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38화
나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연이 아빠입니다.”
그러자 댓글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한다.
└ 와!! 기다렸습니다아!!!
└ 안녕하세요
└ 하연이 아버님은 오늘 카메라에 얼굴 안 비추시나요?
“네. 오늘은 하연이 인터뷰라서요. 화면에는 하연이만 나올 예정입니다.”
└ 아쉽다 ㅜㅜ
└ 형님! 저 형님 유튜브도 구독해서 같이 보는 독자입니다. 사랑합니다!
└ 아버님 목소리 좋으시다. 멋져요! 응원합니다
생각보다 날 좋아해 주는 분들이 많다.
‘예쁜 딸을 둔 덕분에 아빠까지 유명세를 얻네.’
간질거리는 코를 슬쩍 훔치며 준비했던 멘트를 날렸다.
“오늘 이 자리는 하연이 팬 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많이 물어봐주시는 질문 서른 개를 사전에 준비해뒀는데요. 이를 모두 답변한 뒤에 즉석에서 질문 다섯 개를 받을 예정입니다.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하연이도 준비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첫 번째 질문. 조사하다 보니까 이게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었어요.”
└ 뭐지? 뭔데?
└ 하연이 엄마가 누구인가?
└ 위에 패륜새끼. 너 내 손에 걸리면 죽는다
“흠흠. 그 질문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하연이는 정말로 4살이 맞나요?”
└ 아아. 그럴 만하지. 말을 너무 잘하니까
└ ㅇㅇ 이거 나도 전에 댓글로 물어본 적 있음
└ 아버님 솔직히 이야기해주시죠. 하연이 4살 아니죠?
방송을 시작한 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정말로 4살이 맞냐며 물어본다.
나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하연이는 정말로 4살이 맞습니다. 하연이가 어릴 적부터 언어 신동 소리를 듣긴 했지만, 신체적으로는 4살이 맞고 만으로는 아직 3살이 안 됐어요. 만 2세죠.”
네가 신호를 주자 하연이는 준비된 큐카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뚜우번째에 질문입니따아!”
└ 으으으으!!! 귀여워!!!!!!!!
└ 하연아! 이모가 사랑해~♡
└ 우쭈쭈쭈! 하연이 최고!
“김하여어는 이하연꽈아 무쓴 사이인카요오?”
“네. 맞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하연이가 이하연 노래를 무척이나 잘 따라 해서 나온 질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하연아. 우리 하연이는 이하연 언니 알아요?”
“우웅! 자알 아라요오!”
“어떻게 알게 됐어? 이하연 언니는 지금은 저기 하늘나라에 가 있는데.”
이 말에 많은 이들이 슬픈 반응을 보였다.
└ 나의 첫사랑 이하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었어요 ㅜ 또 눈물 나려고 하네
└ 보고싶다...진짜 보고싶다...
하연이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댓글 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노오래르을 드렀는데에 대개애 쪼아쪄요.”
“집에서. 아님 길에서?”
“킬에서요오.”
“그랬구나. 그 뒤로 이하연 언니의 팬이 된 거야?”
“네에! 그리코오 아빠아도 이하여언 어니이 패니에요오.”
응? 이건 사전에 준비한 멘트가 아닌데?
하연이를 바라보자 하연이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요 녀석 봐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하연이 아버님도 이하연 팬이셨군요
└ 여러분! 이래서 가정 교육이 중요한 겁니다! 부모가 한화 팬이면 그 집 자식은 영원한 한화 팬인 것처럼 ㅜㅜ
└ 으으. 토나올 것 같아. 살려줘. 참고로 전 롯데 팬입니다
└ ㅋㅋㅋ 레알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굴레! 영원한 속박!
사람들은 내가 이하연의 팬이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는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제 시작한 지 10분이 안 됐는데 접속자 수를 보니 벌써 4천여 명에 달한다.
“비슷한 질문으로 하연이는 어떻게 이하연의 춤과 노래를 완벽하게 따라 하나요? 라는 게 있었는데, 별 건 없습니다. 그냥 혼자 집에서 따라 부르고 춤을 추더라고요. 신기하죠?”
└ 하연이는 진짜 이하연의 환생인지도 모르겠다
└ 밥 아저씨도 아니고 ㅋㅋㅋㅋ 참 쉽죠오?
└ 재능이 풍부한 아이임. 하연이 아버님! 우리 하연이 잘 키워주세요!!
이후로도 이런 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준비한 서른 개의 질문과 답변을 모두 마쳤다.
하연이의 이름을 정말로 이하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뒤로 쓰러진다.
└ 하연이 안됐누. 아빠가 이하연 덕후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하연이가 이하연 잘 따라 하는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음
└ 이하연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기 하늘나라에서 좋아하지 않을까요? 뭔가 훈훈하네요 ㅎㅎ
대략 1시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접속자 수는 무려 1만 명에 달한다.
많아 봤자 5천여 명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그 두 배에 달하는 사람이 지금 이 생방송을 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하연이 뮤비를 공개한 이후 새로운 팬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한편 하연이는 조금 지쳤는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보인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벌써 하연이가 잘 시간이 되었네요.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질문 딱 5개만 받고 이만 방송을 종료하고자 합니다. 질문 있으신 분들은 채팅창에 남겨주세요.”
그러자 글을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댓글 창에 수많은 질문이 달리기 시작한다.
이게 동접 1만 명의 위력인가.
