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64화
“혹시 이걸로 릴레이 콘텐츠 만들어 볼 생각은 없어?”
“릴레이 콘텐츠?”
“응. 원곡 가수 하연이의 아빠인 네가 춤 영상을 올렸잖아?”
“그랬지?”
“그다음엔 하연이 어린이집 선생님인 내가. 그리고 나서 민규나 소윤이처럼 하연이 어린이집 친구들의 영상이 올라가는 식으로 하연이의 주변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춤추는 영상을 올리면 화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호라.
그거 나쁘지 않은데?
춤이 재미있으면 유튜브 등 영상 사이트에 이를 따라 하는 영상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런데 유주의 이야기는 일반인이되 하연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영상을 시리즈로 올리자는 것.
‘사람들의 관심이 생길 법하다.’
하연이 뮤비 아래 설명란에 링크를 걸어줄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유주 네가 춤을 춘다고? 몸치로 유명한 네가?
나는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유주야.”
“어.”
“너 춤추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진형아.”
“응.”
“나 예전의 그 몸치 신유주가 아냐.”
“그, 그럼?”
“주변에서 하도 놀려대서 댄스학원 다녔거든.”
그랬구나. 무언가 납득이 되는 답변이다.
나랑 사귈 당시 유주의 춤 실력은 대학에서도 유명했다.
파티를 가든. 클럽을 가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말이다.
어찌나 엇박자가 많고 로봇처럼 딱딱하게 추는지. 게다가 그렇게나 춤을 못 추면 스스로 자제하는 게 보통일 텐데 또 흥은 많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들리면 온몸을 들썩거리며 춤을 췄다.
“고생이 많다.”
“고생은. 그래서 내 아이디어. 어떤 거 같아?”
“좋네. 한번 해보자.”
“응! 내가 찍어서 너 보내주면 돼?”
“아니. 그건 좀 이상하잖아.”
“이상하다고?”
“하연이 아빠인 내가 네가 춘 영상을 내 채널에 올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걸.”
“왜?”
“의도적으로 하연이 춤을 띄우려고 작당을 했다는 식의 오해를 받을 수도 있잖아.”
“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너도 이번 기회에 유튜브 채널 만들어서 올려봐. 너 안 그래도 유튜브 해보겠다고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보기만 했지 직접 영상 올려본 적은 없어서. 혹시 괜찮으면 만드는 거 도와줄 수 있어?”
“그래. 그 정도야 뭐.”
나는 다음날 하연이 하원 하는 길에 잠시 짬을 내서 유주의 유튜브 채널 개설을 도와주었다.
춤춘 영상 보여달라니까 나중에 자기 채널에 올라오면 직접 보란다.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저러는 걸까.
하연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새 유주의 춤 영상이 올라왔다.
궁금해서 확인해보니까 이건.
나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빠아. 왜 그래요오?”
“...”
나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하연이에게 건넸다.
하연이가 영상을 보더니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새앵니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재차 확인했다.
“유주야. 이거 진짜로 하연이 뮤직비디오에 링크 걸어서 소개해도 괜찮은 거야?”
“물론이지! 왜? 이상해?”
“그건 아닌데.”
“그런데 왜 목소리 끝을 낮춰?”
“아니다. 건투를 빌게.”
“뭐?”
나는 전화를 끊고 하연이의 뮤직비디오 아래 설명란에 내가 올린 춤 영상과 유주가 올린 춤 영상 링크를 걸어주었다.
백만 뷰를 넘긴 뮤비인 만큼 반응은 바로 왔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 하연이 어린이집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열정에 감탄하고 갑니다!
└ 보니까 채널 만들고 첫 영상이신 것 같은데.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 선생님 넘 잘 추시고 귀엽네여. 파이팅! ^0^
└ 와 이 언니 봐라..그 용기만은 인정해드리겠습니다
└ 하연이 선생님 멋져요 정말! 자꾸 보니까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ㅎㅎㅎㅎㅎ
└ 진짜 잘 추신다. 짝. 짝. 짝.
천사들만 댓글을 남겼나. 어째서인지 대놓고 꼽주는 사람이 없다.
지나친 인신모독성 댓글이 보이면 바로 삭제하려고 했더니 말이다.
하연이에게 저녁을 먹인 뒤 양치질을 시키고 있는데 유주한테 전화가 왔다.
“김진형! 봤어? 봤냐고?”
“뭘?”
“내 영상에 달린 댓글들 말이야!”
