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46화
<하연이 계좌 운영 철칙>
1. 하연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2. 절대로 나만을 위해 마음대로 꺼내 쓰지 않는다
3. 하연이가 쓰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따른다
4.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5. 상황을 봐서, 주식과 펀드 등으로 분산투자를 하자
6. 10살이 될 때까지 하연이 계좌에 1억을 모아보자!
7. 미혼부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하연이와 상의 후 후원하자
대충 일곱 가지를 적고 다시 한번 훑어본다.
“일단은 이 정도면 되려나.”
지금까지 후원된 금액은 총 1천 2백 34만 오백칠십 원.
오백칠십 원의 출처는 모르겠다.
이자도 아니고.
벌써 1천만 원이 넘다니.
뭔가 부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뿌듯하다.
‘아차. 이건 내 돈이 아니지. 조심해야겠다.’
나는 다시 한번 하연이 계좌를 잘 관리할 것을 다짐한 다음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 조심스럽게 하연이 방문을 열어보았다.
하연이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어쩜 저렇게 자는 모습조차 귀여울 수 있는지.
침대 옆으로 이동해서 조용히 하연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으음.”
하연이가 뒤척거리는 것 같더니 내 손을 끌어안는다.
꿈을 꾸나 보다.
“음냐. 음냐. 아빠아. 사랑해요오.”
하아. 진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래. 하연아. 아빠도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아직도 하연이가 내게 온 첫날이 생생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
‘하필 그날 더 힘들었었지.’
회사에서 일은 쏟아지지.
나의 뮤즈인 이하연은 자살했지.
무턱대고 찾아온 썸녀는 갓난쟁이를 놓고 사라졌지.
애는 미친 듯이 울지.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을 보라.
천사가 따로 없지 않은가.
애들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쑥쑥 자란다지만 정말 많이 컸다.
하연이가 곤히 자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방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뜬금없지만 문득 하연이의 친모인 이혜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녀가 보고 싶거나 그리운 건 전혀 아니다.
어찌 됐든 하연이를 낳아준 친모이고, 나와는 살을 섞은 사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부디 아무런 말썽이 없으면 좋겠는데.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설마 죽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콱 죽어버렸으면 속이 참 시원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지. 게다가 하연이 친모잖아.’
그러다가도 그녀가 밉고 원망스러운 걸 부정할 순 없었다.
혹시나 싶어 스마트폰 검색창에 이혜미의 이름을 쳐봤지만.
당연하게도 그녀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동명이인의 기록뿐.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잊고 다시 내 방으로 올라와 누웠다.
골치 아픈 일은 미리 걱정해봤자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 이혜미가 나타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하연이의 보호자는 나고, 그녀는 내게서 절대로 하연이를 뺏어갈 수 없어. 내가 절대 그렇게 놔두질 않을 테니까.’
하연이를 낳은 것은 그녀지만, 내게는 그녀보다 훨씬 더 긴. 하연이와 함께 한 시간이 있었다.
영상 사업과 유튜브도 순항 중이고, 조금씩 주변의 인정도 받고 있었다.
내가 더 힘을 키우고 강해질수록.
설령 이혜미가 나타난다고 해도.
누구도 우리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으리라.
‘누가 뭐래도 하연이는 내 딸이다. 하연이를 지키는 건 바로 나야.’
창밖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뒤로한 채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
순대 홀릭 대표인 최철상은 지금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HiYeom하연 채널에 어제 올라온 영상 때문이다.
하연이가 자신이 보내준 순대를 무척이나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하연아 천천히 먹어. 순대 맛있니?”
“웅!! 이거어 정마알 마시쪄요!”
“그래? 아빠도 먹어 봐도 될까?”
“응! 아빠도 머거봐.”
“어디 한번. 쩝쩝. 오! 진짜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맛있네?”
두 사람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탁 위에 올려진 순대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영상 말미에 다다르자 하연이가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걸 잊지 않는다.
