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115화 (115/130)

115. 외전/ 돈 많은 백수 이수민의 우울 ~희망 편~

***

“내가 당신 좋아한다고 하면······. 그러면 어떡할래?”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공원에서 마주치자마자 이수민이 그렇게 말했다.

거울로 확인한 것도 아니지만, 분명 지금 나는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거다.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나를 좋아······, 뭐요?

뭔 소리야. 니가 나를 왜 좋아해. 그게 말이 되냐?

-라고 하기에는 이 자식이 너무 진지했다.

말이 안 되고, 어이가 없고 그런 문제를 다 떠나서 쟤 얼굴이 말해준다.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진지하다고.

“잠깐만. 수민아, 잠깐만 일시정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올리면서 이수민과 시선을 마주했다.

보니까 옷도 신경 써서 입었고 머리 스타일도 평소에 하던 포니테일이 아니었다. 돈 좀 들였나 본데.

근데 눈 화장은 왜 팬더처럼 되어 있냐. 어디서 울고 온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이수민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이겨내고는 재차 물어왔다.

“확실하게 말할게. 나 당신 좋아해. 그러니까 대답해.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그럭저럭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대체로 고백받기도 전에 애 엄마, 스무 살 전에는 수희 선에서 정리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 좋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는 말이지.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너를 안 좋아한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아무리 간절하든, 울고불고 매달리든 항상 그렇게 답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답할 거다.

솔직히 전혀 상상도 못했던 거라서 당황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럴 거면 abc 초콜릿 말고 페레로로쉐로 주지 그랬냐, 좋아한다면서 뒤통수는 왜 쳤냐.

이런 장난 섞인 말도 건네면 안 된다.

확실하게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하는 게 옳았다.

“수민아.”

“왜.”

“나 너 안 좋아해.”

“······알아.”

“우리 지현이 잘 챙겨줘서 고맙고, 내가 못살게 굴어서 미안하지만 그거랑 이거는 별개의 문제잖냐. 너도 말할지 말지 고민 많이 했겠지만 앞으로도 내 대답 바뀌는 일은 없을-”

“나도 안다고.”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이 시점부터였다.

거절당하고 깨끗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 하는 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도 느낌이 좀 달랐다.

오히려 한이 쌓이는 것 같은-

“왜 나만 안 돼······?”

“응?”

이어서 한 맺힌 목소리가 공원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왜 나는 안 되는데!? 왜 나만 안 되냐고!”

나만? 이거 늬앙스가 좀······.

내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수민이 눈물을 흩뿌리며 소리쳤다.

“시발 새끼! 좆같은 새끼!”

“뭐?”

뜻밖의 언어폭력에 내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이수민이 그대로 공원 밖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솔직히 쫓아가려면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아까 메시지로 이게 정말로 마지막이랬으니까 이제 이런 황당한 일은 없겠지.

홀로 남은 공원에서, 나는 이수민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이런 일로 보지 말자······.”

***

그리고.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달려나가며 이수민은 생각했다.

‘나쁜 새끼 진짜로 따라오지도 않네······!’

물론 유수현의 탓을 할 계제는 아니었다.

고백을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걸 망친 건 자신이니까.

하지만 울화통이 터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나만 안 돼? 왜 나만 안 되냐고!’

물론 왜 안 되는지 이성적으로는 안다.

조금 전에 사부인 백운상에게 들었으니까.

백운상과 시천마 일월령, 하무린 세 사람의 인연에 대해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

그래서 이번에도 망쳐버렸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충분히 좋게 끝낼 수 있었고, 분명히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보다 더 최악인 방법을 찾기 힘들 만큼 파탄을 내버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자 급격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진심을 다해 고백하고, 거절당하고.

그렇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맞으며 이수민은 정처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했다.

‘아마 처음부터겠지······.’

전생에 하무린을 처음 만난 날.

정파 제일고수이며 천하제일 미남자로 신교에까지 이름이 드높았던 무림맹주 하무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몇 장의 용모파기가 마음에 들어 처소에 몰래 감춰두기도 했었다.

실제로 무림맹에 가서 얼굴을 보니 용모파기를 그린 화공들의 솜씨가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소문이 자자했던 하무린의 인성 역시도 소문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본다면.

그때 조금 달랐다면.

머릿속으로 어떤 광경이 그려졌다.

무림맹에서 하무린과 얼굴을 마주하고 고기를 먹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당당하게 거절하거나, 혹은 자신이 몰랐던 시야가 있었음을 인정했다면.

어쩌면 하무린은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국지적으로는 다툼이 있었으나 크게 보아서는 평온했던 정파 무림과 신교 사이의 가교 역할을 소교주 진천군이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무린과 좋은 관계를 쌓아나가고, 현생에서 재회했을 때 어쩌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에 어쩌면.

