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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35화 (35/135)

내 딸은 국힙원탑 35화

“형!”

“왜?”

“혀엉!!”

“왜 불러 짜샤.”

“형은 진짜 천재가 틀림없어요!!”

“하하하. 그걸 이제 알았냐? 나 박선종이야.”

와. 진짜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연이의 다채로운 표정도 놀라웠지만, 뭣보다 저 산뜻한 색감 하며, 군더더기 없는 편집.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현란한 카메라 무빙은 뭐란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흥겨운 비트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찐이네요. 찐.”

“후후. 알아봐 줘서 고맙군.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티스트가 대단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걸 거다.”

“아티스트요? 하연이?”

“그래. 하연이 표정 좀 봐라. 어쩜 딱 가사에 맞게 그때그때 적합한 얼굴을 짓는지 말이야.”

그러고 보니까 하연이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여러 가지 표정을 보였다.

이건 슬픈 표정. 이건 웃는 표정. 이건 답답한 표정. 저건 즐거운 표정.

“저거 절대 쉬운 거 아냐. 내가 뮤비 많이 찍어봐서 알거든. 베테랑 연기자도 저런 표정을 쉬이 짓긴 어려워. 하물며 하연이는 이제 고작 4살이잖아!”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

우리 하연이가 좀 대단하죠.

“형. 저는 대만족이에요.”

“그럼 당장 하연이 유튜브 채널에 올리던가.”

“그래도 하연이한테 허락받고 올려야죠.”

“아 그런가? 하긴 당사자인 하연이 의견도 들어봐야지.”

“하연이 하원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요?”

“괜찮아. 오늘 하루는 좀 쉴란다. 그거 만든다고 며칠 무리했어.”

“고생하셨어요. 위에서 눈 좀 붙이시겠어요?”

“아니, 잠은 됐고. 수다나 떨자.”

“그래요 그럼.”

우리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 생각이 났다.

“형. 기억나요?”

“뭐가?”

“저 대학생 때 형 사무실에 가서 이렇게 수다 떨었던 거?”

“그랬던가?”

“네. 저는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이고, 형은 이미 사회에 나가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프로였잖아요? 그때 정말 많이 배웠죠.”

“흐흐. 기억난다. 뭣도 모르는 놈이 영상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크크. 제가 그랬나요?”

“그랬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진형아.”

“네.”

“미안하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종이 형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형. 이러지 마요. 부담스럽잖아요.”

“아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너를 비디오쉐어에 추천했을 때만 하더라도 거기가 그런 곳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

“그 얘긴 이미 끝난 이야기잖아요.”

“내가 생각이 짧았다. 나는 너같이 열정있고 뛰어난 인재가 백수로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웠거든. 비디오쉐어는 나름 업계에선 이름이 알려진 곳이고 거기서 영상 일을 배우다 보면 너한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네요. 형 말대로 거기서 많이 배운 게 사실이에요. 덕분에 유튜브 하면서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이해해줘서 고맙다.”

“뭘요. 형 아니었으면 영상 쪽 일 시작도 못했을 건데요.”

“짜식.”

선종이 형이 감동한 듯 코를 훌쩍거리더니 다시금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

“김진형. 넌 꿈이 뭐냐?”

“꿈이요?”

“영상 제작에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는 건 알겠는데.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뭐가 되고 싶은 거야?”

꿈이라. 제주도에서 하연이가 내게 물어봤던 질문이랑 비슷하다.

아빠는 영상이 왜 좋냐는 질문 말이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만든 영상을 보고 행복하고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흐음. 뭐 나쁘진 않은데 그게 다야?”

“네?”

선종이 형이 팔짱을 낀 채 의미심장한 얼굴을 지었다.

“의미는 알겠는데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서.”

“추상적?”

“그래. 그러니까 내가 물어본 의미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야. 예를 들어서 회사를 차려서 영상으로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그걸로 하연이 어디 꿀리지 않게 키우겠다거나. 뭐 이런 거 말이지.”

아. 그런 뜻이었구나.

괜히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낸 것 같기도 하고 얼굴에 열감이 느껴졌다.

나는 양손으로 두 볼을 감싼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잘 나가는 프리랜서가 1차 목표에요. 그리고 나면 회사도 하나 차려야겠죠.”

