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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화 (1/135)

내 딸은 국힙원탑 1화

“김 대리님. 이거 오늘까지 꼭 끝내야 하나요?”

“클라이언트 측에서 오전에 사장님한테 전화를 넣었나 봐. 오늘까지 꼭 보내달라고.”

“마감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아니었어요?”

“원래는 그랬지.”

“저기. 이거 말고도 오늘까지 마감 쳐야 할 영상이 2개나 되는데.”

“몰라. 억울하면 사장님한테 직접 따지든가.”

하아. 끊었던 담배가 땡긴다.

망할 놈의 사장은 올려달라는 월급은 내버려 두고 그저 일감 받아오는 데에만 정신이 없다.

일감만 받아오면 다행이지.

왜 허구한 날 마감을 자기 마음대로 당기고 지랄일까.

정작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나인데.

사수인 김 대리도 그랬다.

뻔히 나 바쁜 걸 알면서도 막을 생각조차 없다.

그저 사장 앞에서 방긋 웃으며 네네하고 허리를 굽신거리기 바쁘다.

‘이번 달 월급만 들어와 봐라. 이따위 거지 같은 회사는 당장 때려 칠 테니까.’

물론 나도 안다.

그렇게 다짐한 게 벌써 1년째라는 걸.

비디오쉐어.

아는 형님의 추천으로 들어온 곳이다.

유튜브나 홈페이지 등에 올릴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업체.

업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곳이지만 구직자들의 평은 좋지 못했다.

심지어 기업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선 평점이 1점대를 달리고 있었다.

1점대 평점은 블랙기업의 상징과도 같은 점수 아니던가.

5점 만점에 1.2.

오죽하면 이전에 이곳을 다녔던 직원들이 남긴 댓글은 아래와 같았다.

- 비디오쉐어에 들어가느니 백수를 하고 말겠다. 절대 오지 말길

-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지원 ㄱㄱ

- 사장님이 미쳤어요! 하루 만에 영상 만들라고 지랄함. 무슨 영상이 레고 조립도 아니고.

그럼에도 다른 방안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넘게 백수 신분이었던 데다가 통장 잔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입사 초기에는 일거리가 많은 게 즐거웠다.

이게 다 인생의 경험치이고 실력을 쌓을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산이었다.

사장은 내가 빠르게 일을 쳐내는 걸 파악하고서는 오히려 더 많은 일감을 몰아주었다.

연봉 인상? 에이스 대접?

그딴 거 하나 없이 말이다.

내가 당장 그만두더라도 또 다른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었다.

‘구성원을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

카톡을 켜고는 오늘 모이기로 한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에게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남긴다.

> 미안하다. 오늘 못 갈 거 같다

[박성현] : 왜? 간만에 모이는데.

[신상준] : 또 야근이냐?

> 어

[구현모] : 미친. 니네 회사는 365일 야근만 하냐. 야! 노동청에 신고해! 신고!

남의 회사 일이라고 쉽게 말하긴.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영상제작업체는 바닥이 좁다. 괜히 찍혔다가는 평생 백수로 지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영상 제작 말고 다른 일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말이다.

영상은 내게 알파요 오메가였다.

휴대폰을 책상 위에 휙 던져놓고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 빌어먹을 회사에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업무 중에 이어폰을 낀 채 작업을 하더라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영상 만드는 데 사운드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니까.

음원사이트에 접속해서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가수로 진화한 이하연의 최신곡을 틀었다.

신곡 발표와 동시에 차트 1위를 찍고는 4주째 1위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곡이다.

잔잔한 배경음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오늘 하루는 좀 어때?

많이 힘들었지.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오늘도 좀 많이 힘들다.

속으로는 눈물이 나는데.

입은 나도 모르게 거짓 웃음을 짓고 있어.]

마치 지금의 내 이야기 같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았으면 회사에서 볼썽사납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고개를 양손에 파묻고는 서둘러 마른세수를 했다.

바탕화면에 있는 영상편집 프로그램의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 부르르르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더니 연합뉴스의 속보가 팝업으로 뜬다.

