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34화
피에로는 나의 자작곡임과 동시에 자전적인 곡이다.
작곡은 물론 작사도 내가 했다.
뮤직비디오를 조금 색다르게 찍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
단순히 얼굴이 많이 나오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현재의 심정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팬들 사이에선 이게 무슨 의미냐며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는 딱 하나였다.
‘답답했던 나의 이십 대.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대중에 대한 경고니, 아빠에 대한 울분이니.
모두 틀렸다.
물론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내 생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서로 자기가 맞다고 다투는 게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 뿐.
그런데 김진형은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연아. 이 뮤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지만 아빠가 보기에는 딱 하나야.”
“하나아?”
“응. 이하연은 이 곡 발표 당시 고작 스물다섯이었거든. 넌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때가 신체적 발육의 정점. 그러니까 우리 몸이 가장 발달해 있을 때야. 키도 그렇고 세포도 성장하는 시기지.”
“으음.”
“그런데 자신은 연예인이라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아마도 그 답답함을 토로한 걸 거야.”
“...”
“하하. 내가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람. 이해하기 어려웠지? 아무튼 사람들의 해석은 분분하지만, 이하연이 주려고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해.”
김진형이 전생의 나의 팬이었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내 뮤비를 본 같은 소속사 동료들조차도 제각각 생각이 달랐는데,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아무튼 우리도 이 뮤비를 통해 하려는 말은 딱 하나야. 네 말처럼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거지. 하지만 이걸 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 열린 결말이랄까? 그런 걸 사람들은 더 좋아하니까.”
“저기이. 아빠아.”
“응. 우리 딸.”
“아빤 이하여니 쪼아요 아니면 김하여니 쪼아요오?”
“뭐?”
김진형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본다.
그걸 말이냐고 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을 번쩍 들어서 안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우리 김하연이가 최고지! 물론 이하연도 좋지만 아빤 우리 김하연이가 천배 만배 더 좋아!”
훗. 이 간질간질한 기분은 뭘까.
한 남자한테 전생에서도 사랑받고 현생에서도 이토록 사랑받는 여자라니.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전생에 너무 고생했으니 현생에선 편하게 살라고 선물을 준 걸지도 모르겠다.
김하연은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했다.
“하하. 하연아. 간지러워.”
부드럽고도 향기로운 아빠 냄새.
조으다. 참 조으다.
#
토요일 오후.
한참 하연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이란 곳에서 메일이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줄여서 콘진원.
예전에 비디오쉐어에 있을 때 여기랑 계약을 맺고 여러 가지 영상을 납품했던 게 떠올라서 메일을 클릭한다.
<안녕하세요.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사업팀 조민하 대리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연락드린 이유는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인 ‘HiYeom하연’과 ‘하연아빠 TV’의 운영자이신 김진형 님께 저희 콘텐츠진흥원에서 준비 중인 세미나의 강사 제안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중략) 살펴보시고 관심 있으시면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민하 대리 드림>
그러니까 콘진원에서 몇몇 인기 유튜버들을 초대하여 유튜브 운영 노하우 및 애로사항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해보겠다는 게 골자.
아직 ‘HiYeom하연’ 채널은 구독자 수가 3만 명을 넘지 못했고, ‘하연아빠 TV’는 5천여 명 수준에 불과한데도 내게 이런 제안이 온 게 신기하다.
‘얼마 전에 라이브 방송한 게 인터넷 기사로 나가며 잠시 주목받았던 영향일까?’
아무튼 기분이 나쁘진 않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는 클라이언트였던 콘진원에서 나를 강사로 찾았다는 것도 기분이 좋고, 콘진원하면 이 바닥에선 나름 유명한 곳이니까 말이다.
세미나 날짜는 2달 뒤니까 아직 여유가 있다.
발표 준비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
나는 세미나 요청에 응한다는 답신을 보내고는 노트북을 닫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연이가 선종이 형의 지시를 받으며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한 번만 더 촬영할게.”
“네에!”
하연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같은 장면을 네 번째 반복해서 찍고 있다.
애가 워낙에 연기도 잘하고, 집중력이 좋으니까 선종이 형도 하연이가 올해 4살이란 걸 잊은 모양이다.
나는 카메라 설정을 만지고 있는 선종이 형의 뒤에 가서는 조용히 속삭였다.
