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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9화 (29/135)

내 딸은 국힙원탑 29화

저러다 넘어지겠는걸.

뷔페 안에서 종횡무진 뛰어다니고 있는 남자아이.

나는 음식 뜨는 걸 잠시 멈추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꼬마를 바라보았다.

하연이를 키운 뒤부터 이상하게 하연이 또래의 아이에게 더 눈길이 갔다.

‘이게 부모 마음이라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니 창가 쪽에 꼬마의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아이는 내버려 둔 채 자기들끼리 이야기 삼매경.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지만 저렇게 애를 방치해도 되나 싶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 음식을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고르고 하연이가 고르고.

비어있던 접시에 이제 꽤 많은 음식이 채워지며 식욕을 자극한다.

그때였다.

“아하하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조금 전 그 꼬마가 괴성을 지르며 한쪽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하필 그쪽에는 뜨거운 커피를 내리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여성은 등을 돌리고 있어 아이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제 커피는 거의 내려지기 직전.

여성이 커피잔을 들고 움직이면 아이와 부딪힐 게 틀림 없다.

“하연아 잠깐만!”

나는 하연이와 음식이 담긴 접시를 아래로 내려놓고는 여성의 뒤로 달려가 아이를 막아섰다.

“어멋! 이게 뭐야!”

- 쨍그랑

도자기로 된 커피잔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내가 아이를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꼬마의 돌진에 놀란 여성이 그만 손에서 컵을 놓치고 만 것이다.

조금 전까지 아이가 있던 바닥에는 뜨거운 커피가 흥건하다.

바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게 만약 아이를 막지 않았다면 온몸에 화상을 입었을 터.

여성 역시 뒤로 넘어져 다쳤을지 모르고.

주변이 시끄러워지면서 뷔페 안 시선들이 이쪽으로 쏠린다.

그제야 아이의 부모가 달려왔다.

“지환아! 어디 안 다쳤어?”

나는 아이를 아래로 내려주었다.

“으아아앙!”

아이는 울면서 부모의 품에 안겼다.

아이의 아빠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그쪽이 아니었으면 아이가 크게 다칠 뻔했네요.”

“다행입니다. 제가 바로 옆에 있어서 도울 수 있었네요.”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자신들의 테이블로 돌아간다.

커피를 쏟은 여성도 내게 고마움을 표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하연이는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소를 보인다.

“하연아. 우리도 이제 먹어볼까?”

“네에에!”

드디어 둘만의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둘이서 새해 첫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꾸벅 머리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손님.”

“네?”

“조금 전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을 사전에 막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부모님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며 아이가 뛰어다니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봉투를 한 장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손님이 구해주신 아이의 부모님이 제게 주고 가신 물건입니다. 꼭 받아주셨으면 한다더군요.”

“아닙니다. 이런 건 받을 수 없어요. 제가 무슨 큰일을 한 것도 아니고요.”

“아뇨. 큰일을 하셨죠. 아이도 구하고 여성분도 구한 거 아닙니까. 현금은 아니라고 하니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금이 아니란 말에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았다.

“근처에 수족관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아쿠아리움인데, 자녀분과 함께 가시면 아이가 좋아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거기 티켓입니다.”

남자는 하연이에게 손을 흔들며 아빠 미소를 보였다.

아쿠아리움이라.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태어나서 아쿠아리움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티켓값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굳이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4살인 하연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티켓을 받았다.

새해 첫날부터 좋은 일을 해서 복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

원래 계획은 비자림이라는 곳에 들렀다가 오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빠인 김진형은 공짜 티켓도 생겼겠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면서 비자림 대신 아쿠아리움으로 이동했다.

김진형은 마치 자기가 아이라도 된 것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연신 소리를 질러댄다.

“오오! 하연아! 저거 봤어? 물고기 엄청 크네!”

귀여운 사람.

다 큰 어른이 고작 물고기 몇 마리 좀 보았다고 저렇게나 들뜰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그가 그만큼 순수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촬영하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아서 나는 가방의 어깨끈에 달린 고프로를 작동시켰다.

녹화 중임을 알리는 빨간색 불빛이 잘 들어온다.

수중 터널을 지나는데 옆으로 거대한 상어 한 마리가 지나간다.

김진형이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렀다.

“하연아아!! 상어다아! 상어가 있어어!”

어휴.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소리 좀 낮추지.

그래도 그의 순수한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나는 근처에 있던 젊은 커플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언니이이.”

“응? 나?”

“네에!”

“우와 귀여워라. 우리 친구 몇 살?”

“네 짤!”

“와아아. 네 살인데 말도 참 잘하는구나? 그래.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아빠야랑 나아랑 사지인 조옴.”

“아! 사진 찍고 싶다고? 알았어. 그런데 카메라 있니?”

내가 김진형을 가리키자 그녀는 싱긋 웃고는 그에게 다가간다.

“핸드폰 좀 주실래요? 아이가 사진 찍고 싶은가 봐요.”

“핸드폰이요? 아. 네넵. 여기 있습니다.”

상어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건넨다.

