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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116화 (116/130)

116. 외전/ 천마대전 ~전쟁의 서막~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현이가 쇼핑을 너무 많이 한다.

지금 겨울방학 기간인데 애가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없을 정도니까.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이수민을 불러 외출을 했다.

이수민 그놈도 똑같다.

아니, 아니지.

나이까지 감안하면 걔는 더 답이 없다.

어떻게 된 게 한 번을 거절하는 법이 없지?

왜 부르면 부르는 대로 다 나가냔 말이다.

그리고.

종이봉투를 한 아름씩이나 안고 돌아오면서 지현이는 으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희야! 언니가 선물 사 왔다?”

“······또?”

내가 그렇게 묻자 지현이가 얼굴을 찌푸린다.

“아빠는 왜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지? 지희 가지고 놀 장난감 사 온 건데.”

“아니, 당연히 좋기는 한데-”

벌써 많으니까 그러지······.

차마 소리 내어 말은 못하고 거실 바닥을 둘러봤다.

아기 장난감이 이미 한가득이었다.

딸랑이에, 헝겊 인형에, 여러 가지 악기들을 시작으로 심지어 태어난 지 이제 5주 된 우리 지희가 가지고 놀기에는 부담스럽게 큰 장난감들도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러닝 뭐시기랑 걸음마 보조기······, 이건 진짜 왜 샀는지 모르겠다. 아직 뒤집기도 못하는데.

그리고 붕붕카와 미끄럼틀, 각종 캐릭터 상품들까지.

그래. 다 좋다 이거야.

언니가 동생 주려고 사 온 거니까 나도 흐뭇하지.

문제는 상당수가 우리 지희가 아직 못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는 것과, 선물 사는 사람 따로 있고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정리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지희 태어나기 몇 주 전부터 육아 휴직 쓰고 집에만 있으니까.

오늘에야말로 지현이를 잘 타이르고자 입을 뗐다.

“딸, 아빠 생각에는 장난감 이미 많은-”

“아빠 지희 안방에 있어?”

선물 상자를 내려놓고 지현이가 물었다.

내 말은 아주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만.

“응. 방금 엄마가 재운다고.”

“들어가면 괜히 잠 깨우겠지?”

쇼파에 털썩 앉은 지현이가 못 참겠다는 듯이 중얼거리던 때, 어떻게 알았는지 안방 문이 열렸다.

품에 지희를 안은 애 엄마가 거실로 걸어나왔다.

사실 지현이한테도, 지희한테도 ‘엄마’는 애 엄마와 백운상 둘 모두지만 호칭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나와 애 엄마, 백운상까지 세 사람이 합의를 봤다.

우리 딸들한테는 절대 말 못하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지희가 울지도 않고 방긋방긋 웃는 걸 본 지현이가 대번에 다가갔다.

“엄마, 내가 안을래. 내가!”

“그래줄래?”

“응. 아유, 귀여워. 우리 동생은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그 말에는 깊이 동감하는 바였다. 꼭 내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귀여움으로 고금을 통틀어서 지현이와 함께 첫째둘째를 다툴 만했다.

내가 안아줄 때면 조막만한 손으로 내 가슴을 톡톡 두드리는데······,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아팠다.

게다가 애가 어찌나 순한지 식구들 잘 때 같이 자고 새벽에 깨는 일도 거의 없다.

이 점은 지현이 어릴 때랑은 차이가 있겠네.

우리 첫째는 재우면 깨고, 다시 재워서 침대에 누이면 또 깨서 울어서 애 엄마랑 내가 고생을 제법 했으니까.

지현이한테 아기를 맡긴 애 엄마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함께 쇼파에 앉아 손을 잡으면서 첫째 딸이 둘째 딸을 안고 어르는 걸 지켜봤다.

“오구오구. 지희야, 그거 알아? 우리 이쁜 동생 태어나던 날 신교의 모든 교도들이 지희 이름을 속삭였다?”

