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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70화 (70/135)

내 딸은 국힙원탑 70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하연이에게 하늘을 향해 올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하연이는 이게 뭐냐는 표정.

“하연아. 이거 눌러봐.”

하지만 하연이는 고개를 젓는다.

“시러어어.”

“그럼 만지는 시늉이라도 해줘.”

“웅.”

하연이가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손가락을 터치하는 제스추어를 취한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내 속에 모아두었던 모든 에너지를 개방하였다.

- 뿌우우웅!!!

대지가. 바다가. 산이.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받은 원기가. 강려크한 에너지로 변해 거친 신음을 토해낸다.

물론 원기로 받은 만큼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죽음의 냄새로 그 영향력을 과시했으니까.

“으아아아!!! 이게 뭐야아!!”

하연이가 코를 막으며 방방 뛴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아하하하. 아빠아 웃겨어어!!!”

후후. 성공했나.

아빠가 쪽팔림을 무릅쓰고 선보인 비장의 기술이다.

오늘 점심으로 고구마를 먹었고, 저녁엔 보리밥을 먹었던 게 도움이 되었다.

하연이는 방바닥에 엎어져서는 자지러지듯 웃어댔다.

흐흐. 하연아. 진정하고 일어나. 나까지 웃음을 참을 수 없잖니.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웃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냄새가 좀 고약했지만 뭐 어떤가.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됐지.

하연이가 당장 영상을 올리라고 재촉했던 관계로 하연이를 재우자마자 빠르게 편집하고선 해당 영상을 HiYeom하연 채널에 올린다.

그리고 커뮤니티 탭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아빠와 함께한 웃음 참기 배틀의 승자는?>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

└ ㅋㅋㅋㅋㅋㅋㅋㅋ소리 죽이넼ㅋㅋㅋㅋ

└ 우리 아빤 줄 ㅋㅋㅋㅋ 오늘도 너무 재밌어요

└ ㅋㅋㅋㅋㅋㅋ방구뿡=3=3=3

└ 썸네일에 하연이 심각한 표정 봐 ㅋㅋㅋㅋㅋㅋㅋ

└ 랩 뚫기는 어찌어찌 참았는데, 하연이 저질댄스는 증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님 방귀는 생각도 못했네요

└ 저거 우리 아빠도 나 어릴 때 똑같이 하던 행동인데. 오늘 하연이 아버님 보니까 대한민국 표준인 듯 ㅎ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 하연이 자지러진 거 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뒤에 불 붙였으면 폭발했을 듯

정성수는 영상을 보고 미친 듯이 웃다가 그만 댓글 1빠의 위엄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댓글을 남겼다.

[내꿈은한신사장 : 저는 처음부터 터졌네요. 두 분 너무 귀여운 거 아닙니까? ㅎㅎ]

아 진짜. 두 사람이 있어서 하루가 행복하다.

이제 두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정성수는 탁자 위에 놓인 달력을 확인하고는 오늘이 하연이 정기후원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후원 방식에 자동출금(CMS)을 도입하면 참 편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김진형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날짜에 맞춰 한 달에 한 번. 후원금을 냈다. 100만 원씩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엄청 웃겼으니까. 에이 기분이다.’

그는 하연이 후원 계좌로 무려 평소 보내던 돈의 2배인 200만 원을 입금하였다.

재벌가 자녀인 이세미처럼 한 번에 천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쏟아부을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꾸준히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이다.

혹자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돈 낭비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 이상 주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HiYeom하연 채널에 올라온 영상도 다 봤겠다. 이제는 하연아빠TV로 채널을 바꿨다.

그런데 이전에 못 보던 영상이 하나 있다.

제목에는 하연이랑 곧 베트남으로 떠납니다 라고 적혀있다.

“뭐? 베트남? 거길 왜? 설마 이민이라도 가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서둘러 영상을 클릭했다.

다행히 이민은 아니고 베트남 관광청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한달살기를 떠난다는 내용.

“휴. 다행이네. 그런데 왜 하필 베트남이야?”

베트남은 일명 빵 쪼가리 사건. 그러니까 코로나19 사태 당시 베트남에 온 한국인들을 격리시킨 일로 국민감정이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다.

격리당한 한국인 중 한 명이 불만을 토로하면서 아침으로 먹은 게 빵 몇 조각이 전부라고 했던 인터뷰가 논란이 되었는데, 이게 하필 베트남의 전통 샌드위치인 반미(Bánh mì)였던 것.

그러니까 마치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나름 대접한다고 비빔밥을 주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풀때기만 준다고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베트남 국민들은 이에 분노하였고, 트위터에는 베트남에 사과하라는 해시태그를 단 트윗이 폭발하였다.

한국에서는 또 이게 무슨 일이냐며 베트남에 불만을 제기하였고.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일에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상한 것이다.

‘언론보도는 국가 간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서 신중히 전달해야 하는 건데 말이지. 아쉬운 일이야.’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미 엎질러진 물.

보아하니 하연이 부녀의 베트남행은 이미 확정된 것 같은데, 괜히 이번 일로 두 사람에게 엄한 불똥이 튈까 봐 걱정이 든다.

정성수는 과거 베트남 주재원으로 3년간 파견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의 상황도. 한국의 상황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즉시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통화연결음과 함께 베트남어가 들려온다.

