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0화
“이야. 어린 친구가 노래를 정말 잘 부르네.”
“깜찍하고 귀여운 게 나중에 가수 해도 되겠다. 하하.”
“발음이 부정확해서 그렇지, 성량이나 음색은 진짜 좋지 않아요? 근데 쟤 몇 살이야?”
“부모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럽네. 저런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진 딸이 있어서.”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연이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 하연이가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촬영했다.
내가 칭찬받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제가 바로 저 아이의 아빠입니다!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삼켜졌다.
하연이 노래 잘하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 자연스러운 율동도 그렇고 도중 도중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살짝씩 웃어주는 미소며 손동작이며.
프로 뺨치는 실력이다.
‘화장실에서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춤도 함께 연습한 건가?’
그녀의 뒤에서 아이들과 함께 흐뭇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는 유주가 보였다.
인파를 돌아 조용히 유주를 불렀다.
“유주야.”
“응? 진형이 네가 여긴 어떻게?”
“어린이집에서 사랑반 아이들 공원에 갔다고 하길래.”
“아 그랬구나. 야! 저기 봐봐. 네 딸 정말 노래 잘 부르지 않니? 게다가 춤도 장난 아니고. 정말 이하연이 환생한 것 같은 모습이야.”
“응. 봤어, 그런데 유주야. 혹시 지금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응? 지금? 급한 일이야?”
“어. 하연이 일로 상담 좀 받고 싶어서.”
유주는 다른 반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잠시 맡기고는 무대에서 떨어져 있어 사람이 없는 벤치로 이동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상담을 다 요청하고?”
“그게 하연이 진로에 대해 고민이 있어서.”
“진로?”
“응. 너도 보다시피 하연이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예능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맞아. 확실히 그쪽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지금도 봐봐. 어쩜 3살짜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뭔가 지금부터 과외랄까, 학원 같은 데 보내야 하나 싶어서.”
유주는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너무 일러. 고작 3살이잖아.”
“하지만 재능이 있잖아. 어릴 때 배울수록 더 빨리 능력을 개화하지 않을까?”
“그건 아냐. 빠른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 내가 아는 동생도 어릴 적 가수 지망생 생활을 오래 했는데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기 싫다고 그러더라.”
“그래?”
“응. 데뷔도 어렵지만, 성공은 정말 1%의 가능성도 안 된다고 그랬어. 나머지 99%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
“99%라.”
“게다가 오랫동안 제대로 된 교우관계라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으니까. 일반인의 삶에 적응하는 데 많이 힘이 들어 보였어.”
일리가 있다.
가히 아이돌 전성시대였다.
많은 어린이가 의사나 변호사 등 사자 직업이 아닌 아이돌과 같은 엔터테이너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오랜 시간 어마어마한 연습도 해야 하고, 특히 여자아이라면 성공하기 전에 더러운 세계도 경험해야 할지도 몰라.’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뭣보다 유주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
대다수의 연습생들은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게다가 오랜 시간 일반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무대에서 내려와 일반적인 길을 걷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럼 어쩌면 좋지? 그냥 이대로 놔둬?”
“응. 어디에 가서 강제로 배우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뭐를 좋아하는지,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스스로 깨닫는다라.”
“아 맞다. 이런 방법은 어때?”
“어떤?”
유주는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유튜브 말이야!”
“유튜브?”
“응. 요즘에는 꼭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연습생 신분이 되지 않더라도 유튜브라는 훌륭한 채널이 있잖아. 거기서 주목받으면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유튜브라. 하지만 하연이가 자기 얼굴을 찍어 외부에 올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하연이의 노래가 끝났고, 작은 공원은 예상치 못했던 수준 높은 공연에 큰 만족감을 표하듯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앵코올!!”
“꼬마야 최고다! 꼭 커서 가수 해라. 알았지?”
“진짜 잘한다. TV에 나오면 금방 뜨겠는걸?”
유주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하연이 손을 잡고 공원을 떠났다.
사람들이 딸을 잘 둬서 좋겠다는 등 꼭 가수를 시키라는 등 계속 아는 체를 해대는 탓에 진땀을 흘렸다.
하연이도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내게 묻는다.
“아빠아! 오늘 일 잘 돼써? 기부니 쪼아 보여!”
“그래? 하연이 말이 맞아. 오늘 아빠 일한 거 돈 받았거든.”
“도온?”
“응. 그래서 오늘은 고기 먹으러 갈 거야. 그것도 소고기!”
“꼬기이이!!”
하연이가 크게 고기를 외친다.
얼마나 고기를 먹고 싶었으면.
나는 그동안 하연이에게 제대로 고기를 사주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며 인근에 있는 한우집에 들어갔다.
메뉴를 살펴보니 한우 모듬구이 대자가 12만 원이고 중자는 10만 원이다.
‘하연이랑 둘이 왔으니까 중자면 충분하겠지.’
중자는 400g.
성인 하나와 아이 하나가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여기요! 한우 모듬구이 중자 하나 주세요.”
“네! 중자 주문 받았습니다!”
간만에 소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하연이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하연아. 소고기 먹어서 좋아?”
“웅! 쪼아요!”
“그런데 아까 전에 그 노래 말이야. 그거 언제 연습한 거야? 춤도 되게 잘 추던데?”
내 말에 하연이가 어색한 미소를 보일 뿐 답이 없다.
하연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연아. 너 커서 가수 되고 싶니?”
“가수우?”
