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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9화 (9/135)

내 딸은 국힙원탑 9화

다음 날 아침.

수정한 영상을 황태진에게 다시 메일로 보내고, 하연이를 어린이집에 바래다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밤샘의 후유증인지 잠이 밀려온다.

침대에 누워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카톡~”

카톡 알림에 정신이 퍼뜩 든다.

확인해보니 고등학교 동창들이었다.

[구현모] : 야. 김지녕이. 살아있냐?

[박성현] : 보고 있는 거 다 안다. 봐라. 읽음확인 숫자 또 사라졌잖아!

[신상준] : 시발노마 봤으면 좀 답이라도 해라 몇 년째 이게 뭐하는 짓이냐

비디오쉐어를 나온 뒤로 일거리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가급적 지인들과의 연락은 끊고 살았다.

‘그래야 하연이를 먹여 살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놈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꾸준히 내게 연락을 보냈다.

[구현모] : 김지녕! 너 이번에도 답 없으면 우리가 니네집으로 쳐들어간다!

[신상준] : 조아쓰! 나 마침 오늘 오후 반차다 녀석 집은 내가 먼저 가서 접수해놓겠다

[박성현] : ㅋㅋㅋㅋㅋ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 좋은말할때 나와라!

이 미친 자식들이.

이 녀석들은 한다면 진짜로 하는 바보들이다.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 미친놈들아! 나 살아있다! 그러니까 쳐들어오지 마!

[박성현] : 오 본인등판!! 씨발새끼야! 왜 지금까지 대답도 없었냐

[구현모] : 이 시키 안되겠다 오늘 모두 지녕이 집에서 모이자

[신상준] : ㅇㅇ 나 회사 끝나면 바로 간다. 문 딱 열어놓고 목 빼놓고 기다려라 개자슥

> 아니 답장했잖아. 왜 그래 다들;;;

그걸 끝으로 카톡방에 더 이상의 문자가 올라오지 않았다.

이 바보 같은 녀석들은 내가 이사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주소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오겠다니.

‘개또라이같은 놈들. 어휴.’

그리고 그날 오후 3시 무렵.

정말로 신상준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진짜로 온 거야? 이 미친 놈!”

문을 여니 신상준이 다짜고짜 웬 비닐봉지를 내 품에 안긴다.

- 쨍, 쨍

묵직한 비닐봉지 안에서 유리병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뭐냐?”

“뭐긴. 술이랑 안주지. 오늘 너네 집에서 파티하기로 한 거 잊었어?”

“야! 왜 니들 멋대로 그런 걸 정해. 여긴 내 집이라고!”

“됐고, 왜 지금까지 연락을 안 했는지 한번 썰이나 들어보자. 납득하면 용서해주겠지만 못하면 네가 2차 쏘는 거다.”

“바빴어. 진짜로. 그리고 이건 곤란해. 다시 환불하고 와.”

“와 이 새끼가 진짜로.”

신상준이 나를 한 대 칠 것처럼 위협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음씨 좋은 형님이 이번 한 번만 봐준다. 자 빨리 안주 세팅해라. 우리 둘이서 먼저 먹고 있자.”

“진짜 안 된다니까!”

내가 한사코 거절하자 녀석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왜? 여자랑 동거라도 하냐? 별건 안 보이는데. 응?”

녀석은 행거에서 하연이의 옷을 발견하더니 서둘러 그쪽으로 뛰어갔다.

“야! 이게 뭐냐? 여자 옷이긴 여자 옷인데, 아동복 같은데?”

“아 진짜. 왜 멋대로 만지고 지랄이야! 냅둬!”

“뭐야? 너 설마 그쪽 취향..”

신상준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와오. 진짜 한 대 칠 수도 없고.

녀석에게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상준이의 얼굴에 썩소가 가득하다.

“하?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믿고 자시고 그게 사실이야.”

“뻥을 쳐도 믿게끔 쳐야지. 안 본 사이에 거짓말이 많이 늘었다?”

“못 믿겠으면 따라와 보든가.”

도저히 녀석이 믿을 생각이 없으니 도리가 없었다.

