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65화
송규형은 근심어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송 실장은 이 영상을 보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습니까?”
“네?”
“제가 나름 왕년에 춤의 신으로 불리던 사람이잖아요. 이곳도 원래는 새로운 춤꾼을 육성하기 위해 시작한 곳인데. 아무리 아역배우라곤 해도 소속 연예인이 사람들한테 춤을 못 춘다고 손가락질받고 있는데 분한 마음이 안 드냐 이 말입니다!”
송규형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하필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이 터지고 말았구나.
PKT 엔터에서만 오랜 세월을 보낸 송규형은 이 회사에 다니면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몇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PKT 엔터 소속 연예인이 어디 가서 춤을 못 춘다는 말을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였다.
그것은 대표인 이태식에 대한 모욕과 동의어이므로.
‘하필 뇌관을 건드려버렸군.’
이태식은 자신에게 소속 연예인의 유튜브 관리를 왜 직접 하지 않았냐고 화를 냈지만, 사실 어린 친구들까지 우리가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건 자신이 아니라 이태식 대표 본인이었다.
하도 많이 당하는 일이라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쿨하게 넘기게 되었지만, 아무튼 일이 커졌다.
‘설마 직접 댄스트레이너들과 함께 김하연의 안무를 따라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우리 회사 가수도 아닌데 그러면 저쪽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인데.’
하지만 한번 스위치가 켜지면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돌진하는 이태식 대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대표실을 빠져나온 그는 서둘러 모든 PKT 엔터 소속의 댄스트레이너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금 당장 지하 연습실로 모이라는 엄명과 함께.
#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나는 예전에 베트남 관광청에서 온 의뢰 메일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하연이랑 한 달 동안 베트남에서 뭘 찍을지 상세하게 작성해야지.’
얼핏, 주변 맛집과 관광지에 들러 이를 소개하는 영상을 찍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게 된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뭔가 나와 하연이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소라가 내 자리로 다가와서는 서류철을 건넸다.
외주 관련 계약서들이다.
내가 계약서를 살펴보는 사이. 그녀가 내 모니터를 살짝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베트남 관광청에서 보낸 메일 보고 계시네요?”
“아 네. 이제 마감까지 얼마 안 남은 거 같아서.”
“뭐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으세요?”
“아뇨. 고민 중이에요.”
그러자 그녀가 왜 혼자서 고민하는 거냐며. 밑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회의를 한번 하면 어떻겠냐고 말을 해온다.
“이러려고 사람 뽑으신 거잖아요. 우리 다 같이 회의해봐요.”
“그래도 만약 성사되면 저랑 하연이만 가는 건데 미안해서 그렇죠.”
“미안은요 뭘. 그거 따내면 사장님 혼자 드실 거 아니잖아요. 회사 이름으로 계약하시는 거 아니예요?”
아하. 이거 한다고 내가 혼자서 다 받는 게 아니구나.
개인사업자를 내면서 내가 하는 일과 회사가 하는 일의 경계가 살짝 미묘해졌는데, 어차피 사업을 하는 거니까 회사 이름으로 받는 게 비용 처리 등을 할 때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직원들을 불러 모아 관련 회의를 주재했다.
“여러분들 입사 전에 베트남 관광청에서 이런 의뢰가 왔거든요. 그래서 지금 어떤 식으로 기획서를 제출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는 분들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김지환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제가 봤을 땐 아빠와 딸만 단둘이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 같아요. 보통은 엄마랑 아이만 오거나, 부모 모두와 오겠죠.”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빠와 딸. 둘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겁니다.”
아빠와 딸 둘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라. 말이 쉽지 뭘 어떻게 해야 할 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전에 한신그룹 이창돌 회장님도 이야기하셨지만 많은 아빠들이 딸을 귀여워하면서도 막상 대하는 건 어려워했다.