“형. 하연이 4살인 거 알고 계시죠?”
“알아 인마. 지금 촬영 중이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해.”
선종이 형도 완전 초집중 모드다.
원래 이렇게 퉁명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서 멀어지다가 근처에 있던 조명감독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이전에 몇 번 함께 촬영한 적이 있어서 얼굴을 아는 사이.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나도 안다.
선종이 형은 동네 바보 형처럼 생겼지만, 촬영에 임할 때는 누구보다도 진지했으니까.
나는 다시 뒤로 빠져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남역 인근의 한 스튜디오.
임대료가 저렴해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넓고 깔끔하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많고, 방마다 컨셉이 조금씩 달라서 굳이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지 않고 여기서만 찍어도 딱 좋을 것 같다.
‘다음에 촬영할 일 있으면 여기 오면 되겠구나.’
비디오쉐어를 나온 이후 촬영보다는 주로 편집 위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요즘은 어떤 스튜디오가 인기가 있는지 조금 감이 떨어진 것 같다.
앞으로는 틈틈이 좋은 곳이 있으면 메모를 해둬야겠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눈으로 둘러보는 사이.
선종이 형의 호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완벽해!”
뮤비 촬영이 모두 마무리된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촬영장소로 이동한 다음 하연이에게 물을 건넸다.
“하연아. 수고했다. 목마르지? 물 좀 마시렴.”
“우웅!”
하연이는 지쳤다기보다는 살짝 흥분한 느낌이다.
‘뮤비 찍는 게 재미있었나 보지?’
하여간 타고난 뮤즈다.
노래와 관련된 일이라면 몸속에서 마구 에너지가 솟는 게 틀림없다.
하연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이 온통 땀으로 도배된 선종이 형이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최고였다, 하연아. 넌 정말 최고야.”
“고맙스읍니다아!”
“김진형. 넌 정말 복 받은 새끼다.”
“아니 갑자기 왜요?”
“크으. 어떻게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지? 수 년간 연습했다는 아이돌도 이렇진 않아! 지시하면 지시한 대로 완벽하게 수행하는데. 으으. 안 되겠다!”
선종이 형이 안 되겠다는 말과 함께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
“형?”
“앞으로 하연이 뮤비는 모두 내가 찍는다! 알겠지?”
난 또 뭐라고.
선종이 형이 저리 좋아하는 걸 보면 영상이 잘 찍혔나 보다.
하연이도 만족한 것 같고.
“뮤비 완성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대략 1주일? 아니다. 이건 내가 3일 만에 완성해볼게.”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하세요.”
“아냐. 진심 내 모든 혼을 가져다 바친 촬영이었어. 당분간 외주 작업 끊고 여기에만 올인한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당근!”
일반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완성하는데 짧으면 1주일. 길면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해외 로케이션이 아닌 이상 촬영은 며칠이면 충분한데, 기획과 후반 편집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후반 편집에 많은 공을 쏟을수록 영상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선종이 형은 내가 인정하는 영상 제작의 고수니까 기다리면 정말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우리는 촬영한다고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모두 인사한 다음 스튜디오를 나왔다.
“이제 드디어 먹으러 가는 건가?”
“그래야지. 내가 오늘은 고기 쏜다!”
“푸훗. 뭐래. 무료 상품권으로 가는 거면서.”
유주가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여기 왜 있냐고?
유주가 하연이 헤어메이크업과 의상을 담당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조금 전 스튜디오에서 하연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도 계속해서 하연이의 옆에서 그녀를 돌봐주고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선종이 형이 공짜로 맡아준 것처럼 이런 것도 주변 지인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유주가 흔쾌히 도움을 주었고, 나는 답례로 밥을 사기로 했다.
우리는 강남역 인근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
연말에 나랑 하연이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레스토랑과 같은 체인점.
나는 직원에게 업체에서 받은 무료 시식권을 보여주었다.
“이거 여기서 쓸 수 있는 거죠?”
“아 네네. 맞아요. 그런데 혹시. 이번 크리스마스 노래 대회에서 1등 하신 분 아니신가요?”
오. 우릴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짧게 답했다.
“네.”
“어쩜! 정말요? 노래 부르신 영상 봤어요! 정말 잘하시던데요?”