말은 거창한데 그래봐야 열 명도 안 되잖아.

피식 웃으며 애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응?

“당신 지금 몸이 좀 안 좋나?”

“아, 두통 살짝 있긴 한데 괜찮아.”

“약국 가서 약 좀 사다줄까?”

“으응, 그 정도는 아냐. 왜 아픈지 알구 금방 멎을 거야. 그리구-”

잠깐 말을 멈춘 애 엄마가 내 옆으로 찰싹 붙어왔다.

“잘 듣는 약 여기 있는데 뭘.”

애 엄마와 내가 뜨겁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지현이가 묘하게 차게 식은 눈으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손바닥으로 지희 시야는 왜 가리는데.

다소 멋쩍었는지 애 엄마가 쇼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오빠 나 잠깐만 누워 있을게. 지희 좀 봐줄래?.”

“응······.”

“오구, 우리 지희 맘마 먹을까?”

지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동생을 돌보기 시작했다.

***

차수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침대에 앉았다.

두통이 생긴 건 유지희를 데리고 안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었고,

둘째 딸이 마주 웃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십 분쯤 지난 지금은 거의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미약하게 두통이 있었다.

차수희는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운상아?>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소리내어 불렀다.

“운상아?”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통이 생겼을 때부터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사실 차수희도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예감했던 순간이, 마침내 찾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유지현의 집 맞은편의 단독주택.

거울 앞에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손짓 한 번, 눈길 한 번마다 기품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거울을 보며 팔을 움직여봤다.

거의 일 년 만이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정말 돌아왔구나······.”

이제 막 나탈리야의 몸으로 돌아온 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하기야 이미 예감하고 있던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천마 백운상이 해야 할 일 역시도 확고히 정해져 있었다.

돌아온 백운상에게 자리를 내어준 성화가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응?”

<그냥······,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그건 성화가 줄곧 해오던 생각이었다.

지난 몇 달간 정신이 부쩍 성장해 이제 차수희와 백운상, 유수현 사이의 일에 대해서도 온전히 이해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셋이서 사이좋게 지내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우열을 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백운상은 성화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타당한 것과 받아들이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백운상이 우아하게 말했다.

“너는 그냥 빠져 있어.”

<그, 그게->

“한 번만 더 우리 일에 끼어들려고 하면 한 시간 동안 찬물로 샤워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히익!>

명색이 불꽃인 성화가 기겁을 했다.

백운상의 머리칼 주변으로 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그래. 아무도 이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

성화도, 제자인 이수민도, 유지현까지도.

이건 오롯이 그녀와 차수희, 유수현. 세 사람의 문제였다.

백운상은 휴대전화를 켜서 메시지를 입력했다.

본론만 적은 메시지의 내용은 이랬다.

<나와요. 할 얘기 있으니까.>

수신인은 차수희.

추정 레벨 6.

백운상조차 결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대적.

그리고 송신을 누르려는 순간.

도리어 이쪽으로 메시지가 왔다.

이것 역시도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 할 얘기 있지? 잠깐 시간 좀 내줄래?>

다시 돌아갔느니 하는 걸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한 메시지.

백운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선수를 얻어맞았음에도 썩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좋아, 이 정도는 돼야지.”

<무, 무서워······.>

두려움에 떠는 성화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백운상은 집을 나섰다.

***

서울 어느 한 주택가 근처의 카페.

신교의 천마와, 마찬가지로 신교의 천마가 마주 자리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과 적의, 호승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초대 천마, 차수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제안부터 할게.”

“제안이요?”

백운상이 굳이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답했다.

“혹시 지금까지처럼 잘 지내자는 말이면-”

“내가 미쳤니?”

“······!”

차수희가 팔짱을 풀었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싱긋 웃었다.

서늘한 그 미소에 백운상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역시나 다른 사람이었다.

스무 살 이전까지의 기억을 공유하고,

지금도 익숙한 외견이었지만.

