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4화
‘바보 같은 남자.’
김하연. 아니 원래는 이하연이었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김하연의 몸에 들어온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남자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였더라면 그 상황에서 아이를 맡을 수 있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축복받지 않은 아이.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거나 교제 중인 사이도 아닌 상태에서 단지 잠깐의 불장난으로 태어난 존재.
게다가 친모는 일방적으로 아이를 친부에게 던지고 잠적하지 않았던가.
이번 생에 자신의 아비가 된 김진형은 미혼부(未婚父)였다.
아빠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다니.
말이 쉽지.
직접 이런 일을 겪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등 양육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김진형은 육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시계는 벌써 새벽 3시가 넘은 지 오랜데 아직도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저러다 몸 상할 텐데.’
자신도 전생에 음악 작업을 위해 날밤을 많이 새어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밤을 새는 일이 오랫동안 이어지면 몸에 무리가 가기 마련.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다그쳤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제대로 된 발음을 하는 건 무리였다.
‘휴.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아기의 몸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말도 할 수 없고,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다.
그뿐인가.
김진형이 기저귀를 갈 때나 목욕시킬 때는 정말 수치스러워서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뭐가 그리 좋다고 계속 뽀뽀하고, 껴안고, 온갖 스킨십을 해대는 건지.
연예인이었던 시절. 과도한 스킨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던 보디가드가 옆에 없는 게 원통할 따름이다.
물론 그게 이성(異性)적인 의미가 아닌 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아빠와 딸의 관계니까.
그런데 자신의 동의도 없이 촬영은 너무한 것 아닌가.
김진형은 초상권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에선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일도 흔했다.
‘단지 부모가 자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유아 시절 사진을 10년 넘게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말이지.’
단순히 얼굴만 찍어서 올리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김진형은 자신의 알몸을 찍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김진형이 올린 영상 중에는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콘텐츠도 있었다.
‘너무해. 정말.’
김하연은 김진형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다 바닥에 널브러진 책이 하나 보였다.
‘재벌가로 환생’이라고 쓰인 책.
아직도 이 집에 온 첫날이 잊히지 않는다.
환생을 다룬 책이라니.
설마 김진형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내가 이하연의 환생이라는 것을 털어놓아야 하나? 뭘 어떻게 하면 좋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장르 소설 속 키워드에 불과했지만, 그날은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더랬다.
‘재벌가는 무슨.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김하연은 다시 시선을 김진형에게로 옮겼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가난할 뿐. 최소한 딸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으니까.
반면 전생의 아비는 김진형과 여러모로 다른 자였다.
부모로서의 책임감? 가장으로서의 무게감?
개나 주라지.
어릴 적부터 자신을 때리고 욕하고. 마치 짐승을 다루듯 대했다.
그나마 웃으면 아비가 덜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잘 때에도 웃는 얼굴이 기본이 되었다.
그런 영향일까.
이하연은 언제나 늘 미소를 지었다.
속은 시꺼멓게 썩어들어가고 있었지만, 대중은 그녀의 거짓 미소를 보며 열광했다.
언제 어디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서. 캔디의 재림이라면서.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면서.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뭐가 됐든 뮤지션은 대중의 관심이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좋지 뭐.
다만 아비와의 악연은 자신이 상업 가수로 성공한 뒤로도 이어졌다.
자기 멋대로 은행에서 돈을 빼가는 것은 기본이고 그 돈을 이용해서 해외 원정도박을 하거나 본인의 유흥을 즐기는 데 흥청망청 써댔다.
절연하면 되지 않느냐고?
언젠가 심리상담을 해준 정신과 의사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과 비슷한 상태라고.
“네?”
“하연 씨는 지금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거든요.”
“제가요?”
“네. 어릴 때부터 종종 무력감을 경험했거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려는 경향이 강한 자들은 스톡홀름 증후군에 더 쉽게 빠질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 하연 씨가 딱 그런 케이스로 보여요.”
“...그런가요?”
“네. 아버지랑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걸 권해드립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고맙습니다.”
병을 알아도 치료는 별개의 문제다.
김하연은 그 뒤로도 아비를 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떠나면 아비가 죽지 않을까 싶은 이율배반적인 감정.
싫어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관계.
그리고 그 끝은.
모두가 알다시피 자신의 자살로 마감되었다.
‘부디 이번 생에선 다르길.’
김하연은 자신의 작은 손을 꼭 쥐며 간절히 기도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비디오쉐어를 나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흔히들 표현하는 지옥 같이 견디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아마 하연이가 어른처럼 통잠을 자기 때문일 것이다.
‘잠만 잘 자줘도 그렇게 고마운 일이 없다고들 하니까. 나는 정말 복 받은 거겠지.’
영상 일도 잘 풀리고 있다.
이젠 선종이 형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제법 나를 찾는 고객들이 많이 늘었다. 편집도 빠르고 가격은 싼데 퀄리티는 만족스럽다나.
덕분에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돈벌이는 하고 있었다.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지만.’
한편, 하연이는 정말 놀랍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폭풍 성장했다.
아기 적 우월했던 미모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이제는 제법 말도 잘한다.
지인의 말로는 언어발달 수준이 최상위라서 5~6세 수준의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고 그랬다.
고작 세 살짜리 꼬맹이가 말이다.
일을 마친 나는 하연이 손을 잡고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어머. 하연이 왔네.”
“하연이가 왔다고? 어디 어디?”
하연이는 동네 마트에서 스타가 따로 없었다.
