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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57화 (57/135)

내 딸은 국힙원탑 57화

나는 김소라 과장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스팸 메일 같은 걸까요?”

“음. 비디오쉐어 다닐 때도 이와 비슷한 컨셉의 영상 의뢰가 가끔 들어올 때가 있었어요.”

“그래요?”

“네. 호주와 하와이 관광청 등도 이런 컨셉의 영상 제작이 가능한지 물어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구나. 아이와 함께하는 한 달간의 해외 생활이라니.

완전 꿀 아닌가.

“그런데 시기가 5월이네요?”

“아마 방학 때문에 그럴 거예요.”

“방학이요?”

“보통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에서 1달 살기 하는 부모들이 많거든요. 1달을 살려면 방학 때 말고는 힘드니까요.”

“으흠. 그러니까 본격적인 여행 시즌인 방학이 오기 전에 영상을 올려서 사람들이 흥미를 갖게 만든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숙식 및 교통편을 무료로 제공하고, 영상에 대한 비용은 유튜브 조회수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고 한다.

1뷰당 1원. 그러니까 100만 조회수를 찍으면 해당 영상에 대해 100만 원을 준다는 뜻.

“그런데 아무나 선정하는 건 아녜요.”

“그럼?”

“기획서를 잘 써서 제출해야 해요. 그러니까 아이랑 이곳에 와서 뭘 하겠다, 어떤 영상을 주로 찍겠다 이런 걸 제대로 어필해야 하는 거죠.”

“기획이 중요하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혜택이 워낙 좋으니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경쟁이 치열하겠죠.”

다 좋은 데 한 가지가 걸렸다.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1달이나 자리를 비우자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김소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즘은 디지털 노마드라고 해서 다들 외국에서 잘만 일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제 걱정 따위는 하지 마시고 하실 마음이 있으면 기획서부터 제대로 만들어 보시는 게 어때요? 5월이면 아직 2달이나 남았으니까요.”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만약 제가 돼서 과장님 혼자 한국에 계시면 심심하실 텐데.”

“흐흐. 그럼 그 전에 사람 더 뽑아주세요. 저 안 심심하게.”

사람이야 안 그래도 더 뽑을 생각이었다.

‘베트남 브이로그는 하연이뿐만 아니라 유주랑도 상담해봐야겠지. 하연이 어린이집 선생님이니까. 그것보단 일단 구인 공고부터 올려야겠다.’

나는 김소라에게 구인 공고 작성을 지시했고, 그녀는 빠르게 초안을 작성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김소라 과장도 재능이 충만한 사람이다. 무슨 자판기 커피 나오듯 주문하면 뚝딱 나오고.

게다가 그녀가 작성한 구인 광고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약 빤 구인 광고.

도대체 이런 건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다녀야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제목만 봐도 웃음이 터졌다.

적당한 사람을 대략 모집한다니. 그 옆엔 만화 ‘북두의 권’ 주인공인 켄시로의 멘트를 비튼 대사가 적혀 있었다.

‘너는 이미 지원하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너무 똑똑하거나 지나치게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그리고 영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문구였다.

‘그래. 신입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우리가 무슨 대단한 사람을 뽑겠다는 건 아니잖아.’

나는 즉시 컨펌했고, 김소라가 구인 사이트에 이를 등록했다.

가끔 모니터링용으로 쓰고 있던 트위터 계정과 하연아빠TV 유튜브 채널에도 이에 대한 글을 올리자 서서히 반응이 온다.

└ 이야. 하연이 아버님 영상 제작 업체 만드셨구나? 좋은 분들 많이 지원하시면 좋겠네요

└ 문구가 엄청 기발하고 웃겨요 ㅎㅎ 대박 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ㅋㅋㅋㅋㅋ 너는 이미 지원하고 있다래! 잘 보고 갑니다

└ 웃겨요 ㅎㅎㅎ 리트윗했습니다

└ 으! 너무 아쉽다. 제가 조금만 나이가 더 어렸어도...

└ 위에분. 공고 어디에도 나이 제한 같은 이야기는 없는데요?

