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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6화 (26/135)

내 딸은 국힙원탑 26화

유주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아! 여긴 펜트하우스잖아!”

“어때?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좋은데?”

“이번에 미래 그룹 홍보 영상 만들고 받은 돈으로 산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 집 구매에 한몫한 거지. 고맙다, 유주야.”

“내가 뭘. 진짜 신림동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녀는 베란다로 나가더니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경치도 좋아. 여름에는 여기서 물놀이 같은 거 해도 좋겠다.”

“그치? 안 그래도 여름에는 간이 수영장 하나 설치할까 생각 중이야.”

“김진형 출세했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하연이가 방에서 나와 있었다.

하연이는 유주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떼요 선생니임!!”

“안녕, 하연아. 좋은 집으로 이사해서 우리 하연이 기분 좋겠네?”

“네에!!”

두 사람이 서로를 꼬옥 끌어안으며 진한 포옹을 나눈다.

보기 좋은 그림이다.

나는 웃으며 유주에게 물었다.

“아침은 먹고 왔어?”

“아니. 오늘 늦잠 자서 아직 안 먹었어.”

“그럼 잠시만 있어 봐.”

나는 그녀에게 갓구운 토스트와 우유를 제공했다.

“흐음. 냄새 좋네.”

“내가 직접 만든 빵이야.”

“니가 직접 만들었다고?”

“응. 유튜브 보고 손반죽해서 만들었는데 어때? 먹을 만해?”

“오. 제법인데? 나는 어디 빵집에서 사 온 줄 알았어.”

“하하. 칭찬 고맙다.”

“이젠 제법 아빠 흉내 내는구나?”

“그래야지. 하연이도 곧 4살이잖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새해가 밝아온다.

하연이는 4살. 나는 드디어 다사다난했던 20대를 지나 30대를 맞이할 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마음은 여전히 막 대학생이 되었던 스무 살에 머무르고 있는데 신체는 서른을 향하고 있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있는 유주를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주야.”

“응.”

“너도 이제 곧 서른이잖아. 혹시 사귀는 사람은 없어?”

“사귀는 사람?”

유주가 빵을 아래로 내려놓더니 웬 뜬금없는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여자는 앞에 3자가 붙으면 결혼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

“푸훗. 뭐래. 그게 언젯적 이야기야. 요즘은 다들 서른 넘어서 결혼해. 남자든 여자든.”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요즘 누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내 주변에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건 그렇다. 결혼이 당연한 게 아니라 오히려 비정상이 돼버린 사회.

출산?

그건 결혼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였다.

결혼도 안 하는데 무슨 출산을 논한단 말인가.

유주가 날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남자친구 없으면 니가 나한테 다시 대쉬하려고?”

“아,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

“농담이야, 바보야.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연애는 무슨. 나는 골드미스야 목표야.”

“골드미스?”

“골드미스 몰라? 자발적으로 미혼을 선택하지만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30대 이상의 여자라는 뜻이야.”

골드미스라. 앞에 골드가 붙어있으니 뭔가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 여성 같은데.

유주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우유를 마시며 답했다.

“지금은 박봉의 어린이집 교사지만 나도 부업으로 유튜브 하나 해보려고.”

“유튜브?”

“응. 요즘 유튜버가 인기잖아. 돈도 많이 벌고, 잘만 하면 연예인보다 더 인기를 얻을 수 있지.”

하긴. 유주 정도의 미모면 제법 인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젊은 여성이 유튜버를 한다고 하면 뭔가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있지 않나.

나는 슬쩍 물어보았다.

“주제가 뭔데?”

“주제? 어린이집 운영하면서 배운 노하우 같은 거 올리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우는 아이 달래는 법, 같이 놀아주는 법 등등.”

그렇군. 야시시한 옷 입고 남자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이런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유주가 나를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김진형. 너 혹시 이상한 거 상상한 건 아니지?”

“무슨. 혹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유튜브 운영에 대해선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까 네가 하는 채널도 이제 구독자 수 500명 돌파했더라? 축하해.”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유주가 브이 자를 그리며 말했다.

“나도 구독해서 보고 있어. 콘텐츠 괜찮더라.”

뭔가 부끄럽다.

유주 보라고 만든 채널은 아닌데.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어린이집 일은 할 만해?”

“그럭저럭.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재미있어. 하연이처럼 예쁘고 똑똑한 애들 보는 재미도 있고.”

유주는 자신의 옆에 앉은 하연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민규 이야기가 나왔다.

“민규라는 아이는 어때? 유명한 아역배우라지?”

“민규?”

유주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민규는 뭐랄까. 자존심이 엄청 강한 아이야.”

“자존심?”

“응. 솔직히 얼굴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주변에서 떠받들어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남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있고.”

저런. 그런 모습을 하연이가 배우면 안 될 텐데.

“내 생각엔 민규 어머니가 좀 유별난 것 같아.”

“민규 어머니가? 왜?”

“원래 본인도 배우가 꿈이셨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됐는지 본인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려는 느낌? 아니다. 우리 반 아이도 아닌데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

유주는 말을 아꼈지만 대충 민규 엄마가 어떤 인물인지 알 것 같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영리한 친구야. 충분히 설득해서 본인이 납득하면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아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유주가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민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민규가 하연이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뭐? 하연이한테? 걔가 왜?”

