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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33화 (33/135)

내 딸은 국힙원탑 33화

“아니 하연이 아버님 아니십니까?”

“어라? 내꿈은한신사장님?”

그 말을 듣고는 그의 옆에 선 젊은 여성이 웃음을 터트린다.

“푸훗! 한신 사장이요?”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만나기로 한 분이 계셔서요.”

“그렇군요. 아무튼 반갑네요.”

“하하. 그러게요. 하연이는 잘 지내죠?”

“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그의 옆에 있는 여성.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상대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165cm 정도 되는 키에 만화 주인공처럼 커다란 눈망울.

무엇보다 핑크색으로 물들인 긴 생머리가 독특하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 쳐다보다가 동시에 소리쳤다.

“앗! 그때?”

“썰매장 그분?”

그때는 털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녀가 확실하다.

내꿈은한신사장님이 당황한 얼굴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하연이 아버님이 아가씨를 구해주신 당사자라고요?”

“아가씨요?”

“하연이 아버님이요?”

나와 그녀가 동시에 그에게 묻자 그는 뭐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 앉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약속이요?”

구해준 여성과 만나기로 한 건 사실인데 내꿈은한신사장님은 왜 같이 온 걸까?

“하연이 아버님. 이쪽은 저희 아가씨. 그러니까 이창돌 한신 그룹 회장님의 막내 따님이십니다.”

“반가워요. 이세미라고 해요.”

곤란한 얼굴을 한 내꿈은한신사장님과는 반대로 이세미는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나저나 내꿈은한신사장님은 정말로 한신 그룹에 다니고 있었구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저 남자의 꿈은 한신 그룹 사장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가씨. 이쪽은 하연이 아버님. 아가씨를 썰매장에서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되시겠네요.”

“음. 그런데 왜 자꾸 하연이 아버님이라고 하는 거죠? 엄청 젊어 보이시는데 결혼하신 건가요?”

내꿈은한신사장님이 곤란한 얼굴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쉿. 아가씨. 그런 거 함부로 물어보는 거 아닙니다.”

“피이. 차장님은 맨날 다 아니라고만 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궁금하면 물어보는 거지.”

내꿈은한신사장님이 난처해하시길래 내가 대신 답했다.

“결혼한 건 아닌데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네?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죠? 설마 그 여자 연예인처럼 비혼 출산? 아니다. 남자니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럼 대리모?”

푸훕. 대리모는 무슨.

하마터면 마시던 차를 입 밖으로 뿜을 뻔했다.

이 여성분은 무언가 정신세계가 4차원인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런 표현을 쓸 줄이야.

‘재벌가 자식이라서 오냐오냐 자랐던 걸까?’

그렇지만 상대를 놀리거나 업신여기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약간 발음이 어눌한 게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내꿈은한신사장님도 한마디를 덧붙이며 내 생각이 맞았음을 지원했다.

“아가씨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한국식 문화나 표현에 대해 잘 모르시거든요. 부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나는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핑크색 머리 때문에 톡톡 튄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예쁜 얼굴이다.

재벌가 자녀면 그룹에서 심하게 단속할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밝은 핑크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게 신기하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똑똑히 말했다.

“저는 미혼부입니다.”

“미혼부요? 정 차장님. 미혼부가 뭐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물었고,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뭐라고 길게 속삭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미친 리액션을 보였다.

“홀리 쉣!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더니 리액션도 장난이 아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내꿈은한신사장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아가씨. 조금만 더 목소리를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긴 다른 사람들도 있는 공간입니다.”

“아 네네. 쉬. 쉿!”

스스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쉿 소리를 내다니.

이 여자. 재미있는 사람이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녀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만나 뵙고 고맙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거든요!”

“뭘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잖아요.”

그러자 내꿈은한신사장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즘은 다들 남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강하니까요. 정말로 하연이 아버님 덕분에 아가씨가 큰일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더니 공손히 내게 허리를 숙였다.

나 역시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이게 뭐라고요.”

“아가씨의 은인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의 은인이시기도 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재벌가 자녀를 곁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가 평범하지 않은 직장인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를 자리에 앉히고는 나 역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거예요. 감사 인사라면 이제 충분히 받은 것 같습니다.”

“혹시 뭐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보세요. 그룹 차원에서 가능한 선에서는 충분히 지원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건 괜찮습니다. 혹시 더 하실 이야기가 없다면 이만 일어나봐도 될까요? 하연이 하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앗! 그러셨군요. 그럼 당연히 들어가 보셔야죠. 아무렴요.”

나는 둘에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내가 구해준 사람이 재벌가 자녀였다니.

이런 건 드라마 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세상 참 좁다.

#

김진형이 떠난 카페.

이세미는 혼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생명의 은인에게 못할 소리를 했네요. 대리모가 뭐람.”

“해외에서 오래 살다 한국으로 왔다고 했으니 그도 이해할 겁니다.”

“제가 또 그분에게 실수한 게 있을까요?”

아가씨의 존재 자체가 실수죠.

정성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 차장님.”

“네, 아가씨.”

“저분을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거예요?”

이세미의 물음에 정성수는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무슨 비밀은 아니었으니까.

“김하연이라고 올해 4살이 된 유튜버가 있습니다.”

“올해 4살인데 유튜버라고요?”

