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61화
우선 이번에 뽑은 신입사원 중 청일점. 김지환은 올해 28살로 촬영에 특화된 친구였다.
스페인에서 프리랜서 영상 촬영 작가로 일하며 꽤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한다.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이나 커플 여행을 오는 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들을 대상으로 스냅 촬영을 했죠. 쉴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어요.”
“그렇게 돈벌이가 괜찮았다면 왜 한국으로 오신 거예요?”
김소라의 질문에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했거든요. 스페인도 코로나 안전지대가 아녀서 그냥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는 프리랜서 영상 촬영작가로 일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 여행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버로도 활동했단다.
“구독자가 많진 않았어요. 유튜브는 꾸준히 올리는 게 중요한데, 제가 편집에 서툴러서 편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오. 유튜브 해보셨구나. 저희 사장님도 유튜버세요. 본인도 유튜버고 딸도 유튜버고요.”
“네,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유튜브에 구인 공고 올라온 거 보고 지원했거든요.”
“앗. 하연아빠TV 구독자세요?”
“네. 면접 때는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사장님 유튜브 즐겨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올리신 순대 만드는 영상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아하하. 신규 직원이 내 유튜브 구독자라고 하니까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다.
우리는 한동안 김지환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가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두 번째 주인공은 노란 머리가 인상적인 올해 26살의 오세영.
편집에 강점이 있는 친구였는데 원래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획력이나 연출력이 뛰어났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세영 씨가 면접 끝나고 보내준 포트폴리오 다 봤어요. 무척 인상적이던데요?”
“감사합니다. 재미없으셨을 텐데 그걸 또 다 봐주셨네요.”
“아뇨.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10분짜리 단편인데도 흡입력이 대단하더라고요. 메시지도 좋고.”
“헤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키가 150cm 정도 될까? 무척이나 작은 여성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올해 25살의 조유리는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는 개미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조유리입니다.”
“유리 씨. 괜찮으시면 조금만 목소리 더 크게 해주실래요? 잘 안 들려서요.”
“아앗. 네넵! 조유리입니다!”
“그런데 유리 씨는 왜 그렇게 자격증을 많이 따신 거에요? 면접 때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시간관계상 못 했네요.”
“맞아! 저도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에요. 자격증 수만 50개?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이 딸 수 있어요?”
김소라도 궁금한지 내 의견에 동조한다.
조유리는 순식간에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하나둘 따다 보니까 흥미가 갔어요. 새로운 걸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시험에 통과하면 실물 자격증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고 있으면 제가 의미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와. 대단해요. 저는 자격증 2개밖에 없는데. 앞으로 유리 씨 본받아서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하하.”
각자 소개가 끝난 후.
나는 드디어 아껴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드디어 다 모였네요. 그럼 회사 이름 짓기. 시작해볼까요?”
“저부터 이야기해도 될까요?”
“김 과장님이요? 네. 말씀하세요.”
김소라가 자신 있게 의견을 개진했다. 마치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듯.
“진스필름 어떤가요?”
“진스필름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사장님 이름이 김진형이잖아요. 가운데 글자인 진을 따서 진스필름. 그러니까 영어로 하면 Jin’s Film. 어떤가요?”
하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사장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짓겠다니. 그건 좀.
반응이 없자 김소라가 어색한 미소로 중얼거린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오세영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필름랩은 어떠세요?”
“필름랩?”
“네. 영상을 의미하는 film과 연구소를 의미하는 lab을 합친 말이에요.”
“영상연구소라는 뜻이네요?”
“맞아요. 끊임없이 영상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자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요.”
필름랩이라. 나쁘진 않은데 한글로 하는 게 더 귀에 잘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러면 그냥 한글로 영상연구소는 어떤가요?”
그러자 다들 그게 더 좋겠다며 맞장구를 친다.
“제 생각도 그래요. 영상연구소가 필름랩보다는 더 입에 잘 감기는 것 같아요.”
