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외전/ 흰 구름 위에서 (5)
***
남궁영령이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나만 쏙 빼놓고 동정호 구경을 하니 어떻디. 경치가 좋던?”
“누이. 그것이 아니라-”
“가히 일절이라 할 만하더이다.”
무심하게 답하는 하무린과 쩔쩔매는 제갈경.
익숙한 그림에 남궁영령은 살풋 미소를 지었다.
잔뜩 긴장한 제갈경은 입을 다문 상태였고, 하무린이 대표로 물었다.
“한데 누이가 어인 일이시오? 같이 가자고 할 때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시더니.”
“왜 왔긴. 임무 때문에 온 것이지.”
남궁영령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 근방에서 척살령이 붙은 마두가 목격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와 오게 된 것이라고.
하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어째서 누이 한 분만 오신게요. 다른 사람들은?”
“굳이? 나만 와도 차고 넘치는 일인 데다가······.”
남궁영령이 손가락을 뻗었다.
곧은 손가락이 눈앞의 두 사내를 향했다.
“마침 대주와 이 조장까지 여기 있는데.”
“우리는 휴가 중이오만.”
“나도 맹에 있어서 그렇지 지금 휴가 맞아. 어려운 임무도 아니니 빨리 해결하고 너희 따라 유람이나 좀 다니다 오라시더구나.”
“끄응······.”
“어째 퍽 아쉬워 보이는구나. 열흘이나 있었으면 얼추 볼 것은 다 보았지 않니?”
이번에는 하무린이 설명할 차례였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쑥스러운 부분이 많아 제갈경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으나 제갈경은 단호하게 외면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남궁영령의 얼굴에 맺혔던 궁금함이 놀라움과 기쁨으로 바뀌어 갔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 이르러서는 고운 손이 하무린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잘 되었구나, 참으로 잘 되었어! 우리 무린이가 드디어!”
“아무튼 그러하외다. 이 동생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니 적어도 오늘만은······.”
“으흠. 어찌한다?”
남궁영령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심했다.
‘명을 받아 온 것이니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저 상기된 얼굴을 보니 가벼운 호감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친동생처럼 아끼는 하무린이 처음으로 정을 품은 여인이라는데, 남궁영령으로서도 응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임무에만 하루 열두 시진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떠니? 분담을 하자는 것이야.”
“어찌 말씀이시오?”
“가지고 온 정보를 줄 터이니 경이 네가 낮에는 신경 좀 쓰거라. 오늘 밤에 나와 교대하는 것으로 하고. 그리고 내일은 무린이가 주도를 하는 것으로.”
“누이 정말 그렇게 해도-”
“단, 조건이 있단다.”
“조건이요?”
남궁영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번 들어보거라. 연심에 흠뻑 취한 우리 대주께는······,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야.”
그리고.
기쁨이 넘쳐 흐르는 하무린의 얼굴을 마주하며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어찌된 영문인지 혀와 얼굴 근육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조금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
백희령은 단 일각만에 판단을 끝냈다.
정파놈들이 멕아리가 없어 쭉정이 같은 놈들밖에 없다더니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고.
‘정파에서는 저따위 계집을 제일로 쳐준다는 말이더냐?’
코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정파제일 여협이라고 신교에서도 알음알음 이름이 들리던 남궁영령.
막상 대면해 보니 형편이 없었던 것이다.
우선 무공으로 따진다면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 중에 가장 못할 터였다.
백희령 자신과 정파제일 후기지수라는 하무린은 물론이거니와, 경해연의 무공도 또래의 그것을 훨씬 초월한 실력이었으니까. 아무리 잘 쳐줘도 세 번째도 되지 못한다.
용모를 보아도 백희령 자신보다 조금······, 아니.
비할 수도 없이 못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런 자리에 굳이 따라온 꼬락서니를 보면,
‘무어라? 아끼는 동생의 정인이 궁금해?’
지닌 바 지모에 대한 소문도 허명이 분명했다.
지모를 따지기 이전에 철딱서니부터가 없었으니까.
‘하무린이 이런 망발을 놓아둘 자가 아닌데 기어코 따라온 것을 보면 그 뱀 같은 혀만은 제법 쓸만하겠구나.’
그래. 결코 하무린의 실책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저 계집의 잘못이었다.
“흥.”
“백 소저, 왜 그러시오?”
바로 맞은편에 앉은 하무린이 걱정스레 물었다.
백희령은 새침한 표정으로 답했다.
“별일 아니랍니다. 잠시 사레가 들려서 그만.”
그리고 입을 가린 채 거짓기침을 몇 번 했다.
툭, 소리가 났다.
시원한 차가 담긴 찻잔을 백희령이 앉은 자리 쪽으로 놓은 남궁가의 계집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마셔요.”
“감사, 합니다.”
다소곳한 동작으로 차를 들이키면서 백희령은 생각했다.
‘기분이 과히 좋지 않구나······.’
오늘은 일찍부터 하무린과 만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는데.
슬슬 신교로 데려갈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언짢음을 감추고 백희령이 물었다.
“여협께서도 유람을 오신 건가요?”
“아니요. 척마를 행하러 온 것이랍니다.”
강호에서 척마라 함은 달리 있지 않았다.
