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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40화 (40/135)

내 딸은 국힙원탑 40화

조민하 대리가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고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어제 오후였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을 김진형 강사님의 따님인 김하연 양의 어린이집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분이셨어요.”

“유주요?”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혹시 영상 하나를 내일 강사님 강의 도중에 틀어줄 수 없냐고 하더라고요.”

“제 강의 중간에요?”

“네. 저도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서 일단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고 살펴봤죠. 그랬더니 그 영상이 있더라고요.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는 하연이의 영상이요.”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하연이? 유주? 아빠 힘내세요 영상?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조민하 대리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부연해 설명했다.

“메일 내용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어떤?”

“하연이가 강사님 걱정을 엄청 많이 했대요.”

“하연이가요?”

“네. 매일 밤 이번 발표 준비하시느라고 늦게까지 안 주무시고, 자료 조사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안쓰러웠나 봐요.”

허허. 하연이랑 나는 자는 방이 다른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녀석 설마 자는 척하고는 내가 일하는 복층에까지 몰래 올라온 건 아니겠지?

별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조민하 대리가 중간에 내 상상을 끊었다.

“어떻게든 아빠한테 힘을 주고 싶었나 봐요. 직접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이 영상을 찍었다고 해요.”

그녀의 말에 앞서 발표한 두 분의 강사님이 부럽다며 말을 건넨다.

“따님이 참 대단하네요. 올해 4살이라고 그랬나요? 저희 딸은 올해 10살인데 아빠를 봐도 시큰둥해요. 가끔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 쳐다보는 느낌이라니까요? 정말 부럽습니다. 하하.”

“저는 12살짜리 아들내미가 하나 있는데, 강의 발표 준비한다고 컴퓨터 쓰니까 자기 게임 못한다고 어찌나 성화를 내던지 말입니다. 하아. 딸이 아닌 아들 가진 제 잘못이겠지만, 제 아들놈이 하연이 절반의 절반만 닮았어도 소원이 없겠네요.”

두 분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하연이가 좀 남다르긴 하죠.

그래도 한 가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이걸 왜 내게 상의도 없이 진행한 건지. 그리고 왜 그 타이밍에 틀었는지 말이다.

조민하 대리는 이미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질 걸 짐작이라도 했는지 곧바로 답변해주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어요. 하연이가 아빠 모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해서요. 서프라이즈! 이런 느낌 말이죠.”

하하. 정말 내 딸이지만 요물이다 요물.

“그리고 강사님이 발표전에 미리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저희에게 전달해주셨잖아요? 살펴보니까 딱 그 위치에 하연이 응원 영상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서, 사전에 강사님과 상의 없이 재생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네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님.”

“뭘요. 이렇게 예쁘고 깜찍한 따님이 있어서 정말 좋으시겠어요. 콘진원 내부에서도 하연이가 대견하다, 멋지다는 둥 칭찬이 자자했어요.”

하여간 우리 하연이는 가는 곳마다 삼촌 부대와 이모 부대를 만들며 당당히 행진하는구나.

내가 하연이 아빠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내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있는 가운데 한초가 강의를 모두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조민하 대리는 모두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발표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너무 멋진 발표였어요. 섭외한 당사자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청중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다가 다 함께 점심 드시러 가시는 건 어떠신가요? 저희가 근처에 좋은 식당을 섭외해놨거든요.”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흔쾌히 동의를 표했다.

발표에 모든 영혼을 쏟아부어서 그런지 유독 더 배가 고픈 느낌이었다.

강사진이 모두 무대 위로 다시 오르자 아직 대강당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조민하 대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명함 교환하는 자리니까 편하게 이야기들 나누세요.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한 분하고 너무 오래 대화하진 마시고요.”

명함? 그런 건 없는데.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괜찮다며 말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함 없어도 괜찮아요.”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강사가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긴 줄을 섰다.

혹시나 내 쪽으로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제법 많은 이들이 내 앞으로 줄을 서며 관심을 보였으니까.

그들은 내게 명함을 건네며 강의 소감을 전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하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의 잘 봤습니다. 역시 보통 내공이 아니십니다.”

응? 이 목소리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내꿈은한신사장님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와 반갑게 악수하고는 이야기를 나눴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제가 계속 연락 드려도 답변을 회피하시니 이렇게라도 찾아뵈어야죠.”

“네?”

내꿈은한신사장님. 아니 이제 이름을 아니까 본명으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세미와의 만남 이후 정성수는 선물을 보내주겠다며 줄기차게 내 집 주소를 물어보았다.

<주소 알려주시면 저희가 다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하연이 아버님? 바쁘시겠지만 연락 꼭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일 하셨으니 당연히 보상받으셔야죠. 막 부담되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선물을 받을 만큼 큰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나만 있는 게 아니라 하연이도 함께 사는 집인데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답변을 회피했더니 오늘 이 자리에까지 직접 찾아온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차장님. 저는 정말로 선물을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서요.”

“선물을 주려는 사람의 호의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받으신 후에는 어떻게 하시든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주세요.”

그와의 대화가 길어지자 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한 사람과 너무 오래 대화하지 말라는 조민하 대리의 말도 있고 하니 여기선 그를 보내는 게 맞았다.

“뒤에 분들이 기다리고 계셔서요. 이 얘긴 다음에 다시 하시죠.”

“알겠습니다. 다음엔 꼭 긍정적인 답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그 말을 끝으로 대강당을 떠났다.

선물을 주려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한신 그룹의 막내딸인 이세미인가 하는 사람 같은데 왜 정 차장님이 중간에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재벌가의 행태에는 일반인인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청중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오늘 발표를 진행했던 강사들과 함께 인근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우집이라고 써진 간판을 보고 강사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한다.

