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63화 (63/135)

내 딸은 국힙원탑 63화

“제가 하연이의 첫 매체 인터뷰를 하게 된 주인공이라죠? 고맙습니다, 아버님.”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찾아봤더니 지금까지 하셨던 인터뷰가 정말 다 너무 대단하더라고요. 이런 분이라면. 하연이 인터뷰를 진행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호호. 그렇게 칭찬해주신다고 듣기 좋은 질문만 던지지는 않을 거랍니다.”

하연이와 김선정 기자의 인터뷰를 같이 본 건 고작 이틀 전이었다.

혹시나 싶어 메일함을 찾아봤더니 그녀에게도 인터뷰 제안이 와 있었다.

나는 잘 모르는 매체와 기자였기에 현모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당장 인터뷰하라고 그랬다.

[구현모] : 대박이네! 김선정 기자가 인터뷰하고 싶다고 먼저 메일을 보냈다고?

> ㅇㅇ 그녀 외에도 인터뷰하고 싶다는 메일은 엄청 많이 왔지만

[구현모] : 다른 건 필요없고, 그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따내라!

> 왜? 유명한 기자야?

[구현모] : 당연하지! 탑코리아스타는 연예매체 중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곳이야! 그중에서도 김선정 기자는 최고의 스타기자고

> 글쿠나. 연예 기사는 잘 안 봐서 몰랐다

[구현모] : 딸 가수시키겠다는 사람이 연예매체를 안 보면 쓰나. 인생 날로 먹으려고 하네

> ㅋㅋㅋㅋㅋㅋ 사실 매체랑 인터뷰하게 된다면 너랑 할까 싶었지

[구현모] : 크윽. 아쉽지만 나는 사회부 기자라서 연예쪽은 담당이 아니다. 마음만은 고맙게 받으마

> 아무튼 그녀랑 인터뷰하면 괜찮다 이거지?

[구현모] : 그래. 내가 알기로는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유명한 기획사에서도 그룹 론칭 전부터 줄을 선다더라. 그래도 아무나 해주는 게 아니라 가려 받는다는데 그쪽에서 먼저 인터뷰 요청을 했으니 진짜 하연이가 대단하긴 대단한가보다

> ㅇㅋ. 바쁠텐데 빠르게 답변해줘서 고맙다

[구현모] :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나저나 하연이 얼굴 못 본 지 좀 됐네. 조만간 애들 모아서 놀러갈게

> 응. 연락줘

그런 이유로 답장을 보냈더니 바로 오늘 만나자는 게 아닌가.

하연이 하원하면 자기가 이쪽으로 온다면서 말이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는 김선정 기자는 겉모습에서부터 대단히 전문가적인 포스를 풀풀 내풍기고 있었다.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랄까. 결혼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남편이나 남친이 있다면 발아래 두고 군림할 것 같은 여장부.

그녀는 가방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꺼내고선 하연이 촬영을 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카메라 좋은 거 쓰시네요?”

“이거요? 제가 직접 촬영해서 사진까지 올려야 하니까 가볍고 성능 좋은 걸로 쓰고 있어요. 아 맞다. 하연이 아버님은 영상쪽 일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이 건물 위에 회사 사무실이 있어요.”

“그러셨구나. 어쩐지 여길 잘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집이 있는 오피스텔 1층에 위치한 카페인 데다가 회사 사람들과 함께 매일같이 와서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녀는 하연이를 흰색 벽이 있는 공간으로 데려가 촬영을 시작했다.

- 찰칵! 찰칵!

이런 일이 익숙한지 몇 번의 조작만으로 쉽게 사진을 찍는다.

뒤에서 슬쩍 봤더니 조리개값도 그렇고 셔터스피드나 ISO 값도 직접 수동으로 조작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무래도 카메라 만지는 걸 본업으로 하고 있으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혹시 오늘 찍은 사진 저한테 따로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진이요? 그럴게요. 하연아. 이쪽보고 조금만 더 웃어볼래? 그렇지. 좋아. 이번에는 조금 더 몸을 옆으로 틀어서.”

