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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37화 (37/135)

내 딸은 국힙원탑 37화

“네? 하연이한테서 민규를 떨어뜨려 놓으라고요?”

신유주는 주은영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보면 때때로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걸 잠시 멈추고 진정될 수 있도록 격리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반. 그것도 3살이나 차이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격리 조치는 처음이었다.

“이모! 민규는 7살이에요. 하연이는 4살이고.”

“신유주 선생님.”

“네.”

“직장에선 날 원장이라고 부르라고 했죠?”

“..네. 원장 선생님.”

“내가 들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잔말 말고 따라줘요.”

신유주는 주은영의 조치가 좀처럼 납득되지 않았다.

하연이와 민규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민규는 하연이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둘을 억지로 떼어놓으라니.

사실 그녀는 격리라는 것 자체가 아이들 교육에 있어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으면 다소 갈등이 있더라도 직접 부딪쳐서 말로 풀어야 한다는 주의.

격리라는 건 어른을 위한 편의주의적 수단일 뿐이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이모. 아니 원장 선생님. 둘을 왜 떼어 놓아야 하는지 이유는 들을 수 있을까요?”

“하아. 나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럼요?”

“하연이를 민규한테서 보호하려고 그러는 거지.”

“보호요?”

“그래. 민규 이야기 들었어?”

주은영은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에서 들은 이야기라며 썰을 풀었다.

“민규, 걔 아주 유명하데.”

“뭐로요?”

“말썽꾸러기로. 그동안 문제 일으켜서 유치원 옮긴 적이 많고, 여기가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그렇다고 하데.”

“그래요?”

“응. 유치원 쪽은 소문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왔다나 봐. 하아. 녀석을 받기 전에 내가 좀 더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모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를 받지 않아야 한다거나, 아이들 사이를 떼어놓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원장 선생님. 제가 봤을 때 민규랑 하연이는 사이가 제법 좋아요. 특히 민규는 하연이를 많이 아끼죠.”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거야.”

“위험이요?”

“그래. 여태까지는 남자애들하고만 다툼이 있었다지만, 혹시라도 여자애. 그것도 하연이처럼 예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안 그래?”

“그건..”

이모도 하연이가 최근에 유튜브에서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시도 때도 없이 하연이 자랑을 해댔으니까.

“하지만 민규도 나름 아역 배우 중에서는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최근에는 PKT 엔터와도 계약을 맺고 연기 수업을 받고 있고요!”

“내가 그래서 더 그러는 거야. 나 아는 애도 연예 기획사 다니는데, 거기서 못된 것만 배워와서 학교에서 아주 가관이라더라.”

“그건 취학한 아이들이겠죠. 민규는 고작 7살이고요.”

“아냐. 문제가 될 만한 싹은 초반에 자르는 게 맞아.”

“이모!”

“놉! 원장 선생님!”

물론 이모가 왜 저러는지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연이에게는 나름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진형의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받은 다음 날.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아이를 받을 수 없겠냐며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자 이모는 하연이의 등원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말이다.

그 뒤로도 하연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데 큰 노력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 더 보호하려고 저러는 거겠지만. 이게 올바른 해답이 될 순 없어.’

신유주는 한 마디를 더 꺼내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동안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하연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니까.

“아니에요오!”

“응? 하연아. 지금 뭐라고?”

“아니라고오오요옷!!”

#

결코 박민규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녀석은 건방지고 오만한데다 자기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아직 어린아이였다.

순수한 면도 있고, 뭣보다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잘하고 싶어 한다.

전생에서도 소속됐던 연예 기획사에서 팀 내 불화로 갈등을 겪는 아이돌들을 여럿 지켜보았다.

갈등의 시작은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누가 간식을 더 많이 먹었다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먼저 입었다거나.

이런 사소한 일들이 불씨가 되어 팀이 해체될 정도로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소속사에선 잠시 안정을 갖자며 격리 조치를 하곤 했다.

