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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39화 (39/135)

내 딸은 국힙원탑 39화

무대 위에 오르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한 조명이 강렬하게 나를 비췄다.

눈이 환경에 적응하니 조금씩 청중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부터 나이 많은 아저씨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앉아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2,000여 명이 참석하며 만석이 되었다고 한다.

‘숫자로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막상 현장에 나와보니 엄청난 숫자구나.’

곧 사회자가 나를 소개했다.

“벌써 세 번째 시간입니다. ‘키즈 채널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해주실 김진형 강사님을 소개합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사람들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이에 화답한다.

앞서 강의를 마친 분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박수 소리가 작다.

심지어 옆사람에게 쟨 누구야?라고 물어보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2천여 명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진 않지만, 1만 명에 비하면 적은 수치 아닌가.

‘그래. 난 1만 명의 동시접속자 앞에서도 편하게 방송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 떨지 말자.’

짧은 심호흡과 함께 정신을 집중한 나는 싱긋 미소 짓고는 천천히 청중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게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김진형이라고 합니다. HiYeom하연이라는 키즈 채널과 하연 아빠 TV라는 개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작은 박수 소리가 대강당을 울린다.

나는 박수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 유튜브의 키즈 채널 정책이 엄격해지면서 예전처럼 키즈 채널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HiYeom하연 채널 역시 아직 구독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물론 아직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은 감안해주셨으면 하고요. 이건 저와 제 딸. 하연이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리모컨 버튼을 눌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화면에 띄웠다.

화면 중앙에는 하연이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나왔다.

내가 하연이의 볼에 뽀뽀하는 장면인데 하연이는 싫다고 인상을 쓰고 있다.

“지금 보이는 인물이 저와 하연입니다. 귀엽죠?”

“하하.”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제야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걸 느낀 나는 다시 한번 리모컨을 눌렀다.

빨간색 막대가 치솟아 오르면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낮아지는 양상의 막대 그래프가 완성된다.

이어서 각 그래프 아래로 채널명이 나타났다.

“혹시 이 그래프가 뭘 의미하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그저 내 입만 주시하고 있다.

“이건 2018년 12월 기준 대한민국 유튜브 수익 탑 10 채널의 광고 수익을 표시한 그래프입니다.”

“아!”

여기저기서 짧은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딱 1가지만 빼면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그 주제가 뭔지 아시는 분?”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한다.

“키즈 채널이요!”

“어린이 대상 콘텐츠입니다.”

“아이들이 나오는 채널이네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관심을 표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수익 탑 10 중 무려 9개가 키즈 채널입니다. 그럼 키즈 채널은 왜 이렇게 높은 수익을 얻었을까요? 다음 영상을 함께 보시죠.”

리모컨을 누르자 3개의 짧은 영상이 순서대로 재생됐다.

하나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영상. 두 번째는 아이들이 자고 먹고 이야기하며 노는 일상의 장면. 세 번째는 아이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다.

영상이 끝나자 나는 힘을 주어 말했다.

“보셨다시피, 영상의 주인공은 모두 아이들입니다. 그럼 이걸 주로 보는 이들은 또 누구일까요? 그렇죠. 마찬가지로 아이들입니다. 물론 그들의 부모나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을 보기 위한 성인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아이들이죠.”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의 특징이 뭘까요? 봤던 걸 또 보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어른들은 질릴 법도 한데 아이들은 본 걸 또 봅니다.”

“하하. 맞아요. 저희 애가 그럽니다.”

“맞아. 대체 왜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지 모르겠다니까.”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동감을 표한다.

나는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광고를 건너뛰지 않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광고주들에게는 이보다 더 고마운 고객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하하하.”

처음에는 다소 딱딱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역시 발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발표자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나중에 기억에 남지 않을 테니까.

자 이제 클라이맥스다.

화면에는 다시 한번 빨간색 막대 그래프들과 채널명이 등장했다.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혹시 여기 있는 탑 10 채널 중에서 키즈 채널은 총 몇 개일까요?”

사람들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1개?”

“2개?”

“2개입니다!”

“2개요!”

“네. 정답입니다. 총 2개입니다. 그것도 상위권이 아니라 8위와 10위. 하위권을 맴돌고 있죠. 2018년에는 5위를 제외하면 키즈 채널이 탑 10을 모두 점령한 반면 이제는 키즈 채널이 힘을 잃은 모양새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나는 답을 하지 않고 리모컨을 눌렀다.

거기에는 개인 맞춤 광고, 기부 버튼, 댓글, 실시간 채팅, 스토리 등의 단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건 키즈 채널에 가해지는 유튜브의 제한 중 일부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많은 제한이 있고, 하나같이 수익 실현과 조회수를 높이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조치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키즈 채널이 상위권을 휩쓸었으나 요즘은 먹방 콘텐츠가 주도하고 있다.

유튜브가 키즈 채널 정책을 변경한 이후 변화된 모습이다.

물론 키즈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하려는 사람들은 늘었는데, 수익 실현이 제한되면서 레드오션이 된 것일 뿐.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키즈 채널은 돈이 안 되니까 접어야겠다? 하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라도 맞닥뜨린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쉬이 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에 충실한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왜 시작하려고 했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집중해 바라보았다.

“저한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다 보면 광고 수익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돈이 목적은 아니었죠.”

그러고는 HiYeom하연 채널에 올라간 비디오 몇 개를 짧게 편집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하연이는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연이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즐거워했으면 했습니다. 어떠신가요? 이 영상을 보니까 마음이 좋아지시나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마치 그새 하연이의 팬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준비한 하연이 영상이 끝나고.

