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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5화 (25/135)

내 딸은 국힙원탑 25화

내부는 한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아무도 없는 사무실.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뒤에서 누군가 들어오며 말한다.

“어이쿠. 손님이 와 계셨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가 형광등에 비쳐 반짝인다.

그는 작은 냉장고에서 서둘러 박카스를 한 병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마치 이걸 줄 테니 나가지 말라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물건을 찾으시나요? 전세? 월세?”

매매란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어차피 나도 집을 살 생각은 없었다.

“전세로요.”

“평수는?”

“15평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15평이라. 혼자 살기에는 조금 큰데. 혹시 결혼했어요?”

“아뇨.”

굳이 아이가 딸려있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나를 아래에서 위로 한번 주욱 훑어보더니만.

“돈 좀 있으시구나. 그래서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

“2억 정도?”

“2억이라. 2억. 잠시만요.”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몇 건의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부분 방이 한 개짜리였다.

유주가 하연이 방을 따로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한 게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혹시 방 2개짜리는 없나요?”

“2개짜리? 당연히 있죠. 평수는 조금 작은데 집은 깨끗해요.”

“몇 평인데요?”

“대략 13평 정도?”

13평이면 충분하다.

지금 사는 집은 5평짜리 오피스텔이었으니까.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딱 2억.”

“생각보다 비싸네요?”

“하하. 10평대면 대체로 이 정도 해요. 오히려 요즘은 매매보다 전세 물건이 더 비싸지.”

“전세가요?”

“요즘 대출 이자가 엄청 엄청나게 오른 건 알고 있죠?”

“네.”

“그래서 다들 집 사는 걸 꺼려하거든. 팔려는 사람은 많고, 전세로 내놓으려는 사람은 없으니까 전세가가 많이 올랐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겨우 10평대 집 전세가 2억이나 하는 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비싸면 어떻게 결혼해서 애를 낳고 살라는 건지.’

나야 운이 좋아서 한 번에 거액의 계약을 따냈지만, 일반적인 직장인 월급을 고려했을 때 2억을 모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월세로 하면 보통 얼마나 해요?”

“월세면 천에 65에서 80 사이?”

“80만 원이요?”

지금은 보증금 천에 40만 원을 매달 월세로 내고 있었다.

관리비까지 하면 월에 50만 원을 집값으로 내고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금액.

그런데 80만 원이라니. 한 달에 거의 1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 내 집도 아닌 곳에 빠져나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신림동이 비싼 동네는 아닌데 장난 아니네요.”

“그나마 신림이니까 이 정도 받지, 강남 같은 데는 월에 100 넘는 곳도 많아요.”

확실히 지금 집값은 미쳐있었다.

그나마 현재 인플레이션의 공포로 집값이 작년보다는 다운됐다고 하는 게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혹시 2억짜리 매매도 있나요?”

“매매라. 잠시만요.”

그는 한참 더 컴퓨터를 뒤적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오! 어제 오피스텔 하나 등록된 게 있는데. 딱 2억이네. 방 2개에, 15평.”

“그래요?”

“돈이 급해서 급하게 내놓은 것 같은데?”

“원래는 얼마였는데요?”

“작년 하반기에는 3억 3천까지 찍었지?”

“3억이나요?”

“그때는 내놓으면 바로바로 팔릴 정도로 인기였지. 지금이야 물건이 쌓이고 있지만.”

15평 오피스텔이 2억이라니. 그러면 아파트는 대체 얼마란 말일까?

“혹시 그 2억짜리 매매 물건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그럼 2억짜리 매매 하나에 전세 셋. 이렇게 한번 봅시다.”

나는 그를 따라 인근의 주택가를 돌아다녔다.

우선 전세 물건부터 봤는데 다들 집 상태가 별로다.

첫 번째 물건은 반지하였고, 두 번째 물건은 저층이라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세 번째 물건은 복층이라 에너지 낭비가 심했고.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로 이동했다.

여기도 별로면 다른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들를 수밖에.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깔끔하다.

최근에 지어졌는지 외관도 그렇고 내부의 인테리어도 화려했다.