아들보다 훨씬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하연이가 즉흥적으로 스케줄을 정하고, 사장님은 거기 맞춰서 움직이는 컨셉은 어떨까요?”
“하연이가 스케줄을 짜고 제가 거기 맞추는 컨셉이요?”
“네. 하연이는 베트남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시간만 미리 정해 놓은 채 하연이가 목적지를 정하는 겁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김지환은 살짝 흥분했는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을 먹어야 할 거 아니예요?”
“그렇죠?”
“사장님이 미리 유명한 맛집 리스트를 10개 정도 추려 놓고 하연이가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는 거예요.”
“으흠.”
“운이 좋아서 가까운 곳이면 다행인데 어떤 곳은 숙소에서 막 50km 떨어진 곳에 있어요. 시간은 무조건 1시간 뒤인 9시까지 가기. 이런 식의 제한이 걸려있고요.”
“헉. 하연이가 50km 떨어진 식당을 고르면 어떻게든 1시간 안에 거길 도착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죠! 그다음 목적지인 카페나 관광지도 그런 식으로 고르는 거죠. 최적의 동선을 미리 정해서 여행하는 게 아니라 하연이가 그때마다 고르면 어떻게든 이행해야 하는 복불복 게임! 어떤가요?”
뭔가 내가 개고생할 거 같은 컨셉이긴 한데 재미는 있어 보인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옆에 있던 김소라가 좋은 의견이라며 손뼉을 쳤다.
“와! 그거 아이디어 좋네요. 사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널리고 널렸잖아요? 블로그 검색이나 유튜브 검색하면 비슷한 이야기가 엄청 많이 나올 텐데, 그것보다는 하연이가 목적지를 고르고 사장님은 어떻게든 그걸 제한된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하는 게임과 같은 여행이라면 보는 재미도 있고, 긴박감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지환 씨 머리 진짜 좋다?”
“헤헤. 고맙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김지환의 이야기에 찬성했다.
김지환은 추가로 #아빠는강하다 와 같은 해시태그를 붙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오세영은 촬영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브이로그니까 각자 머리나 어깨에 고프로를 착용해서 일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함께 제삼자의 시선도 느낄 수 있도록 별도의 카메라를 1개 추가로 세워놓고 이를 교차편집하면 훨씬 좋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다. 카메라가 많을수록 다양한 시점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내가 보지 못하는 장면을 캐치할 수 있을 테니까.
예를 들면 나는 몰랐는데, 세워둔 카메라에는 내 뒤로 귀여운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장면이 찍혀서 화제를 전환할 수도 있을 테고.
다만 1시간 단위의 시간 제한 때문에 그걸 설치할 여유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메모해 놓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마지막으로 조유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항상 다 듣고 마지막에 의견을 내곤 했는데, 그게 늘 기상천외한 내용일 때가 많았으니까.
“저기. 제 생각에는요.”
“유리 씨. 조금만 목소리 더 크게요.”
“네에! 제 생각엔 이번에 사장님이 하연이 신곡 안무를 따라 하셨잖아요?”
“그랬죠?”
“그걸 베트남 유명 관광지에 가서 추거나, 혹은 지나가는 관광객들한테 보여준 다음 추게 하는 식의 챌린지 영상을 시도하는 거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동감을 표한다.
“이야! 그거 좋은데요? 단순히 말로 관광지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춤을 추는 게 저긴 대체 어디지? 하는 궁금증도 훨씬 더 강하게 생길 테고요.”
“역시 유리씨! 완전 대박!”
“그거 괜찮네요. 하연이는 가수니까, 남과는 다른 포인트가 될 거예요!”
“네. 잘 추면 잘 춘 대로. 못 추면 못 춘 대로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 말이야.
정작 이걸 수행해야 할 사람은 난데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하는 거 아닌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나는 조유리의 의견에 엄지를 치켜세운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리 씨.”
“네.”
“그런 의미에서 유리 씨도 한번 시리즈 영상 올려보면 어때요?”