“저도요. 필름랩은 어감이 좀 딱딱한 느낌이 있네요.”
처음 의견을 제시했던 오세영도 영상연구소가 더 좋을 것 같다며 흔쾌히 동의한다.
그런데 그동안 조용히 있던 조유리가 가만히 손을 들더니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저기, 곰도리형제단은 어떤가요?”
“네? 유리씨. 뭐라고요? 잘 못 들었어요.”
“곰! 도! 리! 형! 제! 단! 이! 요!”
“아. 곰도리형제단?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이에요?”
“사장님 책상에 곰돌이 인형이 있더라고요. 푸 인형이요.”
아. 그거 전에 하연이랑 쇼핑가서 샀던 건데 하연이가 아빠 사무실 책상에 두라고 해서 올려둔 물건이다. 이걸 보면서 늘 자길 생각해 달라면서 말이다.
“곰돌이는 알겠는데, 형제단은 왜요?”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데 소규모 길드나 집단에 그런 표현을 많이 쓰거든요. 괜찮지 않나요?”
조유리. 얌전할 것 같은데 의외로 엉뚱한 면이 있다.
곰도리형제단이라. 이상하게 입에 착착 감긴다.
‘영상연구소라는 이름이 평범하달까, 그냥저냥 나쁘지 않다면 이쪽은 특이해서 기억에 잘 남을 거 같은데?’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괜찮다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린다.
나는 영상연구소와 곰도리형제단을 투표에 부쳤고, 결과적으로 5:0으로 곰도리형제단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하여 우리 회사의 이름은 최종적으로 곰도리형제단으로 낙찰되었다. 무언가 혈맹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느낌도 있다.
나는 상표등록여부를 확인한 다음 홈택스 사이트에 가서 사업자명을 곰도리형제단으로 수정하였다.
곰도리형제단. 이제 이륙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출정을 시작합니다!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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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주는 요즘 들어 하연이가 더 눈에 들어왔다.
원래부터 예뻤지만, 지금은 내적으로 한 단계 더 격상되었달까. 그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야구 구단인 한신 타이거스의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니까 말이다.
“하연아. 공연 잘 봤어. 정말 하나도 안 떨고 잘하더라. 수고 많았어!”
“감사합니다아!!”
“우리 하연이가 좋은 공연 펼쳐준 덕분에 선생님이 응원하는 한신 타이거스도 개막전에서 멋진 승리를 따내고. 고마워, 하연아.”
이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6회 말 역전홈런을 쏘아 올려 승리의 초석을 다진 김호진 역시 TV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김호진 선수. 오늘 정말 멋진 만루홈런을 보여줬습니다. 오늘 홈런을 친 원동력이랄까. 힘이 되어준 계기가 있습니까?”
“경기에 앞서 축하공연이 있었잖아요?”
“아. 4살짜리 음악 신동. 김하연 양의 공연 말이죠?”
“네, 맞아요. 그거 보면서 무언가 전율이 왔달까. 오늘 경기에서 뭔가 일을 내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좋은 타구를 칠 수 있었고요.”
“앞으로 김하연 양이 한신 타이거스의 새로운 승리 요정이 되는 건가요? 하하.”
이러니 어찌 하연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연이가 일부러 자기 들으라는 듯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세미이 언니야가 선생니임 누운썰미 좋대요!”
“세미 언니?”
“응! 이차앙도올 하라버지 따알!”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자세히 들어봤더니 한신 타이거스의 모기업인 한신 그룹의 막내딸이 하연이를 무척 아낀다고 한다.
거액의 후원금도 펑펑 내주고, 개막전 공연 제안을 해 온 것도 그쪽이고, 심지어 하연이와 둘이서 같이 샤워도 했다고.
다른 건 몰라도 둘이서 함께 샤워라니.
그건 담임 선생님인 자신도 해보지 못한 일 아니던가.