다툰 멤버들의 숙소를 다른 곳에 배치한다거나 최대한 자주 부딪히지 않게 무대 위 동선을 조정한다거나.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욕을 하고, 눈물 콧물이 나오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등 극한 상황까지 간 친구들이 나중에는 끈끈한 우정을 보여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자신과 민규는 불편한 사이도 아니고 다툰 것도 아니었다.

단지 민규가 이전에 다녔던 곳에서 조금 사고를 일으킨 전적이 있을 뿐.

그걸 빌미로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떼어놓겠다니.

어불성설이다.

“안대요오!”

“아니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민큐오빠아랑 하여니눈 싸운저억 업떠요!”

“하연아. 원장 선생님은 우리 하연이를 보호하려고..”

“아냐아! 떠러뜨리는거어 나빠아아!!”

주은영과 신유주가 당황한 얼굴로 하연이를 달랬다.

“응응. 하연아 알았어. 원장 선생님이 잘못했다. 우리 하연이랑 민규랑 안 떼어 놓을게. 응? 이제 진정해.”

“그래, 하연아. 원장 선생님은 꼭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지? 하연이 기분 풀렴.”

흥. 정말 애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설마 4살짜리 애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이십 대 후반의 성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어린아이가 듣는다면 무슨 기분이 들겠는가.

나를 보호해주겠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교육자로서는 다소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를 째려보았지만, 그녀는 이쪽을 향해 미소를 보이더니 나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쩜. 우리 하연이는 이렇게 마음이 넓지? 예뻐 죽겠어! 원장 샘이 콱 깨물어주고 싶어.”

“우우우. 아파아아.”

“가만히 좀 있어 봐. 원장 선생님이 우리 하연이 예쁜 기운 받고 힐링 좀 하게.”

끄아아아.

그만하라고오! 이런 건 아빠한테 당하는 걸로 충분하단 말이야.

분명히 상대의 의견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는데.

왜 주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발음이 부정확해서 그런 걸까?

#

유튜브에 올린 하연이의 뮤직비디오는 연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하연이가 춤추는 장면은 물론이고 뮤비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칭찬도 많다.

의도했던 대로 사람들은 뮤직비디오 곳곳에 들어있는 여러 상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펼쳤다.

└ 저 1분 38초쯤 등장하는 모자 말이야.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지 않아?

└ 바보. 그건 모자가 아니라 커다란 하트가 녹아내린 모양이라고.

└ 마지막 장면에 하연이가 누군가에게 빨간 사과를 건네면서 끝이 나잖아? 그건 하연이의 마음을 표현한 걸까? 나는 아빠를 이렇게나 사랑해요라고?

└ 2222222 내 생각도 정확히 그래!

└ 이거 기획한 사람은 천재인 듯. 봐도 봐도 새롭네. 사람들 해석 달릴 때마다 뭐가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네

└ 무슨 월리를 찾아라도 아니고. 시험 문제 푸는 기분이네

└ 월리를 찾아라라니. 아재요....(난 이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 덕분에 영상을 올린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조회수는 벌써 30만에 달해 있었다.

지금까지 올린 영상 중에서는 가장 많은 조회수.

영상의 인기만큼 점점 더 많은 이들로부터 하연이를 보고 싶다는 요청의 이메일이 폭주했다.

초반에는 연예 기획사의 스카우트 제안이나 방송가 PD 혹은 작가들의 섭외제안이 많았는데 뒤로 갈수록 연예 매체의 인터뷰 제안이 많았다.

‘하연이가 더 뜨기 전에 단독 인터뷰를 하고 싶은 거겠지?’

그렇다고 그들 모두와 인터뷰하는 것은 무리다.

어디랑은 하는데 어느 곳은 외면하기도 싫고.

기자인 현모 말로는 기자들 사이에선 소위 ‘물을 먹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다른 곳에선 취재했는데 자신은 취재하지 못하면 그런 표현을 쓴다고 그랬다.

그게 꽤 분한 일인지, 기자에 따라서는 물을 먹은 취재원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기사로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더더욱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언론하고 인터뷰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은 개인이 각자 미디어인 시대라고 하잖아? 우리가 그냥 라이브 방송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 기자들이 그걸 보고 기사를 쓰지 않을까?’