“응. 조금 전에 하연이가 무대에서 한 것처럼 노래 부르고 춤추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직업이야.”
“아아.”
어린 하연이의 얼굴이 금방 심각해진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푸웃!”
“왜에에?”
“아, 아냐. 그냥 귀여워서. 아무튼 가수에 관심 있어?”
“흐으음. 웅!”
하연이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가수가 되고 싶었던 거구나.
잠시 고민하다가 하연이에게 유튜브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던졌다.
“하연아. 아빠가 너 예전에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린 거 기억해?”
“유투부에?”
“맞아 맞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거기에 하연이가 노래 부르고 춤추고. 또 일상적인 모습을 찍어서 올리면 어떨까?”
하연이가 또 심각한 얼굴을 한다.
어쩜 저리 귀여운지.
“여기 주문하신 모듬구이 중자 나왔습니다!”
고기가 나오면서 우리의 대화는 끊어졌다.
그나저나 소고기 정말 맛있구나.
비싸서 그렇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종종 와야겠다.
#
김하연으로 환생한 다음 처음 먹어보는 소고기.
부드러운 식감에 풍부한 육즙.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저녁이었다.
김하연은 두둑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화장실 문을 잠갔다.
혼자서 조용히 목욕하고 싶었으니까.
아기 욕조에 뜨겁게 달궈진 물을 넣고는 천천히 몸을 담갔다.
김진형이 밖에서 자기가 도와줄 일은 없냐고 소리쳤지만, 아서라.
그에게 알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이 따뜻해.”
천국이 따로 없다.
입밖으로 절로 좋다는 말이 연신 나왔다.
욕조가 없는 집이라 그동안은 샤워로만 만족해야 했는데, 김진형이 영상으로 큰돈을 벌었다며 자그마한 욕조를 사주었다.
그가 먼저 사준 것은 아니고 김하연이 강력히 요청한 까닭이다.
“하연아. 아빠가 뭐 사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어?”
그의 물음에 단번에 답했다.
“요옥죠오!! 요옥쪼가 필요해요!”
그래서 소고기를 먹고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작은 욕조를 하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유튜브라니.
김진형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공연할 때 나를 바라보며 유주 샘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어쩌면 자신의 진로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노래를 부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무대에 올라가자 흥이 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김진형이 자기 딸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튜브는 충분히 좋은 전략이다.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으로 성공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성공하면 다인가?
아니다. 그 뒤로도 음악 방송, 행사, 굿즈 제작, 연기, 팬 미팅 등 수도 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쳤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TV 앞을 떠난 지 오래니까. 오히려 유튜브가 더 경쟁력이 있을지도 몰라.’
이미 음악 방송의 시청률은 1~2% 사이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아이돌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물론 유튜브가 만능열쇠는 아니었다.
TV와 마찬가지로 이미 잘 알려진 가수 위주로 클립이 소비되지, 유명하지 않은 가수의 영상까지 찾아보지는 않으니까.
다만 기회의 측면에 있어서는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TV에 출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김하연은 팔짱을 끼고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이번 생에서 뭘 하고 싶은 걸까.’
전생의 자신은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해졌고, 국민가수라는 별명까지 생겼었다.
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번 생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나쁘지 않았다.
전생에서처럼 자신을 핍박하는 아비도 없었고, 굳이 험난한 연예인의 길을 다시 걷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김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부르고 싶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관종이라 놀려도 좋다. 조금 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확신했다. 자신은 무대에서 노래할 때.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환호할 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으니.
환생을 했다지만 가수로서의 정체성은 그대로였던 것.
그렇다면?
어렸을 적부터 유튜브를 통해 조금씩 유명세를 얻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에 대해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밖에서 김진형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연아! 괜찮아? 진짜로 아빠가 옆에서 안 봐줘도 되겠어?”
“네에에!!”
어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려고 하는지.
정말 하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깨는 양반이다.
김진형.
괜찮은 남자다. 책임감도 있고, 얼핏 보았을 뿐이지만 영상에 재능도 있는 것 같다.
‘딸 바보이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싫진 않다.
적어도 전생의 아비에 비해서는 훨씬 더 아빠다운 모습.
처음에 아기로 환생했을 땐 정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그것도 아기의 몸이 되었는데.
그나마 이렇게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진형이 최선을 다해 육아에 나서주었기 때문이다.
- 부글부글
김하연은 욕조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세상 진지한 본인과는 다르게, 제삼자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했으리라.
그 모습이 마치 새끼 오리가 물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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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고등학교 동창인 신상준에게 연락이 왔다.
[신상준] : 지녕아. 저번에 출생신고 부탁한 거 말이야. 해결책 찾았다
> 진짜?
[신상준] : ㅇㅇ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알아봤다. 일단 만나서 서류를 써야 하는데,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될까?
> 그래 주면 고맙고
[신상준] : ㅇㅋ 퇴근하고 너희 집으로 갈게. 이따 보자
역시 엘리트 변호사.
이렇게나 빨리 해결책을 찾을 줄이야. 똑똑한 친구가 좋긴 좋다.
그런데 저녁에 집으로 찾아온 녀석의 두 손이 무겁다.
상준이는 양손에 온갖 선물 상자를 가득 안고선 사심에 가득 찬 얼굴로 하연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연아. 삼촌~ 해봐. 상준이 삼촌~ 이렇게.”
이 녀석. 결국 원했던 건 하연이에게서 삼촌으로 인정받는 거였나? 쯧. 칠칠치 못하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