“여기 보시고 활짝 웃어 주세요! 네에. 좋아요. 지금 찍겠습니다. 하나둘 셋!”

- 찰칵!

그녀는 가로로도 찍고 세로로도 찍는 등 최소 1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센스가 좋은 여자다.

그녀는 핸드폰을 김진형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호호. 따님이 너무 귀엽네요. 말도 잘하고요. 사진 좀 많이 찍어주세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앗.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보내세요.”

커플이 떠났고 우리도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파아란 물로 가득한 공간을 걸으니 묘한 기시감이 온몸을 감싼다.

분명 이 아이의 몸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아무 빛도 없는 심해에 홀로 떠다니는 것 같다가 점점 주변이 밝아지면서 눈 떠보니 이 몸이었지.’

지금도 자신이 정말로 환생을 한 게 맞나 싶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말투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더 어려진 것 같다.

‘한 살 더 먹었는데, 오히려 정신연령은 더 어려진 것 같아.’

주변에 다들 어린아이들만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에 동화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금 자기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걷는 이 남자와 함께라면.

적어도 이전 생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김하연은 더욱 힘을 주어 김진형의 손을 잡았다.

#

“하연아 기다렸지? 여기 딸기주스.”

“고마압습니다아!”

나는 수족관 내에 있는 카페에서 하연이가 좋아하는 딸기주스와 내가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돌아왔다.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대형 수조가 거대한 위용을 뽐냈다.

그 안에서 가지각색의 물고기들이 느긋하게 유영하고 있었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신비로워서 우리는 그 앞에서 꽤 오랜 시간 가만히 수조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무언가 자꾸 빨간 빛이 반짝인다.

하연이가 멘 가방의 어깨끈에 달린 고프로에서 나는 빛.

“하연아? 그거 언제 켰어?”

하연이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처음부터어요!”

와. 이런 재간둥이를 봤나.

인생 첫 아쿠아리움 탐방에 들떠서 촬영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하연이가 알아서 하고 있었구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런데 하연이가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수조를 바라보며 난데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빠아. 아빠는 영사앙이 왜에 죠아?”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영상이 왜 좋냐니.

하연아. 이거 너무 철학적인 질문 아니냐?

요 몇 년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다.

그러게. 나는 왜 영상을 좋아하는 걸까.

어느덧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영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다 그런 거고.

생각하자. 나는 왜 영상을 좋아하게 된 걸까.

그래. 맞아.

나는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데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만화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하다못해 블록을 쌓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다가 영상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고향 선배인 선종이 형이 만든 뮤직비디오를 본 뒤부터였다.

‘와! 저렇게 멋진 걸 선종이 형이 직접 만든 거야? 대박인데?’

이후 나는 영상디자인학과를 전공하게 되었고, 영상 편집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주변에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꽤 많았다.

감각이 좋다, 미적 센스가 있다, 관찰력이 좋다, 이해력이 좋다 등.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손이 빠르다는 말이었다.

손이 빠르다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좋은 칭찬이다.

남들이 1개를 만들 때 나는 2개, 3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것도 대충 만드는 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면서.

하지만 비디오쉐어에 다닐 때는 내가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기서는 그저 기계 속 부품처럼 쏟아지는 물량을 쳐내기 바빴으니까.

영상을 빨리 만든다거나 잘 만들었다고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그저 월급을 받고 영상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일개 노동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비디오쉐어를 비롯한 쟁쟁한 업체와 경쟁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수주를 따낸 것은 물론, 그걸 본 사람들도 큰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클라이언트도, 시청자들도.

우리 하연이도.

그뿐인가.

내가 관리하는 하연이 유튜브 채널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내 개인 채널도 취미라고 하기엔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악플은 보기 어려웠고, 내 영상을 좋아해 주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 나는 내가 만든 걸 보고 누군가가 좋아해 주고, 그걸로 행복해지길 원했던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연이의 질문에 답했다.

“아빠는 말이야. 아빠가 만든 영상을 보고 누군가가 행복해하고 즐거웠으면 하거든.”

“행보옥카고오 즐거워어?”

“응. 이런 말 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내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고 싶어.”

“아아..”

하연이는 내 말을 이해한 듯 못한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내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오!”

“너도? 그건 무슨 뜻이야?”

“하여니도오 내카아 부른 노래룰 듣고오 사람두리 쪼아하면 조켔어!”

“오호라. 하연이도 아빠도 둘 다 천생 크리에이터구나?”

“크리이에이터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뜻이야. 너는 노래. 아빤 영상. 이해하겠어?”

하연이가 조그마한 얼굴을 끄덕인다.

크리에이터는 나쁘게 말하면 관종인 사람들이다.

자기가 만든 작품을 다른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니까.

하지만 그 의도는 순수하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거니까.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오랫동안 서로를 의지한 채 수조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보면 물고기들도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짓거나 둘 이상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갑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수조가 지금은 웬일인지 조금 따뜻하달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

며칠 뒤.

상준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시간 날 때 전화하란다.

좋은 소식?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근 통화 목록에서 상준이를 골라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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