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20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부정확한 발음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귓가를 맴도는 중독성이 있었다.
게다가 앞의 두 실사 영상과는 달리 AI나 비서 서비스에 대한 소개도 무척이나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웠다.
비디오쉐어에서도 남자 아역배우가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려 했지만, 조금 작위적이랄까 어른이 쓴 글을 아이가 읽는 느낌이었다면. 이 영상은 정말로 3살 꼬마의 입장에서 이해한 바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뿐인가.
마치 판타지 세계에 온 듯 화려하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애니메이션 연출도 돋보인다.
“셋 다 좋다. 하지만 이 영상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
자세한 건 다음 주 월요일. 모든 직원이 출근했을 때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되겠지만, 현재로서 전주현은 김진형의 영상에 크게 기운 상태였다.
#
나랑 하연이가 자주 가는 분식집이 하나 있다.
<하나 분식>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작은 분식집인데, 음식들이 대체로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순대였다.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이 집 순대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꿀맛을 자랑했다.
“하연아. 순대 한 접시 더 시켜 먹을까?”
“네에!!”
나는 하연이와 의기투합해서 순대 한 접시를 더 시켰다.
1인분으로는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의 성난 배를 만족시킬 수 없었으니까.
흐뭇한 표정을 한 할머니 사장님이 순대 한 접시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그러고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 이쁜 걸 이제 더 못 봐서 어쩌누.”
“네? 사장님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랑 하연이랑 이 집에서 순대 먹는 낙으로 하루를 버티는데.
그녀는 세상 다 무너진 사람처럼 쓸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식자재값이 너무 올랐어. 이자도 오르고 배달비도 비싸고. 코로나 2년은 우째 버티긴 했는데 이제 더는 못 하겠고마.”
그러고 보니 최근 뉴스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
글로벌 물류대란과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 등으로 식용유와 밀가루 등 식자재 가격이 비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안 좋아요?”
“하모. 코로나 이전하고 비교하면 식자재값이 두 배는 더 뛰었다아이가.”
“그럼 저희로서는 안타깝지만, 음식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나요?”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게 다 동네 장사여. 떡볶이랑 순대를 한 접시에 5천 원씩 받으면 누가 사 먹나. 그냥 접는 게 낫제.”
하긴. 여기 오는 대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분식이 1인분에 5천 원이나 하면 학생들 용돈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터.
“진짜로 접으시려고요?”
“다음 달이 죽은 영감 기일이여. 그때까지만 하다가 복덕방에 가게 내놓을라꼬. 돌이켜보니 여기서 참 오래했데이. 이제 접을 때도 됐지.”
그녀는 아련한 듯 허망한 눈빛으로 가게를 둘러본다.
마음이 좋지 않다.
좋아하는 가게를 잃는 것도 싫지만 할머니의 저 쓸쓸한 눈빛이 꼭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아서.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는 소리쳤다.
“할머니. 혹시 영상 하나 찍어보실래요?”
“영사앙?”
#
예전에 비디오쉐어에 있을 때 ‘골목탐방’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을 편집한 적이 있다.
유튜브 전용 프로그램인데,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돌다가 숨어있는 맛집을 소개하는 포맷.
아쉽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서 론칭 3달 만에 접어야 했지만 나름 재미있게 했던 방송이었다.
‘이 집은 진짜로 맛집이니까 잘만하면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해.’
게다가 어쩐 일인지 하연이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순대 맛집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이리라.
순대 좋아하는 건 이하연과 진짜 똑 닮았다.
나는 하연이에게 기본적인 영상 구조에 관해 설명했다.
“하연아. 이번 영상은 늘 먹던 것처럼 편하게 찍을 거야.”
“느을 먹떤 거처럼?”
“응. 너랑 나랑 머리에 뭘 쓰고 휴대폰으로만 촬영할 거거든. 그냥 말없이 우리가 분식집에서 먹던 대로 하면 돼.”
“그리고오?”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무슨 맛집 탐방 유튜버도 아니고 지나친 TMI는 자칫 거부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다음날 또 하나분식에 들렀다.
