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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2화 (12/135)

내 딸은 국힙원탑 12화

“술 파티는 딱 9시까지다.”

“뭐 9시까지라고?”

“야. 김지녕이. 어떻게 그때까지만 술을 마시냐? 딱 기분 좋아질 타이밍이구먼.”

“맞아. 2시간밖에 안 남았어.”

친구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아우성쳤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유주가 9시까지만 하연이 봐주기로 했단 말이야.”

“야. 그럼 9시부터는 우리가 하연이 봐주면 되지!”

“얌마. 술 취한 아저씨들이 하연이를 보겠다고? 다들 벌써 취했냐?”

절대로 안 될 말이지.

하연이의 청정구역 보금자리를 방해하려는 녀석들은 친구라도 가차 없다.

녀석들은 몇 번이나 더 9시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했지만, 9시는 하연이가 잘 시간이기도 했고, 유주한테도 그 이상의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결국 녀석들도 오케이를 선언한 후에야 술자리가 펼쳐졌다.

빠른 속도로 술잔이 오갔고, 폭탄주로 마시니까 금방 취기가 오른다.

게다가 그동안 육아한다고 술 마실 기회가 없어서 그랬는지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취하는 느낌이다.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여기가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술을 마시며 떠들어댔다.

진짜 이놈들은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계속 연락하고 만남을 이어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거렁뱅인데.

그것도 애까지 딸린.

‘너희는 잘나가는 의사에. 변호사. 그리고 기자고.’

내가 멍한 얼굴로 두 손을 어깨 뒤로 뻗어서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자, 성현이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너 하연이 영유아 건강검진은 했냐?”

“영유아 건강검진? 그게 뭔데?”

“어이구. 이런 놈이 아빠라니.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 영유아를 대상으로 성장에 이상은 없는지, 발달 상태를 체크하고 관리하는 국가 검진이야.”

“아. 그거. 병원에 갈 때마다 하연이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통해 못 했지.”

“어휴! 너 내일 당장 하연이 데리고 우리 병원에 와.”

“너희 병원? 거기가 어딘데?”

성현이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막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국가고시를 보던 상태였다.

‘그 뒤로는 연락하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녀석은 내게 술을 따르더니 늠름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얼마 안 멀어.”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보라매병원.”

“보라매병원이면 완전 가깝네?”

“그래. 택시 타고 오면 10분도 안 걸린다. 지하철도 2코스밖에 안 되고.”

녀석. 보라매병원에 다니고 있었구나.

근처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라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하연이 키운다고 너무 세상하고 떨어져 살았네.’

내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인턴 실습 중이긴 한데 곧 레지던트가 될 거야. 그때 되면 시간 내기 더 빠듯할 테니까 그 전에 와.”

“레지던트 되면 많이 바빠?”

“당연하지! 지금도 하루에 2시간 자기도 힘들다, 인마!”

“장난 아니네. 그런데 술 마실 체력이 있어?”

“너 보려고 왔지. 짜샤. 형님한테 술이나 한잔 따라봐.”

아무튼 성현이가 의사로 있는 병원이 근처라니.

시간을 내서 하연이를 데리고 한번 가봐야겠다.

영유아 검진이라는 것도 받아보고.

그런데 느닷없이 상준이가 내게 흰색 봉투를 하나 내민다.

“이게 뭐냐?”

“김하연 부흥 지원금.”

김하연 부흥 지원금?

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하연이가 무슨 종교냐? 부흥이라니.”

“아이 혼자 키운다고 고생이 많다. 우리도 사회 초년생들이라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집어넣었다.”

“이런 걸 어떻게 받아! 됐어. 그리고 나 영상 일 하면서 돈 벌고 있어. 필요 없어.”

내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녀석들은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오늘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며 강하게 나왔다.

“큰돈 아니야. 일단 받아둬. 그걸로 하연이 장난감이랑 먹을 것도 좀 사주고 그래.”

“휴. 알았어. 고맙다, 얘들아.”

“고맙긴. 그리고 앞으로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거다. 잠수 타지 말고.”

“그래.”

녀석들과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유주가 하연이를 데리고 왔다.

유주는 방 안을 슬쩍 훔쳐보더니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네.”

유주의 등장에 세 얼간이가 반응을 보인다.

“뭐야! 유주 씨 오셨어요? 오! 하연이도 왔구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어이구, 유주 씨. 그렇게 밖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상준이가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유주에게 집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한다.

유주는 일부러 모두 들으라는 듯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약속했지? 9시까지만 술 마시기로? 하연이 더 늦게 자면 성장에 방해돼. 빨리 재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내 정신 좀 봐라. 빨리 가야겠다.”

“나도. 지금 몇 시간 못 자고 와서 피곤해 죽겠다.”

“하연이 성장에 방해가 될 순 없지. 진형아. 우리 먼저 일어날게.”

유주가 참 대단하다.

건장한 성인 남자 셋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다니.

#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나가보니까 택배가 왔다.

주문한 조립 PC와 촬영 장비들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유후!”

이게 얼마 만에 맞춰보는 최신 사양의 최고급 컴퓨터와 촬영 장비들인지.

한동안 컴퓨터를 세팅하고 장비를 체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나는 편집 중이던 영상 소스를 노트북에서 데스크톱으로 옮긴 뒤 동일한 작업을 진행했다.

역시!

편집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른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프로그램.

게다가 32인치 듀얼모니터를 쓰니까 화면도 넓고 작업도 편하다.

“후후. 쾌적하네, 쾌적해.”

컴퓨터 세팅을 마친 나는 촬영 장비도 함께 점검했다.

4K UHD(Ultra High Definition) 비디오와 HDR(HDR(High Dynamic Range) 기술을 지원하는 최신형 웹캠을 켜자 고급 카메라를 쓴 것처럼 화면이 선명하게 나온다.