└ 저기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뼈는 그만 때려주시겠어요. 상하겠네요

└ 진짜 영상을 좋아하기만 하면 지원할 수 있는 건가요? 저 올해 졸업반인데 취직할 곳 물색 중이었거든요! 진지하니까 꼭 좀 대댓 부탁드릴게요!!!

└ 하연이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회사니까. 분명 엄청 분위기 좋고 재미있는 곳일 것 같네요. 파이팅!

분위기 좋고 재미있는 회사라.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비디오쉐어 이외의 회사는 다녀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회사는 유니콘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뜻하는 게 아닌, 환상의 존재라는 의미로.

이왕 회사를 만들었으니 정말 좋은 회사를 꾸려가고 싶다.

일하다 보면 물론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겠지만, 최소한 조직원 개개인이 발전하는 것을 느끼며 회사와 내가 동시에 성장하는. 그런 조직 말이다.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만들어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여전히 처리해야 될 일들이 많았다.

#

정성수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HiYeom하연 채널을 살펴보다가 김진형이 올린 구인 공고를 보고는 감탄을 뱉었다.

“오. 진형 씨 드디어 밑에 사람을 뽑는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하필 옆에 있는 이세미가 이걸 들었다.

“응? 정 차장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진짜 얘는 왜 이렇게 귀가 밝은 거지?

하지만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김진형 씨가 유튜브에 구인공고를 올려서요. 영상 제작 회사를 설립했나 봅니다.”

“우와! 대박! 저도 한번 볼게요.”

그녀는 하연아빠TV 채널에 접속해서 커뮤니티 탭에 들어가더니 이내 김진형이 올린 구인공고를 확인했다.

“와! 글이 무척 재미있네요? 이렇게 장난스럽게 올려도 사람이 많이 지원하나요?”

“요즘 세대들은 너무 진지한 것보다는 이처럼 재기발랄한 공고를 더 선호하니까요. 오히려 더 많은 지원자가 물릴 겁니다.”

“그런가요?”

“네. 엄청난 스펙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누군지 자세히 기입되어 있지 않습니까. 재미도 있고요.”

“으흠. 정 차장님. 지금 우리 회사 채용 페이지와 비교해서 보는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네?”

이세미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자소서만 1만 자 이상을 써야 한다니. 그밖에 써야 할 항목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원자가 너무 많다 보니 이렇게라도 해서 변별력을 갖춰야 하니까요.”

“조금 전엔 요즘 세대들은 짧으면서도 재기발랄한 걸 더 선호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이세미는 철이 없는 것 같다가도 가끔 이렇게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괜히 하버드를 나온 건 아니란 말이지.’

정성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부분은 인사부서와 한번 의논해 보겠습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써야 할 내용은 엄청 많은데 탈락하면 단 세 줄 문자로 불합격 통보하잖아요? 불합격 통보도 조금 더 친절하게 지원자가 왜 떨어졌는지, 이런 부분이 조금 아쉬워서 보충해주시면 좋겠다는 등 자세히 써주고, 이력서와 자소서에 써야 할 내용도 간단하게 줄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참고하겠습니다, 아가씨.”

“아이참. 회사에선 이세미 씨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 네. 이세미 아가씨.”

“아가 빼고 이세미 씨! 이렇게 하셔야죠.”

“네. 이세미 씨.”

정성수는 서글픈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저희와 인재 추천 계약하고 있는 대학에 진형 씨 회사를 추천하면 어떨까요?”

“계약한 대학에 추천? 그게 뭐예요?”

“그러니까 저희랑 계약을 맺고 있는 대학마다 뛰어난 인재를 추천하는 시스템이 있거든요. 영상 관련 학과에 이런 좋은 회사가 있으니 이쪽으로도 인재를 추천해달라. 뭐 이런 연락을 돌리는 겁니다.”

“아하! 이해했어요!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네. 그럼 이것까지 같이 인사부서와 논의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세미 역시 김진형과 김하연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공통의 관심사는 없는데 직급만 다를 뿐 상전으로 모셔야 할 재벌가 자녀와 함께였다면.

어쩌면 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정성수는 얼핏 하였다.

#

행복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담임 선생님은 신유주였다.

그녀 역시 사랑반에서 행복반으로 반을 옮겼으니까.

‘설마 나 때문에 반을 같이 옮긴 건 아니겠지? 에이. 자의식 과잉이야. 김하연.’

