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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3화 (23/135)

내 딸은 국힙원탑 23화

하연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더니 낯익은 얼굴이 있다.

그는 어린이집 밖이 아니라 안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마치 자기가 어린이집 관계자인 것처럼 말이다.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하연이 아버님.”

하연이 아버님?

내가 전에 이 양반한테 하연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명함만 건네받았던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유주에게 시선을 옮기니 그녀도 그냥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하하. 그렇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하려고 온 거니까요.”

“정식 스카우트요?”

“네! 살펴보니까 하연이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영상 잘 보았습니다. 이하연보다 훨씬 더 잘하던데요? 하하.”

아이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중에는 하연이의 얼굴도 보인다.

나는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하연이를 내 뒤로 숨기고는 답했다.

“여긴 이야기하기 그리 적합한 장소가 아닌 것 같네요. 다른 곳으로 옮기시죠.”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한 분이 더 오셔야 해서.”

그는 입구 쪽을 두리번거리다가 민규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소리쳤다.

“오! 마침 오셨네요!”

그는 순식간에 입구로 나가더니 상대를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민규 어머님 되시죠?”

“네? 제가 민규 엄마인데. 누구시죠? 혹시 민규가 또 사고 쳤나요?”

“사고요? 하하. 아뇨.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상대의 명함을 건네받은 민규 엄마의 표정이 확 바뀐다.

“어머! PKT 엔터 실장님이시구나!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하하. 대표님의 특별 지시를 받았거든요. 민규를 저희 PKT 엔터로 모셔오라는 특명입니다.”

“어머! 정말요?”

그녀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친다.

“하연이 아버님도 계셨구나. 안녕하세요.”

그러자 남자는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두 분 서로 알고 계시는 사이군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하연이 아버님은 왜?”

“대표님이 민규랑 하연이 둘 다 PKT 엔터로 와줬으면 하시거든요.”

“하연이도요? 우와! 정말 잘됐네요! 하연이도 우리 민규처럼 정말 인형처럼 예쁜 아이죠. 어쩜. 잘 됐어요.”

둘이서 아주 쿵짝이 잘 맞는다.

정작 당사자인 나랑 하연이는 가만히 있는데.

하원 시간이라 다른 아이들의 부모도 무슨 일인가 싶어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남자도 여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나와 민규 엄마에게 제안한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밖에서 차 한잔 괜찮으실까요?”

“저는 좋아요!”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나는 유주에게 하연이를 잠깐 부탁한 뒤 그들과 함께 인근의 카페에 들어갔다.

남자는 자신이 커피를 사더니 내게 물었다.

“아버님. 제 이름은 기억하시죠?”

“아 그게. 명함을 잃어버려서요.”

순간적으로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저런. 어쩐지 연락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는 공손히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PKT 엔터 송규형 실장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냥 편하게 송 실장이라고 불러주세요. 하하.”

우리는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네 카페라 우리 말고는 카페 안에 아무도 없다.

송규형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곳으로 모셔야 하는데 근처에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네요. 양해 바랍니다.”

“아뇨. 조금 있다가 하연이 데리고 가야 하니까요. 너무 멀면 곤란합니다.”

“하하. 그렇죠, 그렇죠. 아. 음료가 나왔네요. 잠시만요.”

진동벨이 울리자 송규형이 잠시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옆에 앉은 민규 엄마가 넌지시 내게 물었다.

“송 실장님 전에 뵌 적 있으세요?”

“전에 어린이집 앞에서 만났는데 하연이가 귀엽다고 명함을 건네주셨거든요. 이쪽으로 관심 있으면 연락하라고.”

“어쩜! 길거리 캐스팅이었네요! 그런데 왜 연락 안 하셨어요?”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하연이가 원하지 않았으니까.

대답하려고 하는데 송규형이 커피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하. 이거 진짜 인연입니다. 제가 원하는 두 친구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을 줄이야.”

“민규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좁은 한국 땅에서 사람 찾는 거야 뭐 일도 아니죠. 하하. 자 드세요.”

송규형은 한동안 PKT 엔터에 대해 자랑했다.

자신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기획사이며, 소속된 가수와 배우는 누구며, 그들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등에 대해.

그리고 요즘은 한국에서만 활동하면 한계가 명확하니 해외 진출도 하고 있다며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 역시 연예 기획사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나름 조사한 게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그건 성공한 극소수의 케이스에 해당할 뿐.

‘대다수는 어릴 적부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정작 데뷔조차 못 한다. 그리고 사회로 돌아가면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게다가 하연이는 이제 3살이었다.

아직은 친구들과 놀면서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시기.

뭣보다 명백히 연예 기획사가 아닌 자신과 함께 유튜브로 성공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민규 엄마는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호호.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민규가 PKT 엔터에 들어가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배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물론이죠! 저희가 반드시 그렇게 키워낼 겁니다.”

세계적인 배우?

멜로디와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음악시장이라면 모를까 아직 대한민국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는 잘 모르겠다.

간혹 월드 스타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건 우리 기준이고, 세계에서의 평가는 냉정하지 않던가.

‘아님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호평받아 인기를 얻는 경우는 있지만, 그게 해외 진출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잘 없다.’

송규형은 다시 한번 이 말을 강조했다.

“두 분 다 자녀가 어려서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저희 PKT 엔터로 오시면 모든 걸 완벽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아이 등·하원부터 멘탈 케어, 체력 관리 등. 저희만 믿고 자녀를 맡겨주십시오!”

자신감 넘치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죄송합니다만 송 실장님.”

