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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5화 (15/135)

내 딸은 국힙원탑 15화

내 요리를 맛본 하연이와 유주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와와! 쩡마알 마시쪄용!”

“맛 좋은데?”

하연이 준다면서 유주는 왜 따라왔냐고?

내가 식사를 준비했다는 말에 하연이가 유주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저번에 내가 잠에 빠져 있을 당시 어린이집에서 유주가 밥을 해준 모양인데 그때 은혜를 갚고 싶단다.

하지만 유주는 아직 자기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에 가겠다고 말했고, 하연이는 그럼 유주가 끝날 때까지 어린이집에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연이 고집이 보통 고집이어야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빠는 먼저 집에 돌아가서 요리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하연이 너는 선생님 끝나면 같이 집으로 올래?”

“네에! 쪼아요오!”

처음에는 난처하다는 얼굴을 하던 유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준비했고, 유주가 하연이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오는.

제삼자가 보면 다소 오해할만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실제로 유주가 하연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무슨 신혼부부도 아니고. 참.’

아무튼 유주는 진심으로 놀란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런데 너 원래 요리에 전혀 관심 없지 않았어? 요리 같은 건 사치라면서 말이야.”

“내가 그랬나?”

“응! 똑똑히 기억하거든? 좀 재수 없는 표정으로 그랬었지.”

“선땡니임. 아빠가아 머라꼬오 해쪄요?”

유주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는 얼굴에 힘을 준 채 입을 열었다.

“음식은 먹고 나서 우리 몸에 영양분이 되기만 하면 돼. 결국 똥으로 나오는 걸 뭘 요리를 하고 자빠져 있어. 대체 선두(仙豆)는 언제 상용화되는 거야. 짜증 나.”

“와아. 아빠아랑 또오가타!!”

헐. 내가 정말 저랬다고?

사고방식은 뭔가 나와 비슷한데, 저렇게까지 말했다니. 스스로 듣기에도 좀 재수 없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후훗. 과거에는 무지몽매한 1인이었지만 지금은 달라. 나는 요리의 즐거움을 깨달았지.”

“이열. 이제 제법 아빠다워졌는 걸?”

“하연아. 아빠가 매끼 새로운 식사를 선보여주마!”

“와아! 아빠아 최고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가볍게 티타임을 가졌다.

“집에 이런 거밖에 없어서. 쏴리.”

믹스커피가 담긴 컵을 유주에게 내밀자 유주가 괜찮다며 싱긋 웃는다.

“우리가 언제 또 고급 커피 마셨다고.”

유주가 쿨한 얼굴로 커피를 받는데 옆에 있던 하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이?”

마치 나와 유주가 전에 무슨 사이였는지 묻는 것처럼.

유주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흠흠. 유튜브 잘 봤어.”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하연이가 이야기해줬거든. 채널 구독도 눌렀어.”

“땡큐. 하연이가 영업 잘하네. 하하.”

일단 주변의 지인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구독자를 늘리는 게 채널 성장의 기본이었다.

‘비디오쉐어 있을 땐 사장이 주변 지인들까지 다 구독시키라고 해서 짜증 났었는데.’

자발적으로 구독을 하는 것과 강제로 구독을 하는 건 이렇게나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유주는 책상에 있는 컴퓨터와 모니터를 가리키더니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새 못 보던 게 생겼네? 돈 좀 벌었나 봐?”

“물론. 나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그랬잖아. 그 결과지.”

“다행이네. 하연이 보기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

“그래. 고맙다, 유주야.”

유주는 계속 컴퓨터 쪽을 쳐다보더니 불쑥 물었다.

“그런데 말야. 혹시 하연이 촬영하는 거 직접 볼 수 있어?”

“하연이 촬영?”

“응.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은 많이 봤는데 실제로 어떻게 찍는지 궁금해서.”

“그래? 안 그래도 오늘 <슬픈 연인> 녹화할 차례였거든. 잘 됐다. 녹화하는 거 보고 가, 그럼.”

슬픈 연인이라는 말에 유주가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와 정말? 안 그래도 전에 하연이랑 어린이집에서 너 기다릴 때 그 노래 들었었거든!”

“그랬어? 어쩐지 하연이가 이하연 노래를 많이 알더라니. 네가 틈만 나면 틀어주는구나?”

“뭐래. 네가 집에서 맨날 틀어주니까 아는 거 아니었어?”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집에서 이하연 노래를 틀어준 적이 없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에서 유주가 틀어줘서 아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하연이가 갑자기 야단법석을 부린다.

