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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31화 (31/135)

내 딸은 국힙원탑 31화

“하연이는 요즘 어떤가요?”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저 질문을 던졌다.

요즘 어떤가라.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고, 영상도 열심히 찍고.

그러고 보니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순해진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간혹 시니컬하달까 시크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요즘은 딱 그 나이대에 맞는 귀엽고 깜찍한 어린이랄까?

물론 여전히 의젓하고 가끔은 얘가 정말 4살 맞아?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자기 자식은 다 그렇게 느끼는 법이겠지.

“잘 자라주고 있어요. 민규는 어떤가요?”

“민규도 뭐.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어요.”

“맞다. PKT 엔터 쪽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내가 PKT 엔터에 관해 묻자 그녀가 반색하며 답했다.

“민규는 PKT 엔터랑 계약하고 지금 연습생으로 지내고 있어요.”

“그랬군요. 그럼 하원하고 나서 거기 가는 건가요?”

“네. 점심 먹고 2시쯤 하원에서 PKT 엔터에서 연습하고 5시쯤 집에 오죠.”

“그걸 어머님이 직접 데려다주시는 거예요?”

“그래야죠. 어쩌겠어요. 일반적인 학원은 아니니까요.”

쯧. 송규형인가 하는 사람 분명 등·하원을 포함해서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관리해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만 번지르르했군.’

주문한 차가 나왔고, 나는 그녀에게 오늘 보자고 한 연유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저랑은 무슨 일로?”

“아. 민규가 매일 하연이 이야기를 해서요. 혹시 하연이. 저희 집에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초대요?”

“네. 같은 반은 아니고 성별도 다르지만. 민규가 하연이를 무척 예뻐하는 것 같아요. 하연이도 민규를 잘 따른다고 들었어요.”

하연이가 민규를?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하연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유주가 선생님으로 있으니까 유주만 믿고 하연이를 맡긴 것 같다.

‘하연이도 사회생활 하려면 친구네 집에 놀러 갈 필요가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하연이한테 물어보고 하연이도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할게요.”

“와! 민규가 무척 좋아할 거예요. 어제도 하연이 하연이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그런데 민규는 일찍 하원 하잖아요? 하연이가 집에 간다고 하면 몇 시쯤에 가야 하나요?”

“아 그건 제가 민규 데리고 다시 어린이집에 와서 하연이를 데려가면 될 것 같아요. 아마 4시 반 정도이지 않을까 싶네요.”

“4시 반이면. 제가 6시 정도에 댁에 가면 될까요?”

“아뇨. 저녁까지 먹이면 7시 정도에 오시는 게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오늘 하연이 하원 시키면서 한번 물어볼게요.”

“고맙습니다, 하연이 아버님.”

우리는 자리를 옮겨 다시 어린이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를 맞이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정반대다.

하연이는 내가 일찍 왔다며 나를 반겼고, 민규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엄마. 나 거기 안 가면 안 돼요? 네?”

“얘가 무슨 소리람.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런 소리를 해.”

“나 그냥 어린이집에서 놀래요. 네? 놀게 해주세요~”

잘은 모르겠지만 민규는 연예 기획사에서 연습을 받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민규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제넘은 참견인 것 같습니다만 오늘 하루 정도는 그냥 쉬게 해주는 게 어떠세요? 아이가 너무 가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어휴. 아니에요.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다음에 또 그럴 가능성이 높잖아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아이 상대로 루틴이라니.

그거. 어른도 하기 힘든 일잖아.

나는 조금 억지를 부려보기로 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요?”

“하연이가 민규네 집에 가기 전에 민규가 먼저 저희 집에 놀러 오는 거예요. 마침 저도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어서 지금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 나 하연이 집에 갈래요! 엄마아!!”

내 얘기를 들은 민규가 온몸을 펄쩍 뛰며 필사적으로 나온다.

“박민규 너어.”

민규 어머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했다.

