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55화
하연이의 광고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최철상 대표님은 끊임없이 내게 아이디어를 건넸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일본의 웃긴. 그러니까 일명 약 빤 광고 모음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런 건 어떤가요? 재미도 있고 입소문도 탈 것 같은데?”
어땠냐고? 물론 웃겼다.
하지만 나중에 하연이가 크면 흑역사로 남지 않을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웃기긴 한데 이건 좀.”
“그런가요?”
최 대표님이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하연이를 바라본다.
그래도 그렇지. 아닌 건 아닌 거다.
하연이의 인생 첫 광고 아닌가.
나중에 유명해져서 찍으면 모를까 망가지는 광고는 아직은 아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방금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했다.
“하연이가 순대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먹는 거요?”
“네. 중요한 건 이 순대가 이렇게나 맛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순간에 집중하는 거죠.”
“흐음. 그게 재미가 있으려나요?”
“자막을 적절히 넣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잘 먹히거든요.”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이요?”
“네. 편집을 최소화해서 일상을 가볍게 보여주듯 소개하는 영상이에요. 광고 같지 않고 친구의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덜하죠. 그러니까 저희도 집에서 편하게 음식을 먹듯. 그런 영상을 찍는 거예요.”
”그렇담 혹시 여기서 잠깐 실험해볼 수 있을까요?”
“지금이요?”
“네!”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순대 한 접시가 바로 도착했다.
“한 번 지금 연출해봅시다!”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하연이는 어느새 순대를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런. 내 불찰이다. 아침을 대충 먹이고 나왔더니 그만.
하연이에게 포크를 줬더니 놀라운 속도로 순대를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어찌나 맛깔나게 먹던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까지 침을 꼴깍 삼켰을 정도.
최 대표님은 그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무척이나 흐뭇한 얼굴을 하고선.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급한 건 아니니까 콘티를 따로 준비해오겠습니다.”
“아뇨. 저는 이것도 충분히 좋은 것 같군요. 자막만 잘 넣어주세요. 그런데 진형 씨.”
“네.”
“기획력이 무척 좋으시네요? 제가 갑작스럽게 부탁드린 제안이었는데 그걸 이 자리에서 후딱 해치우시고.”
“뭘요. 사장님이 좋은 아이디어 많이 알려주신 덕분이죠.”
“하하. 저는 브이로그라는 게 뭔지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튼 브이로그 형식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역시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힘이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빠른 시일 안에 제작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촬영하실 때 드실 순대는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순대요? 저번에 보내주신 순대가 아직도 집에 많이 남아있습니다만.”
“아뇨. 이건 그 뒤로 새로 개발한 두부순대입니다.”
“두부..순대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순대에 두부를 넣어서 하연이 같은 아이들이 먹어도 좋을 건강 순대를 개발했거든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이야. 행동력 좀 보소.
정말 대단한 양반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연이와 함께 공장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오전에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는데, 최 대표님은 내 촬영을 위해서 오전 작업을 오후로 미뤄두었다고 한다.
위생 모자와 장갑 및 장화. 그리고 별도의 마스크에 실험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서야 공장으로의 출입이 허락되었다.
위생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나.
공장 안으로 들어오니 돼지 부속물들이 어마어마하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인근의 도축장에서 들여온 것들이란다.
대략 5톤에 육박하는 물량.
하연이 역시 흥미가 동했는지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하연아. 아빠는 카메라로 촬영 좀 할게. 너는 아빠 옆에서 지켜봐 줄래?”
“네에!”
나는 가방에서 짐벌을 꺼내 카메라에 장착하고는 순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자세히 담았다.
직원들은 10여 가지에 달하는 부속물들을 빛의 속도로 정리하더니 빠르게 칼질을 해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먹을 수 없는 부분을 도려내는 겁니다. 이거 제거 안 하면 탈 나거든요.”
기계로 진행하면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세히 봤더니 내장 사이사이에 기름이 숨어있어서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제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와. 이 많은 걸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다 똑같은 작업을 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칼을 갈고 있고, 누군가는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세척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순대 공장.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하연이가 세척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분에게 물었다.
“저기이 아저씨이.”
“응?”
“끄테 저거언 뭐에요오?”