댓글 창을 보면서 질문을 고르는 게 쉽지 않았던 관계로 나는 스크린 캡처로 화면을 저장한 뒤 천천히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괜찮은 질문을 하나 골랐다.
“앞으로 하연이가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하나요? 라는 질문이 있네요. 음. 이 질문은 누가 대답하면 좋으려나. 하연아. 네가 답변할 수 있겠어?”
하연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데뷔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나의 고민을 단숨에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하연이는 거침없이 답했다.
“제 꿈운 카수입니다아. 저느은 반드시이 카수가 될 꺼에요.”
└ 이열! 우리 하연이 대단하다아!
└ 파이팅! 4살짜리가 벌써 확고한 꿈이 있구나! 할 수 있다! 아자아자! 하연아! 삼촌이 응원할게!
└ 그런데 지금도 가수라면 가수 아님? 가수가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질문을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네! 방금 댓글에 무척 좋은 질문이 있었는데요.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의미하는 거라면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직업적인 의미. 그러니까 단순히 취미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꾸준히 음원을 내고, 뮤비도 만들고, 여러분들과 소통할 예정이라는 의미로 받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좋다며 환호성을 친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질문까지 모두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댓글 창의 대부분이 이 질문으로 도배가 되어 있던 것이다.
└ 그런데 하연이 아버님은 언제까지 돌싱으로 계실 겁니까?
└ 맞소! 하연이를 위해서라도 재혼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 지금 만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제가 한 명 소개해드릴까요?
└ 저는 어떠세요? 올해 스물여덟. 간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아이 보는 거 좋아해요!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즉석 구혼 등장!!! 둘이 만나라! 만나라!
아주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남의 개인사에 이리도 관심이 많지?
저게 진심인 건지 놀이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관심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하연이를 키우면서 제가 하는 영상 일에 집중하려고요. 하지만 하연이를 위해서라도 언젠가 좋은 분이 나타난다면 좋겠죠? 하하. 그럼 하연이의 인터뷰는 이것으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더 놔뒀다가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니까.
재혼이라.
결혼한 적도 없는데 재혼이란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돌싱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뭔가 괜히 억울하다.
크으. 내 청춘 돌려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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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있으니 어색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니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준비한 세미나에 강사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주제는 무척이나 학술적이다.
‘레드오션화된 유튜브. 이 시기에 유튜버로 성공하기 위한 전략과 과제라니.’
내가 이런 곳에 강사로 와도 되는 걸까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총 4명의 강사가 초대되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세 번째 순서다.
내가 적은 말은 아니었는데 팸플릿엔 ‘키즈 채널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 HiYeom하연 채널은 어떻게 급부상했는가?’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확실히 배운 사람들이라 그런지 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능이다.
그런데 나의 다음 순서로 발표하는 사람이 대박이다.
내가 영상을 만들면서 목표로 삼은 인물인.
한초가 와 있었던 것이다.
콘진원 관계자는 그의 섭외를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하지.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선 대세 유튜버니까.’
나뿐 아니라 앞의 두 사람 또한 한초가 오늘 섭외된 지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된 일.
강사 대기실에서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내게 아는 체를 하며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하연이 아버님 되시죠?”
“앗. 안녕하세요. 네. 제가 하연이 아빠입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일설에 의하면 나와 같은 서른이라고 하던데.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올려주시는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진행하신 라이브 인터뷰도 정말 잘 보았어요.”
“헉. 그때 접속하셨나요?”
“물론이죠. 저도 질문 남겼는데, 제껀 안 읽어주시더라고요. 하하.”
이런 영광이!
최근 영상 제작자 중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한초가 하연이 생방송에 직접 접속해서 댓글까지 남겨 주었다고?
나는 그와 악수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저야말로 한초님 영상 잘 보고 있어요. 초면인데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지만, 한초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제가요?”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진심이에요. 한초님만의 철학이 가득 담긴 영상. 저 역시 이런 영상을 만들고 싶거든요.”
“혹시 하연이 유튜브 계정 말고 다른 영상도 하고 계시는 건가요?”
“네. 원래 전공이 영상 제작 쪽이고, 지금도 외주를 받아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어쩐지 올리신 영상 퀄리티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했는데.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뭘요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여기서 뵐지는 몰랐네요.”
“하하. 그러게요. 저도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훈훈한 이야기가 오가며 어쩌다 보니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하연이 아버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올해로 서른이 되었습니다. 김광석의 서른쯤에 나오는 딱 그 시절이죠.”
“오! 대박! 저도 올해 서른입니다.”
“정말요? 그럼 저희 동갑이네요?”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말 편하게 놔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그래, 고맙다. 내 이름은 한초야.”
“채널 이름이 본명이었구나? 난 김진형. 만나서 반갑다.”
“나도. 하하. 콘진원에서 하는 세미나라서 모두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만 계실 줄 알았는데 친구가 있으니까 든든하네.”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하고는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확실히 나와 생각하는 방향이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는 사이.
“김진형 강사님. 곧 발표 시작입니다.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진형아! 긴장하지 말고 발표 잘해!”
“응. 고맙다!”
나는 한초의 응원을 받으며 강사대기실을 떠나 무대 뒤로 이동했다.
- 짝짝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께 이전 발표가 마무리되는 게 들린다.
“후우.”
집중하자, 김진형. 넌 잘 할 수 있어!
나는 양손으로 두 뺨을 가볍게 치고는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