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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62화 (62/135)

내 딸은 국힙원탑 62화

“달려어나간다아아! 힘차게에!!!”

“와아아아!!”

하연이는 지금 임시로 마련된 무대 가운데에 서서는 자신의 신곡인 ‘달려’를 열창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하나같이 하연이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기에 어쩔 수 없이 임시 공연을 시작한 것.

그나저나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하연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애와 어른 상관없이 말이다.

‘한신 타이거스 개막전 축하공연의 힘이 대단하구나.’

하연이가 노래를 부르고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하연이 매니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하연이의 노래가 끝나고.

안발렌티나 수녀님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녀는 하연이를 따뜻하게 안아준 후 말했다.

“오늘 전혀 준비하지 못했을 텐데도 갑작스러운 요청에 흔쾌히 노래를 불러준 하연이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최고다!!”

“고마워요!!”

“김하연! 김하연!”

성당이 떠나가라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그녀는 하연이를 내게 돌려보내고는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하연이와 하연이의 아빠인 진형 씨는 우리 <아이에게 사랑을>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시고 계십니다. 두 분도 여기 계신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미혼부 가족이고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번에는 진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무대로 걸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연이 아빠, 김진형입니다.”

“와아!!”

내게도 따듯한 박수를 보내주는 사람들.

안발렌티나 수녀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많은 분들이 하연이와 진형 씨 이야기를 궁금해하세요. 어떻게 해서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는지. 조금만 이야기를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게 말씀하시면 그걸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마이크를 들어올리며 하연이를 만난 날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러니까 하연이가 제게 온 첫날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지옥이라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렇게 30여 분에 걸쳐 그동안 하연이를 키워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연이 아버지. 혹시 맥주 좋아하세요?”

“아. 좋아하긴 하는데 오늘 차를 가지고 와서요. 감사하지만 다음에 마실게요.”

“저런. 아쉽네요. 진짜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렇게 아이를 잘 키우시다니. 너무 힘이 되고 가슴 따뜻한 스토리였어요.”

“저도요. 들으면서 저까지 눈물이 다 났네요.”

“진형 씨는 정말 모든 미혼부의 자랑이자 롤모델이십니다. 저도 옆에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하연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일 때 유주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고, 변호사인 상준이도, 기자인 현모도. 의사인 성현이도 큰 힘을 보태 주었으니까.

회사를 나와서 한창 힘들 때 일거리를 몰아주었던 선종이 형도 그렇고, 쿨하게 별도의 수정없이 영상을 컨펌해준 미래 그룹 황태진 회장님도 고맙다.

유튜브를 하면서는 내꿈은 한신 사장이라는 정성수 차장님도 끊임없이 응원해주셨고, 이세미 씨의 후원과 관심도 고마운 일이다.

그밖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나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야. 그러니 지금까지 받은 이 사랑을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나눠주야지. 열심히 일하자, 김진형!’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발렌티나 수녀님이 다가와서는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진형 씨와 하연이 같은 후원자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이렇게 좋은 자리도 마련해주시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일해주시는 수녀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천만다행이에요.”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멀리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는 하연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연이는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달라요.”

“제겐 과분한 친구죠. 딸이지만 때때로 저와 같은 성인이 아닌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아이들도 저희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건 아니에요.”

“그럼?”

내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수많은 미혼부, 미혼모 자녀들을 곁에서 지켜보았어요. 대다수는 자신감도 없고 내면에 어둠이 많죠. 왜 아니겠어요. 한창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부모님 중 한쪽이 없는데.”

“그렇겠네요.”

“그런데 하연이는 어딘가 달라요.”

“그런가요?”

“네. 아빠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도 그렇지만, 대단히 어른스럽달까. 단순히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저 친구한텐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굉장한 모습이 있답니다.”

그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거기에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평생 남과 같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달고 살아왔다.

그러니까 평범이랄까 보통 사람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빠 없이 엄마 손에서 자랐고, 그 엄마조차 일찍 세상을 뜨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니까.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는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고, 그들처럼 평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연이를 키우다 보니 하연이는 많은 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아니. 사실 세상에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7살인 민규도 그렇고 하연이와 같은 반인 소윤이나 주하를 봐도 그랬다.

그러니 이제는 하연이가 남과 다를 거란 사실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자 나를 바라보는 안발렌티나 수녀님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진형 씨 말이 맞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다 다르면서도 동시에 같죠. 하연이 역시 개성이 뛰어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평등한 한 명의 인간일뿐. 진형 씨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하나 깨우쳐 가네요.”

“뭘요.”

수녀님이 내 곁을 떠나자 다시 많은 미혼부, 미혼모들이 내 옆자리에 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어떻게 하면 출생신고를 잘 할 수 있는지. 유튜브를 하려고 하는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아이가 이제 컸다고 자신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하는데 어쩌면 좋은지 등등.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해줬다.