나는 잡아먹을 것처럼 유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유주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아래위로 휘저었다.

“그 속내야 모르지. 아무튼 반도 다른데 민규가 늘 하연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이집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거든.”

“..그건 곤란한데.”

“왜?”

“하연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성 친구는 금물이니까.”

“푸훗! 야! 이러니까 딸들이 아빠를 미워하는 거야! 네가 뭔데 하연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야. 완전 우리 아빠랑 똑같은 놈일세.”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무슨.

내 딸은 평생 내가 지킨다.

반드시. 머스트. 해브 투.

#

박민규도 김하연이 찍은 미래 그룹 홍보 영상을 보았다.

흥미롭고 깔끔한 모션그래픽.

거기에 하연이는 마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AI에 대해 소개했다.

비디오쉐어 직원이 써준 대본을 따라 읽기만 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러니 내가 찍은 영상이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겠지.’

박민규는 어렸지만, 본인이 찍은 영상에 비해 김하연이 출연한 영상의 퀄리티가 훨씬 좋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박민규의 김하연 관찰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쟤는 나랑 뭐가 다르길래 저렇게 자연스럽게 영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걸까.

박민규는 김하연이라는 존재가 궁금한 한편, 자신이 없는 것을 가진 김하연에게서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얼굴을 봐서일까? 어쩐지 김하연이 무척이나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귀여운 건 사실이야.’

거기에 또래와는 다르게 떼를 쓰지도 않고, 어설프게 행동하지 않는다.

마치 어른처럼 말이다.

자신은 하연이보다 3살이나 많은데. 어째서 그녀가 더 윗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지금도 우는 친구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고 있지 않은가.

겨우 3살짜리 꼬맹이가 말이다.

간식시간이 되자 박민규는 초코우유를 가지고 김하연에게 접근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초코우유를 김하연에게 내밀며 말했다.

“야. 이거 먹어.”

“?”

“나는 초코우유 안 좋아하니까 너 먹으라고!”

그는 김하연이 앉아있는 좌식 테이블에 초코우유를 놓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얼굴이 조금 뜨거운 것 같다.

김하연이 무슨 반응을 보이나 슬쩍 쳐다보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보더니 빙그레 웃는 김하연.

- 쿵! 쿵!

박민규는 6살 인생 처음으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런 마음을 속이기 위해서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러는 거지?’

6살 꼬맹이에게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

박민규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있었다.

#

I don′t want a lot for Christmas.

There is just one thing I need.

I don′t care about the presents.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하연이를 하원 시킨 뒤 인근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

유치원과 다르게 어린이집은 연중무휴로 따로 방학이 없었다.

“하연아 오늘 어린이집에선 별일 없었어?”

“민큐 오빠아가 나한테 쪼꼬우유 줬어.”

“민규가?”

“웅. 자긴 쪼꼬우유가 싫데에.”

뭐지 이 씁쓸한 기분은.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너는 그걸 먹었어?”

“아니이.”

“그럼?”

“하연이 우유는 이미이 머겄으니까아 선생니임 드렸어.”

“역시! 잘했다. 우리 딸.”

원래 남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받아먹는 거 아니다.

나는 하연이의 얼굴을 잡고 포동포동한 볼에 뽀뽀해주었다.

- 쪼옥!

그래! 바로 이 감각이지!

나는 버둥거리는 하연이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연아.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려고 여기 데려왔어. 이 중에 하연이 먹고 싶은 거 있니?”

하연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가장 저렴한 크림 파스타를 골랐다.

“이거어!”

“뭐? 이런 거 말고. 고기는?”

“괜차나요. 요고오 먹고시퍼요!”

이건 상정 외다.

나는 하연이에게 파스타 따위가 아닌 스테이크를 먹이려고 여길 온 거니까.

‘설마 아빠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 파스타를 고른 건 아니겠지?’

나는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스테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파스타도 고르고 스테이크도 고를 테니까 같이 먹자. 알았지?”

“웅!”

오래지 않아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터졌다.

- 빰빠밤빠밤 빰빠밤빠밤!

그리고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즐겁게 식사 중이신가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특별 이벤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지금 식당에서 음식을 드시는 분들 중 내가 노래 하나는 자신있다! 이런 분 계시나요?”

“노래?”

“이건 또 뭐야?”

장내가 웅성거린다.

남자는 주변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노래만 불러주셔도 저희 레스토랑 10만원 상품권을 드립니다.”

“오! 10만원 상품권?”

“그리고 모든 참가자는 영상을 찍어도 괜찮다는 동의서를 작성해주셔야 하는데요. 찍은 영상은 저희 유튜브 계정에 올릴 예정입니다. 저희만 올리는 건 아니고 전국의 모든 지점에서 동시에 올립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으신 분에게는 전국 어디든 저희 식당 1년 무제한 이용권을 드릴 예정입니다! 어떠신가요? 노래를 부르고 싶으신 분 안 계신가요?”

10만원 상품권이라는 말에 제법 많은 이들이 손을 올렸는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간다는 말이 이어지자 그중 대다수가 손을 내렸다.

나는 하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연이가 씨익 웃는 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우리는 번쩍 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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