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3화
처음 한 달간은 재택근무를 하며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장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를 회사로 불렀다.
어쩔 수 없이 하연이를 데리고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
오랜만의 출근에 김 대리가 놀란 부엉이 같은 눈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 아기는 뭐야?”
“제 딸이요.”
“진형 씨 딸이 있었어?”
한순간에 호칭이 달라졌다.
항상 내 이름을 멋대로 부르며 나를 깔보던 김 대리가 이름 끝에 씨라는 호칭을 붙이다니.
딸을 가진 아빠라는 존재만으로도 이렇게 대우가 달라질 줄이야.
하연이는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의젓했다.
비어있는 옆 공간에 아기 바운서를 놔두고 하연이를 눕혀뒀더니 세상 조용하다.
김 대리도 일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진형 씨. 얘 진짜 100일도 안 된 애 맞아? 너무 조용한데?”
“네. 이제 막 3달 정도 되었어요.”
이혜미의 잠적으로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하연이의 키와 몸무게를 고려하였을 때 대략 3개월 정도 되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하연이 키가 58cm이고 몸무게가 5.5kg이니까 대략 그쯤 되겠지.’
물론 하연이가 또래에 비해 조숙하거나 혹은 미숙할 가능성도 없진 않았지만 내가 그것까지 알아낼 도리는 없었다.
김 대리는 갑자기 바닥에 쭈그리고 앉더니 턱을 두 손에 받친 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어쩜. 이렇게 귀엽고 얌전할 수 있을까. 우리 조카는 이맘때쯤 못생긴 게 시끄럽게 울기만 하던데.”
“그래요?”
“응. 울보 씨름선수인 줄 알았다니까. 어찌나 두 볼이 빵빵한 지. 그래도 돌 지나니까 제법 사람다운 얼굴을 하긴 했지만. 그런데 하연이 봐. 연예인 시켜도 잘 나갈 것 같지 않아? 어쩜 아기가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김 대리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는 하염없이 하연이를 바라보았고, 그건 다른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어쩜 이렇게 얌전할까?”
“천사가 따로 없어. 너무 귀여워!”
하연이가 얌전히 있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인 심태열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서른 후반의 그는 여태껏 연애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모태솔로였는데 어쩌면 그런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아이를 돌본다고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등 아기가 있어서 근무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결국 하연이를 데리고 출근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그는 나를 사무실 밖 카페로 불렀다.
“시간 괜찮지?”
“네, 사장님.”
“그래. 고생이 많네. 아직 어린데 딸까지 키워야 하고.”
“뭘요. 열심히 해야죠.”
“그래. 열심히 해야지..”
말끝을 흐린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런데 말이야. 좀 곤란한 것 같아.”
“네? 뭐가요?”
“진형이 아기. 하연이라 그랬나?”
“네.”
“그래. 하연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오니까 좀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 나는 괜찮은데 민원이 자꾸 들어오네.”
민원?
내가 알기로 사무실 사람 중에서 하연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눈앞의 심태열 사장을 빼고는.
오히려 대다수는 하연이가 너무 예쁘고 귀엽다면서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여러 가지 선물을 보내주지 않았던가.
기저귀, 분유, 모빌, 아기 옷 등 온갖 선물이 카톡 선물함으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그게 말이지. 음. 그래. 맞아. 그래야 될 것 같아. 휴.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네가 선종이 고향 후배이기도 하고 업무도 빠르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그렇군요. 안 그래도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잘 되었네요.”
“뭐?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네. 아이를 데리고 계속 출근하는 건 저도 불편해서요. 그럼 언제까지 회사를 나오면 될까요.”
내가 무덤덤하게 나오자 심태열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허리를 앞으로 당겼다.
“다음 주가 만으로 1년 3개월째더라. 그때까지 나오고 이후에는 우리와 프리랜서 계약은 어때?”
“프리랜서 계약이요?”
“응. 재택근무해도 상관없으니까 지금이랑 같은 일 하면서 집에서 편하게 돈을 버는 거지. 아이도 키우고, 돈도 벌고. 괜찮은 제안이지 싶은데.”
“페이는요?”
“페이? 페이는 걱정 마. 지금 받는 금액하고 같은 액수로 넣어줄 테니. 하하. 원래 프리랜서는 정직원이 아니니 그렇게 많이 줄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내가 또 그렇게 정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럼 일하는 시간은 제가 편의대로 조정할 수 있나요?”
내가 물어보자 심태열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지금처럼 9-6로 일해야지. 다만 회사 출근할 필요 없이 집에서 근무하는 거고.”
개새끼. 그러니까 같은 일을 시키면서 4대 보험은 한 푼도 안 내고 똑같은 금액을 주겠다고?
이건 완전 날강도 같은 새끼였다.
어차피 영상 제작이라는 건 일거리가 많은 직업이었다.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일을 따오다 보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까 하연이 키우면서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영상 일이 한두 시간 만에 뚝딱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나야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
며칠 뒤.
하연이 덕분에 항상 마음속 깊이 꿈꿔왔던 퇴사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잘 가라 비디오쉐어.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
*
*
회사를 나왔지만, 종일 정신이 없었다.
