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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9화 (19/135)

내 딸은 국힙원탑 19화

올해 6살인 박민규는 남자 아역배우 중 원탑이다.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에 아이다움을 훨씬 뛰어넘은 빼어난 연기력.

오만한 게 흠이었으나 그조차도 팬들에게는 매력이 될 정도였다.

“민규야. 이번에도 미래 그룹 홍보 영상을 꼭 따내자꾸나. 알겠지?”

박민규의 매니저를 겸하고 있는 엄마는 이번 프로젝트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전에 촬영했던 미래 그룹 홍보 영상에 이어 이번에도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으면 앞으로 배우 일하는데 훨씬 더 편할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어린 박민규는 불만이었다.

확정된 게 아니고 다른 업체와 경쟁해서 선정돼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

“응, 우리 아들. 무슨 일이야?”

“그냥 다른 거 찍으면 안 돼요?”

“다른 거?”

“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영상 찍는데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

“푸훕. 에너지 낭비는 무슨. 얘가 하여간 애늙은이가 따로 없다니깐.”

엄마는 저리 말했지만, 사실이 그러하지 않은가.

감히 내게 섭외를 제안하면서 진행 여부가 불확실한 건을 놓고 계약하자니.

“확정되면 그때 연락하라고 해요. 그 전엔 연락하지 말라 하고.”

“근데, 민규야. 그쪽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샘플 영상이라는 걸 찍어야 한대.”

“샘플 영상이요?”

“응. 그러니까 미래 그룹에 우리가 이런 걸 찍겠습니다라고 맛보기로 보여주는 거지. 그게 통과되어야 우리 멋진 민규가 제대로 된 홍보 영상을 찍을 수 있거든.”

“휴. 그러니까 그걸 제가 왜 하냐고요. 통과되면 그때 찍으면 되잖아요.”

“통과되려면 네가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춰야 하니까.”

“그건 돈은 받은 거예요?”

“뭐? 돈?”

그렇잖은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일단 얼굴을 비췄으면 그에 맞는 돈을 주는 게 응당 당연한 일 아닌가?

엄마는 그를 달랬다.

“돈은 최종적으로 비디오쉐어에서 수주받으면 그때 받기로 했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

“왜요?”

“당연히 우리 아들이 나오는 영상이 뽑히지 않겠어? 그러니까 너는 그냥 열심히 연기만 하면 돼.”

뭐 그거야 그렇다.

나, 박민규가 출연하는데 안 뽑히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알았어요. 언제 찍어야 하는데요?”

“내일 오후에 유치원 일찍 하원하고 가면 돼.”

“네에.”

박민규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했다.

어서 빨리 엄마처럼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기 싫은 건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자신이 엄마의 꼭두각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박민규였다.

#

“어서오세요. 와. 네가 민규로구나. 정말 잘 생겼네?”

“..안녕하세요.”

엄마를 따라 일찍 하원한 박민규는 한 공유사무실에 도착했다.

‘하나, 둘, 셋, 넷..겨우 열 명인가?’

사무실도 작았지만 일하는 사람도 고작 열 명밖에 안 된다.

뭐 이렇게 작은 곳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의 당부도 있고 하니 굳이 얼굴에 이를 드러내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은 연기자였으니까.

자신을 반갑게 맞은 남성은 자기를 이 회사의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안녕. 나는 여기 비디오쉐어의 사장인 심태열이라고 해. 이번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너거든. 그래서 말인데 잘 좀 부탁할게. 게다가 예전에 한 번 찍어보기도 했다니까, 믿는다. 하하.”

당연하지. 이 사람 보는 눈이 있네.

박민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뻣뻣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웬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노트북을 가져왔다.

“안녕, 민규 군. 나는 소라 누나라고 해.”

“누나?”

“아. 누나는 좀 그런가. 하하. 그럼 이모 정도?”

장난하나. 이 아줌마가.

박민규의 눈썹이 올라가려 하자 엄마가 서둘러 나섰다.

“그래서. 이 노트북은 뭔가요?”