“네. 하연이 아버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하연이는 이제 3살이고, 아직은 저의 보호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기획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기에는 너무 어린 것 같네요.”

“그러니까 더 PKT 엔터에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상대는 힘을 주어 말했다.

“왜 교육도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 영어 유치원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거고요. 어릴 적부터 재능을 갈고닦는다면 분명 엄청난 스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양반. 하연이가 자기 자식 아니라고 너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면. 하연이 인생을 당신이 돌려줄 거야?

나는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더는 이야기할 내용이 없는 것 같군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송규형이 따라서 일어서더니 애원한다.

“하연이 아버님. 조금만 더 생각해 보세요. 정말 좋은 기회를 놓치시는 거예요!”

“아뇨. 하연이 보호자는 접니다. 실장님이 아니고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무턱대고 어린이집에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랑 하연이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이나 부모님들도 불편하실 것 같군요.”

“아 네. 그, 그렇죠? 하하.”

내가 강하게 나오자 송규형이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카페에서 나오자 뒤에서 민규 엄마가 나를 부른다.

“하연이 아버님!”

“네?”

“제가 PKT 엔터 사람은 아니지만 송 실장님 말처럼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일 수 있어요! PKT 엔터 아시잖아요. 춤의 신 이태식이 만든 연예 기획사!”

“물론 알죠. 하지만 하연이도 그렇고 저도 그다지 가고 싶은 곳은 아니라서요.”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민규는 이제 6살이잖아요.”

“그렇죠?”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도 후회해요. 민규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연예 기획사에 보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게 아이가 더 올바르게 크고 연기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아이한테 필요한 건 사랑이지 어른도 힘든 공장식 교육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녀와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놓고 말다툼할 필요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민규 어머니. 하원 하면서 하연이랑 순대를 먹기로 해서요. 부디 민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택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어린이집을 향해 걸었다.

하연이의 인생은 하연이의 것이다.

그리고 하연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건 바로 보호자인 나고.

다른 누군가가 하연이의 인생에 개입하는 건 사양이다.

#

하연이와 함께 ‘하나분식’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꽤 많다.

줄을 서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손님이 확 는 게 체감될 정도.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왔나?”

그녀는 우리가 뭘 시키지도 않았는데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오뎅을 식탁 위로 내놓았다.

대충 봐도 3인분은 훨씬 넘는 양.

“할머니. 이게 뭐예요?”

“뭐긴 뭐꼬, 음식이지. 돈 안 받을 테니까 많이들 먹어.”

갑자기 웬 서비스?

내가 곤란하다고 말하자 주인 할머니는 재차 손사래를 쳤다.

“아이다. 이렇게 손님이 많아진 건 모두 그쪽 덕분이데이. 앞으로도 쭈욱 돈 안 받을라카니 암때나 마음 편히 들리라.”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부엌 쪽으로 이동했다.

주문하는 손님이 많아서 계속 그녀를 잡고 있기도 뭐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살다 보니까 별일을 다 겪네.”

그러자 하연이가 나를 뻔히 바라보고는 물었다.

“아빠아.”

“응. 하연아.”

“아까아 그 아저씨이. 저번에 기레서 만났떤 아저어씨죠?”

“맞아. 기억하는구나?”

“웅! 그러언데 무쓴 이야기 했어요?”

나는 하연이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하연이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사리처럼 조그마한 엄지를 치켜세운다.

“역씨이이! 우리 아빠아가 최고오야아!”

그러더니 하연이는 눈앞에 놓인 분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특히 순대는 폭풍같이 흡입한다.

전생에 순대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예전에는 이런 말이 굉장히 상투적이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

그거 진짜다.

#

며칠간의 밤샘 끝에 미래 그룹 홍보 영상을 마무리했다.

선종이 형이 지적한 부분부터 유주와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이 준 피드백까지 모두 참고해서 수정을 완료한 것이다.

‘미래 그룹에서는 이걸 보고 뭐라고 생각하려나.’

별다른 태클 없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영상을 보낸 다음 날.

홍보팀 관계자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안녕하세요, 진형 씨. 영상 잘 보았습니다. 진짜 잘 만드셨던데요? 다들 난리예요. 잘 만들었다고.”

“그런가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게다가 와.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하연이가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이거 노래가 뭔가요? 처음 들어보는 노랜데 너무 좋던데요?”

헤헤. 그게 다 하연이가 직접 작곡한 곡이랍니다.

그는 계속해서 영상에 대해 칭찬했다.

내용도 자연스럽고, 이해하기도 쉽고, 중독성도 있다나?

후후.

입이 귀에 걸린다.

그런데 칭찬을 끝낸 상대방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이번 주에 미래 그룹 본사에 오실 수 있나요?”

“본사요? 왜요? 수정할 부분 알려주시면 빠르게 고치겠습니다.”

“아뇨아뇨. 수정할 부분은 없고, 본사 오셔서 PT를 해주셨으면 해서요.”

“PT요?”

아니 수정이면 수정이지 무슨 PT란 말인가.

이런 적은 영상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회장님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거든요. 그래서 직접 진형 씨에게 PT를 요청하셨습니다.”

황태진 회장이?

그 양반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일 텐데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을 갖는 거지?

설마 하연이 팬인가?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2억 받으려면 뭐라도 해야지.

나는 내일모레 오전으로 약속 시간을 잡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황태진 회장 앞에서 PT라.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

나는 메일을 보내놓고 꺼두었던 컴퓨터의 전원을 다시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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