행복회로를 한껏 혹사해 그런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수민의 얼굴로 눈물이 흘렀다.

“이런 거 생각해서 뭐해······?”

이미 거하게 조졌는데.

집 현관문 앞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며 이수민이 중얼거렸다.

문이 열렸다.

이수민은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지듯이 누웠다.

얼굴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소설 <인간실격>의 표지.

표지에 그려진 사람의 눈길이 꼭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사냐고.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래!? 이러고 싶겠냐고!”

이수민은 소리를 지르며 책을 집어던졌다.

“흑, 흐윽.”

그렇게 울면서 잠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 수민 언니. 잠깐만 일어나 봐요.”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이수민은 눈을 떴다.

방 안이 깜깜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지현이?’

교복을 입은 유지현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수민이 잠에서 깬 걸 알아채고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아까 저녁부터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와봤더니. 옷이라도 갈아입구 자요. 그대로 자면 감기 걸린단- 언니?”

풀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수민은 유지현을 꼭 끌어안은 바람에 두 사람이 함께 침대로 쓰러진 것이다.

“언니 왜 그래요?”

당황해서 묻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다 필요없어. 우리 지현이만 있으면 돼.’

이수민이 양손으로 유지현의 얼굴을 감쌌다.

사랑하는 제자는 놀란 표정이었다.

매끈매끈한 살결.

맑은 보석처럼 예쁜 눈동자와.

선이 가늘게 뻗은 콧날과.

앙증맞게 붉은 입술.

“지현아······.”

이수민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유지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만약 지금 이 아이와, 절반은 유수현의 피를 이어받은 이 아이와-

“아야!”

유지현이 비명을 질렀다.

이수민이 느닷없이 이마를 세게 부딪치더니 확 밀쳐내는 바람에 벽까지 밀려난 것이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볼멘소리를 했다.

“뭐야? 아프단 말야!”

사부가 자기를 끌어안더니 갑자기 박치기를 한 것으로만 알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수민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할 뻔했다.

게다가 동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순했다.

조금 전, 사랑하는 제자에게서 누군가의 모습을 겹쳐봤다. 바로 유수현의 모습을.

그래서······.

극도로 치달은 자책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이수민은 후다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왔다.

“언니 어디 가? 진짜 왜 그러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지만 답할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지닌 바 무공까지 최대한 끌어올린 이수민은 테라스를 통해 날아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

“그래서 전대 교주님 찾는 걸 도와달라고?”

“응.”

이번엔 과육이 풍부하게 들어간 생과일 주스를 마시며 유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유화가 다소 시큰둥하게 답했다.

“때 되면 알아서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려주는 게 어때?”

“안 돼······.”

유지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벌써 사흘이나 지났지만 이수민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기실 이수민이 마음먹고 숨는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눈앞에 있는 천유화 정도가 아니라면.

“유화 언니 여기서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천마신공 흔적으로 찾았잖아. 그치?”

“응. 그렇긴 한데.”

“그걸로 수민 언니 좀 찾아주라. 나 진짜 너무 걱정돼서 그래.”

정확히 말하면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내가 괜히 사부님 마음 접게 한답시고 일 만들어서.’

그래서 이수민이 그날 그렇게 불안해 보였던 거였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수민이 돌아오기 전에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터놓고 대화를 하는 게 도리였다.

천유화는 걱정 어린 유지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알겠어. 우리 운혜가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지현이 천마신공의 내기를 흘려보냈고, 천유화의 주위로 휘황찬란한 빛이 반짝였다.

곧 천유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혜야. 잠시만?”

“왜?”

“전대 교주님 저어기 계신 것 같은데?”

천유화가 손가락으로 어딘가 높은 곳을 가리켰다.

현재 위치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초고층 아파트.

바로 이수민의 집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지현이 땅을 박차고 날았다.

“언니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멀어지는 유지현을 바라보면서 천유화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유지현과 이수민, 유수현.

“셋이 무슨 삼각관계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영 틀린 말도 아니라는 건 몰랐지만.

유지현이 이수민이 사는 아파트 현관에 당도하는 데는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바심이 났다.

‘언니 아직 안 갔겠지?’

사흘.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있었던 이수민이 사라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길었다.

빈자리를 여실히 느끼고 만 것이다.

‘사과부터 하자. 그리구 언니 마음의 상처 나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거야.’

눈이 펑펑 쏟아지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갓난아기를 데려다 키워준 사람이 있었다.

눈 속에서 데려와 설 씨라고 성을 주었고 사조부인 백운상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다 하여 운혜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해서, 본래 죽었어야 할 아이는 설운혜 雪雲惠가 되어 아득한 사랑 속에서 커나갔다.

