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36화
“으하하하!”
“나 잡아 봐라~”
“쿵쿵쿵쿵쿵!”
무슨 놀이동산에라도 온 기분이다.
수 많은 아이들이 넓은 실내 공간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여기가 키즈카페라는 곳이구나.’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민규 엄마가 웃으며 말한다.
“혹시 하연이 아버님은 키즈카페가 처음이세요?”
“아 네. 처음입니다.”
“애들 노는 곳은 1층이고요. 저흰 2층으로 올라가면 돼요.”
“2층이요?”
그건 곤란한데. 민규를 매의 눈으로 관찰해야 하지 않나.
내가 안절부절못하자 민규 엄마는 괜찮다면서 위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통유리로 된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렇게 유리로 되어있어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예요. 안에 CCTV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여러 대 있어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하. 그렇군요.”
그녀를 따라 2층에 올라간 우리는 커피를 주문한 뒤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의 말대로 1층 곳곳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늘어서 있는 안쪽은, 한쪽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저는 가끔 민규 데리고 와요. 아무래도 외부에 있는 놀이터보다는 여기가 소독이랄까 방역에 더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하연이와 함께 놀이터를 가본 적이 있었던가?
일하랴 육아하랴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연이는 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한테 놀이터 가자는 말을 한 번도 꺼낸 적이 없기도 하고.’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민규 엄마가 묻는다.
“왜요? 하연이 넘어졌어요?”
“아뇨.”
“그럼 혹시 여기가 불편하세요?”
“그것도 아니에요. 그저 제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져서요.”
“한심이요? 하연이 아버님이요?”
민규 엄마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아니 애 잘 보기로 어린이집에서도 소문난 하연이 아버님이 왜요?”
“사실 이런 키즈 카페는 물론이고 하연이 데리고 놀이터 한번 가본 적이 없어서요.”
“아.”
“애들은 놀면서 크는 건데 제가 그동안 너무 무책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연이에게 미안함이 크다.
원래 애들이란 이렇게 또래들과 부딪히며 놀아야 하는 건데.
그동안 하연이가 너무 의젓해서 아이들은 놀이를 좋아한다는 기본을 잊고 살았다.
민규 엄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위로했다.
“저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안 게 최근이에요. 그전까진 집 안에서만 키우다가 TV 보고 알았거든요.”
“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함께 오기 괜찮은 곳이네요.”
“그렇죠? 거기에 2층은 카페처럼 되어있어서 차 한 잔 마시며 잠깐 쉴 수 있는 여유도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그러게. 계속 아이를 보고 있으면 힘이 들 텐데 여긴 아이들은 밑에서 아이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다.
누가 이런 걸 처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참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하연이도 즐거운지 민규는 물론이고 다른 아이들과도 함께 잘 놀고 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과잉보호한 건가.’
하연이가 저렇게 잘 노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건데.
민규 엄마는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연이 아버님은. 정말 아이를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네? 자기 자식 싫어하는 부모도 있나요?”
“그럼요. 얼마든지 있죠. 그리고 싫어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언제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자식을 바라보진 않는다고요.”
“제 눈에서 꿀이 떨어지나요?”
“네! 모르셨어요? 거울 보여드릴까요?”
이런. 내가 하연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줄은 몰랐다.
앞으론 조금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겠다.
“흠흠. 요즘 민규는 어떤가요? 연기 수업 잘 받고 있나요?”
“덕분에요. PKT 엔터에서도 갑자기 애가 태도가 바뀌었다면서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민규라면 어딜 가든 분명 잘 해낼 겁니다.”
“아참! 이번에 민규도 유튜브 계정을 하나 파볼까 싶은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유튜브요? 민규는 PKT 엔터 소속이니까 그쪽에서 만들어주지 않나요?”
“물어봤더니 조금 나이가 있는 친구들은 자기네들이 만들어서 관리해준다는데 민규 같은 미취학 아동의 경우에는 경험도 쌓을 겸 집에서 직접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말이나 방귀냐.