‘뭐지?’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든 나는 한 손에 든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속보] 가수 이하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

자정이 지나서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옆에서 김대리가 마구 쪼지 않았더라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회사를 나왔을 거다.

내 유일한 안식처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하연이 자살하다니.

벌써 몇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 좀 울 것 같아.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

└ 동감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세상이 멸망해버린 기분이네. R.I.P.

└ 기사로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나더라. 이하연 언니. 부디 저 세상에서는 편히 쉬시길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게 다 이하연 아빠 때문이다. 씨발새끼. 딸은 죽었는데 보험금 탄다고 좋아라 하겠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 아무래도 가족간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 이런 건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거야?

└ 그게 가능했으면 연예인 가족 비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겠지. 슬픈 일이야

└ 뭐가 됐든 자살은 비겁한 짓이다! 남겨진 팬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진짜 눈물난다. 하연아...

└ 다시 태어나면 꼭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막차를 탄 나는 힘없이 정류장에서 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며 터벅터벅 집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잠시 썸을 탔었던 여자다.

친구들이랑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내가 마음에 든다면서 당돌하게 자신의 연락처를 들이민.

연락 안 한 지 오래되었는데 회사가 바쁘다 보니 번호를 삭제하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받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누구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회사에서 떨어뜨려 액정에 금이 간 화면 아래의 녹색 응답 버튼을 꾸욱 눌렀다.

“여보세요.”

- 앗 다행이다! 전화 받네?

“무슨 일이시죠?”

-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 나 잠깐 너희 집에 가도 될까?

“네? 지금 이 시각에요?”

누가 먼저 연락을 끊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도. 나도. 둘 다 서로에게 그다지 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런 미련도 없었고 실수로라도 문자를 보낸 적은 없었다. 아무튼 조금 황당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 진짜 급해서 그래. 응?

“하아. 알겠습니다. 어디서 볼까요? 늦었으니까 잠깐만 이야기하시죠.”

- 그건 좀 곤란해. 내가 너희 집 앞까지 찾아갈게.

뭐? 이 시각에 우리 집에 오겠다고? 교제를 전제로 만남을 이어나가자 이런 이야기는 아닐 테고.

아무튼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었다.

연이은 야근에, 휴대폰 액정은 깨졌지, 이하연의 자살까지.

바보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하니 나보다 그녀가 먼저 집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 집 비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같이 잠을 잔 사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에 들어오는 건 선을 넘어도 세게 넘은 거 아닌가.

뭐라더다? 주거침입죄에 해당할 텐데.

그녀에게 뭐라고 쏘아붙이려고 하던 찰나.

“으애앵!”

집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는가 싶어 집안을 살피니 침대 위에 웬 포대기가 올려져 있다.

“이게 무슨 소리죠? 침대 위에 저건?”

“...네 아이.”

“네? 그게 무슨 소린가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진형아. 아니 진형 씨. 딱 이번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내 부탁 들어주면 안 될까?”

“저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런 이야기 한 번도 한 적 없었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 임신 사실을 나도 나중에야 알았으니까.”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바로 말을 해줬어야죠! 갑자기 덜컹 데려오면. 하아. 진짜. 뭔데? 대체? 어?”

나도 모르게 높임말 대신 반말이 나왔다. 그녀는 나보다 3살 위의 누나였고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연락을 끊었던 건데. 뭐? 내 아이라고?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 너무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 되거든. 네가 며칠만 맡아주면 안 될까?”

“아니 막말로 얘가 제 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그래요. 어거지 부리지 마세요!”

“김진형! 너는 씨발. 진짜 어쩜 그런 말을..”

썸녀. 아니 이혜미가 갑자기 입술을 꽉 다물고는 눈물을 흘린다.

“내가 그렇게 헤픈 년으로 보여?”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요. 임신은커녕 출산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면.”

“너는 진짜 나쁜 새끼야. 개새끼.”

도대체 누가 잘못했단 말인가. 우리는 둘 다 즐겼고, 그러다 성격이 맞지 않아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피임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잘못도 있지만 그녀도 거기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뭐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임신은 물론 출산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아이를 낳아놓고는 이제 와서 네 아이니 잠시 맡아달라?