하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물이 흐르고 있는 기다란 봉.
직원은 거기에 돼지 소창을 끼웠다 뺐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돼지 소창에 이물질이 무척 많이 들어있거든. 그걸 이 까슬까슬한 솔을 이용해서 제거하는 거야.”
“아하!”
“그런데 너 진짜 귀엽구나? 사장님한테 이야기 듣긴 했는데 정말 귀엽다. 하하.”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친다.
“우리 손녀랑 나이도 비슷해 봬는데 와 이리 다른교? 완전 인형이네, 인형!”
“내도 웬 인형이 살아서 걸어오나 했다.”
“눈 큰 것도 좀 보세요. 보석 같네요! 보석.”
하연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배시시 웃으며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세척 작업이 끝나자 직원들은 깨끗이 씻긴 소창을 가지고는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긴 꼬챙이 같은 물건에 소창을 끼웠다.
“이건 뭐죠?”
“세척했으니까 속을 채워야죠.”
“아. 내용물을 집어넣는 거군요?”
작업대 끝을 봤더니 다른 직원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쏟아붓는다.
당면, 고기, 내장, 각종 야채. 그리고 두부까지.
이게 기계로 들어가 잘게 다져져서 순대의 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직원이 버튼을 누르니까 내용물이 소창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창이 힘차게 부푼다.
하연이는 또다시 입맛을 다신다.
“하연아. 배고파?”
“응!”
조금 전에 그렇게 게눈감추듯 먹어 치우고선 또 순대를 먹고 싶다니.
내 딸이지만 정말 타고난 순대 덕후다.
속이 가득 채워진 순대는 이내 뜨거운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 풍덩!
뜨거운 김이 하늘로 솟구쳤고,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한다.
20분 정도 삶아졌을까.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이더니 뜨겁게 달궈진 순대를 차가운 물로 떨어뜨렸다.
이후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된 냉각기를 거쳐 우리가 익히 아는 순대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완성된 순대는 직원들의 손을 거쳐 진공 포장된다.
드디어 순대 제작 과정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분주히 움직였다.
작업은 끝났지만, 기계와 바닥을 깨끗이 씻는 일이 남았던 것.
나는 그 모습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고 나서야 공장을 빠져나왔다.
물론 직원분들에게 촬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늘 저희 때문에 오후에 작업하게 되셨네요. 바쁘셨을 텐데 친절히 응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이걸 영상으로 만든다죠? 잘 만들어주세요.”
경력 20년 차라는 아저씨가 한 손으로 자기 어깨를 주무르며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당연하죠. 제가 멋지게 편집해서 이 과정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순대 만드는 게 이렇게나 힘들고 손이 많이 갈 줄이야. 순대 먹을 때마다 작업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겠네.’
그런데 하연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연이가 내 손을 잡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빠아. 나아 다시느은 수운대 안 남길래요오.”
“그래?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수운대 만드는거어. 엄처엉 어려워어!”
“그렇지? 아빠도 그 생각 했어. 역시 우리 딸이야.”
나는 하연이를 꼭 안아주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무에는 새순이 돋고 땅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조금씩 피어나는 게.
이제 곧 봄이 온다고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
봄방학이 끝나고 하연이는 드디어 4살 아이들이 다니는. 행복반이 되었다.
3월이 되고는 유독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프로야구 개막전 공연도 준비해야 하고, 밀려있던 외주 작업도 끝내야 했으며, 순대 만드는 과정을 편집하는 것은 물론 하연이 순대 광고도 찍어야 했으니까.
‘어휴. 바쁘다 바빠.’
그렇지만 예전에 비디오쉐어 다닐 때 매일같이 야근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때는 내가 열심히 해도 별도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노동자일 뿐. 그에 대한 보상은 고스란히 회사와 심태열 사장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열심히 할수록 그에 대한 보상은 나와 하연이에게 돌아왔다.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통장에 입금되는 돈의 액수가 달라진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는 열심히 편집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하연이를 모델로 하는 순대 광고.
최철상 대표님은 광고료로 천만 원을 제시했는데,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단가다.
TV CF도 아니고 유튜브 광고인데다가, 촬영 난이도도 그리 높진 않았으니까.