그리고 다음에는 세 얼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준이는 법률적인 지식을. 현모는 고충거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성현이는 의료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셋 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고, 좋은 일을 하는데 늘 앞장서려는 친구들이니까 분명 흔쾌히 동의할 거야.’

기회가 되면 정기적인 행사로 만들어서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내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이걸 좀 더 효과적이고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위로하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작은 성당의 밤이 점점 깊어간다.

#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연아. 다음에는 아빠 친구들하고 같이 여기 또 오자.”

“아빠아 친구드을? 상주니 삼초니요?”

“응. 상준이 삼촌이랑 현모 삼촌. 그리고 성현이 삼촌까지 해서 다 같이.”

“왜요오?”

“아빠 친구들이 나름 각자 일하는 분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거든. 변호사, 기자, 의사니까 큰 도움이 되어 줄거야.”

이것 말고도 그는 이런 행사를 더 확장시켜서 전국에 있는 수많은 미혼부와 미혼모.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규모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와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처음엔 분명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죽기 이전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

육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던 사람.

거기에 대체 왜 그런 곳에 들어갔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험난한 블랙 기업에서 온갖 어려움을 껴안고 버둥거리던 남자.

하지만 지금은 어느샌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거대해졌다.

자신을 지탱해주는 거대한 기둥이자 뿌리.

아니.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려는 거목.

나는 갈수록 우리 아빠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특히나 전생의 아비와 비교가 되어서 더욱 그랬다.

‘그저 노름과 유흥으로 하루하루를 허비하던 그 사람과 비교하면 우리 아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틀림없어!’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자신이 왜 이 아이의 몸으로 환생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최악의 아비를 한번 만나보았으니. 이번에는 최고의 아비를 만나보라는 신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아쉽다면 아쉽다.

처음부터 김진형이 자기 아빠였다면 오죽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내 방 침대 위였다.

아이의 몸이 되어서 그런지 유독 차에 타면 금방 정신을 잃곤 했다.

매운 건 잘만 먹는데 잠은 또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빠는 요즘 따라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느낌이 있다.

인터뷰 제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그 누구에게도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분명 내가 엇나갈까봐 걱정해서 그러는 거겠지. 그래도 지금처럼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을 때 좋은 인터뷰를 하나 한다면 더더욱 관심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빠랑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로 인터뷰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글 잘 쓰고 질문 잘하는 연예 전문 기자와의 인터뷰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마침 전생에서 늘 자신을 지지해주고, 옆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기자가 한 명 떠올랐다.

바로 탑코리아스타의 김선정 기자말이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정말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텐데. 아빠한테 넌지시 알려줄 좋은 방법이 없을까나.’

가장 속 시원한 방법은 김선정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다이렉트로 말하는 거겠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아빠는 평소에도 뉴스에 관심이 많으니까 포털에서 온라인 뉴스를 보고 있을 때를 노려봐야겠다.

#

오늘따라 하연이가 이상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포털 뉴스를 살피고 있는데 옆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다.

‘내가 뉴스를 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걸까?’

하긴 하연이는 글자도 읽을 줄 아니까 혹시나 인터넷에 자기와 관련된 기사가 없는지 궁금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연이를 옆에 가만히 내버려 둔 채 흥미를 끄는 기사 제목을 찾는 사이.

갑자기 하연이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빠아!!”

“응?”

“저기이 저거어!”

“뭐 말이야?”

“저거어! 저거어!”

하연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것은 최근 잘 나가는 아이돌 관련 인터뷰 기사다.

남자 다섯 명으로 이뤄진 보이그룹인데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글로벌 스타.

‘헉. 설마 하연이가 벌써 남자 아이돌의 매력을 알아챈 건가?’

안 그래도 하연이가 언젠가는 남자 아이돌의 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하연이도 여자고,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여자 아이돌에 푹 빠져서 살았으니까 자연스러운 과정일 터.

하지만 하연이는 고작해야 4살이고, 아직 그 시기는 아니지 싶은데.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빼앗긴 비운의 남자 주인공처럼 슬픈 얼굴을 하고선 해당 기사를 클릭했다.

억울한 마음을 안고 기사를 읽다 보니 글재주가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 인터뷰를 참 잘하네.’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속에 있는 궁금한 내용들. 그리고 조금 더 철학적이랄까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잘 끄집어내고 있었다.

하연이를 곁눈질로 보니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오빠들이 그렇게나 좋은 거냐, 김하연.’

서운한 생각과는 별개로.

만약 하연이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다면 이 기사를 쓴 기자랑 하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탑코리아스타의 김선정 기자라.

일단 메모해두자.

기사를 끄려고 하는데 하연이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빠아! 나도오 인터뷰우 할래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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