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67화
“달려어나간다아아! 힘차게에!!!”
“와! 최고다! 김하연 최고!!”
천정에는 번쩍번쩍 미러볼이 정신없이 도는 가운데 마이크를 든 하연이와 유주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기가 어디냐고?
집 근처 노래방이다.
여긴 왜 왔냐고?
유주가 하연이 기분 풀어준다며 우리 부녀를 이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기소침하던 하연이도 유주가 자기 한 몸 희생하여 고래고래 노래 부르고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춤을 춰대니까, 기분이 풀렸는지 지금은 신나게 몸은 흔들고 있다.
나만 여기 어색한가.
그러고 있는데 유주가 내게 다가와서는 마이크를 내민다.
“야. 김진형. 넌 아빠라는 사람이 멀뚱히 앉아서 뭐 하는 거야?”
“응?”
“자. 한 곡조 뽑아봐. 욕 안 할게.”
그녀는 나를 가운데 무대로 밀치고서는 자기 마음대로 노래를 입력했다.
내가 뭘 부를 줄 알고선.
그런데 이내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하연의 메가 히트곡. <완벽한 날>이었다.
야! 너 진짜 뭐냐!
나는 잔망스러운 표정으로 유주를 노려보고선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흠흠. 오빠 얼굴을 보니!!”
나는 첫 소절부터 잔뜩 힘을 주고선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유주랑 둘이서 노래방 진짜 자주 왔었는데.
‘그땐 맨날 이 노래를 불렀지.’
왜냐하면 <완벽한 날>은 나의 18번이었으니까.
하연이도 신이 났는지 조그만 손으로 탬버린을 신나게 흔들면서 나를 보며 웃는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더욱 목에 힘을 주어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폭풍 같던 열창이 끝나고.
이번에는 하연이가 혼자서 <원패밀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방기기에는 김하연의 이름으로 <원패밀리>는 물론 신곡인 <달려>까지 입력되어 있었다.
새삼 내 딸이 진짜 가수는 가수구나 싶은 순간이다.
하연이가 자기 노래에 흠뻑 취한 사이.
유주가 내 허벅지를 찌르며 조용히 다가왔다.
“어때? 여기 오길 잘했지?”
“그러네. 고맙다.”
“이하연 아빠를 만났다고?”
“그래. 거기서 그런 모습으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참 사람 일이라는 게 웃기더라.”
“그런데 하연이는 그 남자를 왜 계속 쳐다본 거야?”
“나도 몰라. 왜 그랬는지.”
추측하건대 하연이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유명한 가수에 대해 평소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이하연의 아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요즘에는 하연이 또래의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니 어린이집에서 검색을 해봤을 수도 있고 말이다.
“너희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중에서 스마트폰 가지고 다니는 애들 있지?”
“응. 몇몇. 그건 왜?”
“그거 통해서 이하연의 정보를 접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 어린이집 등원하면서 죄다 뺏기는 하는데. 아니다. 어떤 애들은 깜빡하고 가방에서 안 주기도 하니까. 우리도 정신없을 땐 하나하나 다 챙기기 어렵거든.”
이해한다. 교사 한 명이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나는 하연이 하나 보기도 힘든데 여러 명을 동시에 케어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도 하연이가 스마트폰으로 한글을 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하연이가 이하연 아빠의 얼굴을 알게 되었는지 각자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유주의 손에 손가락이 닿았다.
“앗! 미안!”
나는 깜짝 놀라 빠르게 뒤로 손을 빼었다.
반면 유주는 어색한 얼굴로 손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있었고.
“괜찮아.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래.”
“아냐. 진짜 미안하다.”
“하연이 노래 곧 끝나겠다. 빨리 예약이나 해. 설마 하나 부르고 끝낼 생각은 아니지?”
나는 어색한 얼굴로 노래방책 책장을 넘겼다.
왠지 하연이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나와 유주를 바라보는 것 같아 더 민망하다.
아무튼 노래방 좋구나. 앞으론 하연이랑 둘이서 종종 놀러 와야겠다.
#
이하연의 친부, 이동석은 돈가스값인 6천 원을 낸 뒤 가게 주인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한 다음에야 겨우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씨발 놈들. 스위스 은행에서 돈만 찾아봐라. 그때가서 울고불고 빌어도 이미 늦었어, 이놈들아.’
그는 두 주먹을 꼭 쥐고는 자신이 사는 2평짜리 고시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성인 두 사람이 누우면 더 이상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고 더러운 방.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망할 년. 이게 다 그 망할 년 때문이다.’
힘들게 키워놨더니 은혜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자살해? 그것도 모아놓은 돈을 스위스 계좌로 다 빼돌리고서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받았다.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책상 모서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 쾅!
“큭!”
쾅 하는 소리와 비명이 동시에 들린다.
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중얼거렸다.
“망할. 그 새끼는 뭐가 그리 손힘이 세. 아이고 아파라.”
그는 자신의 오른 손목을 사정없이 쓰다듬고선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재수 없는 꼬맹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건방지게 말이다.
꼭 어릴 적 자기 딸을 보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이어서 그 딸년의 아빠까지 자기를 쳐다보니 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쳐다보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그 새끼는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자신을 위협하는 게 아닌가.
윗사람을 공경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인데.
그래서 좀 혼을 내주려고 했기로서니 이래 어르신의 손목을 강하게 쥐어짜?
망할 연놈들.
무전 취식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해서 가게를 떠났더니 가게 주인이 자신을 신고했을 줄이야.