“최근에 지어졌나 보네요?”

“여기가 아마 작년 초엔가 지어졌을 거예요.”

“신축이네요.”

“그럼. 신축이지. 내가 보니까 물도 잘 나오고, 집 상태 좋고, 햇빛도 잘 들고. 풀옵션에, 괜찮을 것 같은데. 학생이 보기에는 어때요?”

학생?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 학생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여기가 꼭대기 층이잖아요? 여름에 덥지 않을까요?”

이 건물은 총 26층까지 있었는데 지금 보고 있는 물건은 꼭대기에 있는 26층이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요즘에 짓는 오피스텔들은 죄다 잘 만들어져서 꼭대기 층이라고 예전처럼 덥진 않아요. 오히려 전망이 좋으니까 로열층이라고 해서 서로 들어가겠다고 그러지.”

“그래요?”

“암. 봐봐요. 전망 죽여주잖아. 이런 물건. 이 가격에 구하기 쉽지 않아요.”

그의 말처럼 확실히 전망이 좋았다.

창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도림천도 잘 보이고.

그런데 방이랑 화장실까지 다 살펴보았는데 거실 쪽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아저씨. 저 문은 뭐예요?”

“문? 어라. 그러게, 저게 뭐지?”

문을 열었더니 위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아저씨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스피커폰 기능을 이용해서 대화를 나눴다.

“어. 김 사장. 나 천월 부동산 김만밴데. 어. 자네가 소개해준 그 26층짜리 매매 물건 보는 중이거든. 거기 문이 하나 더 있고 계단이 보이는데 그게 뭐야?”

“그거 제가 이야기 안 드렸어요? 꼭대기 층에만 있는 서비스 공간인데, 일종의 복층 비슷한 거예요.”

“복층?”

“네. 옥상 쪽에 5평짜리 작은 방이 하나 더 있고, 넓은 테라스가 있거든요.”

“그래? 그런데 이렇게 싸게 내놓는다고?”

“주인이 암호화폐 그 뭐냐. 나루? 거기에 투자했다던데 완전 물려서 돈이 급한가 봐요. 사겠다는 사람 있으면 그냥 바로 팔라고 그러던데.”

헉. 나루 코인에 투자해서 피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 들었는데 이 집 주인일 줄이야.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위로 이동했다.

거실만 한 크기의 방에 방보다 살짝 더 커보이는 테라스가 환상적이다.

“이야. 이런 곳이 다 있네. 나도 중개일 하면서 이런 건 처음 봐요.”

“집 좋네요.”

그러니까 이 집은 방이 2개란 이야기다.

거실 하나에 방 둘.

테라스까지 하면 대략 20평은 훨씬 넘어 보인다.

‘아래 방은 하연이 주고, 윗공간은 내 개인 사무실로 쓰면 되겠는걸?’

영상 작업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테라스로 나가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을 것 같다.

전 세계가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곳이라면 2억을 주고 사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나와 하연이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거 아니겠나.

‘떨어지든 오르든. 집이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겠지.’

넓은 테라스를 향해 혀를 내두르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장님. 저 여기로 계약하겠습니다.”

#

풀옵션 오피스텔이었기에 따로 구매해야 할 물건은 적었다.

새로 산 가구가 있다면 하연이 침대 정도.

하연이가 벙커 침대를 좋아해서 그걸로 구매했다.

이사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의 도움으로 쉽게 끝났다.

상준이가 오르락내리락 집을 살펴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기가 겨우 2억이라고? 엄청 좋은데? 위에 복층도 따로 있고?”

“거긴 내 개인 사무실로 쓰려고. 전망도 좋지?”

“어. 쩐다 쩔어. 신림동에 이런 보석이 숨어있을 줄이야.”

현모와 성현이도 입을 모아 칭찬했다.

“여기 너무 좋다. 지녕아. 나도 여기서 살면 안 되냐?”

“나도나도! 여기 완전 내 스타일인데?”

미친놈들. 여긴 나와 하연이 둘만의 공간이다. 어딜 감히.