아무하고나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는다더니 이런 게 프로의 자세로구나.

한 수 배워간다.

사진을 찍은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연아. 이번 신곡 정말 좋더라.”

“캄사합니다아!!”

“지금부터 언니가 몇 가지 질문을 할 텐데 혹시 곤란한 게 있으면 아빠랑 상의해서 이야기해도 괜찮아. 알겠지?”

“네에!”

“우선 첫 번째 질문. 이하연은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었어?”

역시 첫 질문은 그건가.

HiYeom하연 채널에서도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이다.

김하연은 이하연과 무슨 관계냐고.

당연히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일단 나로 말하자면 이하연의 콘서트에 몇 번 간 적은 있었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잘 되기만을 응원하는 소심한 팬에 불과했다.

하연이의 경우는 이하연이 세상을 떠난 날. 내게로 온 갓난아이였고.

하연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답변했다.

“아빠아가 이하여언 언니이 패니에요.”

“그래? 그래서 어릴 적부터 이하연의 노래를 많이 듣고 자랐나보구나?”

“그거언 아닌데에. 내가아 노래르을 부르며언 아빠가아 조아라해줘떠요.”

“으흥. 아빠한테 칭찬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더 열심히 불렀다. 이 말이지?”

“웅!!”

그랬던 거였나?

뭔가 전후관계가 살짝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긴 한데 그냥 냅두자.

사실 나도 하연이가 어쩌다 이하연의 노래를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서 먼저 듣고 안 줄 알았는데, 유주 말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하연이가 이하연의 환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하하.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나는 조용히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김선정 기자는 하연이에게 참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고, 내가 예전에 하연이와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를 보고 왔는지 이를 참고해서 조금 더 확장된 질문을 던져왔다.

예를 들면 미혼부라는 게 뭔지 아는지. 그래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뮤직비디오가 정말 참신하던데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노래는 어떻게 만들었고 안무는 누가 짜 준 건지 등등.

들으면서 나도 하연이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연. 프로. 질문의 결이 다르구나.’

이래서 다들 전문가, 전문가 하는 가 싶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질문과 답변은 이거였다.

“하연아. 만약 엄마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떨 거 같아? 엄마가 하연이랑 살고 싶다고 하면 하연이는 엄마 따라갈 거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이전에 했던 질문과도 전혀 상관없는 맥락이었고.

하지만 내심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하연이는 엄마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하연이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엄마아 시러어요.”

“왜?”

“하여니 버린 사람이니까아.”

김선정도 조금 울컥했는지 인터뷰 내내 짓고 있던 미소가 살짝 흐트러진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재차 물었다.

“그럼 하연이는 아빠가 제일 좋니?”

“응! 나안 아빠야가 세상에서어 제이이이일 쪼아!”

이건 진짜 반칙이다.

미칠 듯이 하연이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혀를 깨물어 간신히 달랬다.

하연아. 아빠도 우리 하연이가 세상에서 제이이이일 좋아.

아빠 자신보다도 우리 하연이가 더 좋아. 만약 나쁜 마법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둘 중 딱 한 사람만 살려주겠다고 하면 아빠가 대신 희생할걸?

자랑스러운 내 딸 하연아. 사랑해.

#

인터뷰는 대략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연이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평소에는 나한테 하지 않았던 속 이야기까지 술술 하면서 이런 기세라면 두세 시간도 뚝딱 지나갈 것만 같다.

그래도 하연이 밥 먹을 시간도 다 되었기에 우리는 인터뷰를 그쯤에서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김선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노트북을 닫고는 힘입게 말했다.

“이걸로 인터뷰는 끄읏!”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자님.”

“아뇨. 하연이가 수고 많았죠. 저는 그저 물어보고 그걸 받아적었을 뿐. 그런데 하연이 아버님.”

“네.”

“혹시 다음에 하연이 아버님 인터뷰도 할 수 있을까요?”

“네? 저요?”