계약했으면 다 같은 PKT 엔터 소속이지 무슨 나이로 구분을 짓는 건지.
그런 곳에 우리 하연이를 보내지 않은 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다음에 민규 데리고 저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제가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뭘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런데 제가 유튜브를 잘 안 해서요. 구독자 수? 조회 수? 뭐 그런 게 있다던데 하연이는 구독자 수가 많나요?”
민규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쩐지. 유튜브를 하는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나와 하연이의 채널을 검색해봤을 텐데.
다행스럽기도 한 한편 자랑하고픈 마음도 조금 일었다.
나는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나가는 말투로 쿨하게 답했다.
“이제 한 7만 명쯤 돼요.”
“음. 그럼 그게 많은 건가요?”
엇.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건 아닌데. 정말로 유튜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살짝 김이 빠진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적은 숫자는 아니죠.”
“그런가요? 제가 잘 몰라서요.”
“아뇨. 그럴 수 있죠.”
“그럼 민규도 그 정도 숫자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그건 뭐라고 답을 하기가 어렵다.
민규가 잘생기긴 했지만, 유튜브는 단순히 잘생긴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으니까.
“민규만의 전용 콘텐츠가 필요해요.”
“전용 콘텐츠요?”
“네.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또는 곤충을 키운다거나 물고기를 키우는 등 어떤 특색있고 공통된 주제가 있어야 해요.”
“아. 그러니까 민규만의 전용 방송인 거네요?”
“그렇죠. 아쉽게도 유튜브가 키즈 채널에는 제한을 많이 하고 있어서 과거처럼 폭풍 성장해서 돈을 벌거나 하는 건 쉽지 않지만요.”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 탑 10 안에 키즈 채널이 5개나 있었다.
탑 10의 절반이 어린이 유튜브였던 것.
하지만 지금은 구독자들과 소통의 핵심인 댓글은 물론이고 실시간 채팅, 후원, 판매, 개인 맞춤 광고 등을 할 수 없었고, 알고리즘적으로도 과거에 비해서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니 수익은 10분의 1 정도로 크게 감소한 상황.
민규 엄마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면 하연이는 왜 유튜브를 하는 거예요?”
“저흰 처음부터 수익을 기대하고 했던 게 아니거든요.”
“수익을 기대하고 한 게 아니라고요?”
“네. 하연이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그저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
“처음엔 단순히 그런 생각으로 영상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셔서. 이제는 반의무적으로 하고 있네요. 하하.”
“음. 그러니까 수익은 없지만, 인기를 얻을 순 있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이해했어요! 민규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해봐야겠네요.”
“네. 다른 키즈 채널들은 어떤 콘텐츠를 무기로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 참고해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하연이 유튜브 채널 주소도 좀 알려주세요.”
“네. 잠시 휴대폰 좀 빌려주시겠어요?”
그녀는 잠금을 풀어서 내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유튜브를 켜려는데 바탕화면에 민규를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깔려있다.
‘보통은 가족사진 넣지 않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유튜브 앱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유튜브 마크는 보이지 않는다.
‘아. 유튜브 안 한다고 하셨지?’
나는 모바일 브라우저를 띄었다.
그런데 조금 충격적인 내용이 보였다.
검색창에 ‘양육비 언제까지?’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양육비는 몇 살까지 지급받을 수 있는지, 이혼 양육권과 양육비 총정리같은 글들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창을 하나 추가하고는 유튜브로 들어가 하연이 채널 주소를 딴 뒤 그걸 메모 앱에 붙여넣고는 휴대폰을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메모 앱 보시면 하연이 유튜브 주소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아뇨. 실례했습니다.”
“실례는 뭘요. 하연이 유튜브 보면서 공부 많이 해야겠어요.”
혹시 민규 엄마는 남편과 이혼한 것일까? 아니면 이혼하려는 상황?
뭐가 됐든 민규에게는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야!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아 왜! 거기 너희만 쓰는 곳 아니거든?”
