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22화 (22/135)

내 딸은 국힙원탑 22화

“네가 여긴 어떻게?”

꼬마라고 하기에는 시샘이 날 정도로 잘생긴 남자아이 한 명이 하연이에게 접근하더니 아는 체를 한다.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어린이집 연애 시작 뭐 이런 건가?

가만히 보니까 둘이 잘 어울리긴 한다.

선남선녀랄까.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얼른 고개를 젓고는 남자아이가 하연이에게 다가오는 걸 저지했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물었다.

속으로는 칼을 갈고선 말이다.

“안녕. 여기 다니는 친구니?”

그러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등원한 민규 엄마예요. 따님이 무척 예쁘네요. 연예인 해도 되겠어요!”

“오늘 처음 오셨구나. 반갑습니다. 저는 사랑반 하연이 아빠예요.”

“사랑반이면 몇 살이죠?”

“3살이에요.”

“어머. 정말요? 그때가 인형처럼 정말 귀여울 때죠. 지금은... 음.”

그녀는 자기 아들을 바라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들 있는 형들은 죄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4살만 돼도 데리고 다니기 벅차다고 그랬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는 올해 몇 살이에요?”

“6살이요. 새로 온 어린이집에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민규와 하연이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그런데 민규란 녀석이 엄마에게 작게 속삭인다.

“엄마. 기억 안 나요? 쟤, 걔잖아요!”

“걔? 그게 누구야?”

“로비 영상에 나온.”

“로비 영상? 아! 미래 그룹?”

그녀는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손뼉을 크게 치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이 친구도 연기자 지망생인가요?”

“연기자 지망생이요?”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상대는 혼자 앞서나갔다.

“와 진짜 잘됐네요! 지금까지는 민규랑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이 잘 없어서 민규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었거든요! 어쩜. 여기 온 건 다 하늘의 뜻인가 봐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저기 죄송한데 하연이는 연기자 지망생이 아니에요.”

“네? 분명 미래 그룹 홍보 영상에 나온 걸 봤는데.”

“혹시 미래 그룹에 다니시나요?”

“그건 아닌데 업체에서 참고하라고 보여준 영상에서 봤어요. 미래 그룹 로비 영상에 나온 친구 맞죠?”

업체에서 참고하라고 보여준 영상? 설마 비디오쉐어에서 동원한 아역배우가 이 남자아이일까?

“혹시 그 업체 이름이 비디오쉐어인가요?”

“역시! 아시고 계셨군요? 혹시 아버님이 영상 쪽 관계자이신가요?”

“네. 영상 제작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랬구나. 정말 잘되었네요. 민규는 배우를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많이 좀 가르쳐주세요.”

가르쳐달라고? 뭘?

아무튼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어린이집을 나오는데 민규 엄마가 번호를 교환하잖다.

딱히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니까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연이도 정말 예쁜 게 연예인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정말 연기 쪽은 생각이 없으신 거예요?”

“아직 어린 친구니까요. 그래도 만약 한다면 배우보다는 가수 쪽을 생각하고 있어요.”

“우와. 따님이 노래를 잘부르나 보네요? 그 외모에 노래까지! 분명 최고의 가수가 될 거예요!”

“하하.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김 대리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 김 대리님. 혹시 비디오쉐어에서 이번에 미래 그룹 홍보 영상 만들면서 민규라는 아역배우를 썼나요?

오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김 대리님] : 어라? 진형 씨가 그걸 어떻게? 누구한테 들었어?

>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암튼 알겠습니다

비디오쉐어에서 아역배우를 썼다면 분명 업계에서 잘나가는 탑 배우를 썼을 게 틀림없다.

상대는 그 미래 그룹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배우든 가수든 예능 분야라는 건 다름이 없다.

하연이가 자기와 비슷한 길을 걷는 또래를 사귀는 건 나쁘지 않겠지.

다만 그 엄마라는 사람이 조금 걸렸다.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데. 그럼 애한테 너무 부담이 가지 않나?’

아니다. 남의 자식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필요는 없다.

내 코가 석 잔데 무슨.

#

“어때요?”

“이야. 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야? 잘 만들었는데?”

오랜만에 선종이 형이 집에 왔다.