‘해상도를 낮추면 프레임이 훨씬 더 부드러워지는군. 굳이 4K UHD까지 킬 필요는 없겠어.’

여기에 탁상용 링 라이트와 고급형 스탠드 마이크까지 책상에 올려놓자 무언가 소형 스튜디오가 차려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만하면 세팅은 완료된 것 같고.

이제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테스트할 시간이었다.

카메라에 건 마이크(gun microphone)를 장착한 다음 일단 밖으로 나갔다.

‘출사는 오랜만이네.’

즐거운 마음으로 동네 골목 이곳저곳을 찍었다.

DSLR에 비해 훨씬 가벼우면서도 뛰어난 성능.

4K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며, 3시간 연속 촬영이 가능했다. 이쯤 되면 거의 캠코더 수준이다.

그밖에 다양한 렌즈와 기능을 제공. 이만하면 혼자서 영상을 찍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역시 비싼 게 좋긴 좋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찍은 영상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찍었지만 참 예쁜 화면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돈 받고 남의 영상만 제작했지, 나만을 위한 영상을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주변 풍경이나 일상을 촬영하고 유튜브에 올려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린이집에 도착.

하연이가 카메라를 발견하더니 열띤 반응을 보였다.

“와아!! 카메라다아아!!”

예전에는 카메라로 자기 찍는 거 싫다고 그러더니.

역시 애들은 금방 바뀌는 것 같다.

집으로 온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회의에 들어갔다.

바로 유튜브 채널 운영을 위한 작전타임.

하연이는 유튜브가 뭐 하는 곳인지 예상외로 잘 알고 있었다.

‘하연이한테는 유튜브가 나 어릴 적 TV 같은 건가?’

정말 요즘 애들은 어릴 적부터 영상을 보고 자란다더니. 나와는 사고방식이나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를 것 같단 생각도 든다.

하연이가 두 눈을 번쩍이며 내게 묻는다.

“아빠아는 이걸 왜 하고 시푼거에요?”

“유튜브? 우리 하연이 예쁜 거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으음. 나의 무얼 보여주고 시푼건데에요?”

뭘 보여준다라.

하연이 네가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하연이가 고개를 저었다.

“어리니딥에서 그랬떠요.”

“뭐라고?”

“남두리 다아 하는 커 따라하면 안덴다코오. 나마누 개에성이 있어야 된따고!”

“개성이라.”

나는 팔짱을 끼고는 고민했다.

사실 영상 제작업체에 근무했을 땐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 주 업무였지 채널 기획이나 영상 기획은 그다지 맡아서 한 적이 없었다.

‘기획은 내 전공이 아닌데.’

그러다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이건 어때?”

“어더언코요?”

“하연이 네가 이하연의 노래를 잘 부르잖아? 3살 김하연의 국민가수 이하연 따라잡기! 일단 네가 이하연의 모든 노래를 따라부르는 콘텐츠를 만들자. 춤출 수 있는 노래는 춤도 같이 추면서.”

“으흠. 그리코요?”

“거기에 틈틈이 너의 일상도 올리는 거지. 식사하거나 잠을 자거나, 동네 산책을 하거나, 아빠랑 수다를 떨거나 하는.”

“음.”

하연이가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가끔 보면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다.

“다 초은데 나쭝에는 다룬 컷도 해쯔면 조케써어요.”

“다른 거? 왜?”

“쩌는 이하여니 아니짢아요!”

이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그래. 우리 하연이는 김하연이지 이하연이 아니다.

자기만의 색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이하연 따라잡기로는 분명 한계가 있을 터.

다만 초반에는 인지도가 낮으니 어린 김하연이 국민가수인 이하연의 노래와 춤을 재현하는 것으로 구독자를 모은 뒤, 유명해지면 독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방향을 트는 게 좋을 것 같다.

“좋아좋아. 우리 하연이 말이 맞아. 어쩜 이렇게 영리할까?”

“헤헤.”

“그럼 일단 노래는 이하연 1집부터 시작할까?”

“네에! 쪼아요!”

“1집 1번 트랙이 아마 ‘멀리서’라는 곡일 텐데. 혹시 그 곡은 알고 있어?”

내 말에 하연이가 나를 뻔히 바라보더니 말이 없었다.

하긴. 1집 자체가 그다지 성공한 앨범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멀리서’는 이하연의 팬들조차 잘 모르는 곡이다.

“하하. 그 곡을 네가 알 리가 없지. 그럼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니라 유행곡부터...”

“아녜요! 쩌 그 고옥 알아요옷!”

뭐? 그 노래를 네가 안다고?

아니 대체 어떻게?

‘내가 이하연의 찐팬이라서 설마 내 딸인 하연이도 이하연을 좋아하게 된 걸까? 유전적으로? 아니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어쩌면 유주가 어린이집에서 이하연의 노래를 틀어준 걸지도 모른다.

이하연이 죽은 지 조금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녀와 그녀의 노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

“그럼 한번 녹음해볼까? 너무 늦은 시간까지 노래 부르면 주변에 민폐니까 6시 되기 전까지만 해보자.”

“네에!!”

나는 하연이를 의자에 앉힌 다음 헤드폰을 머리에 씌어주었다.

하연이 얼굴은 작은데 헤드폰은 크니까 그 언밸러스함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크윽.”

“아, 아빠아. 왜 크래요오?”

나는 심장에 쿵 하고 온 충격을 간신히 이겨내고는 카메라를 켰다.

“아, 아냐.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불러. MR 곡 틀어줄게.”

하연이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반주가 시작되었고, 하연이가 감정을 잡는 것 같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만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3살 아이에게서 저런 목소리가. 저런 감성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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