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58화
오늘 면접 볼 인원은 모두 12명.
수많은 지원자 중 고르고 고른 옥석이다.
시간 관계상 한 번에 3명씩 동시에 면접을 진행하였다.
첫 번째 면접자들이 입장했다.
셋 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지 얼굴에 앳된 티가 가득하다.
한편으로는 얼굴 가득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소라는 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다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 회사의 과장이자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김소라입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이 김진형 사장님이고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세 사람 역시 웃음을 보이며 인사한다.
김소라는 이어서 말했다.
“아직 저희 회사 이름이 없어요. 사장님 의견이신데, 이번에 새로 뽑힐 분들까지 다 같이 의논해서 새 회사 이름을 만들 계획이거든요. 그러니 혹시라도 입사하게 된다면. 우리 좋은 이름 만들어보아요.”
“아.”
모두의 얼굴에서 놀라움이 감지된다.
설마하니 신입사원들과 함께 새 회사 이름을 만들 예정이라니.
그들은 꼭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자기소개와 함께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왜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영상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자신만의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등.
공통질문과 함께 면접자에 따라 맞춤형 질문이 추가된다.
ㅇㅇ 씨는 취미가 뭔가요? 그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나요?
영화 좋아하세요? 특히 어느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이력서에 분쟁 조절이 특기라고 적어주셨는데 만약 이러이러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가요?
대략 한 팀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그렇게 온종일 진행된 면접이 드디어 모두 마무리되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캔 커피를 김소라에게 내밀고는 말했다.
“휴. 진짜 진이 다 빠질 것 같네요. 면접관이 이리도 힘든 자리인 줄 몰랐어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뭘요. 사장님이 고생 많으셨죠.”
“그나저나 요즘 친구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해요?”
“후후. 그렇죠? 하나같이 말도 잘하고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알고. 요즘 MZ 세대 특징인가 봐요.”
“아니 저도 MZ 세대이긴 한데. 저랑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싶기도 하고요.”
“사장님 졸업한 시기랑은 또 차이가 나니까요. 취업이 어려우니까 다들 경쟁력을 갖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거겠죠.”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발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게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었다는 의미다.
새삼 요즘 참 취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회사를 만들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희 같은 신생 회사에 이렇게 좋은 인재가 몰리는 걸 보면 취업난이 심하긴 심한가 봐요.”
“에이.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회사면 지원자 한 명 나타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그동안 혼자서 쌓아오신 레퍼런스가 워낙 훌륭하니까 지원자들도 거기에 높은 점수를 준 거죠.”
“서로 평가하는 거네요.”
“그렇죠? 요즘은 회사만 지원자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도 회사를 평가하는 시대니까요.”
하긴. 나 역시 비디오쉐어에 들어갈 때 기업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의 정보를 참조하지 않았나.
“그나저나 과장님은 어떤 친구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3명 정도가 마음에 들던데.”
“음. 제가 맞춰볼까요?”
“하하. 그래요.”
내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김소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 팀에서 가운데에 앉았던 노랑머리 여성. 맞죠?”
“오! 어떻게 아셨어요?”
“영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더라고요. 보내준 포트폴리오도 모두 뛰어났고요.”
“맞아요. 자신은 영상 제작을 위해 태어났다는 표현도 멋졌어요. 저라면 부끄러워서 그런 말 못할 텐데.”
“그리고 세 번째 팀에서 왼쪽 끝에 앉은 삐쩍 마른 남학생.”
“이열. 족집게시네요.”
“제가 이래 봬도 면접관 경력이 좀 있거든요. 괜찮은 친구는 딱 눈에 들어와요.”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친구는 촬영 기술이 뛰어났어요. 사실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친구가 촬영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촬영보다는 편집에 더 재능이 있으니.”
“맞아요. 사장님도 촬영을 잘하시지만 촬영과 편집 각각의 스페셜리스트가 있으면 훨씬 더 효율이 오르겠죠.”
촬영을 할 줄 아는 사람과 편집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이 이원화되었을 때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시간의 절약이다.
한 사람이 촬영을 나가 있을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내부에서 이전에 찍었던 영상을 편집할 수 있으니 시간적으로 이득이었다.
영상 일이라는 게 촬영보다 편집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네 번째 팀 가운데에 있던 잘생긴 남자. 맞나요?”
“땡. 그 옆에 키 작은 여성분이요. 드디어 하나 틀리셨네요.”
“이런. 키 작은 여성분도 물론 좋았지만 그래도 잘생긴 남성분이 더 낫지 않나요?”
“음. 그분은 능력은 뛰어난 것 같은데 조금 이기적이랄까. 들어오면 분란이 생길 것 같았어요.”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자기 입으로 말한 친구기도 하고요.”
김소라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키 작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반해 키 작은 여성분은 문서 작업부터 영상과 편집. 그리고 마케팅 업무까지 모두 가능한 제너럴리스트라는 느낌이었죠?”
“맞아요. AE 작업도 가능하고 영상 작업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네. 그런 친구도 한 명 정도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회사가 바쁠 땐 혼자서 2인분 이상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중에 무엇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취향의 차이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모두 필요한 인재들.
“원래는 둘만 뽑으려고 했지만. 세 사람 다 뽑는 건 어떤가요?”
“세 사람을 다요? 괜찮으시겠어요? 인건비로 만만치 않게 나갈 텐데.”
