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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2화 (2/135)

내 딸은 국힙원탑 2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몇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잠에서 깨더니 젖을 달라는 듯 구슬프게 울어댔다.

비몽사몽에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있었다.

“후우.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정말 육아란 고된 일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회사가 힘들다지만 육아에 비하면 단언컨대 아무것도 아니다.’

대충 세수를 끝내고는 김 대리에게 문자를 한 통 넣었다.

[개인 사정으로 삼일간 연차를 써야 될 것 같습니다 ㅠㅠ 사장님께도 따로 연락드릴게요]

왜 갑자기 말도 없이 당일 아침에 휴가를 내냐고 지랄할 게 분명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아이를 보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았다.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켜고는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육아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아기 키우는 방법으로 검색하자 온갖 정보가 화면에 뜬다.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링크를 눌렀다.

<아기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그러나 아기를 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하루 2시간 이상 안긴 아이들이 더 잘 크고 덜 운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보다 많이...>

‘안아줘야 하나?’

아이를 안아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떻게 안는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안아줄 힘도 없다.

대신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낮이 되어 밝은 공간에서 다시 보니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 내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친자확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를 위해서는 혈액이나 모근이 있는 머리카락, 침 등 검체에서 부모와 자녀의 DNA를 추출한 다음 유형 비교를 통해 친생 관계 가능성을 보면 된다라. 비용이 얼마지?’

다행히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10만 원대 수준으로 2015년 초에 한국 정부에서 친자 확인에 사용되는 DNA 시약을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미국 제품을 수입했기에 비용만 무려 100만 원에 달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었다.

해외에서는 친자 확인용 유전자 검사 키트를 대형마트나 약국 등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친자확인 검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하기로 결정했다.

3일 뒤면 이혜미가 아이를 데려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왕 내게 온 김에 확실하게 내 아이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민간업체의 카톡으로 문의를 넣었다.

금세 답변이 온다.

[DNA확인센터] :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를 받고 싶으시다고요?

> 네. 12만원 맞나요?

[DNA확인센터] : 그건 검사 대상자 1인 비용이고요. 부모 중 1인과 자녀 1인을 하려면 공공기관 제출용은 30만원. 개인단순 확인용은 24만원입니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 앗. 그런가요? 개인 확인용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럼 24만원 짜리로 결제해야겠네요. 생각보다 비싸네요. 블로그에선 12만원이라 적혀있었는데 ㅜㅜ

[DNA확인센터] : 그건 1인 비용이고요. 아래 계좌로 입금해주시고, 홈페이지 내용 참고하셔서 필요한 검체와 신청서 및 동의서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아이의 경우에는 출생증명서와 1개월 내 발급받은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하고요

> 저기 제가 좀 곤란해서 그러는데 아이건 서류 없이도 가능할까요?

[DNA확인센터] : 공공기관 제출용이 아니라 개인 확인용 검사라고 하셨죠?

> 네...

[DNA확인센터] : 그럼 상관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시거든요

> 다행이네요 ^^;;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DNA확인센터] : 검사는 8시간이 소요됩니다. 보통 증명서 만들어서 우편으로 주고받고 하는 시간까지 합쳐서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저희는 3일 만에 빠르게 처리해 드립니다 ^^

> 네. 그럼 오늘 중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유전자 검사 시험 의뢰서와 동의서를 다운받아 확인하니 다행히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진 않았다.

다만 생년월일과 성명을 요구하는데 이건 내가 모르는 정보였다.

‘어떡한다.’

잠시 고민하고는 대충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어 보냈다.

어차피 개인적으로 확인하려는 의도니 뭐가 됐든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이 이름에 김하연이라고 적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하연의 이름과 내 성인 김을 합쳐서 급조한 이름.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형편도 아니고.’

해당 계좌에 돈을 입금한 다음 면봉으로 아이와 내 입안 볼살 안쪽을 살살 문지른 다음 각각 지퍼백에 넣어 봉인했다.

그리고 퀵 서비스 기사를 불러 업체에 필요한 자료를 보냈다.

이렇게나 빠르게 검사를 할 수 있다니. 요지경 세상이다.

#

내 딸아이. 아니 김하연은 어딘가 좀 이상했다.

분명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는 수시로 울고 징징거려야 되는 게 정상인데.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아니면 잘 울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을 살핀다고 해야 하나. 나와 근처 사물에 대해서 유심히 관찰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바닥에 놓여 있는 <재벌가로 환생>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

놀란 얼굴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책 표지는 어두컴컴한 색상에 조잡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지.

혹시라도 저런 게 취향이라면 장래가 걱정될 정도다.

그녀가 환생자가 아닐까 따위의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육아 스트레스로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녀와의 동거도 삼 일이 흘렀다.

몇 번이나 이혜미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기가 꺼져있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가자 조급함이 올라왔다.

설마 나를 속인 건가?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는 4일째 아침이 밝았다.

결국 이혜미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김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야 이게 누구야. 회사 때려치운 줄 알았던 김진형이 아니야?

“..김 대리님. 저 오늘 하루만 더 연차쓰면 안 될까요?”

- 와. 자기 회사 진짜 편하게 다닌다. 막 당일에 삼일씩 휴가를 내더니 또 연차를 쓰겠다고? 왜? 어디 좋은 데 붙었어? 거기서 하루만 더 시간을 달래?

“아뇨, 진짜 그런 거 아니고요, 집안일로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 집안일? 부모님도 안 계시고 연락하는 가족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생이별한 자식이라도 나타난 거야? 응?

