한다.

“와. 곰도리다아. 곰도리이!”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보이는 정 차장님.

다른 누군가가 하연이를 보고 웃으면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식사 안 하셨죠?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정 차장님 오신다고 해서 스테이크를 준비해 봤어요.”

“스테이크요?”

“네. 제 취미가 요리잖아요.”

나는 그에게 방금 구운 따끈한 스테이크를 내밀었다.

버터와 마늘을 잔뜩 넣고 고기 위에 끼얹듯이 부은 요리.

향이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가 없다.

정 차장님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왼손에는 나이프를. 오른손에는 포크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후 즐거운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정 차장님도 그렇고 하연이도 그렇고. 물론 나 역시 무척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정말이지 스테이크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사람보다 소가 많다는 외국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에게 스테이크는 나름 고급 요리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즐거운 만찬이 끝나고.

정 차장님은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품위 있게 입을 닦더니 여기 온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베트남 여행 가기로 했던 거 말입니다. 연기되셨죠?”

“엇, 맞습니다. 도대체 그걸 어디서 들으셨어요?”

“제가 전에 베트남에 3년간 파견을 나갔었거든요. 그때 연이 되어서 베트남 정부 측에 아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아.”

베트남 정부에 아는 사람도 다 있고. 새삼 정 차장님이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인도네시아 발리는 어떻습니까?”

“네? 그게 무슨?”

“베트남 대신 발리에서 한달살기 하시는 거 말입니다.”

“발리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 차장님은 거침없이 폭격을 날렸다.

“저희 그룹이 작년에 새로 발리에 오픈한 리조트가 하나 있습니다. 정글 한 가운데 풀빌라가 마련된 곳이죠. 혹시 거기서 한 달간 하연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니 차장님. 다 좋은데 거긴 갑자기 왜요?”

“베트남 여행 간다고 준비 많이 하셨을 텐데. 갑자기 그쪽 사정이 안 좋아져서 여행이 보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가씨랑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그럼 발리에 있는 저희 그룹 리조트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거기 홍보를 해주시면 어떤가 해서요.”

“네?”

정 차장님의 말에 따르면 한신 그룹은 베트남 전통 풀빌라가 밀집한 ‘우붓’ 지역에 작년에 대규모 리조트를 조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한참 기세를 떨치던 때에 완공을 해서 그런지 아직 입소문이 나지 않아 내부에선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거기에 머물면서 리조트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준다면 숙식은 물론. 왕복 비행기 티켓까지 제공한다고 그랬다.

“너무 좋은 조건인데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뭘요. 저 역시 베트남 브이로그를 무척 기대한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제안을 드릴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감사한 일이죠. 그러면 기간은 언제로?”

“베트남 한달살기로 기획하셨던 그 일정 그대로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다음 주였던가요?”

“네. 맞아요.”

마법에 홀린 듯 이야기가 죽죽 진행된다.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연이조차 멍한 눈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나는 하연이에게도 의사를 물었다.

“하연아. 그래서 베트남 말고 발리에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쪼아요!!!”

하긴. 하연이에겐 베트남이든 인도네시아 발리든. 별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아빠와 단 둘이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인 데다가 두 군데 모두 멋진 휴양지였으니까.

정 차장님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는 입을 뗐다.

“그럼 수락하시는 걸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차장님.”

“뭘요.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오히려 저희야말로 기대가 큽니다.”

“어떤?”

“하연이와 진형 씨가 또 어떤 기발한 영상으로 저희 리조트를 멋지게 소개해줄지 말이죠.”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트남에서 하려고 했던 복불복 게임을 거기서 진행하면 되니까.

발리라니.

어릴 적, 그곳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엄청 인기를 끌었었는데 말이다.

나는 밤새 인터넷에서 발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부푼 마음을 끌어안아야만 했다.

#

발리로 출국하기 이틀 전.

나는 하연이와 함께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대형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원조 춤꾼, 이태식의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주말에 진행되었는데 유주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따라오겠다며 하연이의 코디네이터를 자처했다.

“유주야. 고마워.”

“괜찮아. 내가 좋아서 따라온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주말인데. 나중에 돈은 따로 줄게.”

“어휴!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우리가 남남도 아니고 무슨 돈이야.”

아니 그렇다고 공짜로 부리는 건 좀 그렇잖아. 가족도 아닌데.

아무튼 촬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곧 해외로 출국한다고 하니까 이태식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오늘은 하연이를 비롯한 카메오들 위주로 촬영하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진짜 이태식은 급이 다른 사람이었다.

카메오로 출연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톱 배우 정일식에 아이돌 출신 솔로 가수인 아일라. 거기에 30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 등판하여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한명진 대표까지.

‘인맥이 어마어마하네.’

덕분에 유명한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런데 이들도 하연이의 귀여움에 푹 빠졌는지 하연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꺄아! 너무 귀여워!”

“너 몇 살이니? 엄청 귀엽구나?”