그녀는 은근슬쩍 물었다.
“혹시 아빠는 뭐래?”
“아빠아?”
“그러니까 네가 보기에 아빠가 세미 언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흐으음.”
하연이는 고민스럽다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재벌가와 맺어지면 인생이 피곤해질 뿐이다.
‘내가 알기로도 좋게 끝난 관계가 없잖아? 죄다 이혼하거나, 이혼하지 않더라도 평생 재벌가 눈치만 보면서 살아야 하니까.’
이것은 전 여자 친구로서의 간섭이 아니라 하연이 담임 선생님으로서 응당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하연이 너도 모르는 사람하고 함부로 샤워하고 그러는 거 아냐.”
“우웅?”
“다음부터는 조심하고. 알았지?”
“으응..”
하연이가 한신 타이거스의 새로운 승리 요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마냥 기뻤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지 모르겠다.
신유주는 애꿎은 색종이를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이세미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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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의 신곡 ‘달려’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올린 지 불과 며칠 만에 100만 조회수를 찍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첫 100만 조회수 돌파.
그뿐인가.
TV 뉴스는 물론이고 각종 방송과 온라인 기사에도 하연이의 개막전 축하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이하연의 재림이라는 4살 꼬마..소름 돋는 가창력 돋보여>
<“어리라고 놀리지 말아요”...새로운 가왕 후보 등장>
<‘원패밀리’ 김하연, 개막전 축하공연하고 한신 타이거스 승리 요정 등극>
<이게 4살 아이의 첫 오프라인 무대라고? 네티즌 화제>
<‘원패밀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 보여준 ‘달려’..기대되는 신인 김하연은 누구?>
확실히 온라인의 시대에도 오프라인의 영향력은 여전히 큰 것 같다.
온라인이라는 건 결국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거니까 말이다.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가 쇄도했지만 나는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연이가 너무 이른 나이에 큰 인기를 얻어 인성이 망가질 것을 우려한 것이 하나.
둘째는 신비주의 컨셉을 이어가다가 간간이 한 방씩 터트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연예인이라는 건 이미지로 먹고사는 존재인데, 하연이는 이제 겨우 4살이야. 벌써 실체가 다 밝혀지면 가수 활동을 오랫동안 하는 게 쉽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후원하고 있는 <아이에게 사랑을>의 안발렌티나 수녀님이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이 시간엔 무슨 일이세요?”
- 별일 없으셨죠? 저희가 이번 주말에 조촐한 파티를 열거든요. 저번에 잠깐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 미혼모랑 미혼부.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서 노는 행사 말이죠?”
- 맞아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하연이랑 같이 놀러 오세요. 두 분이 오시면 다들 좋아할 거예요. 후원하시는 분 중에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사람은 없었거든요.
“알겠습니다. 하연이랑 의논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가능하다고 하면 하연이와 함께 주말에는 봉사활동 같은 곳도 자주 갈 생각이다.
기부도 물론 좋지만 실제로 현장에 가서 몸을 움직일 때 진정한 봉사가 완성되는 법이니까.
뭣보다 어릴 때부터 후원과 봉사를 열심히 하면 하연이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연이가 가기로 마음먹은 길은 쉽게 자신의 일상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인기에 취할 수 있다. 그러니 바른 인성을 기르려면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을 돕게 할 필요가 있어.’
그런 이유로 나는 하연이와 함께 주말을 맞아 성당을 찾았다.
조촐하다고 해서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략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와있었다.
내가 하연이의 손을 잡고 등장하자 몇몇 아이들이 하연이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와!! 김하연이다!! 음악 신동!”
“지, 진짜다! 김하연이 온다는 수녀님 말이 진짜였어!”
후후. 너희들 하연이 알아보는구나. 이따 끝나고 하연이 사인 줄게.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환호를 하니 새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하연이의 손을 꽉 쥐고는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