“그래. 내가 궁금한 건 바로 그런 거였어. 회사 차리겠다는 건 영상하는 제작자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정석 테크트리니까.”

“그런데 저는 일반적인 영상제작사가 아니라 저만의 특색있는 제작사가 되었으면 해요.”

“특색있는 제작사? 한초처럼?”

“엇? 형도 한초 아세요?”

“그럼 알다마다. 요즘 한초 모르는 영상 제작자가 어딨냐?”

한초는 전에 비디오쉐어 동료가 회식 자리에서 이야기했던 바로 그 1인 영상 제작자다. 아니 요즘은 사람을 뽑아서 회사를 차렸으니 영상 제작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정확히 제가 원하는 길이에요. 클라이언트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제가 원하는 영상을 만드는.”

“나쁘진 않지. 그래도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쉬운 길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말대로다.

남들 다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길이면 그게 나만의 매력이나 희소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진형아. 너 저번에 미래 그룹에서 수주 딴 게 단가가 높아서 계속 프리랜서로 있다가는 내년에 세금 폭탄 받을 거야. 그러니까 개인사업자를 하든 법인을 차리든. 한번 세무사랑 상의를 해봐.”

“그래야죠.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어요.”

“개인사업자 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연락하고.”

“네, 형. 고마워요.”

잘은 몰라도 벌어들이는 수익이 일정 액수를 넘어가면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비용처리를 받는 게 더 유리하다고 들었다.

‘액수가 더 크면 개인사업자보다 법인사업자가 더 유리하다고 들었고.’

그러니 당장은 아니지만 한번 세무사를 만나 상담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회사를 차린다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는데 말이지.

하연이가 내게 온 뒤 많은 것들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선종이 형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영상에 대한 거나 사업에 대한 거 말이다.

형은 자기가 아는 선에서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선종이 형처럼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선배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기 짝이 없다.

역시. 사람이 힘이다.

#

선종이 형이 만든 뮤직비디오를 본 하연이는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진심으로 저 행복해하는 표정을 봐라.

선종이 형은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웃는 얼굴로 우리 집을 떠났다.

나는 하연이에게 저녁을 차려준 다음 곧장 영상을 HiYeom하연 채널에 올렸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이건 아동용 콘텐츠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댓글이 오픈되어 있다.

올린 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댓글 창이 폭발한다.

└ 오오오!!! 이거 뭔가요? 퀄리티 쩌네!!

└ 이 노래 전에 미래 그룹 AI 홍보 영상에 삽입된 곡 아닌가요? 하연이가 직접 작곡했다는?

└ 이거 뮤비 만든 사람 누구냐? 웬만한 아이돌 뮤비보다 훨씬 더 감각적인데?

└ 노래 진짜 좋다! 멜로디도, 가사도! 완전 내 취향임! ♡♡♡

└ Love it

└ 하연이 노래 진짜 잘하는구나. 대세 힐링보이스 가쟈!

└ 뮤비가 진짜 따스하고 아름다워요. 이거 보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고마워요~

└ Love the visuals of this video ♡

다들 좋다고 난리다.

그런데 이전 영상들과는 다르게 외국인들의 댓글이 많이 보인다.

뭔가 제한이 풀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연이가 자기도 댓글 내용이 궁금하다고 해서 몇 개 읽어주었다.

“이거 보고 너무 눈물 나서 울었대.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랑해라고 말한 언니도 있네?”

“와아!”

“그리고 하연이 너를 엄청 사랑한대. 목소리 너무 좋다면서.”

“헤헤.”

“영상도 아주 좋대. 감각적이고 세련되었다고 하네. 뭔가 알쏭달쏭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있고.”

하연이는 웃는 얼굴로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계속해서 댓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지?

미래 그룹 공식 계정에서 이런 댓글을 남겼다.

[미래 그룹 공식 계정: 하연 양 뮤비 잘 보았어요! 이 영상에 삽입된 음원은 저희 미래 그룹 AI 홍보 영상에도 들어가 있는 곡인데요? 올해로 4살이 된 김하연 양이 직접 작곡한 노래라서 감회가 새롭네요.(이 노래를 만든 시점에선 3살이었다죠? 대박!) 이 곡과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멜로디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이쪽으로 오세요 ▶ bit.ly/3R*****]

오. 미래 그룹 SNS 담당자, 이 시각에도 열일하는구나.