나랑 하연이가 머리에 고프로를 쓰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주인 할머니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머리에 고건 뭐꼬?”
“고프로라고 액션 카메라에요.”
“액떤 카메라?”
“액션 카메라요. 카메라의 종류에요.”
“별게 다 있고마. 그래서. 오늘은 뭐로 줄까? 늘 먹던 그기?”
“네! 순대랑 김밥. 그리고 오뎅 1인분 주세요.”
오래지 않아 따끈따끈한 분식이 식탁 위에 차려진다.
나와 하연이는 입맛을 다시며 포크를 손에 들고는 폭풍 흡입했다.
“쩝쩝!”
“아구아구”
너무 맛있어서 별다른 연출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이걸 본 시청자들은 우리와 똑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
순식간에 그릇이 비워지고.
하연이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으며 손을 번쩍 든다.
“아빠아! 여기이 수운대 한덥씨 더어!”
후후. 하연아. 너 이빨에 고춧가루 꼈다.
#
분식집 영상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액션캠 위주의 영상이라 편집할 부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트렌지션과 자막 정도.
나는 곧장 해당 영상을 HiYeom하연 채널에 올렸다.
“이전에 올렸던 영상과는 조금 컨셉이 달라서 구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네.”
잠시 뉴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새 댓글 알림이 울린다.
뭔가 싶어 봤더니 HiYeom하연 채널 커뮤니티에 매번 댓글을 올리는 ‘내꿈은한신사장’님이다.
[내꿈은한신사장 : 이야. 이 집 어딥니까? 엄청 맛있어 보이네요? 가격도 저렴하고! 댓글로 좌표 좀 찍어주세요!!!]
충성 독자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엔터테이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팬덤이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빠르게 댓글을 달아주었다.
└ 안녕하세요, 내꿈은한신사장님. 이곳은 신림역 인근의 <하나분식>이라는 곳입니다.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aver.me/A*B12***
곧이어 대댓글이 달렸다.
[내꿈은한신사장 :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추웅성!!]
하하. 재미있는 양반이다.
이제 채널의 구독자도 곧 있으면 5천 명을 돌파할 기세다.
단기간에 이룬 성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때돈을 벌겠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예전과는 다르다.
아쉽게도 유튜브 정책 변경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제작된 콘텐츠와 채널에는 맞춤형 광고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콘텐츠 내용과 관련이 있는 제품의 노출은 가능하기에 광고 자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과거처럼 광고 수익을 내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
맞춤형 광고도 안 돼, 슈퍼챗도 안 돼, 실시간 채팅도 안 돼.
안 되는 거 투성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이내 웃었다.
‘돈을 바라고 시작한 건 아니잖아. 이걸로 많은 사람들이 하연이를 좋아해 주고, 하연이가 즐거워하면 됐지 뭐.’
뭐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내가 버티는 힘이었다.
#
며칠 뒤 주말.
하연이의 손을 잡고 분식집을 가고 있는데 하연이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아! 저기이 보세요오!”
응? 어디?
하연이가 가리킨 곳은 우리의 목적지인 ‘하나분식’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펼쳐져 있다.
가게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던 것.
‘뭐지? 이 동네 살면서 한 번도 저런 적 없었는데.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사람이 저렇게 몰릴 이유가 없잖아?’
단골인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분식집도 한가한 날이었다.
설마하니 내가 올린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저렇게 몰린 걸까.
아니다. 그게 뭐라고.
지나친 자의식 과잉은 낭패로 돌아오는 법이다.
“오늘은 순대 못 먹겠다. 아쉽네.”
하연이한테 그리 말하고 가게 앞을 스쳐 지나치는데 누군가 이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앗! 하연이다!”
“어라. 진짜네. 진짜 김하연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뭐야. 이거.
나는 하연이를 감싸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갑자기 뭐 하는 겁니까. 애 놀래게!”
“죄, 죄송합니다. 혹시 하연이 아빠신가요? 하이염하연 채널 관리자인?”
“네? 제가 하연이 아빠입니다만. 무슨 일로?”