마트 근무자들은 하연이가 왔다는 소리에 너도나도 이쪽으로 몰려와서는 하연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는데 매번 이러니 난감하다.
하연이가 저렇게나 예쁠까.
캐셔 아주머니가 하연이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는 입을 열었다.
“하연아. 이모. 해봐.”
“이모오.”
“어쩜! 말도 잘하지! 우리 귀염둥이! 아빠가 잘생겨서 그런지 어쩜 딸도 똑같이 예쁘네!”
저거 며칠 전이랑 똑같은 레퍼토리다.
장을 본 우리는 마트를 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작은 분식집. 하연이는 이 앞만 지나가면 늘 분식집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하연아 왜? 또 순대 먹고 싶어?”
똘망똘망한 눈빛의 하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 예쁘게 생겨서는 순대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전생에 순대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인 이하연도 순대 마니아였다.
오죽 좋아했으면 그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별명이 순죽이였을까.
나도 순대는 좋아하는 편이라 스타인 그녀와 괜한 접점이 있는 것 같아 가끔 순대를 사 먹으며 혼자 낄낄거리곤 했었더랬다.
“흐흐. 웃기네 이거.”
“아빠아. 뭐가요오?”
하연이가 궁금하다는 듯 내 손을 잡은 채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빠가 예전에 좋아하는 뮤지션이 순대덕후였거든.”
“수운대에더쿠우?”
“응. 하연이 너처럼 순대만 보면 정신 못 차려서 팬들이 그녀에게 순죽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어.”
그런데 갑자기 하연이가 내 손을 놓더니 얼굴을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 벌레라도 있나?
아무튼 우리는 분식집에서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오뎅 1인분씩을 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 먹자.”
“와아!”
집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새초롬하던 하연이가 내가 차려준 분식을 보더니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겨우 몇천 원짜리 밥상인데 이렇게 행복해하는 하연이를 보면 뿌듯한 한편 미안하기도 했다.
‘더 맛있고, 몸에 좋은 걸 사줘야 할 텐데.’
아이 키우는 데에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갔다.
정부에서도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영아수당이며 아동수당 등을 매월 지급했지만 어디까지나 출생신고가 된 아이들에 한해서였다.
하연이의 출생일도 몰랐고,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법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물론 출생신고를 전혀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 갈 때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기 엄마를 데려오라는 말에 몇 번이나 싸웠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예방접종을 하려고 해도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받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 하연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느냐는 말만 하는 그들.
아니 그걸 안 받아주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이 사회 아닌가!
결국 나는 하연이의 출생신고를 포기하고 말았다.
자연스레 친자확인 소송 역시 손을 놓고 있었고.
언젠가는 하연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일단은 하연이를 먹여 살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막 순대를 한 입 먹으려던 찰나.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아 지금이요? 조금 이따 해드리면 안 될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네네. 최대한 빠르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젠장. 클라이언트다.
선종이 형이 넘겨준 일거리인데 공공기관이라서 그런지 돈은 적게 주면서 요구사항은 무척이나 많았다. 이렇게 고치면 저렇게 고치라고 말하고, 저렇게 고치면 또 이렇게 고치라고 말한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고객이었다.
비디오쉐어를 나온 날. 선종이 형이 그러지 않았던가.
이 바닥은 어떻게든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라고. 그렇게 아득바득 덩치를 키워 성장하는 거라고.
“하연아. 아빠 일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너 먼저 먹어.”
“아빠. 마니 바빠요?”
“응. 신경 쓰지 말고 먹어.”
입안에 순대 몇 점을 욱여넣고는 노트북을 켰다.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다 좋은데 배경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나 알 만한 노래이면서도 너무 오래되거나 최신곡은 아니고. 또한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잔잔한 곡으로 넣어달라며.
뚱뚱한 몸을 날씬하게 보이게 해 달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이건 포토샵이 아니란 말이야, 이 똥멍청이들!’
정말이지 영상 피드백의 세계는 제대로 된 기준이라는 게 없는 곳이었다.
어떤 노래를 배경음으로 쓰면 좋으려나.
정신없이 순대를 먹는 하연이 얼굴을 보고 고민하다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그게 있었지!’
서둘러 음원 사이트에서 저작권을 확인한 다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해당 음원을 내려받았다.
바로 이하연의 유작인 <힘든 하루>였다.
이하연은 자신의 자살을 예감이라도 한 듯 소속사와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해당 곡의 저작권을 포기했고, 따라서 <힘든 하루>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국민가수인 그녀의 유작이기에 누구나 알면서도 아주 오래되거나 최신인 곡은 아니다. 게다가 세련되고 잔잔한 곡이라 영상이랑도 잘 어울려.’
휘파람을 불며 원래 BGM 대신 <힘든 하루>의 MR을 집어넣고는 영상을 틀었다.
확실히 영상의 퀄리티가 한결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영상에 몰입하고 있는데 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또오 쪼옴 마니 힘들따아. 쏙으로는 눙무리 나는 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하연이가 두 눈을 감고는 젓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발음이 부정확해서 그렇지 음색이나 가창력이 프로 뺨쳤다.
영상 편집을 멈추고 즉시 하연이게로 뛰어갔다.
“하연아! 너 그 곡 어떻게 아는 거야?”
“네, 네에?”
하연이가 이 노래를 알 수가 없었다.
이하연의 자살 이후 집에서 그녀의 노래를 단 한 번도 튼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집에서든 어디서든 듣지를 않았다. 그녀의 죽음이 떠올라 괜히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노래는 하연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발표된 곡이었다.
하연이의 두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