바로 이수민이 그렇게 해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갚아줘야 돼. 맨날 잘못만 했지만 지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유지현이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있는 이수민과 마주했다.

“언니!”

생각할 틈도 없이 유지현이 달려가 안기려고 했지만, 거부당하고 말았다.

“오지 마!”

“사부님······?”

유지현은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수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부님 아냐.”

“······!”

“이제 지현이한테 그런 말 들을 자격 없단 말야······.”

그 말에 담긴 슬픔에 유지현은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 사과해야 할 거 있어요. 사부님 마음 아플 거 같아서 내가 엄마한테 말한 거야. 만약에 사부님이 그런 거 때문에 괜히 자기 탓하는 거면 안 그래도 돼. 나한테 뭐라고 하면 돼요. 내 잘못이야. 응?”

“지현이 잘못 아냐.”

“왜 내 잘못이 아니야? 내가 괜히 그런 말만 안 했으면-”

“으응.”

이수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날 있잖아. 언니가 엄청 나쁜 생각했다?”

“나쁜 생각?”

“응. 분명히 유수현 씨 좋아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지현이랑 헷갈리면 안 되잖아? 우리 사랑하는 제자랑 헷갈리면 안 되는데. 언니가 나쁜 생각했어. 유수현 씨랑 안 되는 거면 지현이가 딸이니까.”

울음기가 스민 목소리로 이수민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현이를 다른 사람 대신으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무슨 사부가 그래······.”

“······.”

“그러니까 언니는 이제 언니 자격도 없구 사부 자격도 없어. 다 언니 잘못이니까-”

이수민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유지현이 달려와서 안겼기 때문이었다.

달래주는 듯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괜찮아, 언니 나 괜찮아.”

“괜찮다고······? 뭐가-”

“대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뭐. 언니 말대로 나 아빠 딸이잖아. 그리구 사부님 제자이기도 하구, 수민 언니 동생 유지현이기도 하구.”

유지현이 고개를 들어 이수민을 바라봤다.

“막 그렇게 자책하구 그러지 마요. 사부님이랑 나 사이에 그런 게 무슨 상관있어. 나도 사부님 엄청 좋아하구 사부님도 나 좋아하잖아. 그러면 됐지. 아냐?”

“지현아······.”

“그러니까 언니가 우리 아빠 때문에 힘들고 그러면 그냥 그럴 때마다 나랑 같이 재밌는 거도 하고 맛있는 거도 먹으러 다니고 그러자. 그러면 되잖아. 언니 슬픈 생각 안 들게 내가 잘할게. 응?”

마침내 이수민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지현은 자세를 낮춰 울고 있는 이수민과 눈을 마주쳤다.

진천군이 어린 설운혜에게 해주던 것처럼.

‘그러고 보니까······, 그러면 그때 사부님 나한테 뽀뽀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내일모레가 서른인데 툭하면 제자 앞에서 우는 사랑하는 사부님을 달래주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

5월 15일.

유지현은 부엌에서 파티 준비에 한창이었다.

거실에 있던 유수현이 물었다.

“딸 근데 진짜 우리 집에서 하려구?”

“응. 아빠 내가 미리 말하는데 수민 언니 절대 구박하지 마? 나 진짜로 화낼 거다?”

“구박은 안 하는데······, 걔는 우리 집에 온대?”

“응. 올 거야.”

그렇게 답한 유지현은 케이크 장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늘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자 이수민의 생일이었다.

준비를 모두 끝마쳤을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유지현이 소리높여 말했다.

“모두 주목하세요! 수민 언니 오면 환영해주고, 축하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하지 말고 진짜로 진심으로 축하해줘. 알았지?”

“네에.”

거실에 모여 있던 집안 식구들이 일제히 답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 유지현이 문을 열었다.

곧 쭈뼛거리면서 이수민이 모습을 보였다.

유지현이 반기며 말했다.

“사부님 생일 축하해요!”

“으응······.”

“여기 앉아. 오늘은 언니가 주인공이야.”

중심 자리에 이수민을 앉혀둔 유지현이 부엌에 두었던 케이크를 가져왔다.

“초에 불 붙이구 노래부터 부르자.”

곧이어 어두운 거실에 촛불이 환하게 타올랐다.

유지현을 필두로 힘차게 축하 노래가 이어졌다.

노래 소리와 함께, 촛불에 비친 이수민의 얼굴이 점차 밝은 웃음을 띄어갔다.

“생일 축하합니다! 언니 이제 촛불.”

“응.”

이수민이 촛불을 불었다.

박수 소리가 들리고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어두운 가운데서도 유지현과 이수민은 마주했다.

‘지현아. 고마워.’

‘으응, 아냐. 내가 고마운데?’

시선으로 주고받은 말들과 애정을 담은 눈빛.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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