“어어. 봤지.”
“훗. 어때? 예전의 내가 아니지?”
“으응. 그렇더라.”
“조회수가 벌써 1만 넘었어! 구독자도 그새 삼백 명이나 생겼고!”
“하연이가 유튜브에선 제법 유명세가 있잖아.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후훗. 나 뭔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 당분간은 춤 추는 영상 위주로 올리면 괜찮을 것 같은데.”
유주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성적으로는 말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에서 그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 네 채널이니까.”
“응. 고마워! 그럼 내일 또 보자!”
그녀는 신이 난 채로 전화를 끊었다.
뭐 별일이야 있겠나. 저러다 힘들어지면 스스로 말겠지.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칫솔질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치약 맛이 짜다.
#
오래지 않아 나는 김선정 기자와 다시 대면했다.
하연이 없이 둘이서만.
세 얼간이와 상의해본 결과,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인터뷰하라고 조언했다.
[구현모] : 인터뷰해, 인마. 다 하연이를 위해서잖아
[신상준] : 나 같아도 하겠다. 얼굴 팔리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면 사진 촬영은 싫다고 그러고
[박성현] : 유튜브에 자기 얼굴도 섬네일에 떡하니 올려놓은 놈이 부끄럽긴 무슨. 당장 해
그래서 하연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사이. 저번에 하연이 인터뷰했던 그 카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저번에 봤을 때와 옷차림이 180도 달랐다.
그때가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심플한 캐주얼 차림?
아래는 청바지. 위에는 흰색 티셔츠만 입고 와서 그런지 이전보다 어려 보인달까. 발랄한 느낌이 있다.
거기에 안에는 검은색 브래지어를 입고 있어서 내부가 비췄다.
나는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과는 패션 스타일이 다르시네요.”
“왜요? 이상한가요?”
“아뇨. 그냥 전과 다르다고요.”
그녀는 피식 웃더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나요?”
“그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그래요 뭐. 인터뷰 시간은 대략 30분 내외로 마무리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는 첫 질문부터 세게 나왔다.
“하연이 친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된 사이인가요?”
“그게 중요한 질문인가요?”
“하연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다음에 하는 것보다는 지금 해 두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다.
억측성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공신력이 있는 그녀와 미리 인터뷰해두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질문에 답했다.
“우연히 술집에 있다가 알게 됐어요.”
“술집이요?”
“네.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는데 뒤에서 다가오더니 자기 연락처를 건넸거든요.”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헌팅을 당한 거네요.”
“그렇죠.”
말하고 나니까 좀 웃기다.
스스로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치부를 들킨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녀가 하연이를 건넨 이후로는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나요?”
“네.”
“전화번호는 알고 계시고요?”
“하연이를 저한테 주고 며칠 뒤 번호를 바꿨더라고요.”
“번호를 바꿨다고요? 완전 의도적이네요? 혹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없었나요?”
신고라.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우선은 하연이를 어떻게 키울지 전혀 정신이 없었던 탓도 있고, 하연이가 내 친자식이라는 게 이미 밝혀진 마당에 괜히 경찰서까지 가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전혀요. 그럴 정신도 없던 상황이었어요.”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연이 어린 시절에 관해 묻는다.
“갑작스럽게 아기를 키우게 돼서 많이 당황하셨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음. 어린 하연이를 방에 혼자 두고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아기 띠를 한 채 면도도 하고, 세수도 했던 게 생각나네요.”
“하연이가 싫어하진 않았나요?”
“아뇨. 하연이가 신기한 게 정말 잘 울지 않았어요.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아니면요.”
“착한 딸이네요. 아빠 힘든 것도 감안해주고.”
“하하. 맞아요. 정말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그밖에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면 몇 가지 들려주세요.”
인상적인 일이라.
“하연이가 2살 때였던가 그랬을 거예요. 하루는 일하다가 좀 지쳤어요. 피곤하기도 하고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하고요.”
“일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죠.”
“그래서 바운서에 누워있는 하연이에게 가서 넋두리했죠.”
“넋두리요?”
“네. 애가 제 말을 이해할 리도 없겠지만 그냥 앞에 두고 이야기를 던진 거죠.”
“뭐라고 하셨는데요?”
“애 앞에서 좀 부끄럽긴 한데. 하연아. 아빠가 요즘 많이 힘들다. 육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그냥 좀 지치고 외롭고, 힘이 드네. 이런 식으로요. 하하. 지금 이야기하니까 되게 무안하네요.”