“오! 대에박! 혹시 하연이랑 아버님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사인?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줬던 경험이 있던가.
아니다. 잠깐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기 혹시 제가 올린 영상을 보고 오신 분들인가요?”
“네에! 두 분이서 먹는 거 보니까 너무 맛있어 보여서요!”
“저는 수원에서 올라왔습니다! 제가 순대 마니아거든요!”
“수원? 저는 대구에서 왔습니다.”
“오오. 대구? 쩌는데?”
대구에서 왔다는 사람이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즐거워한다.
내가 올린 영상을 보고 대구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런데 줄 끝에 있던 한 젊은 여성이 소리친다.
“지는 부산에서 왔는데에. 방금 KTX타고 왔심다.”
“뭐? 부산? 부산에서 왔다고?”
줄은 선 사람들이 놀랍다며 웅성거린다.
대구에서 왔다는 남자는 머쓱한 지 자기 줄로 돌아갔고.
“혹시 가게 영상 보고 오신 건가요?”
“예. 근데 옆에 하연이 맞심까?”
“네. 얘가 하연이에요.”
“와와! 와이리 예쁘노. 니 땜에 이모가 진짜 돌아삐긋다! 이리 좀 와봐라! 한번 안아보자아!”
그녀는 하연이를 강하게 안더니 좋아 죽으려고 그런다.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하연이는 의연하게 대처한다.
오히려 상대를 꼬옥 안아주는 게 아닌가.
“크아! 계 탔다! 가는 길에 복권이라도 하나 사야겠따. 하연아! 이모가아 사랑한데이!”
“하하하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는 가운데 가게 안에서도 하연이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나온다.
“와! 하연이다!”
“뭐? 하연이라고?”
곧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이내 하연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댔다.
무슨 연예인이 된 것 같다.
아. 물론 나 말고 하연이가.
나는 코를 슬쩍 훔치며 가게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혹시 안에서 음식 드신 분들. 어떻던가요? 괜찮나요?”
그러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쩝니다, 쩔어! 순대 인생 25년. 이렇게 맛난 순대는 처음이었어요!”
“떡볶이고 오뎅이고 국물이고 다 맛있네요! 진짜 최고예요!”
다행이다.
나랑 하연이 입맛에만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중에는 자신을 내꿈은한신사장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도 있었다.
“하연이 아버님이신가요? 제가 내꿈은한신사장입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야. 최소 나보다 5살은 많아 보이는데 이런 아저씨도 하연이 팬을 자칭하고 있구나.
유튜브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여기저기서 오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나름 하연이 팬 중에서는 유명한 인사인가 보다.
‘하긴. 커뮤니티 댓글 대부분을 저 양반이 달아주고 있으니까.’
그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요청했다.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정말 영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분식 음식도 진짜 맛있고요. 네가 하연이구나.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는 하연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따님과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하연아 괜찮지?”
“네에!”
어느새 그의 옆에 선 하연이가 방긋 웃으며 예쁜 포즈를 취했다.
내꿈은한신사장님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게 좋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좀 된다.
‘괜히 어릴 때부터 연예인병 같은 거에 걸리면 어쩌지? 그러다가 비뚤게 자라는 경우도 있다던데.’
많은 이들이 하연이를 좋아해 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하연이가 올바르게 자라는 게 최우선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건강하고 자기 생각이 뚜렷한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인기도 중요하지만 하연이의 행복이 훨씬 소중하니까 말이다.
#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쉬고 있는 사이. 미래 그룹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보낸 샘플 영상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니 계약을 맺잖다.
오옷! 2억. 무려 2억이다!
입찰 최저 단가였지만 정말로 이런 금액을 받아도 괜찮나 싶은 생각에 손을 떨며 적었는데 그게 통과된 모양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뒤에서 하연이가 자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하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으하하하!! 2억!! 2억이다아!!!”
하연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아으으. 아빠아아. 이어기 뭔데 구래요. 아 졸려어.”
2억이 뭐긴.
이제 이 좁은 집에서 이사 갈 수 있게 됐다 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