“휴. 어쩔 수 없네요. 박민규. 너 오늘 딱 하루만이다. 알았지?”

“네에!!”

민규가 어린이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외친다.

얘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뭔가 좀 재수 없고 오만한 녀석이었던 것 같은데 어지간히도 연습하러 가기 싫었나 보다.

그런데 내 정신 좀 봐라.

민규를 구하겠다는 일념 아래 정작 하연이에겐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하연이에게 물었다.

“하연아. 민규 오빠랑 집에 같이 가도 괜찮을까?”

“뭐어. 그래에요.”

하연이는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다는 듯 시큰둥하게 답했다.

나는 하연이와 민규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떠나 집으로 이동했다.

민규가 우리 집을 보더니 감탄사를 날린다.

“우와. 집 좋다아!”

“그래? 이사한 지 얼마 안 됐거든. 편히 쉬렴.”

“네!”

그동안 녀석을 괜히 내 머릿속에서 악마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고작 6살. 아니다. 새해가 지났으니 7살이겠구나.

7살인 꼬맹이를 하연이를 가로채려는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녀석들 주려고 부엌에서 간식을 준비하는 사이.

갑자기 둘이 방에 들어가더니 방문을 쿵 하고 닫는다.

나는 깜짝 놀라서는 서둘러 하연이 방 쪽으로 이동했다.

방문을 활짝 열고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애들아. 예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그랬어! 방에서 놀 때는 꼭 문을 열고 놀도록. 알았지?”

“네에!”

“네!”

후우. 역시 저 녀석은 안 되겠다.

불안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는 하연이 방에 간식을 가져다준 다음 민규에게 넌지시 물었다.

“민규야.”

“네.”

“너는 왜 연기를 하려는 거야?”

그러자 민규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내게 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니까요.”

“뭐?”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쿠아리움에서 하연이가 내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었구나.

그때 만약 내가 하연이를 위해서 영상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생계를 책임진 애 아빠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수동적인 대답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해서 연기를 한다니.

이건 정말 충격이다.

나는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민규 너는 연기가 싫어?”

“아뇨. 그건 아닌데 좀 귀찮아요.”

“귀찮다고?”

“네. 더 놀고 싶은데 계속 연습만 해야 하잖아요. 선생님들한테 혼나는 것도 싫고.”

“선생님들이 많이 뭐라 하시니?”

“예전에 어떤 선생님은 머리를 때린 적도 있었어요.”

“뭐? 머리를?”

아니 어떻게 아이 머리를 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이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엄마한테는 이야기해 드렸어?”

“네. 그런데 엄마가 그 정도는 참으래요.”

“아니 왜?”

“힘들수록 더 성숙한다던가? 아 이제 됐어요. 저 간식 먹어도 되죠?”

“으응. 많이 먹으렴.”

민규가 과자봉지를 뜯더니 하연이에게 먼저 건네준 다음 자기 것을 뜯는다.

이런 걸 보면 아주 되바라진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극성인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까?’

그렇다고 남의 집 사정도 모르는데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고.

나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오물오물 과자를 먹고 있는 하연이를 바라보고 물었다.

“하연아. 우리 하연이는 꿈이 가수지?”

“네에!”

“그럼 하연이는 왜 가수가 되고 싶은 거야?”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하연이는 마치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것처럼 지체없이 답했다.

“하여니는 노래 부으르는 게에 조아요.”

“그래?”

“응! 내 노래를 듣고오 다르은 사라미 쪼아해주는 것도오 조코.”

“그렇구나. 노래 부르는 것도 좋고, 그걸 들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도 좋다. 이거지?”

“웅!”

하연이는 해맑게 웃더니 다시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 오물오물

입가에 잔뜩 묻은 초코 가루가 흉하기는커녕 귀엽게만 보인다.

그런데 하연이의 말에 민규는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녀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는 것 같더니 녀석이 하연이를 천천히 돌아보고선 입을 열었다.