저녁 9시가 지났는데 자기네 영상 홍보를 하러 여길 방문할 줄이야.

아무튼 덕분에 사람들이 하연이 뮤비에 더 많은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이런 곡을 3살짜리 아이가 만들었느냐라든지, 김하연은 미래 그룹에서 그룹 차원으로 밀어주는 가수냐는 이야기까지.

후후. 당신들은 단단히 낚이신 겁니다.

이제 하연이의 매력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을걸요?

나는 잔뜩 상기된 채로 컴퓨터를 끄고는 침대에 누웠다.

하연이가 내게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나.

결혼도 안 했는데 독박 육아라니.

지금에야 하연이가 잘 커 줘서 고맙지만, 솔직히 정말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하연이의 존재감을 차츰 알아가고 있었다.

뭔가 그동안 내가 잘 해낸 것 같고 뿌듯하다.

앞으로는 계속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다.

나도. 하연이도.

#

<4살 아이가 만든 노래 맞아? 김하연 뮤직비디오 인기 폭발>

<김하연 신곡 ‘원패밀리’ 국내 차트 TOP100 진입>

<김하연은 누구? 마니아층 탄탄한 올해 4살인 인기 유튜버>

<“원패밀리는 현재 K팝과는 조금 결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곡”..대중문화 평론가들 극찬>

영상을 올린 지 하루 만에 또다시 하연이의 이름이 인터넷 기사를 장식했다.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도 하연이의 이름과 이번에 발표한 신곡의 이름이 보이는가 하면, HiYeom하연 채널의 구독자 수는 이제 7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가히 폭발적인 위력이다.

유튜브 채널에 적어두었던 메일 주소를 통해 영상 제작 의뢰가 아닌 다른 형태의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방송계 작가, PD, 기자, 연예 기획사 등등.

여기저기서 하연이를 보고 싶다며 아우성친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기획사인 PKT 엔터의 스카우트 제안도 거절한 우리 하연이가 아니겠는가.

조금 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이게 거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 요청에 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연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어린이집에 갔더니 유주가 인터넷 기사를 들이밀며 소리쳤다.

“진형아! 이거 봤어?”

“당연히 봤지.”

“와. 내 제자가 인기 스타가 되고 있어! 어쩌면 좋지?”

“유주, 네 덕이 커.”

“내가 뭘. 영상이 정말 잘 나왔더라.”

“다음에 우리 집에 또 놀러 와. 그땐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든 밥 해줄 테니까.”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하연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하연이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김하연! 거기 서!”

뒤돌아봤더니 민규다.

‘PKT 엔터에서 연기 수업받고 있을 시각 아냐?’

하지만 민규는 내 생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쏜살같이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내게 말했다.

“아저씨! 오늘 하연이랑 같이 키즈카페 가기로 했잖아요!”

“키즈카페? 오늘?”

“네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본 유주가 자기 이마를 탁탁 때리더니 입을 열었다.

“내 정신 좀 봐. 안 그래도 민규가 아침부터 오늘은 하연이랑 같이 키즈카페에 가서 놀 거라면서 연습실에도 안 가고 남아있었던 거거든. 민규 어머니한테 뭐 연락받은 거 없어?”

연락?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잠금을 풀었다.

메시지 함에 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하연이 뮤비에 달린 댓글이랑 인터넷 기사 살펴본다고 문자 온 줄 몰랐구나.’

메시지를 살펴보니 오늘 하연이를 초대해도 괜찮겠냐는 민규 엄마의 문자가 와 있었다.

민규 표정을 보니 오늘만은 손꼽아 기다린 것 같은데 거절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하연이 혼자서 보내려니까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저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문을 쿵 하고 닫고선 둘이서만 방으로 들어가지 않던가.

나는 강한 콧바람을 밖으로 내뿜으며 물었다.

“민규야. 엄마 몇 시에 오시기로 했니?”

“이제 곧 올 거예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민규 엄마가 어린이집 인근에 차를 주차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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