“그만큼 사장인 제가 외부에서 열심히 일거리를 따와야죠.”
“저야 뭐. 밑에 사람 많으면 좋죠?”
김소라가 싱긋 웃으며 답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과장님.”
“네?”
“이번에 신입사원 들어오면. 친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부디 친절하게 잘 대해주세요.”
“아무렴요. 사장님과의 과거는 계속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천사표 김소라로 세팅해놓겠습니다!”
하하. 천사표 김소라라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아무튼 며칠 동안 골머리를 썩였던 면접 업무가 드디어 끝났구나.
부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
4월이 되자 어린이집 면담이 시작되었다.
왜 개학하는 3월이 아니라 한 달 뒤인 4월에 면담하는 것이냐면 3월은 아이들의 어린이집 새 학기 적응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같은 어린이집에서 생활한 친구들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있고, 주변 환경이 달라졌기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사전에 유주와 면담 약속을 잡았고,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하연이를 다른 선생님이 봐주는 사이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유주와 면담을 진행했다.
“올해도 하연이 담임이 되었구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뭘. 사실 하연이때문에 행복반 맡은 건 맞아.”
“뭐? 진짜?”
“응. 하연이가 좀 특별하잖아? 그래서 하연이랑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속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담임을 계속하는 게 좋겠다는 내부 결정이 있었어.”
그렇구나. 하연이가 미혼부의 자식이기도 하고, 언어 능력도 또래보다 훨씬 좋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기도 하고 그러니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주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더니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김진형.”
“응?”
“너 요즘 하연이 안 재우니?”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애가 왜 저렇게 힘이 없어? 언제나 기운이 넘치던 애였는데 요즘은 아주 시들시들 병든 닭처럼 축 처져있잖아?”
커억. 병든 닭이라니!
“요즘 하연이가 공연 준비한다고 열심히 연습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재우고 있어. 그래도 병든 닭은 너무한 거 아냐?”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거친 말이 나왔네. 사과할게.”
“그래.”
“그런데 공연 준비라니. 그건 또 뭐야?”
아. 내가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았구나.
나는 한신 그룹으로부터 한신 타이거스 개막전 축하 공연을 제안받았단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유주가 두 손을 크게 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엉말? 대단하다! 나 한신 타이거스 팬인데. 어쩜!”
그러고 보니 그녀와 사귈 당시 몇 번인가 한신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야구보다는 축구에 관심이 많은 내가 조용히 앉아서 지켜본 반면.
그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시종일관 일어서서는 경기장을 향해 크게 소리치고, 안타까워하고, 고함을 지르고, 뛸 듯이 기뻐하는 등.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경기장에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옛날 생각나네.”
“뭐?”
“아, 아냐. 잠깐 딴생각하느라.”
유주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하연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 거라면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어. 내가 어린이집에서 하연이 연습할 시간을 따로 챙겨볼 테니까 집에서는 평소처럼 일찍 재워. 알았지?”
“나야 고맙긴 한데. 괜찮겠어?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하연이만 챙기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무슨 일대일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그녀가 돌봐야 할 아이들만 최소 10명이 넘을 터.
유주는 싱긋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누가 하연이만 본다고 그랬어? 다 같이 함께하면 되지.”
“다 함께한다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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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린이 여러분. 우리 다 함께 즐거운 율동 놀이 시간을 가져보아요!”
“네에에!!!”
“와아아!!!”
“그럼 오늘은 우리 어린이집 최고의 춤꾼이자 가수인 김하연 어린이의 숙련된 시범을 보면서 따라 해볼까요? 자. 하연아.”
그녀가 나를 향해 윙크를 찡긋 날리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신 타이거스 개막전 축하공연에서 선보일 신곡 ‘달려’의 안무였다.
절도 있는 동작에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더니 그것도 잠시뿐.
곧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한 춤을 추면서 모두 즐거워한다.
시범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유주 선생님은 아이들이 나의 춤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각자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라고. 마음껏 신나게 춤을 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는 다른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나를 보고 아이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한 다음 혼자서 연습할 시간을 주었다.
‘아빠가 집에선 연습 그만하고 일찍 자라고 하더니. 이런 이유였구나.’
고마운 분들이다.
모두 같이 춤을 추고 노니까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보다 신나는 것은 물론 이상하게 집중도 더 잘되었다.
왜 카페에 가면 음악 소리가 크지만 이런 백색소음이 더 집중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던가.
나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연습에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신 타이거스 개막전이 다가왔다.
정성수 차장님이 준비해준 차를 타고 광주한신챔피언스필드에 내리자 경기장 안에서 나는 응원 소리가 밖까지 크게 들려왔다.
한신 팬들이 한신 타이거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
“우리는 한신 타이거스! 언제나 승리하리라! 최! 강! 한! 신! 타이거스!!”
“워어어! 사랑한다아! 한신 타이거스! 죽도록 사랑한다!!”
“승리는 우리 것! 오오! 최강 한신의 앞길엔 언제나 승리뿐이다!”
정성수 차장님은 흥이 나는지 낮은 목소리로 응원가를 따라불렀고, 아빠 역시 몸을 가볍게 흔든다.
나는 두 손을 굳게 맞잡고는 다짐했다.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
김하연으로 환생한 이후. 처음 있는 대형 오프라인 공연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