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99화 (99/130)

99. 천마님 신통력 쓰신다!

***

······집에 가고 싶다.

요즘은 하루에 이 생각만 열두 번도 넘게 하는 것 같다.

아늑한 우리 집. 시원한 코카콜라. 현대 문명의 다양한 이기들. 월급을 거저 받아가다시피 했던 직장생활까지 모두 그리웠고, 그보다도 사람이 더 그리웠다.

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고 우리 지현이 얼굴도 꿈에 나온다.

꿈속에 나오는 단골손님들은 나와 애 엄마, 타샤와 지현이, 이수민이까지 다섯 명.

공교롭게도 그런 꿈을 꾼 다음날은 꼭 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반각이 지난 후에 따라오거라.”

검은 무복을 입은,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인이 그렇게 말했다.

나직히 한 말이지만 내공을 실어 온 천지에 울렸다.

여인의 뒤에 시립해 있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답했다.

“존명!”

그와 동시에 여인이 허공으로 비상했다.

열화와 같은 성원이 터져 나왔다.

“천마님 신통력 쓰신다!”

“와! 천마신공! 허공답보!”

그리고······, 그걸 듣는 내 심정은 이랬다.

“시발, 좆같은 새끼들······.”

나도 성원을 보내는 대열에 함께 서 있긴 했지만 개소리 지껄이는 놈들 모조리 다 두들겨 패버리고 싶었다.

너희 가족이 천마 노릇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 이 개같은 놈들아!

안타까운 심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검디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날아가던 칠대 천마 설······, 아니지. 운혜가 허공에 멈춰섰다.

그리고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땅을 내려다본다.

그곳에 삼천 명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운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익숙한 복장에 익숙한 깃발들을 들고 있다.

무림맹과 각 문파들에서 차출한 정예 무인들이었으니 몇 명은 내가 아는 얼굴도 있겠지.

다시 말해서 전생의 쫄다구들과 내 딸아이의 전생이 생사대결을 벌이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이었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지만······, 지금 내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참아야 한다.

무림맹 놈들의 기합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됐다.

수십 명 정도가 갑자기 앞으로 나선다.

철시를 활시위에 겨누더니 내공을 운용해 연속해서 쏘아냈다.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간 화살이 운혜를 노렸고, 운혜가 그걸 튕겨내려고 하는지 소맷자락을 떨쳐냈다. 그리고 운혜가 소맷자락을 휘두르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내가 마법을 발동시켰다.

휘이잉!

제법 강하게 쏘아낸 화살들이었지만 손짓 한 번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겉으로는 천마님의 강대한 무공에 감탄한 기색을 보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개자식들이 어디 감히 우리 딸을 못살게 굴려고 해? 어림도 없지!

“······훗.”

우리 딸이 흘린 한 줄기 오연한 미소가 나와 마교놈들이 서 있는 곳까지 들렸다. 곧바로 이어진 환호성.

천마강림이 어쩌고, 고금제일무재가 어쩌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바람이 휘익 불었고, 운혜가 땅으로 내려왔다. 한 걸음씩 무림맹 놈들 쪽으로 걸어갔다.

이어질 참사를 예상한 듯이 무림맹 놈들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서린다.

벌써 몇 번이나 겪어봤으니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학습이 되었을 터.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땅에 붙인 발바닥을 통해 내공을 무진장 실어보냈다.

그리고.

운혜가 힘차게 발을 구르는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서 미리 보내둔 내공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갈라지면서 흙먼지가 비산했다.

무림맹 놈들이 서 있는 곳이 특히나 심했다. 중심을 잡지 못해 철퍼덕 엎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몸놀림이 좀 괜찮다 싶은 자들은 돌무더기를 밟고 날아올랐다.

이 모든 것이 운혜가 펼친 천마군림보의 공능······으로는 당연히 어림도 없지.

내가 버스를 태워······, 아니. 적절히 서포트를 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지금 천마월영보를 사뿐히 밟으며 정파 무인 삼천 명 사이를 거침없이 누비는 우리 딸은 까맣게 모르는 일이지만.

근데 쟤는 또 왜 저렇게 깊숙이 들어가 있지?

다치려면 어쩌려고 저러냔 말이야.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조마조마해서 몸이 저절로 들썩거렸다.

반각이 지난 후에 따라오라고 했는데 반각 되려면 아직도 삼 분은 더 남은 상황.

그동안 우리 딸이 혼자 싸우고 있는 걸 지켜보라고?

······어림도 없지.

조심스럽게 무적신공을 끌어올렸다. 은근슬쩍 언령을 발해서 작은 목소리로 계속 되뇌었다.

“가자, 가자······. 가는 거야······.”

삼 초 정도 지났을 때는 내 주위에 있는 대여섯 명이 ‘가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십 초가 지났을 때는 내가 속해 있는 흑천대 전체가,

다시 십 초 후에는 이곳에 모인 천마신교 이천 명이 모두 함께 외쳤다.

“가즈아아아-!”

전의가 가득한 마교의 무인들이 일 대 삼천 명이 벌이는 싸움터로 돌격했다.

그리고 나는 대충 아닌 척하면서 운혜가 위치해 있는 곳 근처로 다가갔다.

정파 절정고수 세 명이 뽑아낸 검강이 운혜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발끝으로 작은 돌멩이를 하나 찼고,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심지어 공격을 하는 본인도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딜레이가 생겼다.

운혜가 여유롭게 피했고 이어서 반격했다. 물론 이번에도 나의 적절한 방해공작과 함께였다.

미처 회피하지 못한 정파 애들이 한 명씩 공격에 얻어맞았다. 가슴이 움푹 패인 채로 십 미터를 넘게 나가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마합작······.