그녀는 나와 하연이를 번갈아 보더니 선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치 유명한 연예인을 실물영접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더니 상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종이와 펜을 꺼내고는 나와 하연이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어색한 얼굴로 종이에 사인했고, 오히려 하연이가 의연한 태도로 펜을 들었다.
아직 손에 힘이 없어서 조금 삐뚤삐뚤한 느낌이지만 분명히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엇! 하연아! 너 이거?”
내 말에 하연이는 깜짝 놀랐던지 도중에 펜을 손에서 떨어뜨린다.
유주가 하연이를 껴안고서는 나를 노려본다.
“야! 김진형! 애 놀래게 갑자기 왜 그렇게 크게 소리를 쳐!”
“아, 미안. 이거 분명..”
이하연이 초기에 했던 사인과 유사한데.
이하연에게는 총 3개의 사인이 있었다.
사인이라는 건 일종의 증명. 그러니까 자기 동일성을 위한 표시이다.
그러니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사인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 터.
하지만 이하연은 일찍 데뷔했던 영향으로 초기에 했던 사인과 후기에 했던 사인이 달랐다.
초기에는 조금 장난기가 가득한 서명이었던 반면, 중기에는 뭔가 현란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명에게 사인을 하기에 힘들었던지 후기에는 아주 간결하게 자기 이름을 휘갈겨 쓰는 형태로 변모했다.
그리고 지금 하연이가 한 저 모양은 이하연이 초기에 했던 사인과 아주 유사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직원은 서둘러 나와 하연이의 사인을 가지고서는 자리를 떴고, 나는 하연이에게 사과했다.
“하연아 미안. 괜찮아?”
“으웅.”
말을 저렇게 하지만 하연이가 나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유주의 품에 안긴다.
크윽.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데.
다행히 음식을 먹으면서 하연이의 표정은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다.
확실히 우리 하연이는 노래 부르고 춤출 때랑 맛난 걸 먹을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하는 것 같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먹으며 오랜만의 만찬을 즐겼다.
“아빠아. 나아 졸려어요. 아함.”
식사를 마친 하연이가 하품하더니 눈을 감는다.
오늘 뮤비를 찍는다고 무리한 모양이다.
나는 하연이를 둘러업고는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유주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주야. 오늘 쉬는 날인데 불러서 미안.”
“뭘.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줘. 그리고 음식 맛있게 잘 먹었어.”
“별말씀을.”
“그런데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아 그거.”
나는 슬쩍 내 등에 안겨있는 하연이를 돌아보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연이 사인이 이하연 초기 사인하고 비슷해서.”
“이하연 초기 사인? 사인이면 사인이지 초기 사인은 또 뭐야?”
“이하연에게는 사인이 총 3개 있거든.”
“뭐? 사인이 3개나 있다고? 왜? 아니 그것보다 너는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거야 내가 이하연의 찐팬이니까 말이지.
유주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낮은 한숨과 함께 주의를 주었다.
“다 좋은데, 갑자기 크게 소리 치진 마. 애들은 그런 거에 깜짝깜짝 놀라니까.”
“응. 알았어. 반성하고 있다.”
“그래. 하연이 감기 걸리겠다. 이쯤에서 헤어지자.”
“그래. 오늘 고마웠고, 푹 쉬어!”
신림역 사거리에서 유주와 헤어진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근처에 저런 친구가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만약 오늘 유주가 없었더라면.
헤어고 메이크업이고 의상이고 전부 다 엉망이었을 테니까.
‘하연이도 여자니까 조금 더 크면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할 텐데. 그땐 남자인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걸 떠나서 아이한테는 엄마가 있는 게 정서적으로도 좋을 것이다.
‘후우.’
됐다. 일단 하연이가 굶지 않도록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피스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로부터 정확히 삼 일 뒤.
선종이 형이 우리 집을 찾았다.
뮤직비디오를 드디어 완성했다면서 말이다.
“크하하하! 사흘 밤낮을 새고 만든 작품이다!”
메일로 보내줘도 될 걸 굳이 직접 보여주고 싶단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선종이 형이 만든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따 따따따 따 따따닷 따!”
둠칫둠칫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검은색 화면 위로 별똥별들이 쏟아진다.
그중 가장 밝은 별이 서서히 클로즈업되더니 하연이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나왔다.
아니 우리 하연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어?
“와우!”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거 진짜 제작비 0원으로 만든 작품이 맞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