어린 하연이를 돌보는 동시에 집에서 영상 제작을 해야 했기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선종이 형은 어디서 얻어왔는지 일거리를 내게 몰아주었다.
일하랴 육아하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쁜 느낌이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시간이 지나자 이 생활도 차츰 익숙해졌다.
하연이가 원체 온순한 성격이었던 덕분도 있고, 선종이 형이 던져준 일거리도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일부러 나한테 쉬운 일거리만 준 건가? 감사한 일이네.’
조금씩 생활에 안정감이 들어갈 때쯤.
나는 평소 실험 영상을 올리던 유튜브 계정에 하연이 육아 영상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이걸로 돈을 벌거나 관심받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하연이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한편 나 스스로도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일종의 증명이자 기록.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 편씩. 여유가 있을 때만 올렸다.
그렇게 한 2개월을 올리니까 신기하게도 조회수가 조금씩 올랐다.
가장 많이 본 영상의 조회수는 1,500이 넘었다.
내가 만든 영상 중에는 조회수가 백만 단위인 게 수두룩했지만 그건 돈을 받고 남의 채널에 올라간 거지 이렇게 개인적으로 올린 영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런 편집도 없이 올린 생영상.
12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어느새 100명을 돌파했다.
‘다들 이 맛에 유튜버가 되는 거구나.’
영상 제작자라고 모두 유튜버를 겸하는 건 아니다.
유튜버는 영상 기획이나 촬영. 또는 편집과는 별개의 또 하나의 직업이었으니까.
영상을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채널을 관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공력이 든다.
그러니 영상 제작자 중에서 유튜버를 겸직해서 돈을 버는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보통은 이전의 나처럼 실험용 영상을 올리는 창고용으로 활용하는 정도.
그래도 팔로워가 100명이 넘으니까 조금 본격적으로 운영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전에 올린 영상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댓글이 하나 보인다.
└ 하연이 엄청 귀엽네요! 하연아! 삼촌이 사랑해~♡
하하.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냐.
마치 나한테 누군가가 고백을 한 것처럼 심장이 뛴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하연이를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하연이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하연이는 이상하게 카메라만 들이밀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가 이게 뭔지 알고 저러는 걸까?’
하연이의 웃는 얼굴이 찍고 싶었는데.
잘 때가 아니면 쉽지 않다.
“우! 우!!”
하연이는 내게 항의하는 것처럼 뭐라고 소리치더니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옆으로 발라당 뒤집었다.
- 쿵!
뒤집기를 한 지는 조금 되었는데, 요즘은 익숙해졌는지 침대 끝에서 침대 끝까지.
뒤집기만으로 이동하곤 했다.
한번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딱 침대 끝에서 이동을 멈춰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아무튼.
“아 귀여워!”
단지 옆으로 굴렀을 뿐인데 저게 뭐라고 이렇게 귀엽지.
웃고 있는 얼굴을 찍지는 못했지만 뒤집기 영상이라도 올려둬야겠다.
나는 [불만 가득 뾰로퉁 김하연! 뒤집기 성공!!]이라는 제목과 함께 방금 찍은 영상을 올려두었다.
하연이는 뭐가 불만인지 계속하여 우우! 하는 유인원 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나는 유튜브 창을 끄고 하연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들어 안았다.
하연이는 그제야 소리 내는 걸 멈췄다.
“하연아. 아빠가 너 카메라로 찍는 거 싫어?”
이제 고작 5개월 된 아기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집에는 나와 하연이 둘뿐이니까 나는 틈만 나면 하연이에게 말을 걸곤 했다.
“우! 우!”
그러면 꼭 하연이가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한동안 하연이를 안고 둥가 둥가를 해줬더니 이내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어쩜 이렇게 순하고 얌전한지.
언제였더라?
우리 집에 놀러 온 선종이 형이 부럽다며 이런 말을 꺼낸 적도 있었다.
“진형아. 진심으로 하연이 나 주면 안 되냐?”
“네?”
“아니 이게 사람이야 인형이야? 너무 조용하고 얌전하잖아! 나 이제 못 참겠어! 하연이는 내가 데려다 키워야겠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하연이는 제 딸이라고요!”
선종이 형뿐만이 아니었다.
하연이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면 어르신들이 어쩜 저렇게 아이가 순할까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어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자네 전생에 큰일을 한 게 틀림없네.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을 얻었으니.”
헤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는 품에 안겨 조용히 자는 하연이를 보고 다짐했다.
‘하연아. 비록 엄마는 곁에 없지만, 아빠가 엄마 몫까지 최선을 다해서 키워줄게. 항상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렴.’
천사보다 예쁜 내 새끼.
감상에 빠져있던 나는 하연이를 침대에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두 볼을 때렸다.
- 찰싹!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볼이 얼얼할 정도다.
‘지금 바보같이 굴 때가 아냐!’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
사랑도 중요하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양육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나는 선종이 형이 던져준 일거리에 몰입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가리켰지만 나는 작업에 열을 올렸다.
하연이를 먹여 살리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기반을 쌓아야만 한다.
- 위이이이잉!
노트북 팬 돌아가는 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울렸다.
김진형이 화면에 집중하는 사이.
그녀의 딸인 김하연이 김진형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