“네? 제가요?”
조유리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진다.
“저번에 회식 자리에서 보니까 유리 씨 춤 잘 추던데요?”
“오. 맞아. 우리 중에선 유리 씨가 가장 춤 실력이 좋았어요.”
“원래 만화에서도 보면 평소 말 없고 조용한 캐릭터가 남다른 기술을 가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땐 깜짝 놀랐어요. 유리 씨 춤 실력은. 킹정입니다.”
모두가 입 맞춰 조유리의 댄스 실력을 칭찬하자 그녀의 양 볼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저, 저는 그런 거 잘 못해요.”
“에이. 몸치인 저랑 유주. 그러니까 하연이 어린이집 선생님도 영상 올렸잖아요.”
“맞아요. 박민규인가? 그 친구도 나름 유명한 아역배우라고 하던데 하연이랑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이유로 영상 올려서 난리 났잖아요? 괜찮을 것 같은데.”
조유리는 끝까지 저항하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녀가 춤을 추면 다른 이들도 모두 릴레이 영상을 찍어서 올리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곰도리형제단 모두가 ‘달려’의 안무를 따라 하는 영상을 각자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게 되었다.
그래. 형제단이면 이 정도는 다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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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김하연 아기춤 따라 하기 삼매경>
<아기춤을 배워보자! 김하연 아기춤 인기폭발>
<원조 춤꾼 이태식도 달려!...아기춤 패러디 화제>
<김하연 아기춤 인기 비결은 난해한 동작과 빠른 비트>
<김하연의 달려가 한국을 사로잡은 3가지 이유>
‘달려’는 어느새 음원차트 탑10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하연이가 추는 춤은 ‘아기춤’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얻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PKT 엔터의 이태식 대표가 스무 명이 넘는 춤꾼들과 함께 선보인 아기춤 따라하기는 하연이의 ‘달려’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300만 뷰가 찍히는 등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밖에 많은 이들이 하연이의 아기춤을 따라 한 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리면서 지금 한국은 아기춤 따라 하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요즘 오피스텔 1층에 위치한 카페에 가면 하연이와 나를 알아본 이들이 아기춤의 동작을 일부 따라 하며 말을 걸어올 정도로 말이다.
아기춤은 그리 단순한 동작이 아님에도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역시 한국인은 어디서 유행한다고 하면 안 따라 하고서는 못 견디는 민족인 것 같다.
아무튼 하연이의 이름이 점점 더 유명해지는 사이.
김선정 기자가 탑코리아스타에 하연이와 나의 인터뷰 기사를 노출했고,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이제는 메일이 아니라 직접 집과 사무실까지 매체에서 찾아와서는 인터뷰하자고 난리다.
거기에 구독자 수가 백만이 넘는 인기 유튜버들까지 가세. 제발 하연이와 합방하게 해달라고 연락을 취해왔다.
그 사이 베트남 관광청에서도 우리가 보낸 기획서를 검토하고는 면접을 요청해왔다.
서류검토에서 총 5팀을 뽑았다고 하는데 거기에 나와 하연이가 당당히 선정된 것이다.
나는 간만에 정장을 입고 하연이와 함께 주한베트남관광청대표부를 방문하였다.
개별면접이 아니라 5팀이 동시에 면접에 들어간다고 하니 더욱 긴장되는 자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면접자로 보이는 가족들이 계속해서 이쪽을 쳐다보며 관심을 표한다.
확실히 요즘 하연이가 대세는 대세인가.
그러던 차에 관계자가 면접을 시작하겠다고 말하고는 우리를 회의실로 들여보냈다.
5팀이 모두 회의실에 들어갔고, 면접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세 명 보인다.
얼마 전엔 내가 면접관으로 면접을 진행했었는데.
역시 사람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아무튼 긴장하지 말자.
하연아. 꼭 아빠랑 둘이서 베트남 한 달 살기에 성공해보자!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