“최근에 미래 그룹에서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올린 영상인데 저희가 극비리에 수집한 영상이에요. 회장 컨펌까지 갔다고 하니까 이번 영상을 찍을 때 참고하면 좋을 거예요.”

“회장 컨펌이요? 설마 황태진 회장님이요?”

“네. 맞아요.”

“어쩜. 민규야. 정신 단단히 차리고 영상에 집중하렴. 알았지?”

“네에..”

박민규는 귀찮다는 듯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딱히 재미있거나 이색적인 부분은 없다.

‘로비를 소개하는 영상인가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딱딱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박민규의 눈빛이 어느새 예리하게 빛났다.

아주 어린 꼬마가 즐거운 표정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는 장면에서 말이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도 있겠지만, 연기자인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이건 100% 연기야.’

대단히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저건 몰래카메라 형식을 취한 게 아니라 분명 의도를 가지고 촬영한 장면이었다.

“스, 스토옵!”

“응? 민규야. 왜 그래?”

박민규를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지금 저기 나오는 여자아이. 쟤 누구인가요?”

그러자 자신을 소라 누나. 아니 소라 이모라고 소개한 여성이 심태열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입을 열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네. 너처럼 아역배우는 아닌데 저 영상에서는 배우로 출연한 일반인이야.”

“네? 쟤가 일반인이라고요?”

“응. 왜? 뭔가 다른 점이 있니?”

물론이지! 지금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저걸 보면서도 느끼는 게 없나?

연기 학원 선생님이 늘 강조하던 바로 그거였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당 역할에 몰입해야 한다고.

다만 연기라는 건 과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그게 너무 평범하면 티가 나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저 여자아이가 짓고 있는 저 미소와 동작은 명백히 과장된 연기였다.

자신이 현재 유치원에 다니고 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평소 저런 얼굴을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어. 그런데 대체 누구지?’

자기와 동시대를 사는 아역배우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소속사나 학원은 달라도 이 바닥은 생각보다 좁아서 어떻게든 다 알게 되니까.

그런데 저 아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박민규가 뚫어져라 모니터를 쳐다보자 심태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규야. 저 아이가 신경 쓰이니?”

“네.”

“사실 저 친구가 우리의 경쟁상대이기도 하단다.”

“경쟁상대요?”

“응. 총 3곳이 1차 합격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저 아이를 아역배우로 쓰는 영상을 만들고 있을 게 분명하거든.”

“그래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달리 박민규의 태도가 진지해지자 심태열도 힘을 주어 말했다.

“맞아. 그래서 넌 어떠니? 나는 이번에 다른 업체들을 다 따돌리고 우리가 미래 그룹 계약을 따서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그 한 마디가 박민규의 마음을 불살랐다.

사실 요즘 좀 자만했던 게 사실이다.

또래 중에 자기보다 연기를 잘하는 친구도 없었고, 학원 선생님도 너는 이대로만 자라면 천만 배우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는걸.

박민규는 이번 영상에서 자신의 한계를 실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눈앞에 있는 상대.

심태열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

“우아아! 이거어 아빠아가 만둔 거에요?”

“응. 어때? 잘 만들었어?”

“우웅!!!! 진짜로오 최고오오!”

헤헤. 역시 우리 딸이 보는 눈이 있다.

그도 그럴 게 이거 만든다고 어제 밤을 새웠거든.

나는 이번 영상을 실사가 아닌 모션그래픽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하연이를 닮은 2D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어린이 캐릭터가 나와서 미래 그룹의 AI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골자.

실사가 아닌 모션그래픽으로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AI를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모션그래픽을 이용하면 이걸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게 훨씬 용이해져.’

게다가 하연이를 닮은 예쁜 어린아이 캐릭터가 나와서 소개해준다면 더 몰입감이 생길 터.

다만 모션그래픽을 사용하는 만큼 하단 동그라미 안에 하연이가 녹음하는 모습을 넣는 것은 뺄 생각이다.

배경은 모션그래픽인데 실제 사람 얼굴이 들어가면 뭔가 이질감이 들 테니까.

나는 짧게 구성된 스토리보드를 하연이에게 보여주었다.

“하연아. 아빠가 이번 영상 관련해서 짧게 그려 본 거야. 한번 보고 네 생각을 말해줄래?”