“삼촌은 한명진이라고 하는 정치인이란다. 너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하연이는 그저 좋다며 방긋방긋 살인 미소를 날린다.

다들 자기 메이크업에는 관심이 없고 하연이가 귀엽다며 이쪽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자 촬영감독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자자.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준비 좀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네네.”

하지만 그들은 건성으로 대답할 뿐 하연이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실로 하연이의 매력은 위대한 것이다.

‘하연아. 아빤 하연이 아빠라서 너무 행복해.’

결국 촬영 스태프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정리된 스튜디오.

촬영감독은 한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하연이가 가장 어리니까 제일 먼저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물론이죠.”

“어린 친구를 배려하는 게 정치인의 기본 소양이죠.”

하연이는 이 날 어깨가 드러난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거기에 자기 키 만한 금색 테너 색소폰을 들고 서있으니까 뭔가 언밸런스하면서도 귀여움이라는 게 폭발하는 것 같았다.

“끄응. 귀, 귀여워.”

“하아. 어쩜.”

여기저기서 촬영 스태프들이 옅은 신음을 흘리며 하연이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게 하마터면 손에서 카메라를 놓칠뻔했다.

카메오로 왔다면서 촬영장에서 웬 카메라냐고?

나는 오늘 촬영하는 영상을 찍어 따로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다.

이태식 대표도 괜찮다며 흔쾌히 동의했으니까.

오히려 자기는 스케줄 때문에 오늘 이곳을 방문하지 못한다며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한참 촬영 중이던 하연이가 무언가 힘겨워하는 것 같더니.

테너 색소폰과 함께 옆으로 쓰러지려고 그랬다.

“어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나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카메라를 맡기고는 미칠듯한 속도로 하연이를 향해 뛰어갔다.

“꺄아!”

높은 비명소리와 함께 스튜디오 안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이태식의 신곡 뮤비를 찍던 중 어린아이가 다쳤다는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놀람, 고통, 좌절. 각자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 소리쳤다.

“하연이 아버님?”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타자가 슬라이딩을 하듯 하연이를 향해 몸을 날렸고, 하연이는 나를 쿠션 삼아 내 위로 넘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바닥에 누워있고, 그 위로 하연이와 하연이가 잡고 있는 테너 색소폰이 올라탄 셈.

여기저기서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봤어?”

“와. 하연이 아버님 번개맨이시네. 뭐가 저리 빨라?”

설마 하니 개인 PT를 받은 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그것보다는 그저 하연이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 같았다.

뒤늦게 바닥에 쓸린 왼쪽 허벅지가 아파온다.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이걸 남들에게 보일 순 없지.

나는 빠르게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하연이를 두 팔로 잡고 위로 올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려와 안부를 묻는다.

“괜찮으세요?”

“네네. 저보단 아이를.”

“하연아. 어디 다친 데 없니?”

“네에. 그런데에 아빠아! 아빠아 정마알 괜찮아요오?”

하연이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하연아. 아빠는 괜찮아. 왼쪽 허벅지랑 허리가 조금 아프지만 이 정도야 뭐.

‘발리 리조트 가면 매일같이 마사지나 받아야겠다.’

정 차장님은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건 모두 공짜라고 그랬으니까 마사지도 무료일 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명진 대표가 다가와서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그가 나를 격하게 포옹했다.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다시 만난 전우처럼.

“그뤠잇!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연이 아버님은 진정 이 시대 아버지의 표상이십니다!!”

허허. 이 사람. 진짜 퍼포먼스가 장난 아니구나.

어쩌면 사람들은 그의 이런 과장된 모습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물러나고.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조금 전 일을 막기 위해 하연이 근처에는 카메라를 피해 스태프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하연이가 또 넘어지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만전을 기한다.

나는 스태프가 마련해준 간이의자에 앉아 다시금 카메라를 켰다.

내 딸이지만 정말 너무 예쁘다.

아픈 것도 잊을 만큼.

모두가 집중하며 촬영이 재개된 가운데 나는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도 그럴 게 갑자기 뒤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으니까. 그것도 가늘고 여린 여자의 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주였다.

그녀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내가 아닌 하연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 조용히 하고 촬영이나 계속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안마해주는 거지.”

유주는 내 목과 어깨 부위를 주물럭거리며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이거 참 오랜만이네. 사귀던 시절엔 종종 해주던 건데.

그래도 남들도 다 있는데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얘는 그새 빙백신장이라도 익혔는지 손은 또 왜 이렇게 차가워.

“손이 왜 이렇게 차? 너 운동 좀 해야겠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한 마디만 더 하면 안 해줄 거다.”

“...”

그럴 순 없지. 암.

유주 손이 차가워서 그런지 유독 더 시원한 느낌이 있다.

그러다 누군가 부러운 눈길로 말을 걸어왔다.

“하연이 부모님 정말 금실이 좋으시네요.”

뭐? 하연이 부모님?

나와 유주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이돌 출신 솔로 가수인 아일라였다.

지금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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