“이해해요. 누구라도 혼자서 애를 보면서 일도 해야 한다면 그럴 수 있죠.”
저번에는 호랑이 같이 느껴지더니 정말 여자의 변신은 무죄인가 보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연이가 저를 보고 까르르 웃어주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마치 아빠, 힘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이러는 것 같았어요. 미친 듯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물론 그 밖에도 기억나는 일은 많지만요.”
“그러셨군요. 고생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30여 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녀는 봐서 너무 사적이거나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부분은 알아서 편집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올리기 전에 초안을 먼저 보여드릴게요. 보시고 이상한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자리셨을 텐데 말이에요.”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고, 나는 한동안 카페에 계속 앉아있었다.
한동안 하연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아련하기도 하고, 그땐 그랬지란 감정에 사로잡혀서, 회사로 바로 들어가기가 조금 그랬으니까.
돌이켜봐도 하연이는 참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늘 아빠 옆에서 응원해주고, 힘이 되어주었던 아이.
만약 하연이가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분명 여전히 비디오쉐어에 다니면서 찌질하게 살고 있었겠지.’
하연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자 선물이었다.
#
박민규는 요즘 연기 연습보다 이거에 더 빠져있었다.
하연이의 신곡 ‘달려’의 춤 연습 말이다.
‘유주 샘처럼 못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유주 선생님은 어느 날 어린이집 아이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으고는 하연이 신곡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원하는 자가 있으면 하연이 안무를 따라서 춤추는 영상을 올리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도 이렇게 당당히 올렸다면서 말이다.
하연이 뮤비를 보고 난 직후에 다시 봐서 그런지 그것은 뭐랄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비싼 생과일주스를 마신 직후에 슈퍼에서 파는 과일맛 주스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사람이 앞에 있는데 거기다 대고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영상이었다.
‘적어도 내가 그것보단 훨씬 더 잘 출 수 있을 거야.’
소망반으로 올라온 뒤로 하연이와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서 하연이한테 눈도장을 받아야지.
어린 박민규는 그리 다짐하고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춤 연습에 매진했다.
심지어 PKT 엔터의 춤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개인 지도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며칠 뒤.
그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김하연춤따라하기 라는 태그를 달고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런데 왜 이런 댓글만 올라오는 건지 모르겠다.
박민규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듯
└ 하연이가 추는 건 춤 선이 진짜 예쁜데 이 친구가 추는 건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 드네
└ 전형적인 아이돌 댄스트레이너가 가르쳐준 느낌인데?
└ 이전에 하연이 아빠랑 어린이집 선생님도 그러더니. 웃긴 춤 릴레이 시리즈인가? ㅋㅋㅋㅋㅋ
└ 덕분에 웃고 갑니다. 하하하
└ 힘내라, 꼬마야. 파이팅!!!
└ 우리 민규는 춤출 때보다 연기할 때가 훨씬 더 예뻐. 민규야 힘내!
박민규는 절망했다.
아니 왜?
물론 하연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하연이 아빠나 유주 샘이 올린 영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퀄리티잖아!
그는 억울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은 여기 또 있었다.
박민규가 소속되어 있는 PKT 엔터의 대표인 이태식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지금은 가수뿐 아니라 배우와 예능인도 함께 키우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지만 그 시작은 춤 아니던가.
발라드와 트로트 일색이던 대한민국 가요계를 댄스 열풍으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다.
춤의 신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미디어의 집중조명을 받은 시대의 춤꾼.
그는 당장 송규형을 자리로 불렀다.
“송 실장님.”
“네, 대표님.”
“이거 대체 누구 허락받고 올린 겁니까?”
“어떤?”
송규형은 이태식이 보여준 유튜브 영상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처음 보는 영상이었으니까.
“저도 잘.”
“그게 말이 됩니까? 박민규는 송 실장이 관리하는 친구 아녜요?”
“그건 그런데 민규 유튜브 채널은 저희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민규 엄마가 관리하고 있어서요.”
“소속 연예인 가족이 유튜브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요? 그게 지금 말입니까 똥입니까?”
“아니 그게..”
“됐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저희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조치하세요.”
“..네, 대표님.”
송규형이 머리를 조아리며 방에서 나가려던 찰나.
이태식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 당장 댄스트레이너 모두 지하 연습실에 불러 모아요.”
“댄스트레이너들 모두요?”
“네. 모두입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