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3화
영상 보정작업을 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현모였다.
[구현모] : 야! 하연이 영상 봤다. 노래 쩔던데?
응? 뭘 이야기하는 거지? 노래하는 영상을 올린 적이 없는데.
설마 지금 보정작업을 하고 있는 영상을 말하는 건가?
> 너 설마 우리 집에 감시 카메라 같은 거 설치했냐?
[구현모] : 뭔 개소리야. 내가 기자라지만 그딴 짓은 안 해. 지금 유튜브 켜봐.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하연이 노래 부르는 거 있다니까!!
링크 : https://youtu.be/************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하연이 어릴 적 영상을 올린 게 지금에서야 뜰 리는 없을 테고, 그땐 노래하는 영상도 없었다.
나는 현모가 보낸 링크를 눌렀다.
그러자 며칠 전 푸르니 공원에서 이하연의 히트곡 <완벽한 날>을 부르는 하연이의 영상이 보였다.
‘뭐야? 이걸 누가 올린 거지?’
올린 사람을 클릭해봤더니 그냥 먹방 영상 몇 개가 다다.
음식과 가게가 익숙한 게 우리 동네 식당인 것 같기도 하고.
백스페이스를 눌러 하연이가 노래 부르는 영상으로 돌아왔다.
조회수가 벌써 30만을 넘겼고, 댓글은 500개가 넘어간다.
원래 13세 미만 아동이 나온 콘텐츠에는 댓글을 달 수 없었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계적인 필터링에 의지하다 보니 간혹 이렇게 아동이 나온 영상임에도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있었다.
└ 아 진짜 쪼꼬미가 마이크 들고 졸귀탱!!!!!!!! 어쩜 이렇게 춤도 잘 추니. 언니가 사랑해♡
└ 으허허허허 아기 넘넘 귀엽다
└ 귀여운 건 둘째치고 노래랑 춤 진짜 잘한다 어디 대형 기획사 소속 비밀병기인가?
└ 저 꼬마 이하연의 환생인 듯. 싱크로율 5000% 심쿵
└ 완벽한 날이 고음에 은근 엇박잔데. 아기가 저걸 소화하다니
└ 2:15 4단 고음 봤어? 왠만한 성인 가수도 저 정도는 못할 듯
└ 왠이 아니라 웬입니다
└ 지금 몇 번째 다시 보는지 모르겠어...너무 긔여워 흑흑...♥♥
└ 캬-아 너무 이뻐! 숨 넘어간다
역시 우리 딸.
다른 이들도 너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나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누르며 빠르게 편집에 집중. 영상을 완성시켰다.
그 사이 친구 놈들한테 더 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신상준] : 커어어억!!! 하연이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고? 춤 실력은 또 뭔데?
[박성현] : 새벽까지 일하다가 겨우 잠든 지 1시간밖에 안 됐는데 카톡 와서 깼다. 씨발놈드라. 잠 좀 자자! 잠 좀 자!!
성현이가 문자 아래로 마구 화를 내는 이모티콘을 첨부한다.
[구현모] : 성현아 위에 내가 올린 유튜브 링크 좀 보고 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박성현] : 유튜브 링크? 뭐 잼난 거라도 있냐? 나 지금 졸려 뒤지겠다
[구현모] : 일단 보고 와서 말해
잠시 뒤
화면이 해맑게 웃고 있는 이모티콘으로 도배됐다.
[박성현] : 애두라. 나 기부니가 좋아졌다
[신상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힐링 좀 하고 오셨쉐요?
[박성현] : 와 이거 진심 마음이 편안해지네. 지금 나 있는 데가 2층 침대만 10개 있는 20인실이거든? 어두컴컴한 곳에서 혼자 반딧불 놀이한다고 꾸사리 먹었는데 다들 이거 보더니 난리다
> 왜 어쨌는데?
[박성현] :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데. 피로가 싹 달아난다고.
[구현모] : 고럼고럼. 이하연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이것보단 못할 듯
[신상준] : ㅇㅇ 하연이가 100배 더 귀엽지! 난 오늘부터 하연이 1호 팬 하련다
[구현모] : 얌마 새치기 하지 마. 1호 팬은 나야 나!