“됐으니까 딴 데 가서 놀아!”
박민규가 윽박지르자 상대 아이는 기겁을 하며 자리를 떴다.
김하연은 그런 민규의 모습이 한심했지만, 그가 어떤 의도로 저러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를 지켜주는 한편 독점하고 싶다 이거지.’
생각해보니 전생의 아빠에게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마치 내가 자신의 물건이라도 된 듯. 절대로 남에게 빼앗기면 안 될 것처럼.
‘그래서 태어나서 남자친구 한번 못 사귀어봤다지. 20대 후반까지.’
휴.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민규는 양반이다.
독점하고 싶다는 욕구는 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나를 보호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거니까.
전생에 자기 아비는 지켜주겠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저 나를 남에게 빼앗기기 싫어했을 뿐이다.
‘내가 떠나가면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이 무너질 거라 걱정하던 사람이었으니 말이지.’
그나저나 키즈카페란 곳은 처음 와 보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다.
게다가 아이가 되어서 그런지 놀이기구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보였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놀이기구에 빠져 놀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게 된다.
아빠는 어디 있나 살펴봤더니 2층에서 민규 엄마와 수다를 떨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저렇게 다른 사람들. 특히나 또래의 학부모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도 즐겁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아빠가 프리랜서이다 보니까 너무 집에만 있는 건 아닌지. 집과 어린이집만 왔다 갔다 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가끔 걱정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때였다.
민규가 두 볼이 살짝 상기된 채로 내게 이런 제안을 해온다.
“하연아. 오빠랑 엄마아빠 놀이할래?”
“엄마아 아빠아 노리?”
“응. 내가 아빠 할 테니까 넌 엄마 하는 거야. 알겠지?”
푸훗. 얘도 진짜 어지간히 내가 좋은 모양이다.
생긴 건 반반하니, 잘 생기긴 했지만 아서라.
누나는 너 따위 애송이는 취향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되겠지.
그녀는 적당히 어울려주었다.
어차피 이곳에 따라온 1차 목표는 아빠인 김진형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데 하다 보니 이놈의 역할극이 뭐라고.
점점 더 엄마 역할에 빠져드는 김하연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리액션이 좋아?
“여보오! 오늘으은 왜 이러케 느져써요!”
“미, 미안. 중요한 회식이 있어서 그만.”
“아이차암! 다으메 또 그러며언 혼날 주울 알아요오!”
“어어. 정말 미안해 여보. 내가 잘못했어.”
주변의 엄마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
다음 날 어린이집.
한쪽 벽에 몸을 기대앉은 박민규는 내내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친구 중 한 놈이 무슨 일 있냐며 다가온다.
“민규야.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좋은 일? 좋은 일이야 많지.”
“뭔데?”
“너한텐 안 알려줘. 저리 가.”
“칫. 메롱!”
녀석이 혀를 불쑥 내밀었지만, 박민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소였다면 끝까지 쫓아가서 자신도 혓바닥을 내밀며 복수했을 텐데 말이다.
후후. 네깟 놈들이 뭘 알겠냐.
나는 어제 하연이와 엄마아빠 놀이도 함께 한 사이란 이 말씀이다.
잠깐의 역할극이었지만 하연이도 무척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고.
박민규는 어서 간식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야 이 좁은 방 안에서 나가서 하연이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간식 시간이 찾아왔다.
멀리 사랑반에서 하연이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박민규는 그녀에게 다가가려다가 그만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뭐, 뭐야! 이거 놔!”
“어허! 박민규. 선생님이 뭐랬죠? 간식 시간엔 자기 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죠?”
히익! 이곳의 원장이자 호랑이 선생님인 주은영 선생님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경고를 준다.
박민규는 울며 겨자 먹듯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적어도 이곳에선. 그녀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유주샘과 하연이를 부르더니 두 사람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니 왜? 왜 내게서 하연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뺏는단 말이냐!
박민규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원망 섞인 표정으로 원장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