“김하연.”

“응?”

“아빠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니가 좋아서 하는 거야?”

“우웅!”

“정말로?”

“으흥.”

“거짓이 아니라?”

“웅웅.”

하연이가 과자가 잔뜩 들어간 입을 오물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민규는 뭔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뗐다.

“아저씨!”

“왜? 목 마르니?”

“아뇨! 우리 엄마 좀 불러주세요. 당장이요!”

“뭐? 여기 온 지 아직 20분도 안 됐는데? 벌써 가려고?”

“네! 저 연습하러 가야겠어요! 빨리요!”

녀석이 하연이의 대답에 뭘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게 좋은 영향이라는 건 분명했다.

저 눈을 봐라.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게 반짝이는 보석 같지 않나.

#

하연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외부 활동을 그리 많이 하는 곳은 아니었다.

끽해봤자 동네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

그런데 거기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제법 많았던 모양이다.

괜찮으니까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조금 먼 곳도 다녀와달라는 민원이 속출했다.

결국 어린이집 원장은 경기도에 있는 한 스키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겠다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다만 사람이 많은 외부에선 아이들의 통솔이 힘들 수도 있으니 여유가 되는 부모들에게는 따라와달라는 말을 함께 전했다.

그런고로 나는 하연이와 함께 스키장을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함께 가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학부모들은 따로 가는 일정.

자차가 없는 관계로 이른 아침 스키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걷는데 오늘따라 유독 춥다.

칼바람에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다.

‘이번에 영상 대금 받으면 경차라도 한 대 뽑을까. 대중교통 타고 돌아다니기 힘드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옆에서 웬 외제 차가 빵빵거린다.

- 빠앙!

에잇. 도대체 뭔데 옆에서 빵빵거리는 거냐. 외제 차라고 유세 떠는 거야?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나는 인상을 구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낯익은 인물이 보인다.

민규 어머니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어라? 민규 어머니?”

“하연이 아버님. 혹시 스키장 가는 버스 타러 가는 길이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잘됐네요! 저는 지금 자차로 가는 길이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버스 정류장과 민규 엄마의 외제 차를 번갈아보았다가 씩 웃음을 보였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

민규 엄마의 차는 최고급 외제 차였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

그것도 뽑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 차 냄새가 물씬 났다.

나는 차 안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슬쩍 물었다.

“차가 좋네요?”

“최근에 새로 뽑았어요. 이전에도 같은 브랜드 차를 타고 다니긴 했는데 그건 세단이라 짐 실을 곳이 적어서요. 이참에 SUV로 바꿨죠.”

“아 네.”

민규네 부자구나.

누구는 경차를 하나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스케일이 다르다.

멀뚱히 앞을 보고 있는데 민규 엄마가 이야기를 걸었다.

“얼마 전에는 감사해요. 안 그래도 민규가 하연이 집에도 가보고 싶어 했거든요.”

“뭘요. 서로 집에 방문하면서 놀고 그러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다음번엔 꼭 하연이 데리고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맛난 거 대접해드릴게요.”

“네. 그럴게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어떤?”

민규 엄마가 운전하다 말고 내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물었다.

“뭘 어떻게 하신 거예요?”

“네? 뭐가요?”

“그날 하연이 집에 다녀온 이후 우리 민규가 달라졌거든요.”

“어떻게요?”

“뭐랄까. 더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아요. 그날도 그렇게나 가기 싫어했는데 제 발로 가겠다고 절 일찍 불렀잖아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별거 없었어요. 초코 과자 먹더니 갑자기 그러던데요?”

“초코 과자 먹더니 갑자기요?”

민규 엄마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쯤 갔을까?

그녀는 뜬금없이 내 나이를 물었다.

“그런데 하연이 아버님은 몇 살이세요? 되게 어려 보이시는 것 같은데.”

아니 민규 어머니.

갑자기 호구조사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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