지금 만들고 있는 미래 그룹 홍보영상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나보다 업계 경력도 길고, 나름 이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

분명 내가 보지 못한 걸 짚어줄 수 있으리라.

그는 몇 번인가 영상을 돌려보더니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 부분 있잖아. 거기 조금 작위적이지 않아?”

“그래요? 저는 100번도 넘게 봐서 이제 잘 모르겠어요.”

“하하. 나도 그 기분 알지. 만든 사람은 너무 많이 봐서 뭐가 좋은지 아닌지 잘 모르잖아.”

“그래서 형을 부른 거죠.”

“그래. 이런 일 있으면 얼마든지 불러.”

모든 창작자가 다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영상 제작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만든 작품을 너무 많이 보다 보면 결점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특히 자막 같은 건 종종 맞춤법이 틀리기도 했다.

‘미래 그룹 홍보팀에서 한번 봐주기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완벽한 버전을 공유하고 싶으니까.’

선종이 형은 프로답게 빠른 속도로 어색한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영상의 배경음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노래 좋죠?”

“그러게. 하연이도 리듬감 있게 잘 부르고. 이거 어디서 받았어? 좋은 소스 창고 있으면 좀 알려줘. 알잖아. 음악 소스 찾는 게 제일 어려운 거.”

선종이 형 말대로 이미지와 관련된 소스를 찾을 곳은 많은데, 사운드 관련 소스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있더라도 대부분 해외 업체라 한국인 정서에는 조금 안 맞는 부분도 많았고.

“이거 하연이가 작곡한 노래예요.”

“뭐? 하연이가? 사람 놀리지 말고.”

“진짜예요. 쩔죠?”

선종이 형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야! 나이 든 사람 놀리면 재밌냐?”

“나이 든 사람이 뭐예요. 저랑 얼마 차이도 안 나면서.”

“아니 이런 곡을 3살짜리가 어떻게 만들어? 아무리 하연이가 언어 신동이라고 해도.”

“진짜라니까요. 거참 사람 말 못 믿으시네.”

내가 진짜라고 몇 번을 강조하자 그제야 선종이 형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진형아.”

“네, 형.”

“나는 진심으로 네가 부럽다.”

“하하. 애 딸린 미혼부가 뭐가 부러워요?”

“예쁘지, 귀엽지, 노래 잘부르지, 춤 잘추지, 말도 잘하지. 거기에 작곡까지 가능하다고? 넌 진짜 복 받은 놈이야.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

나라까지야. 아니다. 하연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디 내 딸 하연이가 보통 인물이던가.

“우리 딸이 좀 대단하긴 하죠.”

“그렇지? 유튜브 채널도 성장세가 대단하던데?”

“네. 이제 구독자도 6천 명 정도 돼요.”

“벌써? 5천 명 넘은 거까지는 봤는데. 진짜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구나.”

“형도 구독 버튼은 누르셨죠?”

“물론이지! 나는 구독자 10명도 되기 전에 눌렀어, 인마. 내가 하연이 원조 팬 아니겠냐.”

나는 그에게 따봉을 날렸다.

역시 선종이 형이다.

“그런데 진형아. 하연이 꿈이 가수라고 그랬지?”

“네.”

“지금까지는 이하연 노래 부르는 거 위주로 올리고 있고?”

“그렇죠? 이제 정규앨범 4집까지 끝냈어요.”

“디지털 싱글까지 다 올리려면 조금 더 있어야겠네?”

“아마도요? 이하연 노래가 좀 많아야죠.”

이하연은 죽기 전 정규앨범은 6집까지. 그밖에 미니 앨범과 싱글 앨범. 그리고 디지털 싱글 등 여러 음반을 발매했다.

“하연이가 이렇게 작곡 능력도 있으면 이제 이하연 따라 하는 건 적당히 하고 자기 노래 불러도 되지 않아?”

“자기 노래요?”

“응. 이하연 노래 부르는 거야 다른 사람 따라 하는 거고. 가수가 되려면 자기 노래를 불러야지.”

“그건 그런데, 이제 겨우 3살이잖아요. 차근차근히 하려고요.”

“하긴. 그래. 너도 다 생각이 있겠지. 쓸데없이 참견해서 미안타.”