그녀는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시리즈 기사로 해서 하연이 인터뷰가 먼저 나가고 그 뒤에 아버님 인터뷰도 같이 나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는 가수가 아닌데요?”

“하연이를 단순히 가수의 포지션으로만 접근하기에는 무언가 아쉽네요. 미혼부 가정이기도 하니 하연이가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어떤 식으로 자랐는지. 그 과정도 많은 팬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그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일단 제가 너무 궁금합니다.”

김선정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진짜 앞에 호랑이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머뭇거리다가는 잡혀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압감이다.

하지만 하연이도 옆에 있는데 못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번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알겠다면서 자신의 명함을 내게 건넸다.

“인터뷰 의사가 있으시면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그리고 오늘 두 분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기자님도요.”

“간만에 정말 좋은 인터뷰를 해서 저도 즐거운 자리였네요. 그럼 긍정적인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당당한 커리어우먼.

하연이가 크면 저렇게 멋지고 당당한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다.

#

“아빠아. 그게에 아니고요오.”

“으응. 왼손이 먼저 나가야 하는 건가?”

“웅! 크게에 돌려서어 이러케! 그리고오 오르은손을 이러케에!”

끄으응.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올라왔건만 나는 하연이 식사를 차려주지 못했다.

하연이에게 ‘달려’ 안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하연이도 엄청 배가 고플 텐데 내가 제대로 추기 전까지는 저녁을 먹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아.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사실 언제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연아빠TV에 HiYeom하연 채널에 올린 콘텐츠 중 첫 백만뷰가 나오는 영상이 있으면 하연이 춤을 따라하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는데 누군가 그걸 끄집어내서는 매일같이 댓글을 달아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사람 혼자서만 댓글을 남겼는데, 요즘은 꽤 많은 이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하연이 아버님. 춤 안 추십니까? 100만 뷰 찍으면 춤 추신다고 하더니

└ 춤 춰라! 춤 춰라! 춤 춰라! 하연이 아빠는 당장 약속을 이행하라!!!!

└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안 되죠. 실망입니다, 하연이 아버님

└ 혼자 춤추면 부끄러워서 그러시죠? 춤추는 영상 올리시면 저는 광화문 광장에서 팬티만 입고 춤을 추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영상을 올리시지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캡쳐했습니다! 스케일이 점점 커지네요 ㅋㅋㅋㅋ

└ 순순히 춤을 추시면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으나 요즘은 저런 댓글들이 좋아요를 많이 받으며 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튼 춤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걸 하연이는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추기까지 하다니.

새삼 우리 딸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하연아. 이제 그만하고 밥 먹고 다시 하면 안 될까? 아빠 배고프다.”

“안대에에! 다 될 때까지이 바븐 업떠요오!”

히잉. 누구 딸인지 참 매몰차기 짝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제대로 배워서 모두를 깜짝 놀래켜 줄 테다.

삐뚤어져 버리겠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공실인지라 누구 하나 춤을 춘다고 컴플레인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저녁 9시까지 미친 듯이 춤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배가 등짝에 달라붙을 것만 같다.

아슬아슬하게 하연이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아낸 나는 바람같이 부엌으로 피신.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뭘 만들 힘은 없고,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던 두부순대를 쪘다.

이거 진짜 왜 이렇게 냄새가 좋은지. 몇 날 며칠을 먹고 있는데 도대체 질리지가 않는다.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니까 하연이가 내게 말한다.

“아빠아. 촤령해야죠오.”

“촬영?”

“우웅. 연습한커어 카메라로오 찍어야지이. 응?”

이제 누가 아빠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전면 투항.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고는 그걸 하연아빠TV에 올렸다.

제발 다들 모른 척 해줘!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다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응이 뜨겁다.

심지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내가 올린 영상이 떠억하고! 올라와 있지 않은가.

저기요. 다들 저한테 왜 그러세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댓글을 보며 넋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데 유주한테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유주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우하하하하! 김지인혀엉!! 이거 너 맞지?”

그래. 그거 나다. 이제 될대로 돼라다.

그런데 유주가 내게 흥미로운 제안을 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