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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8화 (28/135)

내 딸은 국힙원탑 28화

선종이 형이 집에 왔다.

오자마자 집 좋다고 난리다.

“대체 여기 뭐 하는 곳이냐? 나도 여기로 이사 올까?”

형은 특히 복층 공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단순히 층고가 높아서 2층으로 분리된 곳이 아닌.

실제로 층이 분리된 별개의 공간이었으니까.

“밑에는 집이고 위에는 사무실이네. 완전 좋다아. 내가 꿈에 그리던 바로 그런 곳이야!”

“부동산에 한번 알아 볼까요?”

“그래 주면 땡큐고! 여기 2억이라고 그랬나?”

“네. 그런데 급매로 나온 것이라 원래는 이것보다 더 비쌀 거예요.”

“요즘 집값이 불안하잖아. 지켜보다 보면 떨어지지 않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집값을 누가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집구경을 끝낸 형은 아래로 내려와 아일랜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하연이를 보며 물었다.

“하연아. 내가 너 뮤직비디오를 찍어줄 거야. 혹시 우리 하연이 뮤직비디오 알아?”

“뮤지익 삐디오?”

“응. 지금도 하연이가 춤추고 노래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지만 이건 그 노래에 맞춰서 별도로 찍는 거거든. 배경도 다르고, 안무도 새로 짜야 해.”

하연이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형. 그냥 샘플을 보여줘 봐요.”

“아. 그럴까?”

그는 최근에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몇 편을 하연이에게 보여주었다.

하연이는 그제야 이해되었다는 듯 작은 머리를 끄덕인다.

“나아 뮤지익 비디오 조아요!”

“하하. 그렇지? 이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거든. 잘만 찍으면 사람들이 엄청 볼 거야.”

선종이 형의 말처럼 뮤직비디오는 음원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청각만으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와 함께 음악을 듣고 보는 것.

뮤직비디오의 등장으로 음악은 비로소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거 작곡은 되어있는 건 아는데, 가사도 있어? 미래 그룹 홍보 멘트로 뮤비 찍을 건 아니잖아?”

“하연이가 지금 만드는 중이에요.”

“엥? 하연이가? 아니다. 얘가 작곡도 했다고 그랬지.”

선종이 형은 피식 웃으며 하연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하연이가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뒤로 텀블링을 한다고 해도 믿을 기세다.

“그럼 하연아. 곡의 주제가 뭐니?”

“주제에?”

“그러니까 노래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따뜻하다, 차갑다. 이런 것도 좋고 아니면 이별, 만남, 사랑 뭐 이런 것도 좋고.”

하연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가조옥! 가조기에요오!”

“가족? 뭐 나쁘진 않네. 요즘은 다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분위기니까 오히려 가족이란 레트로한 감성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몰라.”

선종이 형은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연이 작사 완료되면 나한테 가사 보내. 내가 대략적인 컨셉 짜서 스토리보드 보내줄 테니까.”

“형. 고마워요. 그런데 우리 아직 중요한 이야기를 안 나눴네요.”

“중요한 이야기? 그게 뭐지?”

선종이 형이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비용이요, 비용. 공짜로 진행할 생각은 아닌 거죠?”

“뭐? 하하. 난 또 뭐라고. 당연히 공짜지.”

“네?”

“우리 귀여운 조카의 첫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거면 충분해. 비용은 됐다.”

“아니 하지만..”

“그만. 큰돈 들여서 만들 형편은 나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대신 유튜브에서 수익이 나오면 술이나 쏴. 난 그거면 돼.”

진짜 사람하고는.

나는 답례로 직접 만든 빵을 점심으로 내놓았다.

선종이 형은 이런 걸 어떻게 만드냐며 놀라워하더니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심지어 더 없냐고 아우성이다.

지금은 이런 것밖에 내줄 게 없지만, 언젠가 일이 잘 풀리면 꼭 보답해야지.

나는 하연이와 장난을 치는 선종이 형을 바라보며 굳게 다짐했다.

#

“너무 무리하진 말고. 지금 네 옆에 있는 건 3살짜리 아이란 사실. 절대 잊지 마.”

“그래. 새해 복 많이 받고.”

“응. 너도.”

김진형과 새해 인사를 나눈 신유주가 갑자기 나를 꽉 끌어안는다.

“하연아. 아빠랑 여행 잘 다녀와. 감기 조심하고.”

“네에, 선새엥님!”

“우리 하연이 다음에 볼 땐 4살이겠네?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선새앵님도요오!”

전생은 물론 이번 생에서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왜 그런 표현이 있지 않은가.

엄마처럼 따스한 품.

나는 신유주와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신유주와 포옹을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박민규가 다가오더니 묻는다.

“뭐야? 너 벌써 가는 거야?”

“웅.”

“어디?”

“제주도오.”

“제주도? 지금?”

박민규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한마디를 덧붙이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조심히 다녀와. 올 때 선물 하나 사 오고.”

흥. 내가 왜 네 선물을 사야 하는데.

꼬맹이 주제에 오빠 행세하기는.

김하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박민규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 부러운 표정으로 신유주에게 달라붙는다.

“우리 엄마는요오?”

“선생니임! 나도오 제주도오 갈래에!”

“나도오 지베 가고시포오!”

다들 난리다.

김진형이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자신을 데리러 온 까닭이다.

그는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어린이집에 왔다.

제주도에서 새해 일출을 보자고 말이다.

어제 잠들기 직전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인데, 가끔은 지루한 어린이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 가고 싶었던 참이라 흔쾌히 동의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했더니 새해를 제주도에서 맞이하러 온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꺄아! 귀여워! 지연아. 여기 좀 봐봐.”