결국 녀석을 이끌고 어린이집을 찾았다.

“야. 이쯤에서 적당히 하자. 연락 안 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만 물어볼 테니까 그냥 돌아가자니까?”

“하연이 데려가야지.”

“이 자식 끝까지 고집은. 야. 있어 봐. 내가 직접 물어볼 테니까.”

녀석은 더는 이런 장난에 어울려줄 수 없다는 듯 먼저 어린이집 초인종을 눌렀다.

- 띠이이이잉!

“네. 어린이집입니다.”

“혹시 김하연이라는 아이가 여기 있나요? 없죠? 없으면 됐어요. 확인차..”

“하연이요? 하연이는 여기 사랑반 다니는 친군데. 누구시죠?”

“네? 김하연이가 여기 진짜로 있다고요?”

신상준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와 초인종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

“안녕하세요. 하연이 아빠예요. 제 친구가 장난을 쳤네요. 죄송합니다.”

“아. 하연이 아빠이시구나. 잠시만요. 신유주 선생님! 하연이 아버님 오셨어요!”

곧 유주가 하연이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상준이가 유주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유주도 마찬가지다.

“앗! 유주 씨가 여긴 왜?”

“응? 상준 씨?”

유주는 내 고등학교 동창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주 얼굴 보고 술 마시던 사이였으니까.

상준이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는 귓속말을 전한다.

“설마 유주 씨랑 다시 사귀는 거야?”

“조용히 해. 그런 거 아니니까.”

녀석을 옆으로 밀치고는 하연이의 안부를 물었다.

“별일 없었지?”

“응. 그런데 상준 씨는 여기 무슨 일로?”

“녀석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서. 아무튼 하연이 데리고 돌아갈게. 내일 봐.”

“응. 그래. 하연아 조심히 가렴. 상준 씨도 수고하세요.”

“아. 유주 씨도요!”

“네에, 선생니임!”

하연이가 이전과 다르게 유주를 바라보며 제대로 인사를 한다.

서로 마음은 연 것일까? 다행이다. 지금으로써는 믿고 맡길 데가 여기밖에 없으니.

하연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옆에서 상준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난리부르스를 춘다.

“이거 실화냐? 진짜 이 귀여운 아이가 네 딸이라고?”

“그래.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

“대애박! 와 안 되겠다. 애들한테 당장..”

“잠시만.”

“왜?”

녀석의 손을 잡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좀 복잡해. 그러니까 당분간 비밀로 해줘.”

“어. 그래.”

상준이가 내 진지한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근처 분식집에 들러 김떡순 세트를 하나 시켰다.

“하연아. 아빠, 친구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까 이거 먹고 있을래?”

“네에!”

하연이가 활짝 웃음을 보이며 즐거워한다.

분식 하나로 이토록 행복한 웃음을 보이다니. 정말 귀엽다.

상준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상준이가 담배를 꺼내더니 내게 권한다.

“됐어. 끊은 지 좀 됐다.”

“...그래. 그래서 그동안 쟤 돌본다고 연락도 못 한 거냐?”

“응. 그리 됐다.”

“자식. 뭘 이런 걸 숨기려고 그래. 부끄러운 것도 아니구먼.”

“괜히 너희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당분간은 애들한테 비밀로 해줘.”

“뭐 그건 어렵지 않은데. 애 엄마는 진짜 그 뒤로 연락 한 번 없고?”

“..그래.”

“돈은?”

“벌고 있어.”

“내가 좀 도와줄까?”

“됐어. 이번에 미래 그룹 일도 하나 따서 곧 큰돈 들어와.”

“미래 그룹? 이야. 역시 김진형 아직 안 죽었구나.”

상준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가볍게 두드린다.

그는 절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꺼뜨리고는 자신의 담뱃갑에 꽁초를 버렸다.

“왜? 다 피지도 않고.”

“애도 있는데 담배는 아니다 싶어서.”

“그럼 처음부터 피질 말던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랬지. 진짜로 애가 있을 줄 상상이라도 했겠냐. 그런데 아까 유주 씨는 또 뭐야?”