나는 즉시 현모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전했다.

현모가 놀랍다면서 연신 감탄사를 뱉는다.

“이야. 김진형! 너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냐? 진짜 대단한데?”

“그게 그렇게 좋은 생각이야?”

“물론! 안 그래도 요즘 이쪽 업계에선 언론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중과 소통하는 경우가 늘고 있거든. 기업들마다 뉴스룸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체 뉴스를 생산해 내기도 하고.”

“그래? 아무튼 괜찮다 이거지?”

“응. 무척 좋은 생각이야. 네 말대로 괜히 어디랑은 인터뷰하고 어디랑은 안 하고 그러면 나중에 물먹은 언론사랑 척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오케이! 고맙다, 현모야.”

“별말씀을. 그런데 진형아.”

“응.”

“그거 언제 방송할 거냐?”

응? 그건 왜?

현모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하. 독점은 불가능하더라도 내가 가장 먼저 기사 쓰고 싶어서 말이지.”

“뭐라고? 하여간 누가 기자 놈 아니랄까 봐 독점 타령은.”

“하하. 어쩔 수 없어. 그건 기자의 본능이니까.”

“미안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궁금하면 수시로 하연이 유튜브 채널에 접속해서 공지 사항 살펴보라고.”

“야! 내가 조언도 해줬는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

“저는 공명정대한 참기자. 구현모 기자님을 응원합니다. 아시죠?”

“크으. 졌다, 졌어. 아무튼 수고하고.”

“그랴. 수고해라.”

전화를 끊고 그동안 유튜브 커뮤니티와 댓글 등에서 공통으로 나왔던 질문들을 주욱 정리해보았다.

대체로 하연이 개인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고, 간혹 채널 운영자인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 실제로도 아빠랑 친한지. 아빠가 잘해주는지 등등.

나는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서른 개 정도 뽑아서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하연이와 함께 답변을 만들었다.

라이브 방송이지만 답변은 미리 준비해둔 상태로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디오쉐어에 있을 때 지방에 있는 한 식당을 소개하는 라이브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심태열 사장은 유독 정제되지 않은 생생함을 강조했는데, 그래서 사전 대본 등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누군가가 음식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부탁했는데, 출연자가 정말로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하하. 정말로 별로예요. 이 가격에 이런 맛이라니. 저 같으면 다신 안 올 거 같네요.”

나름 솔직함을 표현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이건 정말 뭐가 똥이고 뭐가 된장인지도 모르는 발언이었다.

덕분에 식당 주인은 극대노(極大怒).

우리는 계약금을 받기는커녕 쫓겨나듯 식당을 떠나야 했고, 하마터면 소송을 진행할 뻔했다.

솔직한 건 좋지만 그게 늘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연아 우리가 준비한 서른 개의 질문과 답변을 모두 한 다음에는 추가로 다섯 개 정도의 질문을 받을 거야.”

“추가로오?”

“아. 그러니까 질문을 더 받겠다는 거지. 서른 개는 미리 준비한 내용이고, 추가로 받은 다섯 개는 즉석에서 올라온 질문 중에 우리가 골라서 받으면 돼.”

그러니까 우리의 전략은 이랬다.

미리 준비한 서른 개의 질문과 답변이 끝나면 다섯 개의 즉석 질문을 받는 것.

즉석 질문의 경우 어떤 걸 물어볼지 모르니까 답변을 미리 준비할 수 없다.

그러니 정제된 메시지 위에 현장의 질문을 추가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나는 공지 사항에 모레 저녁 7시. 하연이의 라이브 인터뷰를 진행할 거라는 내용을 올렸다.

이틀 정도의 유예 기간을 주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이틀 뒤 라이브 방송 5분 전.

아직 카메라는 켜지 않고 방만 미리 만들어두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접속자가 천 명을 돌파한다.

와우. 본방 시작하면 얼마나 많이 들어오려고 벌써 이러지?

나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하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연아. 준비됐어?”

“네에!”

오케이. 그럼 한번 시작해보자. 하연이와 아빠의 특급 인터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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