“뭘요. 사실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긴 했어요.”

“그래?”

“네. 하연이랑 유튜브 채널 만들 때 이미 의논했던 내용이거든요.”

“뭘?”

선종이 형이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처음에는 이하연 따라 하기로 인지도를 높였다가, 나중에는 직접 자기 노래 부르기로요.”

“뭐? 하연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고작 3살짜리랑?”

그러게, 말입니다. 하연이는 천재가 틀림없다니까요.

선종이 형은 감격했는지 아니면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내 내게 얼굴을 돌렸다.

“혹시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나중에 하연이 뮤직비디오는 꼭 내가 만들고 싶네.”

“뮤비요? 형 요즘엔 뮤비 안 찍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보석이 잠자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 농담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선종이 형이 맨 처음 영상업계에 와서 했던 일이 바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뮤직비디오는 영상 제작 일 중에서 가장 트렌디한 작업이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클리셰를 적당히 녹이면서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미장센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으니 요즘은 다른 온라인 콘텐츠 영상을 제작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다.

“형이 하연이 뮤비 찍어 준다면 저야 두 팔 벌려 환영이죠.”

“그렇지? 영광으로 알라고.”

“그런데 형. 혹시 민규라는 친구가 유명한 아역배우인가요?”

“민규? 박민규?”

“성은 잘 모르겠어요. 올해 6살인데.”

“걔 엄청 유명하지! 6살밖에 안 됐는데 단군 이래 최고의 아역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잖아?”

“그 정도예요?”

“물론! 생긴 것도 잘생긴 데다 연기도 기가 막히거든. 아 맞다. 걔가 얼마 전에 비디오쉐어에서 섭외한 친군데 이번에 네 영상으로 물 먹었을걸?”

“그래요?”

“응. 충격이 컸을 거야. 당대 최고의 아역배우가 출연한다는 데 떨어졌으니.”

역시. 그랬구나.

“근데 걔는 왜?”

“오늘 하연이 등원하러 어린이집에 갔는데, 그 친구가 하연이 어린이집에 새로 왔더라고요.”

“그래? 앞으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혹시 알아? 나중에 하연이가 연기할 때 도움이 될지?”

연기라.

하긴 한국에서는 가수가 연기도 하고, 배우가 노래도 부르는 경우는 흔하니까.

그런데 연기하는 하연이라니.

지금이야 아빠가 만드는 영상에 잠깐 출연하는 정도지만 나중에 하연이가 유명한 영화의 주연이 된다면 정말 신기할 것 같긴 하다.

상상만 해도 흐뭇하네.

#

PKT 엔터 대표인 이태식은 송규형을 질책하고 있었다.

“송 실장. 대체 내가 이 친구 데리고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분명 명함을 건네줬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그렇다면 더 찾아가 봐야지! 언제까지 그쪽에서 여기 오길 기다리고만 있을 거야?”

“안 그래도 오늘 다시 한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송 실장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이렇게 일 처리가 늦으면 올해 보너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알죠?”

“무, 물론입니다, 대표님!”

이태식은 송규형을 향해 파일을 하나 건넸다.

“이건 뭔가요?”

“김하연 건이랑 별개로 이 친구도 영입해봐요.”

파일을 열어보니 요즘 잘나가는 아역배우인 박민규의 프로필이 보인다.

“박민규요?”

“걔 소속사 따로 없다면서요?”

“맞습니다. 아이 엄마가 직접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크기 전에 우리 쪽에서 포섭해봐요. 앞으로 PKT 엔터에서 연기는 박민규를. 노래는 김하연을 밀 수 있도록.”

송규형은 박민규의 파일을 받아들고는 이태식의 방을 나왔다.

그는 차를 몰고 이전에 방문했던 신림동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스카우트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런데 박민규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킨 부하직원에게서 재미있는 연락을 받았다.

“뭐? 박민규도 최근에 김하연이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옮겼다고? 잘됐네. 일타쌍피 할 수 있겠어.”

이번에 반드시 보너스 받고 새 차로 바꾸리라.

다른 대형 연예 기획사 실장들은 죄다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데 국산 차를 몰고 다녀서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던 송규형이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힘을 주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오래된 카니발이 먹구름을 토해내고는 질풍처럼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