“뭐? 어디 어디?”

“쟤 말이야. 엄청 귀엽지 않아? 너무 귀엽다. 깨물어 주고 싶어.”

“진짜네? 얘. 너 몇 살이니?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만 있어? 설마 둘이서 여행 가는 거야?”

나는 말없이 빙그레 웃어주었다.

악의는 없다지만 저런 사소한 말 한 마디가 김진형에게는 상처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는 바보처럼 거기에 또 대답을 한다.

“하하. 제가 미혼부라서요. 딸이랑 둘이서만 여행 가는 거예요.”

“앗! 죄, 죄송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닙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어휴. 바보 멍청이.

2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참았던 한마디를 꺼냈다.

“아빠아!”

“응?”

“나안 엄마 업써도 괜차나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나안 아빠만 이써도 조타고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는 그저 웃기만 한다.

남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데 뭐가 좋다는 걸까.

딱히 엄마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젊은 남자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들일 순 없지.

가만히 보면 신유주도 김진형에게 아직 미련이 있는 것 같고, 김진형도 신유주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다.

‘내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는 1시간 만에 김포를 떠나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라.

전생에 방송과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다.

하지만 매번 짙은 선팅을 한 스타크래프트밴에 탄 채 정신없이 이동했기에 주변의 풍경을 오랫동안 볼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하나가 자세히 보인다.

김진형이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했으니까.

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드넓은 하늘이 보인다.

높이 솟아오른 삼나무와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드넓은 평야.

뻥 뚫린 개방감이 상쾌하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제주, 제주 하는 거구나.’

비행기에 탄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뒤 김진형은 자신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눈앞에 봉긋하게 솟은 분화구가 보인다.

김진형이 분화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연아. 여긴 성산일출봉이라는 곳이야.”

“성사안?”

“응. 아빠도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인데 네가 좋아하는 이하연 뮤직비디오를 보면 여기서 촬영한 게 있거든. 우리 하연이 이제 뮤직비디오도 새로 찍어야 하고, 여기가 새해 일출 보기도 좋다고 해서 한번 와봤어. 어때 마음에 들어?”

그래서 굳이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온 건가?

김하연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껏 미소 지었다.

“네에! 엄처엉 쪼아요오!!”

#

다음 날 새벽.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뜬 나는 옆에서 곤히 자는 하연이를 깨웠다.

“하연아 일어나. 해 뜨는 거 볼 시간이야.”

“으으응. 아빠아. 나 쪼끔만 더어 자면 안 대요?”

“안돼. 늦으면 못 보거든.”

나는 대충 세수를 마치고 비몽사몽 잠에서 덜 깬 하연이를 둘러업은 채 숙소를 빠져나왔다.

한겨울 새벽의 찬 기운에 금세 정신이 또렷해진다.

하연이도 잠에서 깼는지 아래로 내려달란다.

우리는 두 손을 잡고 나란히 성산일출봉을 올랐다.

하연이가 참 대견스러운 게 힘들 법도 한데 안아달라는 말 한 마디 없다.

거친 입김을 토해내며 얼마나 올랐을까.

끝이 없이 펼쳐진 바다와 함께 정상이 보였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돋이 명소인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올라와 일출을 보려고 준비 중이었다.

오래지 않아 동쪽 수평선이 점점 밝아오더니 사람들이 크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와아! 새해다. 새해야!”

고요한 바다가 동그란 태양을 뱉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잠시 하연이를 잡던 손을 내려놓고는 양손을 맞대고 소원을 빌었다.

‘부디 올해는 우리 하연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하려는 일 모두 잘 풀리게 해주세요.’

손을 풀고 하연이를 내려다보았더니 하연이도 나를 따라 두 눈을 꾹 감고는 합장한 채 무언가 소원을 비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게 귀여워서 얼른 사진을 찍었다.

- 찰칵

그 소리에 하연이가 눈을 뜨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예쁜 우리 딸.

“하연아. 지금 소원 빈 거야?”

“웅.”

“무슨 소원인지 물어봐도 돼?”

“비미일!!”

풋. 이제 4살 됐다고 비밀 운운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서른 살이구나.

누가 입 밖으로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닌데 머릿속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연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빠아. 우리이 반드시 유투부로 잘해보아요오.”

그래. 그러자꾸나. 올 한 해는 우리 하연이가 유튜브로 대박 나는 그런 해가 되길 기도한다.

둘이서 말없이 해돋이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중년 부부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혹시 사진 찍어드릴까요?”

“아. 그럼 감사하죠.”

“딸이랑 둘이서 온 모양이에요?”

“네. 여기가 일출 보기 좋다고 해서요.”

“그렇죠. 자. 치즈으!”

- 찰칵!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부부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우리 귀여운 공주님도.”

“네에!”

새해부터 따뜻한 이웃의 정도 느끼고. 왠지 올해는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다.

#

성산일출봉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뷔페인 까닭에 사람들이 더 많이 북적여 보인다.

나는 하연이를 한 손에 안고 반대쪽 손으로는 빈 접시를 들었다.

“하연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아빠가 여기에 담을 테니까.”

“네에!”

하연이는 음식을 담는 장면도 카메라로 찍고 싶다며 내게 스마트폰을 꺼내 자기 주란다.

이거 찍어서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자면서.

이제는 자기가 먼저 촬영을 하자는 하연이를 보며 괜히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때 옆으로 5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이 우다다다 달리다가 우리 쪽으로 향한다.

“어이쿠.”

나는 빠르게 녀석을 피했다.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근처를 자기 집인 양 돌아다닌다.

‘아이 부모는 어디 있는 거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롭게 보인다.

내 아이는 아니지만 나는 녀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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