“아빠아!! 빠리빠리 찍어요오. 네에?”

“으응. 알았어, 잠시만.”

나는 컴퓨터를 켜서 <슬픈 연인>의 mr곡을 다운받는 등 촬영을 준비했다.

몇 분 뒤.

“오케이. 준비 완료.”

“이제 하연이 노래 부르는 거 볼 수 있는 거야?”

“응. 혹시 다른 소리 들어가면 안 되니까 조용히 해줘.”

“물론이지. 난 여기 있으면 될까?”

“어. 카메라 앞에만 안 나오면 돼.”

하연이는 그린 스크린 앞에 있는 의자에 천천히 앉은 다음 카메라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본 유주가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어쩜. 쟤 왜 저렇게 침착한 거니? 표정 봐. 나 순간 소름 돋았어!”

“조용.”

“아앗. 응. 미안.”

나는 조명을 켠 다음 하연이에게 물었다.

“하연아. 준비됐어?”

“네에, 아빠아!”

“오케이. 유주야. 여기 카메라 앞에서 손뼉 좀 쳐 줄래?”

“카메라 앞에서?”

“응. 영화 찍을 때 하는 거 있잖아. 슬레이트로 치는 거. 그거 대신 손뼉 쳐주면 돼.”

“아하. 알겠어.”

“그럼. 스탠바이. 큐!”

내 신호에 맞춰 유주가 박수를 쳤고, 나는 이와 동시에 준비한 mr 곡을 틀었다.

하연이는 도저히 3살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슬픈 얼굴을 지었다.

내 딸이지만 감정 잡는 건 정말 타고났다.

나까지 괜히 우울해질 정도로.

하연이는 천천히 반주에 맞춰 몸을 흔들더니 마이크를 향해 입을 가져가 댔다.

“우리카아 어또케 헤어쪘누운지. 너눈 쩡말로오...”

음색 좋고. 표정 좋고. 자세 좋고.

나도 모르게 방긋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연이는 2절까지 NG 하나 없이 완벽하게 소화했고, 나는 기분 좋게 외쳤다.

“컷! 완벽해! 수고했어, 하연아!”

“수고오하셨씁니다아!”

실제 프로 가수와 협업한 느낌.

나와 하연이가 하이 파이브를 하자 유주가 멍한 얼굴로 박수를 친다.

“와. 대체 내가 뭘 본 거지. 이하연 신규앨범 녹음장에 와 있는 거 같아 정말.”

뭐 그 정도까지야.

아무튼 이번 <슬픈 연인>을 끝으로 이하연의 1집 앨범에 수록된 곡은 모두 촬영이 끝났다.

그녀의 1집 앨범이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팔로워 수는 생각만큼 폭발적으로 늘진 않았다.

‘이제. 2천 명 수준. 물론 채널을 시작한 지 1달 만에 이렇게 구독자 수가 는 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상 퀄리티에 비하면 아쉬운 게 사실이야.’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음에 녹화할 영상은 이하연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자기 이름을 각인시킨 2집 앨범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동일한 컨셉의 영상을 곧바로 올리는 건 좀 그렇고, 당분간은 일상 영상을 올리는 게 좋을 것이다.

‘같은 컨셉의 영상만 주야장천 올리면 쉽게 질릴 수 있으니까.’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해본 적은 없지만 비디오쉐어에 다닐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게 이럴 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PKT 엔터테인먼트의 송규형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대표인 이태식만큼은 아니었지만, 인물 보는 눈은 둘째라면 서러워할 만큼 빼어난 선구안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림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어린이집 근처에 차를 댄 뒤 주변을 서성였다.

‘조사에 의하면 여기가 분명한데.’

김하연.

‘HiYeom하연’ 채널의 주인공이자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공연 영상의 당사자.

그리고 이태식 대표가 자신에게 찾아보라고 말한 친구.

더 놀라운 것은 김하연이 KBC 9시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미혼부의 자녀로 말이다.

약한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지만, 매의 눈을 가진 송규형을 속일 순 없었다.

무엇보다도 김하연의 아빠인 김진형은 자신이 운영 중인 ‘하연아빠TV’라는 채널에서 자신을 김진형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뉴스에 나온 이름이랑 같다.”

그는 어린이집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아이한테 먼저 접근해서 의심받는 것보다는 애 아빠가 오면 그때 접근하는 게 좋겠지.’

애 아빠한테는 뭐라고 하면 좋으려나.