하연이가 내가 건넨 노트를 받더니 곤란한 얼굴을 한다.

“아빠아.”

“응.”

“나아 이거 못 일께쪄.”

“뭐? 너 어린이집에서 한글 배웠다며?”

“이거언 너무우 그리 마나!”

아. 그런가?

최대한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적게 써 놨는데 아직 하연이한테는 무리인가 보다.

‘하긴 이제 고작 3살짜리한테 내가 뭘 기대한 거야.’

나는 스스로를 꾸짖고는 하연이를 무릎에 올린 뒤 내가 짠 스토리보드를 설명해주었다.

“1분짜리 샘플 영상이라 아주 기본적인 부분만 들어가 있어. 맨 처음에 하연이가 나와서 자신을 잠깐 소개한 다음 AI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이야.”

“우웅!”

하연이는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엄 나눈 노금만 하면 되에?”

“응. 일단 아빠가 모션그래픽 다 만들면 거기에 맞춰서 하연인 목소리만 녹음해주면 돼.”

“아라쪄요!”

으이구. 정말 누구 새끼인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다니깐.

그렇게 약 일주일에 걸쳐 샘플 영상 제작에 집중했다.

전문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고, 비디오쉐어에 다닐 때도 가끔 모션그래픽을 제작해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하연이가 대단한 게 영상의 캐릭터가 입을 여닫는 것을 보고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녹음해주는데,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

드디어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본 샘플 영상을 드디어 미래 그룹에 넘겼다.

“끄아아아. 죽겠다, 죽겠어.”

그리고 알람을 맞춘 다음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저번처럼 또 늦잠을 자버리면 곤란하니까.

#

미래 그룹 본사 건물.

마침 금요일이라 대부분 일찍 귀가한 가운데, 한 남자만이 적막한 회사에 홀로 남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홍보팀 전주현 이사였다.

그는 담당자에게 전달받은 3개의 영상 파일을 바탕화면으로 옮겨놓고 도착한 순서에 따라 늘어놓았다.

제일 먼저 온 영상은 대형 영상 제작업체인 A 미디어였다.

미래 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같은 프로젝트를 두고 다양한 규모의 거래처와 일을 진행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번 홍보 영상 제작 건도 대형 업체 1곳. 중소 업체 1곳. 프리랜서 1곳. 이렇게 3곳을 선정하여 경쟁에 부친 참이었다.

그중 A 미디어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영상 제작 업체 중 하나였다.

이들은 마치 한 편의 잘 만든 다큐멘터리와 같은 샘플 영상을 보내주었다.

“안준기를 내레이터로 쓰다니. 머리 좀 굴렸군.”

안준기는 대한민국 사람 중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국민배우다.

그의 나긋나긋하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신뢰감이 든다.

거기에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부 연구원들을 여러 명 인터뷰할 예정이라고 하니 전문성도 돋보인다.

“나쁘지 않아. 신뢰감과 전문성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선택지 같군.”

다만 가격이 다소 높았다.

5억이라니.

우리가 미래 그룹이라 다른 곳에 비해 더 높이 부른 게 분명하다.

두 번째 온 영상의 주인공은 중소업체인 비디오쉐어였다.

이전에도 우리와 영상 일을 해본 적이 있는 인기 남자 아역배우, 박민규를 내레이터로 하여 경쾌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AI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확실히 유튜브는 TV와 다르게 빠른 호흡이 더 잘 먹히니까.

때때로 박민규가 화면에 등장해서 어려운 개념을 소개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하겠다는 건가? 괜찮은 아이디어로군.”

A 미디어가 준비한 영상이 TV 포맷에 잘 어울린다면 비디오쉐어가 준비한 영상은 유튜브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입찰 가격은 3억.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가격이지.’

전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우스를 이동해 마지막 영상을 더블 클릭했다.

바로 황태진 회장이 눈여겨보라는 김진형의 영상이었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유튜브에 이런 부류의 영상이 많다지만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닌가.”

젊은 층은 모르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이런 애니메이션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전주현은 해당 영상을 계속해서 다시 돌려보았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영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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