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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7화 (7/135)

내 딸은 국힙원탑 7화

“아니 진형 씨! 이 예쁜 꼬마 숙녀가 따님인가요?”

“아 네. 이름이 하연이에요.”

“와 진짜 귀여워요. 아동 모델인 줄 알았네요.”

“그러게요. 저도 순간 심쿵했어요. 어린아이를 보고 나도 참.”

홍보팀 직원들이 하연이를 보고는 난리가 났다.

그들뿐 아니라 이곳을 지나는 미래 그룹 본사 직원들도 하연이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얼핏 들리는 건 애가 인형처럼 귀엽다, 너무 사랑스럽다, 누구 아이지? 라며 궁금해하는 소리 등.

하마터면 ‘얘가 바로 제 아이입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칠 뻔했다.

내가 양손을 허리에 두고 뿌듯해하는 사이.

홍보팀 직원 한 명이 하연이에게 뭘 물어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 진형 씨. 얘 왜 이렇게 말 잘해요? 진짜 3살 맞아요?”

“네. 3살 맞습니다만. 그건 왜요?”

“아니 물어보는 족족 대답을 하는데, 제 조카도 3살이거든요. 걔는 우우, 으으 이런 소리밖에 못 하던데. 우리 조카가 좀 늦은 편인가?”

“아닐걸. 내 아들도 이만할 땐 간단한 의성어나 한두 단어만 말하지, 이렇게 의사 표현을 구체적으로는 못 했어. 완전 언어 신동인데?”

후후. 내 콧대가 아까보다 더 높아진다. 이러다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다.

우리는 더 늦어지기 전에 촬영에 돌입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 로비에 사람이 너무 없어져도 곤란하다나 뭐라나.

홍보팀에서 준비해준 카메라를 짐벌에 끼운 뒤 메모리카드를 넣고 전원을 켰다.

내 카메라보다 성능이 훨씬 좋다.

‘이번 일하고 돈 들어오면 카메라 하나 좋은 걸로 장만해볼까.’

편집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한땐 촬영도 했었다.

다만 편집이 좀 더 적성에 맞았을 뿐.

촬영은 간단했다.

홍보팀 여직원이 하연이의 손을 잡고 로비 입구에서부터 사내 어린이집 입구까지 이동하는 씬이 하나.

그리고 하연이가 웃는 얼굴로 자유롭게 로비를 돌아다니는 게 둘.

그게 다였다.

‘이걸로 500만 원이 추가된다니. 완전 땡큐네.’

이번에 잘 보여서 이곳 일을 단골로 받으면 참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최선을 다해 촬영했고, 하연이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NG 하나 없이 잘 따라준다.

홍보팀 직원들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자신들끼리 속닥거린다.

“저 아이 말이야. 웬만한 아역 배우들보다 더 잘하지 않아? 실수 하나 없이 말이야.”

“내 말이. 비싼 돈 주고 아역 데려와봤자 저 나이 때 애들은 금방 지쳐서 울거나 떼를 쓰곤 하잖아. 하연이는 그런 게 전혀 없어.”

“지난번에 왔던 친구가 몇 살이었지? 아역 중에서 제일 잘나간다던.”

“박민규요? 6살인가 그럴걸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걔보다 하연이가 천만 배쯤 더 나은 거 같아. 까칠하지도 않고 웃기도 잘하고. 천사네, 천사.”

결국 촬영은 시작한 지 40분도 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만약을 위해 기존 콘티와는 달리 여러 곳에서 다양한 각도의 B컷을 추가했음에도 말이다.

“간단한 촬영이긴 하지만 진짜 빨리 끝냈네요. 보통 한두 시간이 기본인데.”

“네. 하연이가 제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네요.”

“이런 똑똑하고 예쁜 친구가 딸이라니. 저는 진형 씨보다 나이도 많은데 아직 솔로고. 크윽. 솔직히 부럽네요.”

“하하. 이런 좋은 회사 다니시면서 뭘요. 금방 좋은 분 나타나실 겁니다.”

그렇게 촬영을 마무리 지으려던 찰나.

하연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빠아. 나 한버어만 더 찌그으면 안 대요?”

“응? 뭐라고?”

“머언가 아시어서..”