하연이는 복층보다는 이번에 새로 들인 벙커 침대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2층 침대에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하연이를 재운 뒤 오늘 이사한다고 고생한 녀석들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깐풍기에 양장피. 칠리새우까지.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눈 앞에 펼쳐지자 현모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집사고 돈도 얼마 없을 텐데 무리하는 거 아니냐?”

“괜찮아. 너희들 덕분에 이사 비용 아꼈으니까.”

녀석들의 차에 짐을 나눠 실은 덕분에 이삿짐센터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편하게 옮길 수 있었다.

이전에 있던 집에서 가져올 만한 물건이 얼마 없었던 것도 있고, 여기가 풀옵션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상준이가 칠리 새우를 한 입 집어 먹더니 입을 열었다.

“하긴. 오늘 이사한다고 고생했으니까 이 정도 쏘는 거야 인지상정이지. 안 그래?”

“하하. 그건 그래. 특히 매트리스는 차에 안 들어가니까 그걸 넷이서 들고서 이동했잖아. 그건 솔직히 좀 빡시더라.”

이전에 있던 집에서 가장 큰 물건이 침대 매트리스였는데, 그걸 들고 길거리를 횡보하니까 사람들이 쳐다본 건 사실이었다.

“아무튼 오늘 다들 고생했다. 많이들 먹어.”

“그랴. 아무튼 이사한 거 축하한다. 집 산 것도 축하하고.”

“우리 지녕이 이제 집주인이네. 축하한다. 20대에 집도 있고. 의사인 나보다 더 낫네.”

“집만 있냐. 애도 있지. 완전 부럽다, 부러워.”

안정적인 직장에 돈도 많이 버는 놈들이 내가 부럽긴 무슨.

한참 녀석들과 술을 먹고 있는데, 성현이가 내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마트폰에는 최신 공기청정기가 하나 보였다.

“이게 뭔데?”

“집들이 선물.”

“선물?”

“어. 아마 이번 주에 도착할 거다.”

“뭐 이런 걸 다 샀어.”

“요즘 미세먼지에 황사에. 우리 어릴 때와 달리 공기가 안 좋잖아. 애 키우는 집엔 필수라더라.”

“고맙다, 성현아.”

“별말씀을. 그리고 이건 내 선물이야.”

내 선물? 그러면 돈을 합쳐서 산 게 아니란 말인가?

이어서 상준이와 현모도 각자 집들이 선물을 내게 보여주었다.

상준이는 식기세척기를. 현모는 높이가 조절되는 모션데스크를 화면에 띄웠다.

“애 키우려면 설거지할 시간도 없다며? 편하게 하라고 형님이 하나 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계속 작업하다 보면 허리 다쳐. 요건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올라가니까 허리 디스크 예방하는 데 좋다더라. 남자는 허리 아니냐. 하하.”

와 이 자식들.

진짜 눈물 나려고 하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미안하다.”

“뭐가?”

“그동안 연락 끊고 지내서.”

“크크. 알았으면 앞으로 잘해라.”

“맞아. 하연이도 잘 키우고.”

“하연이 가수 데뷔하면 우리한테 가장 먼저 사인해주는 거 알지?”

나는 오랜만에 녀석들과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며 잡담을 나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놈들이라면. 자신의 간과 쓸개까지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아닐까.

‘하연이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난 참 복 받은 사람 같다.

이제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내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과분한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내일이 일요일이라고 다들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단다.

나는 한겨울에도 배를 드러내고 코를 골며 자는 녀석들을 내려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반드시 성공해서 하연이와 녀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음 날.

친구들이 떠나고 유주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이게 다 뭐야?”

“휴지지. 뭐긴 뭐야.”

“아니 그러니까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고?”

“휴지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 이건 두루마리 휴지고 이건 갑티슈야. 두루마리는 니가 쓰고, 갑티슈는 하연이 쓰게 해.”

유주가 건네준 휴지가 제법 묵직하다.

최소 1년은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집 좋은데?”

유주는 이리저리 집을 구경하더니 옥상으로 이어진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저건 뭐야?”

“구경해볼래?”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데리고 옥탑방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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