대충 한 놈 잡고 접전을 벌이는 시늉을 하면서 운혜 얼굴을 살짝 엿봤다.

전세가 압도적으로 우세한데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유를 알 것 같긴 했다.

이쪽이 우세하다지만 상처 입는 자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었고, 벌써 숨을 거둬 땅바닥에 널브러진 녀석도 있었다.

나한테야 우리 딸 싸움터로 내몰고 환호하는 개자식들이지만 운혜한테는 한 명 한 명이 아끼는 교도들일 터.

반 시진 정도 더 싸움이 이어지고, 이대로 있다간 다 죽겠다 싶었는지 정파 놈들이 미친 듯이 줄행랑을 쳤다.

기세를 올려 뒤쫓으려던 마교 놈들이었지만 뒤쫓지 말라는 운혜의 말에 아쉬움을 삼켰다.

우리 딸이 심성이 워낙 착하기도 했지만 전술적으로 봤을 때도 이게 옳은 결정이었다.

지금이 이득은 최대한으로 보고 손해 본 것은 거의 없는 시점이니까.

정파 놈들이 진원지기까지 소모해서 결사항전하기 시작하면 이쪽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내가 전면에 나선다면 아예 무림맹이 있는 안휘성 남단까지 쭉 밀고 올라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는 못한다. 들은 말이 있었으니까.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막사가 떠들썩했다.

피곤하다고 대충 둘러대고 간이 침상에 누운 채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했다.

나를 이곳으로 보낼 때 백운상이 내게 말했다.

그저 내가 알던 대로 행하면 된다고.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전혀 몰랐던 일들은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미래의 지현이가, 다른 환생자들이 기억하는 큰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했다.

가령 무림맹 본단까지 들어가서 마도천하를 이루고, 거기에 더해 황실의 성을 설 씨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기실 전생에 몸담았던 집단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막상 해 보니 지금 하는 일만 해도 내가 여기에 와야 했던 이유로 여기기에는 충분했다.

아무리 천마신공의 계승자라고 하지만 입신경에도 들지 못한 우리 딸이, 자기가 말했던 것처럼 강호무림을 일통하기 직전까지 간다고?

수천 명의 정파 무인들을 홀홀단신으로 상대하다시피 하면서?

나 정도로 무공과 마법 양 측면에서 능통한 자, 그것도 다년간 정체를 숨기며 힘을 발휘하는 데 익숙했던 내가 은밀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여쭐 것이 있소이다.”

<······그래.>

내게만 들리는 음성.

이제는 익숙한 일월령의 목소리였다.

진천군이 숨을 거둘 시점부터 시작해서 이제 거의 두 달째.

그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대화를 나눈 터에 서로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백운상이와 일월령은 내가 현대 대한민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았고, 나 역시도 황산에서 등선한 후에 백운상이 일월령과 함께 어찌 지냈는지는 대강 알았다.

지금에 와서는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공범자라고 해야 하나.

방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의문점에 대해 물어봤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혹여 현생의 일이 바뀌는 것은-”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단다. 네가 있던 곳에서 바라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은 이미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이니까. 네가 원하는대로 하면 그걸로 족한 것이야.>

“일월령께서는 나비효과라는 말을 아시오?”

<······나비가 무어라고?>

대강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해 주니 일월령이 답했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감사하외다.”

<그리고 운상이가 네게 할 말이 있어 전해달라 하는구나.>

“직접 하지 않고 왜 일월령께 심부름을 시킨다 하오이까.”

일월령이 한숨을 포옥 쉬었다.

<나도 그것이 답답하구나.>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만큼 이곳의 백운상도 내가 결혼하고 딸까지 낳았다는 건 이미 알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할 말이 있더라도 주로 일월령을 통해서 건너서 하는 편이었다.

마음이 많이 안 좋긴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백운상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괜한 말을 할 입장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일월령이 말을 이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가서 뭐라도 좀 먹으라는구나. 아휴······.>

“······그리 하겠다 전해주시오.”

<그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기친 이 어린 강아지야. 무슨 일 있으면 다시 말을 걸거라.>

응? 어린······, 뭐?

“방금 뭐라고 하셨소이까. 어?”

재차 말해봐도 벌써 연결이 끊겼는지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욕을 얻어먹긴 했지만, 일월령의 대답을 들으니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우리 딸 주변을 맴돌면서 다치지 않게 지켜봐주면 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의문점이 남아 있긴 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의문점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 번째로 황실의 개입.

내가 알기로는 강호무림이라는 세상이 생겨난 이후 대대적으로 황실이 개입한 적이 극히 드물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마대전은 일단은 진천군의 복수를 천명하면서 발생한 것이니만큼 황실이 개입할 명분 같은 게 없다.

혹시 정말로 마도천하를 이룩한 뒤에 천마신교가 패악질을 부린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내가 알기로는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

그 이후에 있었던 성화를 모신 제단 앞에서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딸이 등 뒤에서 칼을 맞고 피를 흘렸다고 했다.

그 바람에 성화가 폭발했다고 했건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은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데.

“휴······, 모르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옳았다.

예를 들어 백운상이가 말한대로 밥이나 먹는다던가.

그렇게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막사 안에 들어왔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아 더욱 안쓰러운 두상을 가진 남자. 혁련휘가 위풍당당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햇빛에 머리통이 비쳐 애매하게 빛났다.

눈가를 좁히고 있는데 혁련휘가 내게 말했다.

“교주님께서 찾으신다. 일어나거라.”

······나? 우리 딸이 나를 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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