갑자기 사회자가 대본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여러분. 혹시 하연이가 나오는 영상을 조금 더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네에!”

“더 보고 싶어요!”

뭐지? 사회자의 애드립인가?

사전에 이야기된 내용이 아니라서 조금 당황스럽다.

“여기서 잠시. 사랑스러운 하연이가 아빠를 위해 응원하는 모습. 잠깐 보고 가실까요?”

그 말을 끝으로 화면이 바뀌더니 영상이 하나 등장했다.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다.

응? 저긴 하연이 어린이집이 아닌가?

하연이 사랑반 친구들이 뒤에서 웅성거리는 가운데 하연이가 카메라 가운데에 등장했고, 녀석은 조금씩 리듬을 맞추더니 귀여운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띵동대엥 초인조옹 쏘리에에 얼른 무늘! 열어떠니이.”

저거 ‘아빠 힘내세요’잖아?

내가 그동안 몇 번이나 불러달라고 했는데 하연이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적이 없다며 단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노래 말이다.

하지만 사랑반 아이들은 이미 저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하연이의 뒤에서 율동과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떤디이 오느을 아빠의 얼쿨이 우울해에 뽀이네요오!”

- 짝

- 짝짝

- 짝짝짝

방청석에서 하연이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몇몇 이들을 심지어 따라부르기까지 한다.

난 그저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볼 뿐이다.

대체 저 영상은 뭐란 말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노래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빠! 힘내세요오! 우리카아 있어요오. 히임내에세요오.”

갑자기 하연이 뒤에 있던 아이들이 앞으로 뛰쳐나오면서 동시에 소리친다.

“아빠아!!”

“잘한다!”

하연이의 노래가 끝나자 대강당은 순식간에 우레와 같은 박수로 가득 찼다.

누가 보면 세미나가 아니라 어린이집 졸업식 행사 장면인 줄 알겠다.

화면은 다시금 내가 만든 프레젠테이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무언가 다른 기분이 든다.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하더라도 전문적인 내용과 위트를 활용해서 청중들에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자연스레,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게 조금 전이라면.

이제는 뭐랄까. 여유 같은 게 생겼다. 무대 자체도 더 따뜻해 보이고 청중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어딘가 부드럽다.

나는 잠시 이를 만끽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영상은 제가 준비한 게 아니라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밌게 보셨나요?”

“네에!”

“다행이네요. 그럼 다시 원래 발표로 돌아가겠습니다.”

얼핏 방청객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싱글벙글. 아빠 미소를 짓고 있다.

하연이 응원 영상의 힘이다.

“저는 무엇보다도 하연이가 하고자 하는 걸 지원해줌으로써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니까 유튜브는 일종의 놀이였죠. 하연이도 좋아하고 저도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하연이가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마지막 장면으로 처음에 등장했던 사진이 다시 나왔다.

내가 하연이의 볼에 입맞춤하는 사진 말이다.

“지금 하연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직 10만 명에도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구독자 수가 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저는 물론 하연이 역시 정말 즐거운 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구독자분들도 무척이나 좋아해 주시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구독자 수가 십만 명도 넘고 백만 명을 넘게 되지 않을까요?”

몇몇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를 표하는 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키즈 채널을 처음 하려고 했던 목적이 과연 돈이었는지. 아니면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추억을 쌓으려고 했는지. 그걸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중간에 말을 끊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 입에 집중된다.

“그렇게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여기저기서 광고 제안 메일을 받게 되실 겁니다. 유튜브 영상에 붙는 광고가 아니라 기업에서 제안하는 광고 촬영 말이죠. 바로 저희가 그렇거든요.”

“하하하.”

“그럼 제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마치자 사람들이 만족했다는 듯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데 가슴이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강의를 준비하고 있던 한초 역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맞는다.

“멋진 강의였어. 돈이 아닌 본질에 충실히 하라는 메시지. 그럼 결국 돈을 벌게 될 것이다. 하하. 좋더라.”

“고맙다. 떨려서 죽을 뻔했는데 어찌 넘겼네.”

“그게 떨리는 사람의 발표면 난 어쩌라고. 크크. 그러면 이따가 보자.”

녀석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무대 쪽을 향해 걸어갔다.

강사 대기실로 돌아왔더니 앞서 발표했던 두 분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며 좋은 강의였다고 말해줬다.

“말씀 정말 잘하시네요. 강의 잘 들었습니다.”

“좋은 강의였습니다. 한 수 배웠네요.”

“별말씀을요. 고맙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무대와 연결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곧바로 한초의 강의가 시작됐다.

그는 영상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철학과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영상 제작자가 명확한 기준을 잡고 영상을 만들다 보면 수익과 명성은 절로 따라오는 거라며 열변을 토한다.

덕분에 나 역시 좋은 공부가 되었다.

한참 한초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다.

그녀는 곧장 나한테 오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김진형 강사님. 저는 강사님에게 섭외 메일을 드렸던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사업팀 조민하 대리라고 합니다.”

“아. 네. 기억합니다.”

하연이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내게 이메일을 통해 강의 섭외를 제안했던 분 말이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보이고는 물었다.

“갑자기 하연이 노래 부르는 영상이 나와서 당황하셨죠? 사전에 설명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나름 좋았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나보다 먼저 발표했던 두 명도 귀를 쫑긋거리며 나와 그녀의 대화에 관심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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