- 오. 한신 그룹 정성수 씨 아닙니까? 어쩐 일이세요? 한국으로 돌아간 지 조금 오래된 걸로 기억하는데.

상대의 정체는 베트남 당 상임서기를 맡고 있는 응우옌 꽁 후이.

당 서열 5위의 고위급 인사로, 그가 베트남에 파견 나가 있을 당시 여러모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였다.

“그동안 잘 계셨죠? 바빠서 연락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네요.”

- 하하. 뭐 각자 바빴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시각에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단순히 안부를 묻자고 하신 건 아니실 테고.

정성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주한 베트남 관광청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 같더라고요.”

- 주한 베트남 관광청에서? 어떤 거죠?

“베트남 한달살기라는 주제로 외국인들이 베트남에 살면서 유튜브를 통해 외부에 홍보하는 프로젝트인데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 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 보고를 받은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건 왜?

“상임서기님도 잘 알고 계시죠? 현재 한국과 베트남 국민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거 말입니다.”

- 흠. 그렇죠.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네요. 걱정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닌 것 같으니 해당 프로젝트는 잠시 보류하는 게 어떨까요?”

- 보류라고요?

상대는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답했다.

- 제 소관이 아니라서 뭐라고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조금 지나친 부탁인 것 같습니다. 내정간섭으로도 여겨질 수도 있고요.

“어휴. 그건 오해이십니다. 제가 감히.”

-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상임서기님. 조금만 더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제가 설마 상임서기님에게 해가 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상대는 그 말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 말씀해보세요.

“분명 베트남 관광청의 취지는 양국 간 오해를 풀고자 함이겠으나 시기가 안 좋습니다.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진행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해를 풀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 흠.

“제가 베트남에서 3년이나 지내면서 양국 간 우호증진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상임서기님도 잘 기억하실 겁니다.”

- 물론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상임서기에 오를 수 있었구요. 그 점은 늘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제 말을 믿고 따라주시면 어떨까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뒤.

상대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 휴. 알겠습니다. 베트남 관광청에 정 과장님의 우려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휴우. 감사합니다. 그리고 과장이 아니라 이제 차장입니다.”

-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언제 또 베트남에 오실 일은 없으십니까? 넵머이(nep moi) 마셔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리시죠. 제가 조만간 베트남에 출장 갈 일을 한 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5분 정도 더 통화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 그 기간은 무척 소중하고 즐거웠던 추억이었으니까.

#

“네? 갑자기 프로그램이 연기되었다고요? 그럼 언제 가는 건데요?”

- 죄송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분에게는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하.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음 주에 베트남행 비행기에 탄다고 들떠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옆에 있던 김소라가 궁금한지 물어왔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안색이 안 좋네요.”

“베트남 한달살기요. 그거 내부에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보류래요.”

“보류요? 아니 일주일 뒤에 출국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렇게 갑자기?”

“그러게나 말이에요. 진짜 어이없네요.”

진짜 황당하다. 억울하기도 하고.

이날 회사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무거웠다.

아무래도 사장인 내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직원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

‘내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네. 먼저 일어나야겠어.’

나는 외부 미팅을 핑계로 일찍 회사를 떠났다.

물론 미팅 따윈 없었고, 그냥 집으로 올라와 널브러진 자세로 소파에 누웠다.

“하아. 뭔가 잘 되는 것 같더니. 이게 갑자기 무슨 일 이래.”

인생은 바이오리듬과 같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다시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스마트폰이 강하게 울렸다.

누구지 하고 보았더니 정성수 차장님이다.

진짜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이름 도장을 찍고 간다.

그래도 반가운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그런지 나는 힘을 주어 스마트폰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정 차장님.”

- 안녕하십니까, 진형 씨.

“하하. 사실 안녕 못해요.”

- 네?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어서요.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세요?”

- 혹시 베트남 건으로 기분이 다운된 거 아닙니까?

“응? 그걸 정 차장님이 어떻게?”

- 후후. 제가 한신 그룹 미전실 차장입니다. 이것저것 밖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죠.

이야. 그동안은 그저 하연이 삼촌팬이라고만 생각했던 양반이 무언가 달라 보인다.

그는 오늘 저녁 나를 보자고 했다.

‘저녁이라. 또 유주한테 애를 맡기긴 좀 그런데.’

정 차장님도 그에 생각이 미쳤는지 괜찮으면 우리 집을 방문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저희 집엘요?”

- 네. 꼭 얼굴 뵙고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정 차장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 하하. 이제야 진형 씨네 집 주소를 알게 되었네요. 그렇게 물어봐도 알려주시지 않더니.

“그땐 조금 부담스러웠으니까요.”

- 알겠습니다. 그럼 7시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사이 하연이를 하원 시켰고,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외부에서 귀한 손님이 오는데 아무 음식이나 줄 순 없지 않은가.

그는 최근에 하연이에게 200만 원이나 보낸 소중한 후원자다. 그전에도 꾸준히 100만 원씩 후원하고 있었고.

최소한 그에 걸맞은 음식을 차려드리는 게 인지상정.

나는 냉장고에서 며칠 전 프리미엄 정육점에서 산 스테이크용 고기를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오늘 먹으려고 어제 오일에 재워두었는데 정 차장님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팬에 오일을 살짝 두른 뒤 고기를 굽고 있는데 오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정 차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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