황당하고 억울한 건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하지만 이혜미는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딱 3일만. 3일만 봐주면 돼. 그 뒤로는 내가 다시 찾아갈 테니까.”

“3일?”

“그래. 그때까지 애 잘 보고. 설마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네 핏덩어리니까 최소한의 책임은 져. 여기 분유랑 기저귀도 가방에 들어있어.”

“어? 혜, 혜미 씨! 야! 이혜미! 거기 서!”

그녀는 그 말만 남긴 채 눈앞에서 사라졌다.

“으애애앵!”

아이는 울지, 애엄마는 사라졌지.

안 그래도 힘든 하루였는데. 눈 앞이 캄캄해진다.

#

아무리 전화를 해도 이혜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단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아기가 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찾았다.

<아이가 우는 건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배고플 때. 둘째 졸릴 때. 셋째 서러울 때.>

서둘러 가방 속을 뒤져 젖병과 분유통을 찾았다.

그리고 분유통에 적힌 가이드에 따라 분유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에 젖병에 분유를 타고 끓인 물을 체온보다 약간 따뜻한 정도로 식혀서 사용하라고? 씨발! 이게 무슨 말이야!”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분명 한국어로 적혀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찌어찌 분유를 타고는 그걸 아기의 입에 넣어주었다.

쪼옥.

방금까지 세상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울어 젖히던 녀석이 젖병을 물더니 울음을 뚝 그쳤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놀라운 힘으로 분유를 먹기 시작한다.

“하하?”

이것 참.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난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서 잠시 미쳐버리기라도 한 걸까.

그런데 이 아기. 지금까지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이제야 제대로 얼굴을 보는데.

정말 너무 예쁘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하더니 그런 건가.’

아니. 이건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너무 귀엽다.

오뚝한 코에 앵두 같은 입술. 깊게 쌍꺼풀진 눈까지. 아기치고는 이목구비가 연예인 저리 가라 할 만큼 뚜렷하다.

마치 천사가 환생한 것만 같았다.

넋을 놓고 그저 아이가 먹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분유를 먹을 동안은 얌전했던 아이가 다시 죽을 듯이 숨을 헥헥대며 울음을 터트린다.

내가 뭘 놓친 거지?

허겁지겁 인터넷을 찾아보니 분유를 먹인 다음에는 반드시 트림을 시켜줘야만 한단다.

아기의 식도는 짧은 데다가 음식물이 위에서 식도로 거꾸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둘 사이를 조이는 괄약근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나.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는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으응. 꺼억.”

거참. 트림 소리가 장군감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아들인지 딸인지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다.

기저귀 속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바보처럼 웃었다.

“딸이네.”

뭔가 순간적으로 아이가 기분 나빠하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자식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 애 있는 형님들은 죄다 딸이 최고라고 그랬다. 아들은 지옥이라며.

‘이걸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저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새근거리며 잠든 아이의 볼살을 살짝 어루만진다.

“찹썰떡처럼 통통하고 쫀득거리네.”

바보 같이 웃다가 그만 정신이 들었다.

3일만 보면 된다지만 내일 당장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아이를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는 상황.

이럴 때 가족이라도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아쉽게도 태어난 이후 아버지는 얼굴 한번 본 적이 없고, 어머니는 어릴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를 길러준 외할머니도 작년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주변에 아이를 맡길만한 곳이 없었다.

‘일단 내일 하루는 연차를 내야겠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세상모르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다들 이 맛에 죽을 만큼 힘들어도 애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 걸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가 잠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작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아이가 자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나는 침대 위의 물건들을 모조리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중에는 평소 내가 즐겨 읽던 <재벌가로 환생>이라는 책도 있었다.

웹소설 원작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종이책으로도 발간된 것.

잘 팔리는 책은 아니었지만, 소장용으로 구매해뒀다.

피식.

“너도 환생자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알면서도 실없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나는 그 책을 베개 삼아 바닥에 눕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가장 길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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