“하하. 저희 점심부터 한우 먹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너무 발표 수고해주셨는데 저희가 해드릴 게 이런 것밖에 없네요.”

“네? 정말로 한우 사주시는 건가요?”

“그럼요.”

콘진원 관계자는 이번 강사료가 너무 짜서 미안하다며 발표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30분 발표하고 50만 원 받으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시가는 더 높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세 명씩 나눠 앉았다.

조민하 대리의 상사로 보이는 콘진원 관계자와 나보다 앞서 발표했던 두 분의 강사님이 한자리.

그리고 나와 한초, 그리고 조민하 대리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선임자는 테이블마다 한우 모둠 세트를 주문했고, 이윽고 고기가 나왔다.

불판에 노릇하게 구워지는 비주얼에 절로 침이 넘어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 사업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한초야. 최근에 사람 뽑아서 영상 만들고 있지?”

“어. 맞아. 혼자서 하려니까 한계가 있어서 법인으로 전환했어.”

“법인으로?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응. 수익이 높으면 개인사업자가 법인보다 내야 할 세금이 훨씬 더 많더라고.”

이야. 요즘 돈 많이 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도대체 얼마나 버는 걸까.

그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또 외부에서 투자받으려고 해도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사업자가 좋다고 해서 말이지. 그래서 그냥 법인으로 냈지.”

“투자? 그런 것도 받으려고?”

녀석은 고기를 쌈에 가득 싸서 입에 넣고는 웃으며 말한다.

“우물우물. 당연. 우물. 하지.”

그리고는 그 커다란 쌈을 단번에 꿀꺽 삼키고는 입맛을 다셨다.

“여기 고기 맛있네. 아무튼 투자는 필수지.”

“왜? 그냥 네가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냐?”

“나도 원래 너처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이 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형아. 우리 고기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나 배고프다. 응?”

“어어! 그래야지.”

그러고 보니까 나 역시 무척 배가 고팠다.

다만 너무 솔깃한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회사를 하나 차려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녀석이 법인 사업자를 설립하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잠시 배고픔을 잊었던 것 같다.

자. 이제 그 이야기는 잊고 잠시 본능에 충실해 보자.

제대로 구워진 고기를 입 안으로 밀어 넣자 혓바닥 위에서 절로 녹는다 녹아.

한우는 정말이지.

‘맛있군.’

강사료 입금되면 우리 하연이 한우 한번 사 먹여야겠다.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한초는 법인사업자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법인사업자를 하면 대외적인 공신력이 높아서 외부 투자자금을 받기 수월한데, 자기 목표는 단순한 영상 제작업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나는 아카데미를 생각하고 있어.”

“아카데미? 학원 말이야?”

“응. 나처럼 자기만의 영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이 바닥에서 버티는 게 쉽지 않아. 너도 알지? 그렇게 했다가는 손 빨고 지내야 하는 거.”

“그건 그렇지.”

녀석의 말이 맞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면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납품업자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돈을 많이 못 벌더라도 나 같은 사람들이 이 시장에 더 많이 생존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를 만들 생각이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상과 냉정한 현실을 조화시킬 수 있는지 가르쳐주려고.”

“이야. 멋지다, 정말.”

“멋지긴 뭘.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외부에서의 투자가 필수지.”

그러니까 녀석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는 거다.

아카데미가 돈을 벌자고 하는 사업은 아니니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더 많이 나타나길 바랄 뿐.

갑자기 한초가 막 성인(聖人)처럼 보이면서 그 뒤로 형광등 백만 개를 켠 듯한 아우라가 넘실거리는 것만 같다.

“넌 진짜 대단하구나. 난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아니. 그게 당연한 거지. 내가 특이한 놈이고. 그리고 넌 딸도 있잖아. 돈 많이 벌어서 예쁜 딸 먹여 살리는 건 부모로서 의무야.”

“나중에 아카데미 만들면 나도 꼭 불러줘. 여유 되면 무료로 강의할게.”

“하하. 그래. 너 오늘 발표하는 거 보니까 잘하더라. 꼭 그럴게.”

갑자기 조민하 대리가 끼어든다.

“김진형 강사님.”

“이제 발표 끝났으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럴 순 없죠. 소중한 강사님인데. 그런데 혹시 회사 설립 고민 중이세요?”

“아. 네. 세금 문제도 있고, 프리랜서도 좋긴 한데 조금 더 규모를 키워볼까 싶어서요.”

“그러셨구나. 마침 저희 지원사업 중에 개인이나 법인사업자 전환프로그램도 있고, 외부 투자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연결해드릴까요?”

“정말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한초도 옆에서 거들고 나선다.

“뭘 하든 내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줘. 협업할 수 있는 일도 좋고, 술친구도 좋고.”

“하하. 고마워.”

이번 콘진원 강의는 여러모로 얻는 게 많은 것 같다.

2천 명 앞에서 떨지 않고 발표를 한 것도 그렇고.

평소 롤모델로 생각한 한초랑 친구가 된 것도 그렇고.

회사 설립하는데 콘진원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것 같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연이가 나를 위해 ‘아빠 힘내세요’를 불러줬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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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진원 세미나 발표를 무사히 마무리 지은 나는 주말을 맞아 하연이와 함께 경기도 하남에 있는 워터파크를 찾았다.

그동안 발표 준비한다고 하연이한테 신경을 못 써준 것 같기도 하고, 뭣보다 애들은 물을 좋아하니까.

거기에 이곳은 4계절 내내 따뜻한 온수가 흐르고 있어 지금처럼 날이 추울 때 가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그런데 표를 끊고 워터파크 내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물놀이를 한다고 신나 있던 하연이가 갑자기 탈의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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