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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41화 (41/135)

내 딸은 국힙원탑 41화

“하연아. 갑자기 왜 그래? 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물놀이한다고 완전히 들떠있었잖아?”

“아빠아. 나아 저어기서 가라입고오 드러가면 안 대요오?”

“응? 어디?”

“저기이!”

하연이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니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 거긴 왜? 탈의실 들어가면 옷 갈아입을 수 있어. 그리고 거기도 화장실 따로 있고.”

“남자아 타리실 시러어.”

“뭐?”

그제야 하연이가 왜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지 이해가 갔다.

이제 자기도 컸다 이거다.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하다.

굳이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애라서 아무도 안 볼 텐데.

아니지. 이건 아닌가.

우리 하연이가 좀 예뻐야지.

나는 고심 끝에 워터파크 관계자로 보이는 여성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럼 따님은 제가 여자 탈의실에 데려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힌 다음 워터파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혹시 이런 경우가 종종 있나요?”

내 물음에 직원은 드물게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빠가 딸만 데리고 온 경우 가끔 이런 일이 있어요. 그래도 보통은 최소 7살이나 8살 정돈데, 지금처럼 어린 꼬마가 따로 입겠다고 하는 건 처음 보네요. 호호. 아주 따님이 요조숙녀네요.”

“그렇군요. 그럼 한 5분 뒤에 안에서 뵈면 될까요?”

“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안에 계시면 제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녀가 떠나기 전에 그녀의 유니폼 상의에 달려있던 이름표를 기억해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김지은 매니저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씨익 웃고는 하연이를 데리고 여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주변에 CCTV도 있고, 입고 있던 옷도 분명 여기 직원들의 유니폼이니까 괜찮겠지.’

조금 실례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하연이를 맡기는 거지 않나. 그러니 이 정도 체크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하연이를 맡긴 나는 남자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다.

하연이가 점점 아빠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4살인데 벌써 저러니까 서운하기도 하다.

‘동네 목욕탕은 5살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 있던데. 목욕도 같이 못 하겠네.’

하긴. 지금도 목욕은 죽어도 자기와 같이 하기는 싫다고 하는 하연이다.

그럼에도 말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게 더 신기할 정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안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반대쪽 입구에서 직원이 하연이를 데리고 오는 게 보였다.

분홍색 원피스 수영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하연이를 불렀다.

“하연아! 여기야!”

“아빠아!”

나는 하연이를 꼭 잡아서 들어 올리고는 직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뭘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우리는 그녀와 헤어진 다음 구명조끼와 튜브를 빌린 뒤 눈앞에 보이는 유수풀로 직행했다.

성인 허리 정도의 깊이에 따뜻한 물이 느리게 흐르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튜브에 몸을 맡긴 채 세월아 네월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하연이를 튜브에 태우고는 슬쩍 발을 물에 담갔다.

물이 참 따뜻해서 감기 걸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연아. 물놀이하기 전에 먼저 몸에 물을 묻혀볼까?”

“모옴에?”

“응. 심장부터 먼 부분부터 차례로 물을 적셔야 해. 안 그러면 심장마비 걸릴 수 있거든.”

“아하!”

하연이는 이해했다는 듯 다리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팔, 얼굴, 가슴 등에 물을 적셨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저 멍하니 지켜본다.

정말 누구 딸인지. 하연이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천지신명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하연이를 내게 보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표한 뒤 하연이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이. 따뜻해에.”

“물 온도 괜찮지?”

“네에. 쪼아요.”

“그럼 우리도 앞으로 나가볼까?”

하연이 튜브를 뒤에서 잡고 천천히 몸을 물에 맡긴다.

유속 때문에 특별히 헤엄을 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앞으로 향하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유수풀을 한 바퀴 돈 우리는 물에서 나와 워터슬라이드 쪽으로 이동했다.

슬라이드를 타려고 위로 올라갔더니 안전요원이 앞을 막는다.

“죄송하지만 슬라이드는 키가 120cm가 넘어야 타실 수 있습니다.”

“앗!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아쉬운 대로 우리는 키즈풀로 이동해서 짧은 미끄럼틀을 탔다.

높이가 낮아서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진 않은데 하연이 입장에서는 별나라 아이템이었나 보다.

질리지도 않는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탄다.

“와아아! 아빠아! 나 간다아아!”

“응! 하연아 조심해서 내려와.”

- 퐁당!

물에 빠진 하연이가 어푸푸 세수를 하며 정신을 못 차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같은 장면을 몇 장이나 더 찍었는지 모르겠다.

이후 야외풀장도 나갔다가 추우면 다시 안으로 들어오고.

여기저기 신나게 이동하면서 오랜만에 하연이와 단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아.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

같은 건물에 위치한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피곤했는지 지하철 난간에 기대 곤히 잔다.

그나저나 얼마만의 워터파크였는지 모르겠다.

가수로 잘나가던 시절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워터파크였다.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편하게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지.’

처음에 남자 탈의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을 때는 기겁했지만, 그래도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언제였더라.

전생에 데뷔하고 5년인가 지났을 무렵.

아빠에게 동남아 여행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나름 돈도 많이 벌었겠다. 아빠한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단칼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

“미친. 그딴 데 쓸 돈 있으면 그냥 나 줘. 개념을 밥에 말아 먹었나.”

하하. 내 딴에는 나름 큰맘 먹고 제안한 건데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이야.

아빠는 늘 그랬다.

미디어에 나오는 사이좋은 가족은 다 가짜라고.

그런 건 모두 허상이며 위선일 뿐이라고.

물론 그가 그렇게 된 이유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부모 없이 자란 고아원 출신.