“네. 아가씨도 좋아하시는 이하연을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죠.”

“이하연을요?”

이세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하연이라니.

힘들고 외로웠던 미국 유학 생활을 견디게 해준 큰 힘이지 않나.

만약 이하연과 그녀의 노래가 없었다면 자신은 마약이나 다른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주변에 그런 사례가 꽤 많고.’

그녀의 존재가 자신의 유학 생활에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식을 듣고는 수업 시간에 엉엉 울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이세미는 김하연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럼 김하연의 아빠가 김진형 씨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김진형 씨도 하연아빠 TV라고 별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둘 다 유튜버였구나.”

“네. 두 채널 모두 콘텐츠가 괜찮아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제법 많습니다.”

이세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물었다.

“그런데 정 차장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는 티 없이 웃으며 답했다.

“미래전략실에 있으려면 연예나 각종 미디어에 대한 소식까지 빠삭해야 하니까요.”

“그런가요?”

“물론입니다.”

그럴 리가.

아무리 미래전략실 소속이라고 해도 굵직굵직한 헤드라인 뉴스에 대해서나 관심이 많지, 사소한 연예 쪽 이슈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묵혀두었던 연예인 스캔들을 터트려서 자사의 실수를 가릴 때가 아니고선 말이다.

이세미는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더니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끝내는 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네?”

“뭐든 보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죽다 살았는데.”

죽다 살긴 무슨.

정성수는 속마음과는 달리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는 걸 억지로 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정 차장님. 최근에 저희 자회사에서 밀고 있는 안마의자 있잖아요?”

“더 플렉스 말인가요?”

“네! 그걸 선물로 드리는 건 어떨까요?”

안마의자라. 나쁘지 않다.

재벌가가 주는 선물치고는 아주 고가의 물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싼 싸구려도 아니다.

내 돈 주고 사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선물로 받으면 감사한 그런 물건.

“그런데 갑자기 안마의자는 왜요?”

“저랑 부딪히면서 뒤로 넘어지셨거든요. 그때 허리라거나 다른 곳을 다치셨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건강검진을 받게 해드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요?”

“아! 그것도 좋네요. 그럼 건강검진이랑 안마의자랑 세트로 드리면 되겠네요!”

허허. 이래서 재벌가 자식들이란.

건강검진도 기초검진만 하면 40~60만 원대고, 검사 항목을 추가하면 400만 원이 넘어가기도 한다.

안마의자도 저가형이나 100만 원대지 비싼 건 천만 원을 훌쩍 넘어가고.

하지만 정성수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는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건강검진이랑 안마의자로 해서 제가 한번 잘 구슬려 보겠습니다.”

“네, 차장님. 잘 부탁드릴게요. 그리고요.”

“그리고?”

“그 김하연이라는 친구의 유튜브 채널과 진형 씨 유튜브 채널 주소도 좀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왜 이렇게 이세미가 김진형과 김하연에게 관심을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철부지가 부리는 잠깐의 호기심인가? 그것도 아니면 조금 더 깊은 감정?’

그녀의 속내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잘만 옆에서 균형을 맞춰준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김하연과 김진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성수는 이세미를 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아가씨.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귀여운 하연이를 위해서 말입니다.

#

드디어 선종이 형이 만든 뮤직비디오 스토리보드가 도착했다.

컨셉이 가족이니만큼 따뜻하고 정감 어린 방향으로 기획했단다.

그런데 이거 하연이의 등장 비율이 너무 높다.

“거의 80% 이상 등장하는데?”

하연이가 지금까지 놀라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긴 했지만, 과연 이걸 전부 소화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히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해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하연의 ‘피에로’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그걸 한참 보고 있는데 옆에서 하연이가 묻는다.

“아빠아! 지그음 뭐 봐요오?”

“응. 피에로라는 곡이 있거든. 그거 뮤비 살펴보고 있어.”

“피에로오?”

알다시피 피에로는 광대다.

하지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광대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이하연은 해당 곡을 통해 자신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녀는 뮤직비디오 곳곳에 여러 가지 은유와 상징을 숨겨두었는데, 이걸 본 팬들 사이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설은 이하연이 자기를 멋대로 재단하려는 대중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는 것이 하나.

두 번째는 자신의 아비에게 얽매여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것이 또 하나였다.

그밖에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자신도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인간이란 것을 표현한 것이다 등 여러 가지 설이 오갔다.

뭐가 됐든 해당 뮤직비디오는 많은 논란을 낳았고, 노래 못지않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하연이의 뮤직비디오도 단순히 하연이가 많이 등장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숨은 상징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게 보다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선종이 형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떠오른 생각을 전했다.

선종이 형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야!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그렇죠? 형이 준 스토리보드도 좋긴 한데, 하연이가 출연하는 씬이 너무 많아서 애한테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해서요.”

“하긴. 네 말대로 오브젝트를 통한 상징이나 은유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하연이가 출연하는 장면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겠지.”

“네. 거기에 저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추측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하하. 알겠다, 알겠어. 스토리보드를 새로 짜야겠네.”

“죄송해요, 형. 대신 저도 하연이랑 의논해보고 쓸 만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바로 전해드릴게요.”

“오케이. 그럼 부탁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하연이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나저나 하연이가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연아, 왜 그래?

아빠 얼굴에 뭐 묻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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