그저 하연이가 집에서 맛있게 순대를 먹고 있는 모습을 찍는 게 다였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하연이가 순대를 먹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다음 슬로우모션으로 돌린다.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하연이의 저 표정을 보라.
자신의 앞에 놓인 순대를 순식간에 모두 먹어 치운 하연이는 이내 나를 보며 더 달라고 보챈다.
“아빠아!! 더어! 더어 주세요오!”
“흐흐. 하연아 맛있어?”
“웅! 빨리이이! 더 주세요오!”
나는 찜기에 담긴 통에서 하연이에게 더 많은 순대를 건네준다.
이를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하연이.
“히히. 완죠온 마시써어!!”
마지막으로 순대 홀릭 로고가 찍힌 순대 박스를 보며 침을 흘리는 하연이를 끝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군데군데 자막을 동원해서 긴장감을 주었다.
그러니까 하연이가 처음 등장해서 순대를 먹고 있을 때 화면 한쪽에 커다란 흰색 자막과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웅장한 합창곡과 함께 말이다.
“지금 보고 계신 이 장면은. 하연이가 맛있게 순대를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끝에는 이런 자막과 내레이션이 나왔다.
“두부가 들어가 건강하고 맛있는. 순대 홀릭 순대.”
부끄럽지만 내가 녹음한 목소리다.
그리고 이 영상과는 별개로 광고 비하인드 스토리랄까. 정말 편집 하나 없이 찍은 하연이 순대 먹방 영상도 추가로 편집했다. 앞에 말한 영상이 그래도 광고라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 것이었다면 이건 100% 리얼 브이로그 먹방.
나는 최선을 다해 보정을 마치고는 이를 최 대표님에게 보내주었다.
메일주소를 몰라서 카톡으로 보냈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대단해! 라는 느낌의 이모티콘이 무려 다섯 개나 연달아서 온 것.
그는 이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완벽합니다! 제가 원했던 바로 그 영상이라고요!!”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자세히 살펴보시고 어딘가 어색한 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아뇨, 아뇨. 수정할 곳은 전혀 보이지 않네요. 이거 당장 광고 돌려도 됩니까?”
“네? 당장이요?”
“그럼요. 진짜 대단해요. 이걸 겨우 3일 만에 만드신 건가요?”
그야 출연하는 인물이 나와 하연이. 단 둘뿐인데다가 우리 집에서 찍은 영상이니까.
그는 몇 번이나 놀랍다고 말하면서 이거 당장 자신들 유튜브에 올리고, 동시에 광고도 돌릴 테니 내 계좌번호를 알려달란다.
“정말로 이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그럼 제가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하. 일 처리가 빨라서 좋다.
예전에 로비 영상 작업했던 미래 그룹 황태진 회장님도 생각나고.
아무튼 클라이언트가 컨펌했으니 나 역시 이 영상을 곧바로 HiYeom하연 채널에 올렸다.
설명란에는 순대 홀릭 식품의 협찬을 받아 찍은 순대 광고란 내용을 짤막하게 넣었다.
요즘은 외부 광고에 민감해서 이런 걸 표시하지 않으면 뒤에서 말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시청자층을 아동용이 아님으로 설정하고, 유료 프로모션 란에 체크를 해뒀더니 댓글창이 풀렸다.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응이 뜨겁다.
└ 오오오오오오!!!! 하연이 드뎌 앞광고 찍었나요?
└ 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 광고 퀄리티 죽이네요. 막 순대 먹고 싶어지는 영상임
└ 진짜 하연이는 진심 순대를 위해 태어난 아이 같음. 먹부림 끝내주네요. 잘 보고 갑니다~♡
└ 그래 결정했어! 오늘 저녁은 순대다앗!!!!
└ 두부가 들어간 순대는 특이하네요. 어떤 맛일지 궁금궁금
└ 으아아아!! 수운대 먹는 하연이 너무 귀여워!!!!!!!
└ 하연이는 진짜 갓이다.. 하연이가 순대 먹는 거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하연아. 고마워!
좋았어! 반응이 온다.
그럼 이제 하연이 신곡 뮤비에 집중하자.
순대 광고가 하연이 팬들 위주로 소비될 전초전이라면.
하연이 신곡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릴 정식 무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