게다가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폭력을 일삼는 아빠에게서 도망친 것이다.

한때는 엄마는 참 많이도 원망하고 미워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도망쳤겠지.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어.’

아비가 자신을 옥죄어올수록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리고 그건 반복되어 무기력으로 돌아왔다.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보다 밝고 당당한 자신이었지만.

아비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하고 작은 아이.

만약 자신에게 음악이라는 재능이 없었다면.

음악이라는 길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결코 20대까지 삶을 영위하지 못했으리라.

‘훨씬 더 일찍 생을 마감했겠지.’

물론 그 음악조차도 영원히 자신을 버티게 해줄 수는 없었다.

아비의 횡포는 날로 더해졌으니까.

과거를 떠올리자 갑자기 속이 메슥거린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젓고는 옆에서 곤히 자는 아빠. 김진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생긴 남자다.

만약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을까.

단순히 얼굴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한다.

또한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도 게으른 법이 없었다.

최근에는 콘텐츠진흥원이라는 곳에서 키즈 채널을 주제로 발표도 하지 않았던가.

사실 ‘아빠 힘내세요’는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곡이 아니다.

뭔가 작위적이지 않나. 아빠 힘내세요라니.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전생의 아비와는 많은 것이 비슷하면서도 또한 달랐다.

그 역시 거의 고아와 마찬가지로 힘겹게 자랐다.

나를 낳아준 엄마는 달랑 애를 맡기고 도망쳤고.

하지만 어떻던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식에게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사랑을 전해주었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빠 사랑해요.’

나는 이제 진심으로 그를 나의 아버지로 인정했다.

더는 그를 김진형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열심히 물놀이해서 그런지 몸에 무리가 간 거 같다.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빠의 손이 무척이나 크고 따뜻하다.

#

며칠 뒤.

우리 집에 민규와 민규 엄마가 방문했다.

민규의 유튜브 채널 만드는 걸 도와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규 엄마 말이다.

유튜브 처음 한다더니 이게 처음 하는 사람이 맞나 싶다.

뭘 알려주면 엄청난 속도로 따라 한다.

심지어 채널 아트 배너에 대해 알려주자 자기 멋대로 포토샵을 켜고는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가요? 쓸만한가요?”

민규 엄마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작하는데 겨우 15분 정도 걸렸으려나?

그런데 웬만한 프로 뺨치는 채널 아트 배너 이미지가 나왔다.

배경은 전반적으로 초록색 계열로 꾸며졌는데 우측에 정글 탐험 모자와 밀림을 표현한 듯한 오브젝트가 무척이나 깔끔하다.

‘타이포그래피도 그렇고 색감이나 전체적인 구도도 그렇고. 많이 해 본 솜씨인데?’

절대 초짜의 느낌이 아니다.

“민규 어머니.”

“네.”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네?”

“진짜로 이번에 처음 해보시는 거 맞아요?”

“네. 진짜예요. 그런데 그건 왜요?”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요.”

“네? 정말요?”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내가 만들어서 올린 HiYeom하연 채널 아트 배너보다 훨씬 더 좋다.

‘나는 그거 만든다고 1시간을 이리 뚝딱 저리 뚝딱 했는데 말이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민규 낳기 전에 웹디자이너로 오래 일했었어요. 임신하면서 회사는 관뒀지만요.”

“아하. 그러셨군요. 어쩐지.”

그렇다면 인정.

그래도 민규를 낳기 전이라면 최소 6년 전이라는 소린데 한번 고수에 반열에 오른 자는 시간이 지나도 영원한 고수라는 의미일까.

“최근에도 웹디자이너 일 계속하셨어요?”

“아뇨. 민규 낳고는 손 뗐죠. 포토샵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능숙하신데요?”

“호호. 그런가요? 포토샵은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배워서 그런지 아직 기억에 남아있네요. 버전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어릴 적부터 배웠길래 여전히 기억이 난다는 걸까.

“그런데. 민규 유튜브 채널명은 이걸로 정하신 거예요?”

“네. 어떤가요? 고수의 평가를 받고 싶네요.”

“고수는 뭘요. 저희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에이. 너무 겸손해 하지 마세요. 제가 그동안 너무 유튜브를 모르고 살았나 봐요. 조사해봤더니 하연이 인기가 엄청나던데요? 뮤직비디오도 찍고, 좋아해 주는 팬 분들도 많고요.”

민규 엄마는 한동안 신이 나서 하연이 채널에 대해 떠들어댔다.

구독자 수가 단기간에 빠르게 늘어난 것이며, 주기적으로 올리는 것도 대단하고, 콘텐츠도 신선하다면서.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일지만 이렇게 대놓고 앞에서 계속 듣다 보면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그녀를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하연이 채널에 대한 이야기는 그쯤 하죠. 그런데 이거 채널명은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제 아이디어예요.”

“민규도 거기 동의했고요?”

“네.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저도 괜찮은 이름 같아요. 트렌디한 느낌도 있고 콘텐츠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기대감도 있고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녀가 만든 채널 아트에는 ‘민규의 탐구생활’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민규의 탐구생활’이 민규가 앞으로 진행할 유튜브 방송 채널명이라는 이야기.

“채널명도 좋고, 채널 아트도 좋네요. 이제 절반은 끝났어요. 나머지는 좋은 기획을 만들어서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는 게 전부거든요. 물론 팬들과 소통하고 이런 것도 필요한데 그건 영상이 최소 10편 이상은 쌓인 뒤에 하면 될 거예요.”

“아하. 그럼 혹시 영상 만들 때 어떤 장비가 좋을까요?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게 있을까요?”

나는 그녀에게 초보 유튜버가 사용하면 좋을 만한 장비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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