백운상은 저런 식으로는 웃어본 적이 없다.

아내를 가장 사랑한다고 했던 유수현은 저 웃음에 반한 걸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어렴풋이 들려는 찰나,

백운상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것으로 그것을 떨쳐냈다.

그리고 차수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제법 하네? 라는 시선으로, 내려다보듯이 말해 온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여기 온 거면-”

“아뇨. 그럴 리가요.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규칙. 정해뒀으면 해서.”

“무슨 규칙 말이에요?”

커피잔을 내려놓고 차수희가 설명했다.

“아주 멋진 보물이 있고, 그 보물의 지분을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를 놓고 두 명이 싸우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싸움에 보물이 휘말려버리면 어불성설이잖아?”

다시 말해서 유수현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피하고, 둘이서만 승부를 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논의가 이어졌다.

승부의 내용과 승리 조건, 승자가 가져갈 이점까지 결론을 내고 백운상이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현이는 모르는 걸로요.”

“응. 이걸 언젠가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거기까지 이야기가 된 이상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할 건 없었다.

성화는 백운상과 함께 있으니 입단속을 시킬 수 있고, 이수민은 요즘은 유지현과 놀러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수민 이야기가 나오자 쌀쌀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상의했다.

“둘이 요즘 너무 가깝게 지내는 거 같긴 한데.”

“크리스마스 때도 그랬잖아요. 지현이랑 둘이 손 잡고 있다가-”

“······아니겠지?”

“······아니겠죠?”

동시에 내쉰 한숨.

“그 문제는 조금 더 지켜보는 걸로 하고, 더 말할 거 있니?”

“기한은 일주일 정도면 되겠죠?”

“응. 충분해.”

차수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2월 7일이었으니 일주일 뒤면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였다.

백운상에게 이날은 상징적인 날이기도 했다.

유수현과 재회하게 된 것이 바로 작년 2월 14일이었으니까.

‘일 년 전에는 앞집에 이사 온 여자애. 올해는······.’

상상만 해도 흐뭇했다.

백운상이 노래하듯이 말했다.

“발렌타인 데이 지나고 조사님한테 선물 하나 드릴게요.”

“무슨 선물?”

“피부개선에 좋은 기능성 화장품이요.”

“화장품?”

물론 화장은 하지만 백운상이 말한 것과 같은 화장품은 전혀 필요가 없는데.

그건 백운상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소를 머금은 백운상의 표정을 보고 그런 말을 한 의도를 알아차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이제 인상 쓰실 일 많으실 것 같아서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난방을 잘 해둬서 훈훈한 공기 사이로, 천마와 천마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여동생과 놀아주고 있던 유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양손에 딸랑이를 쥐고 있던 유지희가 한숨을 쉬는 걸 얼핏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태어난지 5주 된 갓난아기가 한숨을 쉬지는 않을 터.

유지현은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지희 트림할래? 언니가 등 두들겨줄까?”

그렇게 말한 유지현이 부드러운 손길로 동생의 등을 두드려줬다.

몇 번 두드리자 유지희의 입에서 ‘끄읏’ 하는 소리가 나왔다.

유지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 지희는 어쩜 트림도 귀엽게 하지?”

그리고.

집안의 귀염둥이로 자리매김한 사랑스러운 둘째 딸 유지희.

일찍이 상위차원의 신이었던 그녀는 오래 전, 궁전에서 백운상과 일월령과 마주했던 그날에 대해서 떠올렸다.

백운상은 스스로의 죄를 감당하겠다고, 자신은 그걸로 족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월령은 모두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며 웃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건만.

지금 멀리 시선을 두어 보고 있는 곳에서 그 두 사람이 벌이는 추태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전부 가식이었거나,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 이런 것이었거나.

둘 중 어느 것이든 결론은 같았다.

‘한심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이 시대의 말투에 적응한 유지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갓난아기인 유지희가 말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마침내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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