“자알 머겄습니다아! 최철싸앙 사장니임. 캄사합니다아!”
최철상 사장님이라니.
올해로 마흔이 된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만든 순대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고. 또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있다니.
애써 눈물을 참고는 영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2천여 명에 달하고 있다.
그는 즉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최 부장님. 지금 당장 김하연에게 순대 세 박스 보내세요.”
“네? 그 친구한테 순대 보낸 지 얼마 안 됐는데요?”
“괜찮으니까 당장 보내라고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 친구를 우리 식품 홍보 모델로만 생각했던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하연이가 내가 만든 순대를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성장기의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도 순대엔 고기와 채소가 풍부하게 들어가 있으니 영양소가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성장에 좋은 성분이 더 들어가면 단순히 맛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는 한참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성장기 아이들이 먹으면 좋은 음식에서 두부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아직 장운동이 미숙하고 의외로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변비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두부가 무척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 두부는 콩으로 만드니까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지. 실제로 백암순대에도 두부가 들어가잖아? 우리도 두부를 넣어서 영양을 보충한 순대를 출시한다면 성장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걸 마케팅적으로 잘 엮으면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꽤나 먹힐 것 같다.
그는 수많은 레시피가 기록된 두툼한 연습장을 꺼내 들고는 두부를 활용한 순대 레시피를 정신없이 끄적이기 시작했다.
“두부가 너무 많이 들어가도 맛이 이상하겠지. 그러니까 두부의 양은...”
최철상은 오랜만에 떠오른 영감에 신이 난 듯 빠른 속도로 새로운 순대 개발에 착수했다.
이걸 개발하게 되면 제일 먼저 김하연에게 선물로 주리라 다짐하고서.
#
나는 역삼동에 위치한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
어떤 사업자로 사업을 시작하면 좋을지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콘진원 조민하 대리는 자기는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본사에 근무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올라오기 힘들다면서 대신 한 사람을 소개해줬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이 남자. 기업 컨설팅 전문가 박호준이었다.
그는 내가 건넨 전년도 매출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야. 대표님. 프리랜서 치고는 매출이 꽤 높은데요?”
“그런가요?”
“네. 대략 3억 가까이 버셨으니까. 이 정도면 세율에 있어서는 법인사업자가 조금 더 유리할 수 있어요. 영상 제작하면서 쓴 비용이 별로 없어서 순이익 자체가 크거든요.”
그는 내게 법인세율과 종합소득세율을 비교한 표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대표님의 소득세율은 38%. 법인사업자의 경우 20%에 해당해요. 그러니 법인으로 등록하실 경우가 더 세금을 적게 내는 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법인으로 등록하는 게 더 유리하겠네요?”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네?”
내가 반문하자 그는 의사결정과 자금 운영에 있어서 법인보다 개인사업자가 훨씬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개인사업자일 경우 회삿돈은 곧 내 돈입니다. 개인사업자가 해당 사업의 주체니까요. 발생한 소득을 내가 마음대로 써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죠.”
“법인은 다른가요?”
“네. 사업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법인이니까요. 법인사업자가 될 경우 대표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식으로 운영해야 해요.”
“생각보다 까다롭네요.”
“하하. 그래서 각각의 장단점이 있죠. 물론 선택은 대표님의 몫이지만요.”
그는 내게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의 차이 및 각각의 장단점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이것저것 궁금한 내용을 그에게 물어봤다.
“혹시 제가 작년에 일하고 번 돈으로 집을 샀는데. 이건 비용처리가 안 되나요?”
“그건 개인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사업과는 무관하므로 소득세 계산상 경비로 인정받긴 어려워요.”
“그렇군요. 나름 큰돈을 쓴 거라.”
“대신 컴퓨터나 카메라처럼 영상 관련 기기 항목들은 비용처리가 가능하죠.”