[박성현] : 그럼 나는 2호팬
아주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난리 부르스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다음 미리 만들어 놓은 채널에 방금 편집한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채널 이름은 ‘HiYeom하연’.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조금 말장난을 쳐봤다.
하연이와 발음이 유사한 온라인 인사말인 하이염에 하연이 이름을 붙인 것.
하연이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도 괜찮단다.
오래지 않아 편집한 영상이 모두 올라갔고, 나는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즉시 댓글을 달았다.
[이 영상에 나온 하연이의 아빠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연이를 좋아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하연이 영상은 HiYeom하연 채널에서만 올릴 예정입니다. 방금 새 영상을 올렸으니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iYeom하연 채널 : bit.ly/2****6*]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사람들도 내가 채널 링크를 함께 올리자 대댓글을 달았다.
└ 이거 레알임. 영상에 나온 꼬마가 또 노래 부르는 거 있어!
└ 진짜 너무 귀엽다 ㅋㅋㅋㅋㅋㅋㅋ 구독 버튼 눌렀습니다. 앞으로 좋은 영상 부탁드릴게요~
└ 하연이 너무 이뻐용♥♥
└ 김하연의 이하연 따라잡기인가요? ㅎㅎ 하연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렴! 오빠가 응원할게!!!
└ 하연이 너무 노래 잘해요! 진짜 힐링 ㅠㅠㅠㅠ 아버님 부럽
놀라운 속도로 대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과연 유튜브. 정말 사람이 많다.
순식간에 구독자 수가 500명을 돌파한다.
그리고 채널에 올린 첫 콘텐츠인 ‘멀리서’를 부른 영상은 조회수 5,000을 돌파했다.
올린 지 2시간도 안 돼서 말이다.
이런 기세라면 정말 금방 실버 버튼을 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기분 좋게 유튜브 창을 끄고 곤히 자는 하연이의 옆에 누웠다.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
하연아. 아빠 옆에 와줘서 고마워.
#
이태식은 성공한 가수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연예 기획사 대표였다.
젊은 시절 그는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발라드와 트로트 일풍이던 대한민국 음악계를 신나는 댄스곡이 점령하게 만든 타고난 춤꾼.
그야말로 춤의 신.
하지만 기획사 대표가 된 뒤에는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보단 신인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가요계 미다스 손.
‘요즘 괜찮은 물건이 없단 말이야.’
그의 일과 중 하나는 유튜브에 접속해 실력 있는 신인이 찾아내는 것이었다.
일명 옥석 고르기.
아이돌을 꿈꾸며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되겠다고 제 발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무언가 자기만의 색이 부족했다.
전국 각지의 보컬 및 댄스 학원에서 요즘 유행하는 몇몇 가수의 스타일대로 획일적인 트레이닝을 시키는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튜브를 살펴보다가 추천 영상으로 뜬 영상을 클릭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섬네일.
“진짜. 다들 너무하는구먼.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뭘 바라는 건지.”
자신도 기획사를 운영하다 보니 초등학생 연습생들도 흔하게 있었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춤과 노래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는 별생각 없이 영상을 클릭해 재생했다.
“오빠아 어우구울을 뽀니 이페서 멤도얼던 마리~”
발음이 부정확해서 그렇지.
춤과 노래 모두 완벽했다.
마치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이하연이 저 아이의 몸을 빌려 다시 공연을 한 것 같은 완벽 그 자체.
게다가 저 애절한 표정과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동작은 어떻단 말인가.
‘저런 걸 저렇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다고?’
이건 배움의 영역이 아니었다.
‘타고난 거다. 태어났을 때부터 뮤즈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거야!’
그는 같은 영상을 다섯 번이나 돌려 보았고, 아이의 아빠가 직접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을 통해 그녀의 또 다른 노래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이태식이 손가락으로 자기 책상을 반복해서 두드렸다.
뛰어난 재능을 발견했을 때 그가 늘상 하는 버릇.
“이건 진짜배기야.”
그는 즉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부르셨습니다, 대표님.”