신유주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을 골고루 사랑했지만 유독 자신을 더 챙겨주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이 하나 때문에 자신이 맡을 반을 바꾼다는 건 오버다.

그나저나 요즘은 좀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한신 타이거스의 개막전 축하 공연을 준비하느라 하원하고 나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연습에 올인했으니까 말이다.

과연 어떤 반응이 올까.

전생에 잠실야구장에서 축하 공연을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도 거기서 미발표 신곡을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연예 매체들은 이하연의 신곡이 발표되었다며 온라인 기사를 쏟아냈고, 팬들 역시 커뮤니티에 직캠 영상을 우르르 올리며 이목이 집중되는 등 지금도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분명 좋은 반응이 올 거야.’

보통은 티저 영상을 먼저 발표하고 이어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게 일반적인 프로모션 방식이었다.

티저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고자 하는 전략인데, 요즘은 모든 가수들이 이와 같은 방식을 따르다 보니 관성화되었달까, 팬들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최초, 최고, 최대, 이런 수식어잖아? 그러니 티저보다는 그 어디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최초 공개에 호기심을 느낄 게 틀림없어.’

게다가 자신은 무명 가수가 아니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어느 정도의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원패밀리’를 통해 대중가수로서의 가능성도 검증받지 않았던가.

다만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에서 공연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을 뿐.

한번 오프라인 공연을 제대로 하고 나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름 역사가 깊은 한신 타이거스의 개막전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오프라인 무대가 어디 있겠는가.

김하연은 각오를 다잡고 더 열심히 하려다가 그만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찧었다.

“아야!”

비명소리와 동시에 아빠가 자신의 방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하연아!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 무슨 일이야?”

“아야야. 무르으읍.”

“젠장! 무릎 다쳤어? 저기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 거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는 발로 침대를 세차게 내리찍더니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나쁜 침대 자식! 넌 당장 우리 집에서 아웃이다!”

푸훗. 뭐라는 거야 정말. 침대 산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는 몇 번이고 더 침대를 향해 버럭버럭 소리치더니 이내 나를 꼭 안아주고 말했다.

“하연아, 진짜 괜찮겠어? 병원 안 가봐도 될까?”

“우응. 괘차나요.”

“어디 피난 건 아니지? 어라? 뭐야! 피가 나잖아? 아 진짜! 하연아, 아빠한테 무릎 줘봐. 나쁜 피는 입으로 빨아서 밖으로 빼줘야 해. 그래야 병에 안 걸려!”

히이익! 제발 그만두세요, 아빠. 언젠가 책에 베였을 때도 그러더니. 그거 진짜 비과학적인 방법이라니까요? 오히려 아빠 입속에 있는 나쁜 세균이 들어와서 상처를 악화시킬지도 모른다고욧!

나는 벌떡 일어선 후 그를 피해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아빠는 괴물이 된 것처럼 내 뒤를 성큼성큼 따라왔고, 나는 화장실로 몸을 숨기며 서둘러 문을 잠갔다.

- 쿵! 쿵! 쿵!

아빠는 사정없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무슨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하연아! 문 열고 당장 나와봐! 그거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니까?”

“시러어! 싫다고오!!”

이사 온 뒤로 대체로 조용하기만 했던 우리 집이 이 문제로 시끌벅적해졌다.

아빠. 아래층에서 사람 오겠어요. 제발 그만하세요! 으아아!

#

구인 공고를 낸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예상을 뛰어넘은 지원자가 모였다.

게다가 나름 인 서울에서도 명망 높은 대학 출신들도 지원하는 등 이력서를 볼 때마다 눈이 핑핑 돈다.

“김 과장님. 이거 진짜 우리 회사 지원자들 맞죠?”

“네. 저도 정말 놀랬어요. 이게 무슨 일인지. 제가 올린 공고문이 이렇게나 효과가 좋을 줄은.”

그러게. 역시 김소라를 첫 번째 인사로 데려오길 정말 잘했다.

우리는 업무 시간의 절반 정도를 면접자를 뽑는데 할애했다.

그만큼이나 지원자 수가 엄청났으니까.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내 인생 첫 면접이 진행되었다.

면접자가 아닌 면접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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