어느덧 상담을 시작한 지 30분이 훌쩍 넘어간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제가 어떤 사업자로 등록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매출이 5억이 되기 전까지는 법인보다는 개인사업자 등록을 권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자금 활용이나 사업 운영에 있어서 법인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했다가 나중에 법인사업자로 전환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우선은 개인으로 등록한 다음 상황을 봐서 법인 전환하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사업을 하려니까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참 많다. 복식부기라는 것도 기록해야 하고, 사람을 뽑을 경우 월급 이외에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다행히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이런 걸 온라인으로 처리해주는 사이트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구나.’
아무튼 컨설팅받은 내용을 참고해서 구비서류를 갖춘 뒤 가까운 세무서 민원봉사실을 찾았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위해서다.
서류를 미리 준비해서 갔더니 신청이 무척 빠르게 끝났다.
‘그럼 이제는 사무실을 알아봐야겠네. 우리 집을 사무실로 쓰기는 좀 그러니까.’
1인 사업자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새로 사람을 뽑을 생각이었다.
혼자서 일하기에는 들어오는 의뢰양이 너무 많고, 영상 제작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사는 집을 사무실로 쓰기에는 하연이도 있고 하니 무리가 있었다.
지금 사는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찾아 괜찮은 사무실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는 마침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저렴하게 나온 물건이 있다면서 바로 보러 가자고 했다.
살펴봤더니 복층이 아닐 뿐 지금 사는 집과 동일한 구조. 이 정도면 10명이 한자리에서 근무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고는 집으로 올라왔다.
‘사무실도 계약하고. 많이 컸다, 김진형.’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자등록도 하고 사무실도 마련하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랜만에 세 얼간이를 소환했다.
> 얘들아.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냐?
[구현모] : 오. 김지녕이. 요새 잘나가는 것 같더니 뭐 좋은 일이라도 있냐?
> 하하. 이 형님이 오늘 사업자등록을 했단 거 아니냐. 사무실도 하나 차리고
[신상준] : 오 진짜? 대박이네!
[박성현] : 축하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 바빠서 참석 못 할 듯 ㅠㅠ 나도 술 먹고 싶으다아........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진화한 성현이가 아쉽다며 다음에 꼭 불러주란다.
짜식. 열심히 일해서 좋은 의사가 되어라. 하연이 주치의가 될 수 있는 영광을 네게 주마.
그런데 상준이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낸다.
[신상준] : 그런데 나 오늘 여친 데꼬 가도 되냐?
[구현모] : 헉!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상주나. 친구들한테 뻥치면 안 돼. 알지?
[박성현] : 이 새퀴 농담이 많이 늘었네. 변호사가 거짓말하면 이거 위법 아니냐?
[신상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여친 사진 보여줄까?
잠시 뒤 상준이가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한다.
잠시 아무런 말이 없던 단톡방이 이내 폭발하듯 요동쳤다.
> 너 이거 인터넷 뒤지다 찾은 사진이지? 이런 짓 하다간 깜빵 간다 너. 변호사라는 놈이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거임?
[구현모] : 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구라
[박성현] : 쯧. 나름 열심히 찾은 듯한데 이건 좀
[신상준]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뻥인지 아닌지 오늘 보여준다니까? 어때? 데꼬가도 괜찮아?
헐. 이거 진짠가? 나를 제외한 세 얼간이는 모두 모태솔로다.
여자친구 한 번 사귀어본 적 없는 숙맥들.
사실 얼굴 잘생겼지, 직업 좋지, 똑똑하지, 성격 좋지. 이런 놈들이 왜 지금까지 여자친구가 없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드디어 상준이에게도 여친이 생겼구나.’
이런 건 만사 제쳐두고 축하해주는 게 친구로서 인지상정 아니겠나.
나는 당연히 콜을 외쳤고, 그렇게 그날 저녁.
성현이를 제외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상준이 인생의 첫 여자친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