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66화 (66/135)

내 딸은 국힙원탑 66화

다른 사람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질문은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면접관들은 모두 베트남 사람인지라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중간에 통역을 거친 다음에 질문이 왔다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질문마다 약간씩의 텀이 주어지면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질문 융단 폭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관심이 나와 하연이에게 쏟아졌다.

“보내주신 기획안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이걸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영상 제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제 딸 역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가운데 앉은 나이 많은 남자가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약간의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기획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은데, 자칫 베트남을 소개한다는 본질은 놓치는 게 아닌가 하고요. 두 분만 즐겁게 놀다 가시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걱정 말입니다.”

통역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뱉었고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죠?”

“영상 일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 중 하나인데, 영상 내내 A에 대해 주야장천 떠들기만 하면 사람들은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창을 끄고 나갑니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거든요.”

“그럼?”

“오히려 재미있는 영상을 찍으면서 서브 주제로 A에 대해 살짝살짝 정보를 푸는 게 훨씬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얻을 수 있죠. 혹시 남산타워에 가보신 적 있습니까?”

내 질문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랑 제 딸이 남산타워를 방문해서 영상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남산타워의 역사는 어떻고, 높이는 어떠하며, 입장료는 어떤지 이야기한다면 이게 과연 보는 사람 입장에서 재미가 있을까요?”

“흐음. 지루할 수 있겠네요.”

“네. 하지만 저희가 기획한 대로 여기서 게임을 하고 둘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 오히려 사람들은 저게 어디지? 라며 관심을 보일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군요.”

상대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면접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나와 함께 들어갔던 다른 면접자들이 우리를 붙잡고 말했다.

“와. 하연이 실물로 보니까 정말 더 예쁘고 귀여워요!”

“고맙습니다.”

“복불복 게임을 하면서 브이로그를 찍겠다니.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그냥 이것저것 고민해보다가 나왔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들은 우리를 경쟁자가 아닌 이미 이번 여행에 선정된 이들처럼 대했다.

하연이가 그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는 것으로 주한베트남관광청대표부를 나온 우리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면접 내내 떠들어댔더니 배가 고팠던 까닭이다.

김밥 두 줄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하연이가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빠아! 수고오하셨습니다아!”

“뭘. 네가 고생 많았어, 하연아.”

“울 아빠야는 역시이 최고오!”

흐흐. 금세 피곤이 사라진다.

맛있게 김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하연이가 놀란 토끼 같은 얼굴을 하고선 어딘가를 바라보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하연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나는 하연이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웬 50대 남성이 신경질적인 얼굴로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그는 돈가스를 먹는 내내 혼잣말하며 짜증을 부렸다.

“쳇. 내가 여기서 이따위 거나 먹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젠장.”

맛있게만 먹고 있구먼 뭘 저렇게 투덜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남성은 우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친다.

“뭐야! 어디 구경났어? 왜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고 지랄이야, 지랄은!”

“앗.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거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연이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며 원망 섞인 시선을 보냈다.

“야, 꼬맹이. 재수 없으니까 그만 좀 쳐다볼래? 어?”

“죄송합니다. 하연아 다른 사람 계속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냐. 그만하고 밥 먹자. 응?”

그제야 하연이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하염없이 땅바닥을 바라보더니 테이블에 엎드려 고개를 묻었다.

‘왜 이러는 거지? 하연이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하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하연이를 향해 욕설을 쏟아냈다.

“망할 꼬맹이가 말이야. 내가 누군 줄 알고 쳐다보고 지랄이야. 확 한 대 때려버릴까 보다. 한주먹거리도 안되게 쪼끄만 게.”

그 한마디에 그동안 참고 있던 내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나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서는 상대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애가 쳐다볼 수도 있죠.”

“이 새끼는 또 뭐야? 누가 애 낳으래? 먼저 잘못해놓고는 어디서 눈을 부라려!”

그는 들고 있던 포크를 이용해서 나를 찌르려고 했다.

이 미친.

하지만 젊은 내가 더 빨랐다.

나는 즉시 그의 오른손을 낚아채고는 크게 소리쳤다.

“아저씨! 지금 사람을 포크로 찌르려고 한 겁니까?”

“이 자식이! 야! 이 손 안 놔?”

“지금 당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어! 살인미수죄로 잡혀들어갈 수 있다는 거 알아, 몰라?!”

나는 더욱 손에 힘을 주었고, 그는 고통스러웠던지 손에서 포크를 놓더니 괴성을 질렀다.

“끄아악. 아프다고! 아프다니까!”

내가 손을 놓자 그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빠르게 가게를 나갔다.

유리창 앞에서 김밥을 말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친다.

“어이! 아저씨! 돈을 내고 가야지! 이 사람이!”

나는 주변을 정리하고 계산하면서 그가 먹었던 음식값까지 같이 내려 했다.

“저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그 사람이 먹던 비용은 제가 대신 계산하겠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무슨. 주인인 내가 먼저 말렸어야 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그러지도 못했네. 엄한데 돈 쓰지 말고 가세요. 욕봤습니다.”

그는 하연이에게 가면서 먹으라며 김밥 두 줄을 공짜로 주었다.

하연이가 가게를 나오고서도 계속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나는 하연이를 등에 업고 걸었다.

“하연아. 좀 괜찮아?”

“우응.”

목소리에 힘이 없다.

젠장. 괜히 분식집에 들렸다.

어른이 어른스러워야지, 그딴 이상한 새끼나 만나고.

나는 그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러다 문득 분식집에서 봤던 그 남자가 누군지 떠올랐다.