‘뉴스랑 유튜브를 보고 왔다고 하면 좀 이상할 수 있겠지. 미혼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그리 좋지 않으니 날 꺼릴 수도 있어. 그것보단 그냥 자연스럽게 길을 가는 척하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는 궁리 끝에 김진형이 나타나면 근처를 지나가다가 슬쩍 말을 걸어볼 심산이었다.

길거리 캐스팅이라.

생각해 보면 길거리 캐스팅은 본인도 참 오랜만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번화가에 죽치고 살았는데 말이지.’

송규형은 아련한 얼굴로 과거를 회상했다.

요즘은 지망생들이 제 발로 기획사를 찾아오는 시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으니 굳이 길거리 캐스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이랄까. 자신이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 나이쯤 되면 관성으로 일하기 마련. 송규형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신입 시절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뉴스에서 본 김진형이 근처를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린 뒤 천천히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다가 김진형이 김하연과 같이 어린이집을 나왔을 때를 노려 말을 건넸다.

“저, 저기요!”

“네에?”

“혹시 이 아이의 아버지십니까?”

“네에. 제가 아빠입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김진형은 생각보다 어려 보인다.

고작해야 20대 중후반?

40대인 송규형은 영업용 미소를 지은 뒤 입을 열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김진형에게 건넸다.

김진형이 명함을 읽어보고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PKT 엔터면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 아닌가요?”

“맞습니다. 제가 거기서 실장으로 일하는 사람인데요. 최근에 저희가 연습생의 범위를 미취학 아동으로까지 늘리는 중이거든요.”

“그런데요?”

김진형이 순간 방어적인 자세로 김하연을 감싸고 돈다.

송규형은 경계할 필요는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딱 이 친구를 봤는데, 너무 귀여워서 말이죠. 혹시 아이를 배우나 가수로 키울 생각은 없으신가 해서요.”

“말씀은 감사한데, 너무 갑작스럽네요.”

“물론이죠. 저 역시 이런 곳에서 이런 아이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명함 가지고 계셨다가 다음에 생각나면 연락주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송규형은 싱긋 웃으며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자기 차 쪽으로 걸어가면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실물을 보니까 훨씬 더 예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네. 어릴 때부터 연습시키면 분명 대성하겠어.’

김하연은 이하연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이하연의 곡을 완벽하게 따라 부르지 않던가.

타고난 미모에 재능까지.

이제는 갈고 닦기만 하면 될 일.

‘아빠도 아이를 그쪽으로 키울 생각이 있으니까 유튜브 채널을 만들지 않았을까? 분명 연락이 올 거다.’

그는 100% 확신에 차서는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맨날 사무실과 촬영지만 오가다 오랜만에 이렇게 한갓진 동네를 걸으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 송규형이었다.

#

집에 돌아온 나는 조금 전 만난 상대가 주고 간 명함을 한참 동안 매만졌다.

‘PKT 엔터라니. 역시 하연이는 그쪽 세계 사람들 눈에도 띈다는 뜻일까.’

안 그래도 하연이를 예능 쪽으로 키워낼 생각을 하던 차였다.

하연이 역시 자신의 꿈은 가수라고 그러지 않았던가.

유튜브를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순 있었지만, 가수로 데뷔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해외에선 몇몇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고 하지만 한국은 거의 없잖아. 그다지 성공한 케이스도 없고.’

그럴 바에는 유명 기획사에 아이를 맡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게다가 PKT 엔터였다.

우리가 직접 찾아간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먼저 길거리 캐스팅을 제안한.

‘실장이라면 제법 높은 직급일 텐데. 한번 전화 해서 상담이나 받아볼까?’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하연이가 내 손에서 명함을 뺏었다.

“앗! 하연아 왜 그래? 그거 돌려줘.”

하지만 하연이는 명함을 쓰레기통에 휙하고 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하연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렇게 버릇없는 아이로 키운 기억은 없는데. 이제 하연이도 조금 머리가 컸다 이걸까.

그런데 하연이의 표정은 담담하다.

하연이는 단호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빠아. 이론거어 피료업떠요!”

응? 너 저기가 어딘 줄 알고 하는 소리니. PKT 엔터라고.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 말이야.

내가 다시 쓰레기통에서 명함을 꺼내려고 하자 하연이는 나를 붙잡더니 컴퓨터를 가리켰다.

“노오! 난 유투부우로 유며엉해 질꺼얏!”

허허. 이 친구 단호박을 먹었나 왜 이렇게 단호해? 너 아버님이 누구니? 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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