그에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맡길 곳을 찾던 중 유주가 생각나서 그녀에게 맡기게 된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유주 씨도 진짜 황당했겠다.”

“유주한텐 미안하지 뭐.”

“형님이 좀 도와줄까?”

“네가?”

“그래. 나 이래 봬도 변호사 아니냐.”

로스쿨을 나온 상준이는 현재 대형 로펌에 다니고 있는 수재였다.

성현이는 의사. 현모는 기자.

가끔은 왜 이런 녀석들이 아직도 자신을 친구라고 여겨주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다.

상준이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갑자기 내 팔뚝을 강하게 때렸다.

“얌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땐 가끔 의지도 하고 그래.”

“아니 그래도.”

“내 분야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최근에 사랑이법이라는 게 만들어져서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내가 한번 알아보고 연락 줄게.”

“지, 진짜?”

“물론이지. 형만 믿어.”

녀석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단체방에 카톡을 남겼다.

[신상준] : 오늘 허탕쳤다. 김진형 이 이개새끼 이사한 듯

[구현모] : 헐 진짜?!!!

[신상준] : ㅇㅇ 벨 눌렀더니 웬 배 나온 아저씨가 나와서 깜놀했다

[구현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겁했겠네

[박성현] : 아씨. 이 자식이 또 어디로 튄 거야? 설마 고향 내려간 건 아니겠지? 야 김지녕! 내가 고향에 전화 돌려서 네 위치 다 확인한다! 빨리 이실직고해라!

아무것도 모르는 현모와 성현이가 나에 대해 성화를 내는 가운데 상준이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그럼 나 먼저 갈게. 하연이라고 그랬나? 애한테 잘해주고.”

“고맙다, 상준아.”

고등학교 친구들은 죽을 때까지 간다더니. 아무튼 참 고마운 놈들이다.

#

로비 영상은 다행히 무사히 컨펌이 났다.

미래 그룹 홍보팀 사람들은 수차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진형 씨. 덕분에 험난했던 로비 영상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네요.”

“제가 뭘요.”

“회장님께서 무척 만족해하셨습니다. 편집도 깔끔하고, 작업 속도도 빠르고. 뭣보다.”

“뭣보다?”

“하연이 나오는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얼굴도 예쁘고,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고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다음에도 또 영상 찍거나 편집할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할 일이죠.”

단순히 칭찬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역시 회장님 파워인가.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돈을 입금해 주는 곳은 처음이네.’

단 일주일 일 하고 수중에 들어온 돈은 세금을 제외하고 약 2,400여만 원.

대기업에 다니는 누군가에게는 한해 보너스 정도로 치부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무엇보다 크고 값진 돈이었다.

이제 돈이 들어왔으니 영상 편집용 데스크톱과 촬영 장비도 하나 맞추고, 하연이에게 필요한 물건도 살 수 있겠다.

일단은 먹을 것부터!

삼겹살이 좋으려나 갈매기살이 좋으려나.

아니지. 돈도 받았는데 한우로 가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룰루랄라 즐겁게 하연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오래지 않아 어린이집이 나왔다.

“하연이 아빠입니다.”

“아이고. 지금 사랑반 친구들 야외 나들이 갔는데.”

“나들이요?”

“네. 근처에 있는 푸르니 공원에 갔어요.”

“아. 거기 어딘지 알아요. 제가 직접 거기로 찾아가겠습니다.”

푸르니 공원이면 머리도 식힐 겸 종종 들리는 곳으로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삭막한 빌라만이 가득한 이 동네의 유일한 휴식 공간이었으니까.

골목길을 5분 정도 걸었을까.

작은 공터가 나오더니 우거진 나무가 나를 반긴다.

어째서인지 공원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평소에는 산책하는 이들 정도로 한산한데 말이지.’

아이들이 어디 있나 살펴보는데 사람들 틈 너머로 하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아 어우구울을 뽀니 이페서 멤도얼던 마리~”

응?

공원 중앙에 설치된 작은 무대 위에서 하연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도 이하연의 히트곡. <완벽한 날>이었다.

경쾌한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가 만나 이하연을 단번에 유명 스타로 만들어준 메가 히트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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