깜짝 놀라 딸꾹질이 나왔다.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거렸다.

“그건 아닌데 비슷한 문제예요. 딸꾹.”

- 하하. 이제는 부정도 안 하네? 딸꾹질까지 하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딸꾹. 복귀하면 밀렸던 일 제가 다 끝낼게요. 딸꾹. 이번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 비디오쉐어가 내 회사는 아니니까 그건 사장님이 결정하시겠지. 아무튼 알았어. 연차는 내가 대신 올릴게. 사장님한테도 꼭 전화드려서 사정 설명해.

“가, 감사합니다, 대리님! 딸꾹.”

진짜 직장 생활은 진절머리가 난다. 꼴도 보기 싫은 김 대리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야 한다니.

그녀와의 전화를 끊고 다시 이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그런데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연결되지 않은 전화를 상대가 받는다.

그래 잘 걸렸다.

“야 이혜미!!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된 거야!”

- 네? 저기 전화 잘못 거신 거 같은데요.

웬 중년 아저씨 목소리다.

목소리를 낮추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010-****-**** 아닌가요?”

- 맞는데, 전 주인분 연락처 같네요. 제가 오늘 전화를 바꿨는데.

“네? 전화를 바꿨다고요?”

- 그래요. 그러니까 다시는 이 번호로 연락하지 마세요. 아침부터 깜짝 놀라게 소리를 빽 지르기는. 니미..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번호 전 주인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시나요?”

-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눈앞이 하얘진다.

이렇게 급하게 전화를 바꿨다는 건.

이혜미가 더 이상 나와 아이를 찾지 않겠다는 의미였으니까.

#

“그래서 갑자기 아이만 놔두고 애엄마는 종적을 감췄다고?”

“맞아요.”

“씨발. 진짜 뭐 이런 개좆 같은 경우가 다 있냐. 그런데 쟤는 네 친자식은 맞고?”

“네. 어제 DNA 확인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99.9999% 제 자식이래요.”

“하하...”

눈앞에 있는 덩치 큰 남자가 황당하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박선종.

나를 영상의 세계로 인도한 남자이자 친한 고향 선배다.

그는 혼자서 자그마한 영상제작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를 비디오쉐어에 추천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의 밑에서 일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자신 한 몸도 건사하기 어렵다면서 정중히 사양했다.

선종이 형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하연이를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애가 진짜 사기급으로 예쁘긴 하네.”

“그쵸?”

“아니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쩔 거냐. 회사는?”

“일단 오늘까지 휴가를 내긴 했는데. 이제 남은 연차도 다 써서 없네요.”

“내가 태열이 형한테는 적당히 둘러댈 테니까 당분간 집에서 일하면서 하연이 돌봐라.”

“집에서 일하라고요?”

“그래.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하는 곳들 많아. 집에서도 영상 제작 가능하잖아.”

“그건 그런데 노트북이라서 아무래도 회사 데스크톱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죠.”

“아무튼 가능은 하잖아. 일단 회사는 다녀야지. 애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들어갈 텐데.”

비디오쉐어 사장인 심태열과 선종이 형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그래서 나를 그곳으로 추천한 건데, 내가 비디오쉐어의 실상을 술자리에서 토로하자 몇 번이나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자기가 자리를 잡아서 나를 데려가겠다고 말이다.

허울뿐인 말임은 알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선종이 형 덕분에 밥벌이를 하고 있는 건 맞았다.

그는 턱을 한 차례 쓰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진형아. 하연이 네가 키울 수 있겠냐?”

“친모가 애를 버리고 도망갔잖아요. 남은 건 저뿐인데 제가 안 키우면 누가 키워요?”

“아니 그게 말이지.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선종이 형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상황을 보니까 애 엄마가 출생신고도 안 했을 가능성이 큰데, 네가 이 모든 걸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야.”

“형!”

“나도 잘은 모르지만, 베이비박스라는 게 있다더라. 막말로 너 육아에 대해서는 1도 모르잖아. 회사 다니면서 저 갓난쟁이를 키울 순 있겠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한테 그럴 수가 있어요!”

“쉿. 애 깨겠다. 나는 단지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 알려줬을 뿐이야. 결정은 네 몫이고.”

“아무튼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다시는 저한테 그런 이야기하지 마세요.”

아기인 하연이가 나와 그 사이의 대화를 알아먹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옆에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물론 선종이 형 입장에서는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만 아이를 버리라니. 친자확인에서 다른 아이로 판명되었다면 모를까 뻔히 내 자식인 걸 알게 된 상황이었다.

‘애 엄마도 아이를 버렸는데 애 아빠까지 포기하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으라는 건가.’

나 역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후에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컸다.

부모가 없다는 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를 버릴 순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하연이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게 뭐지?

분명 하연이는 눈을 감고 있는데 눈 주변으로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마치 어른처럼.

선종이 형을 집 밖으로 내쫓고는 거즈 손수건으로 하연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연아. 아빠 아는 분이 잠깐 왔다 갔는데 별일 아니야. 혹시 자다가 악몽 꿨어?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지만 하연이의 작은 몸이 작게 떨려온다.

정말로 알아듣고 이러는 걸까?

저 작은 몸이 오들오들 떠는 게 너무나도 애처롭다.

본능적으로 하연이를 안고는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아기 안는 거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

내 새끼.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가 책임진다. 걱정하지 말아라.

작은 아이의 체온이 한없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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