나는 물론 홍보팀 직원들도 뒤로 쓰러진다.

이건 뭐 천생 배우라고 해야 할지. 프로가 따로 없다.

흔쾌히 이에 응했고, 로비 중앙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어린이집 입구를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하연이를 찍었다.

내 딸이지만 정말 너무 완벽하다.

얼굴 예쁘지, 자세 좋지, 걸음걸이까지 경쾌한 게 내가 원하는 바로 그 그림이다.

그때였다.

“회, 회장님!”

소스라치게 놀란 홍보팀 직원들이 어딘가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다른 직원들도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렸고, 경비원들이 서둘러 그쪽을 향해 뛰쳐나왔다.

홍보팀 막내 직원 하나가 사수로 보이는 옆 직원을 향해 조용히 속삭이는 게 들린다.

“신 대리님. 회장님 보통은 새벽 일찍 출근하시지 않아요?”

“보통 그렇지. 이렇게 말도 없이 이 시각에 방문하시는 경우는 잘 없는데. 무슨 일이시지? 괜한 불똥이라도 튀면 안 될 텐데.”

영상을 중지시키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감청색 정장을 입은 백발노인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나와 하연이를 가리키며 주변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그저 말 한 마디일뿐인데 무게감이 장난 아니다.

저런 게 대기업 회장의 포스인 걸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보팀 직원 중 최선임자가 다급하게 그에게 뛰어가서는 고개를 조아렸다.

“아, 네 회장님. 오늘 로비 영상 촬영이 있어서.”

“로비 영상? 아 그거 말이로군. 아직도 촬영이 진행 중이었던가?”

“네네. 이게 마지막 촬영입니다. 어린이집 관련 영상이 필요해서..”

“직원들이 동의를 해주지 않아 촬영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더니 어떻게 허락을 구했나 보군.”

“아 그게 저...”

“무슨 일이지?”

“대역입니다.”

“대역?”

시종일관 온화하던 그의 얼굴에서 순간 도깨비가 보였다.

대역이라는 한 마디에 한쪽 눈썹이 크게 치켜세워진 것이다.

로비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저벅저벅 하연이를 향해 곧바로 걸어오더니 아이의 얼굴을 은근히 바라보았다.

“흠. 애 얼굴은 괜찮군. 촬영하는 게 자네인가?”

그는 갑자기 멀뚱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보팀엔 따로 이야기할 테니까 영상 편집이 완료되면 나한테 바로 보내게. 다른 곳에 줄 필요 없이 나한테만 보내면 돼. 알았나?”

“아 그게.”

내가 홍보팀 직원들의 눈치를 보자 그들은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그의 말을 따르라는 신호를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기대하도록 하지.”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빠른 속도로 로비에서 사라졌다.

로비는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하지만 홍보팀 직원들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망했네, 망했어. 이사님이 아시면 개지랄할 게 뻔한데 뭐라고 그러지.”

“하아. 회장님 직보고라니. 저희 다 사표 써놓고 나갈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요.”

“나 저번 달에 할부로 외제차 뽑았단 말이야. 젠장. 오늘 바로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 오픈해야 하나.”

초상집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저자가 회장이라면 미래 그룹 총수인 황태진이 틀림없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

뭐랄까 훨씬 더 중후하고 스마트하달까. 뉴스에선 악의 대장처럼만 묘사하던데 실물은 느낌이 좀 다르다.

아무튼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그가 직접 내 영상을 평가한다 이거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

제발 자신들 좀 살려달라며 이 영상에 영혼을 실어 달라는 홍보팀 직원들을 뒤로 하고는, 하연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까부터 하연이 표정이 뭔가 신나 있다.

“하연아. 오늘 촬영 재미있었어?”

“네에! 엄떵 즐거워떠여! 어리니집보다 헐띤 더어!”

어린이집은 포기하고 지금부터라도 연기에 올인해야 하나.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영상 편집에 집중하자.’

노트북을 켜고는 오전에 촬영했던 영상을 살펴보았다.

내가 찍었지만 정말 이렇게 멋진 그림이 나올 줄이야.