진짜 세상에 믿을 사람 한 명도 없다.
이런 식으로는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굴러갈지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힘들게 갈고 닦은 나란데. 망할 것들.’
그는 깊은 탄식과 함께 간신히 몸뚱아리 한 개를 간신히 버티는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눕자마자 발바닥이 벽에 닿는다.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망할 놈들. 망할 세상. 그 돈만 찾아봐라. 어떻게든 다 피눈물을 쏟게 해줄 거야.”
그나저나 스위스 계좌에 든 돈을 찾기 위해 고용한 변호사에게 입금하려면 내일도 불법 도박장에 나가야만 했다.
일명 바다 이야기. 2005년을 전후로 크게 문제가 되면서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친다. 빨리 잠이나 자자.
이동석은 오늘도 그렇게 대박을 꿈꾸며 좁은 고시원 방에 몸을 웅크린 채 새우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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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사건을 겪고 나서 한 가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하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만 많이 벌어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던 것.
‘위험에 처한 하연이를 구할 수 있는 건 일단 내 몸이 전부다. 경찰이나 외부의 도움은 그다음 이야기야.’
그래서 나는 오피스텔 2층에 위치한 체육관에 가서 1년 치 PT를 끊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년 치를 미리 끊으면 호구라고 하던데 알까 보냐.
퍼스널 트레이너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신체 건장한 남성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하연이 아버님 아니세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아버님이랑 하연이 유튜브 채널 둘 다 구독해서 보고 있습니다. 팬이에요!”
그는 심지어 내게 사인을 요청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연이 사인도 받아서 줘야지.
그는 어디를 가장 단련하고 싶은지 내게 물었다.
“원하시는 운동이나 단련하고 싶은 부위가 있으세요?”
“그냥 전체적으로 튼튼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요?”
나는 분식집에서 있었던 사건을 간단히 각색해서 들려주었고, 그는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하연이 아버님을 몇 달 안에 지구최강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신 아버님도 어중간한 각오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그래서일까.
그는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강하게 나왔다.
몸풀기용으로 러닝머신 1시간. 그것도 15분마다 점점 더 빠르게 속도를 올리면서 말이다.
이어서는 맨몸스쿼트라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10번씩 1세트로 총 20세트.
허벅지 근육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픈데 그는 계속해서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말라면서 채찍질한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아령 운동을 시키는데 정말 훈련소에 다시 들어온 기분이었다.
괜히 왔나 싶다가도 다시 한번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하며 힘을 냈다.
그렇게 지옥 같은 PT 첫날이 지나갔다.
그는 오늘 고생했다며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식단조절은 2주 뒤부터 들어갈 거예요. 그 전에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마음껏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첫날인데 정말 잘하셨어요. 남성분들 중에서도 첫날 힘들다고 우는 분들이 종종 있거든요. 그런 것치고는 정말 잘 해내신 겁니다.”
PT를 받다가 우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남자가?
나는 나중에서야 이 양반이 헬스계에서 지옥 트레이너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말고 한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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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베트남 브이로그 면접이 끝나고 아빠랑 같이 분식집에 간 날 말이다.
‘그 사람은 여전하구나.’
아무에게나 하는 욕설과 폭언.
무언가 살이 잔뜩 빠진 느낌은 있었지만, 여전히 야생의 날것 그대로 거칠고,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사람.
자신도 그러면 안 된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은 후에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했던 것도 있고, 너무도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납득해야만 한다.
‘그래. 그는 내가 죽은 이후 힘겨운 삶을 사는 게 분명해. 그런 허름한 분식집. 내가 가수로 있을 땐 절대로 가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게다가 아빠와 현모 삼촌이 통화한 내용으로 추측건대 낡은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스위스 은행에 숨겨놓은 돈을 찾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그건 반드시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서 우리 아빠 줄 거다.
이동석 말고. 김진형에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 앞에서 박민규를 마주쳤다.
등에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면 지금 연습실에 가기 위해 하원 하는 모양이다.
박민규가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안녕.”
“응. 안녀엉.”
“뭔 일 있어? 얼굴이 안 좋네.”
크크. 꼬맹이 주제에 어른처럼 안부를 묻다니.
그래도 덕분에 이동석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하연아. 혹시 너 다음에 나랑 우리 회사 같이 가볼래?”
“회사아?”
“응. 우리 대표님이 널 엄청나게 보고 싶어 하거든. 예전에 엄청 유명한 춤꾼이셨데. 너처럼 가수기도 했고.”
아. 이태식 말인가.
사실 전생에선 나름 인연이 있는 관계였다.
친하다거나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만나면 인사하고 서로 응원하는 사이랄까.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있었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심사관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었다.
안 그래도 좁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고.
어째서인지 환생한 뒤에도 그는 나를 눈여겨보는 눈치였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스카우트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는 자신의 신곡인 ‘달려’ 안무를 따라 하는 영상을 올리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오른 인물.
‘뭐가 유행이 될지 빠르게 캐치할 줄 아는 사람이야. 여전하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아한테에 물어보올게에.”
“그럴래? 잘 됐다. 꼭 물어봐야 해! 알았지?”
“으응.”
그나저나 이태식이 나를 왜 만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분명히 PKT 엔터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는데.
아무튼 관계를 맺어놔서 손해 볼 사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가요계는 생각보다 좁다.
유명해질수록 어떤 식으로든 만날 일이 생길 것이다.
집에 가서 아빠한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응? 아빠 전에는 PKT엔터가 싫다고 하지 않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