“송 실장. 내가 지금 카톡으로 유튜브 링크 하나 보내 줄 테니까 이 친구가 누군지 바로 알아봐 줘요.”
“유튜브 링크요? 좋은 인재를 찾으셨나 보죠?”
“그래. 이건 진짜 장난 아니야. 송 실장도 보면 놀랄걸? 이하연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이하연의 환생이요? 그 정도인가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내 알아보고 답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태식은 고작 단 2개의 영상을 보았을 뿐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 원석?
아니다. 저건 이미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보석이었다.
그는 다짐했다.
어떻게든 저 아이를 자신의 소속사로 데려와 최고의 가수로 키우겠다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제안을 받고 거절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하연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영유아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하연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
수많은 이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감탄사를 날린다.
“와. 아기 예쁜 거 보소.”
“헤에. 까꿍. 몇 살이니?”
“이쁘다. 이뻐. 딸이 아빠 닮아서 참 예쁘네.”
단 2개 역만 가면 내리는데 서로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나서니 어쩔 수 없이 하연이와 함께 좌석에 앉았다.
하연이는 지하철이 처음이라 당황할 법도 한데 의젓하기만 하다.
“하연아. 이게 지하철이라는 거야. 어때? 신기하지?”
“네에.”
그다지 영혼 없는 반응.
여자아이라서 탈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이번 역은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오른쪽. 오른쪽입니다.”
안내방송과 함께 나는 하연이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병원까지 지하로 바로 이어져 있다.
인포메이션센터에 도착해 어디서 영유아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는지 묻자, 담당자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셔서 오른쪽 끝으로 가시면 소아청소년과가 있을 거예요. 거기서 다시 문의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를 떠나려는데 담당자는 하연이에게 사탕을 하나 건네준다.
“안녕. 이거 이모가 주는 선물이야. 받아.”
“고맙뜹니다아!”
하도 주변에서 하연이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는 물론이고 하연이도 이제는 무덤덤하다.
그러려니 싶달까.
하연이는 받은 사탕을 주머니 속에 쏘옥 넣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하연이가 사탕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연아. 사탕 안 좋아해?”
“네에. 시로해요.”
“진짜? 왜? 아빠는 어릴 때 사탕 좋아했는데.”
그런데 하연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걸작이다.
“이빠알 썩자나요.”
으이구. 진짜 어쩜 이렇게 똑똑한지. 아빠가 누군지 얼굴 한번 보고 싶군.
소아청소년과에 도착한 나는 영유아 검진을 위해 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슬쩍 성현이에 관해 물어봤다.
“혹시 여기 박성현이라는 인턴 의사가 있지 않나요?”
“응? 성현 쌤이요? 성현 쌤 지인인가요?”
“네. 친구예요. 오늘 여기 온 것도 성현이가 불러서 왔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잠시만요. 성현 쌤 지금 검사 중이시거든요. 그런데 아버님. 혹시 문진표 작성하고 오셨나요?”
“문진표요?”
“이전에 영유아 검진 안 해보셨어요?”
“네. 이번이 처음이에요.”
“응? 애가 꽤 커 보이는데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문진표 작성에 대해 알려주었다.
별다른 건 없고 현재 아이의 영양 교육 상태나, 근육 발달 상태에 대한 내용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이 주민등록번호 알려주시겠어요?”
“아 그게...”
나는 낮은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손뼉을 치며 말한다.
“아! 관련해서 성현 샘이 이야기한 게 기억났어요! 그분이셨구나. 잠시만요.”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말했다.
“일단 접수 완료했으니 저기 앉아서 차분하게 문진표를 작성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하연이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소아청소년과는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대부분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다.
주변에는 나 혼자 남자다 보니 괜히 어색한 느낌도 든다.
문진표를 작성해서 간호사에게 넘기고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하연이를 부른다.
“하연이요.”
“네.”
“우선 키와 몸무게부터 잴 거예요.”
과연 얼마나 컸으려나.
예전에 하연이가 어릴 적에는 집에 있는 30cm 자와 체중계를 통해 키와 몸무게를 측정했었는데.
나는 추억에 아련하게 젖은 채 하연이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