모델이 완벽하니 뭘 해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로비 소개와는 별개로 이걸 메인으로 광고 영상을 만들어도 제법 괜찮은 퀄리티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재료는 다 준비되었고. 그럼 시작해 볼까.’

정신없이 편집에 몰입했다.

하연이가 참 고마운 게, 집에 오면서 사 온 김밥과 순대를 알아서 먹고는 내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다음 날 어린이집에 데려갈 때 조금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아빠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평소보다 조용하다.

내 딸이지만 정말 3살이 맞나 싶다.

그렇게 사흘 밤낮을 샌 후. 드디어 영상 편집이 끝났다.

“끄아아! 아주 여기저기가 쑤시네. 데스크톱 하나 사야지, 진짜 노트북으로는 너무 힘들다.”

기지개를 켜며 낡은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비디오쉐어에 입사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산 녀석인데 브랜드 제품은 아니지만 나름 가성비가 좋다.

그래도 성능의 한계는 명확해서 데스크톱에서 작업할 때와 비교하면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렌더링은 지옥이 따로 없군.’

노트북은 터질 것 같은 굉음을 내며 비명을 질러댔고, 인코딩 진행 정도를 알리는 Process bar는 마치 멈춘 것처럼 아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긴 할 거다.

‘지금까진 별문제가 없었으니.’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노트북 화면에 인코딩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떴고, 곧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로비를 리뉴얼한 이유를 시작으로 로비 곳곳에 담긴 의미와 역할. 그리고 몇몇 직원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이윽고 행복한 표정으로 어린이집을 향해 걷는 하연이가 등장한다.

하연이가 출연한 장면은 아주 찰나였지만 나는 아빠 미소를 지으며 영상을 끝까지 관람했다.

“이 정도면 문제없군.”

같은 영상을 열 번 정도 반복해서 본 다음 이를 홍보팀에서 알려준 황태진 회장의 개인 이메일 주소로 보냈다.

‘아이디가 hwangchairman이라니. 본인이 만든 건가?’

쓴웃음을 지으며 혹시 몰라 연락을 주고받던 홍보팀 직원에게는 회장에게 완성본을 넘겼다는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사흘 밤낮을 샌 까닭일까.

“으아아. 졸리다 졸려.”

홀가분함을 느끼며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

어린이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김하연의 마음은 무거웠다.

진작에 나타났어야 할 아빠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의 전화조차 받지 않고 말이다.

김하연은 설마 그가 자신을 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한테 그럴 수 있냐고 하더니. 결국 당신도...’

아직 진심으로 김진형을 아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환생하기 이전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았거니와 아빠라는 존재와 그다지 유쾌한 경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와 함께 한 2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김진형은 자신의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으로 보였고, 그동안 그를 아빠라고 부르면서 알게 모르게 부녀지간의 정이 쌓인 걸지도 모르겠다.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이의 몸이 된 이후 육체는 물론이고 감정조차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마치 조종이 어려운 거대 로봇에 탑승한 것처럼.

그때였다.

담임선생님인 신유주가 일단 밥을 먹자며 자신의 손을 잡고는 무작정 부엌으로 향했다.

밥 먹기 싫다고 앙탈을 부려도 요지부동이다.

“선생니임. 태군 안 해요?”

“학생이 다 집에 가야 퇴근하지! 네 아빠는 왜 전화를 안 받는 거니? 정말 부녀지간에 말썽부리는 건 똑같네.”

“울 아빠아 휴웅보지 마라요!!”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

이게 뭐라고 연락도 없는 그를 두둔하려는 마음이 들었던 걸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식탁에 앉았다.

신유주는 빠른 속도로 요리하더니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오므라이스 두 접시를 식탁 위로 내놓았다.

“자. 빨리 먹자. 먹고 나서도 아빠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으면 선생님이 직접 데려다줄게.”

“선생니미?”

“그래. 나도 너네 집 알아. 선생님이 전에..아니다. 내가 애 앞에서 무슨 말을. 빨리 먹어. 식겠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신유주와 김진형은 이전에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유주는 여전히 김진형에게 미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뭐 자세한 속사정 같은 건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남녀관계란 원래 복잡 미묘한 거니까.

아무튼 신유주가 만들어준 오므라이스는 생각보다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므라이스를 내려다보자 신유주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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