‘잠깐. 이하연 아빠잖아!’

아마 대다수 사람은 그가 누군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하연의 찐팬이었고, 찐팬들만 모이는 오픈 채팅 방에서 그의 사진을 몇 번인가 봤던 기억이 있다.

대체 어떻게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도박장에서 도박하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은 그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친 새끼. 이하연이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으니까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밥을 먹고 있었던 건가.’

그런데 하연이는 저 남자를 어찌 알고 쳐다봤던 거지?

하연이도 나만큼이나 이하연에게 관심이 많으니 어디선가 그의 얼굴을 봤던 것일까?

하연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하연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없기에 도저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주차해두었던 곳으로 이동하여 하연이를 뒷좌석에 태운 뒤 말없이 차를 몰았다.

이하연의 친부를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올 때만 하더라도 떠들썩했던 차 안의 공기가 무겁기 짝이 없다.

#

그날 저녁.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장소가 나왔다.

익숙한 인물은 현모였고, 익숙한 장소는 오늘 낮에 식사하였던 분식집.

“한 남성이 상대를 포크로 찌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내 제압당하고선 그대로 달아납니다. 계산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오늘 갔었던 분식집 주인아저씨로 추정되는 남자가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로 음성이 변조된 채 입을 열었다.

“갑자기 가게가 시끄러워지는 것 같더니 내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막 뛰는 거야.”

분식집 내부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더니 현모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50대 이 모 씨는 오늘 낮 11시 30분쯤. 서울 강동구청역 인근의 한 분식집에서 식사하다가 느닷없이 가게 안에 있던 부녀에게 욕설을 하더니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단지 쳐다보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먹고 있던 포크를 휘둘러 상대 남성을 찌르려 했습니다.”

이내 가게 CCTV로 보이는 장면이 나오더니 그가 나를 포크로 찌르려던 순간이 재생되었다.

나는 급히 하연이를 껴안고 그녀가 TV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다.

“하지만 상대 남성에게 제압당한 그는 식사비용도 내지 않은 채 도망칩니다. 하지만 하루가 가기 전. 끝내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자막에 서울강동경찰서 형사과장이라고 적힌 남자가 나와서는 말을 한다.

“다른 손님과 분쟁이 생기면서 부끄러웠는지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고 합니다. 음식값을 내지 않은 건 고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시 현모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유명 가수의 친부로 확인된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흥분해서 이럴 일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자신 또한 상대 남성에게 부상을 당했으니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상대 남성은 정당방위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이 외에도 이 씨의 추가 범행이 없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구현모입니다.”

나는 즉시 현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모야! 방금 뉴스 봤다. 무슨 일이야?”

- 봤냐?

“이런 게 있으면 나한테 미리 전화를 주지 그랬어?”

- 아냐. CCTV 보고 딱 너랑 하연이라는 거 알았는데, 괜한 논란 생길까 봐 아무 말도 안 했다.

이 자식은 진짜.

“좀 자세히 이야기해봐. 어찌 된 일인지.”

- 뉴스에서 본 그대로야. 그가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잡힌 거지.

“무전취식으로? 경찰이 어찌 알고?”

- 분식집 주인이 바로 신고했나 봐. 다행히 CCTV가 제법 선명한 편이라 금방 잡혔다더라.

와. 요즘 CCTV 무섭다. 신고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로 범인을 잡을 줄이야.

“경찰에서 내 이야기는 없었어?”

- 어. 너랑 하연이는 명백히 피해자니까. 정당방위였고, 큰 사건도 아니니까 구태여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그런데 이런 사소한 사건이 뉴스에 나올만한 건수야?”

- 하하. 뉴스에 나올만한 건수지. 요즘 살기가 각박해지면서 무전취식 사례가 많거든. 게다가 그는 너한테 폭력을 행사했으니까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일이었어. 사실 얼마 전에 기내에서 아기 운다고 승객 중 한 명이 폭언한 일이 있었잖아?

“그래. 좀 심했더라. 애가 좀 울 수도 있지.”

- 응. 그래서 나도 사건을 제보받고 처음엔 그쪽으로 엮을까 했는데 상대가 너랑 하연이더라고? 그래서 야마를 무전취식으로 급히 수정했지.

“야마? 그게 뭐야?”

- 핵심? 주제? 뭐 이런 뜻의 언론계 은어인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강동경찰서 형사과장님이랑 친한 사이라서 내가 이건 다른 언론사에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 해당 CCTV도 폐기했으니까 너랑 하연이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은 더 알려지지 않을 거야.

고마운 녀석. 괜히 논란이 생길까 봐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일을 처리해줬구나.

“고맙다, 현모야.”

- 뭘. 그런데 그 남자 말이야. 경찰조사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던데?

“뭐?”

- 자기가 이하연의 친부인데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냐면서. 미친. 누구 때문에 이하연이 죽었는데 어디서 딸 이름을 팔고 있어. 아주 정신이 나간 놈이지.

“아직도 인간이 덜됐네.”

- 더 놀라웠던 건 뭔 줄 알아?

“뭔데?”

- 그동안 돈을 얼마나 펑펑 써댔는지 지금은 허름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더라. 그래 놓고서도 자기가 이하연이 숨긴 돈만 찾으면 다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면서 너희들 다 옷 벗을 각오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아주 인간 말종이야.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하연이 살아생전 그의 아비에게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가기도 하고.

아무튼 하연이가 이번 일로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유주에게 상담을 요청했더니 유주가 당장 하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란다.

벌써 오후 9시가 넘었는데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