정파에서 사마외도라 일컫는 자들을 척결하는 것.
품성과 연원과 행적은 전혀 고려치 않고서.
백희령은 자연스럽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척마 말씀이신가요?”
“네. 이 근방에 마두 하나가 숨어들었다는 말이 있어서요. 밥이나 축낼 거면 유람 겸해서 다녀오라고 쫓겨났답니다.”
‘나와 연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로구나.’
심부름꾼 겸해서 신교의 인원 몇이 동정호 근처에 있기는 하였으나,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단순히 강호를 횡행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싶었다.
남궁영령이 장난기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설령 악독한 마교도라고 해도 소저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든든한 호위도 있으신 데다가,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이 아이가 제법 싸움을 잘 한답니다.”
옆자리에 앉은 하무린을 두고 한 말이었다.
백희령은 슬쩍 옆으로 손을 뻗었다. ‘악독한 마교도’라는 말이 있은 후 겨우 분노를 삭혀내던 경해연의 몸이 흠칫 굳었다.
백희령이 질문을 던졌다.
“하면 여협께서는 천마신교의 무인들도 보신 적이 있나요? 풍문으로 듣기에는 피와 살인에 미친 악귀들이라 하던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남궁영령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헛소문에 불과하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요.”
경해연의 표정이 풀렸다.
하지만 백희령은, 뒤에 이어질 말이 있음을 직감했다.
“허나 소저께서 말씀하신 피와 살육에 미친 악귀들. 그 악귀들이 천마신교의 위세를 빌어 활개를 친다는 것이, 천마신교와 백도정파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이유라 하겠지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 라는 말씀이신가요?”
남궁영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가 넓고 악행이 끊이지 않으니, 엉킨 매듭을 옳게 풀어낼 자는 당금 강호에 없다 하겠습니다. 무림맹의 일원으로서, 백도정파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눈앞의 불의에 눈 감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여기 이 아이.”
세 여인의 시선이 하무린에게 가닿았다.
“이 아이가 우리 세대의 누구보다 그 업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으니 소저께서 힘이 되어주시길 바라요.”
말을 마치며 남궁영령이 눈을 찡긋했다.
하무린은 쑥스러운 듯이 백희령을 바라봤다.
백희령은 웃어주었다.
그리고 자리가 이어지던 와중에, 백희령에게로 전음이 날아들었다.
<백 소저.>
백희령은 살짝 놀란 눈치로 남궁영령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전음성이 이어졌다.
<우리 무린이를 잘 부탁해요. 저 아이가 서툴러서 그렇지, 백 소저에 대한 마음이 깊은 듯하더군요.>
“······.”
<칼 한 자루 지고 사는 아이인 만큼 속을 썩힐 일이 적지 않겠지만, 부디 잘 보아주세요.>
백희령은 남궁영령의 마음을 짐작했다.
굳이 신교를 언급하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후에 백희령과 하무린 사이에 다툼이 있을까 걱정한 탓이리라.
무인과 무인이 아닌 자가 만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물론 백희령에게는 괜한 참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누가 보면 저 계집의 성씨가 남궁이 아니라 하 씨인 줄 알겠구나.’
이래저래 불편하던 백희령의 마음은 자리가 파할 때쯤이 되어서야 조금 풀렸다.
하무린에게서 슬쩍 건네받은 종이.
어째 어제 약조했던 것보다 자리가 일찍 끝난다 싶었더니 달빛을 받으며 밤 산책을 하자는 말이 써져 있었다. 백희령과 하무린 단둘이서만.
우선 묵고 있던 거처로 돌아가던 중에, 백희령이 경해연에게 미리 일러뒀다.
“연아, 오늘 밤에는 잠깐 나가야겠구나.”
“채비를 하겠습니다.”
“되었다. 나 혼자 갈 터이니 연이 너는 아까 남궁가의 계집이 했던 말, 그것을 좀 알아보거라.”
괜한 소란이 일지 않게 미리 조용히 시키라는 뜻이었다.
백희령이 말을 이었다.
“내 언제 돌아올지는 정해두지 않았으니 기다리지 말거라.”
“······이부자리를 펴두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경해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그리고 세 시진 후.
정성들여 몸을 깨끗이 씻어낸 백희령이 하무린과 마주했다.
약속장소로 정한 곳은 인적이 드문 숲 어귀.
백희령이 웃으며 물었다.
“달빛을 받으며 걷자고 하셨잖아요?”
“그러했소만······.”
하무린이 난처한 기색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믐날이어서 달빛이라고는 칙칙한 손톱모양으로 비치는 것이 전부였다.
백희령은 하무린의 손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았다.
해서, 손을 잡았다.
“달빛은 없어도 다른 것들은 모두 있으니 걷지 않을 이유도 없겠지요.”
백희령이 한 발자국 앞서서 걸었다.
어느새 깍지낀 손으로 고쳐잡은 하무린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낮에는 누이가 괜한 말을 했소이다.”
“어떤 말씀이요?”
“정파니 천마신교니,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구태여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리고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도움을 준다기에 데려간 것인데 믿은 내가 잘못이지······.”
백희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답니다. 소협은 칼과 함께 살아가시는 분이신데 응당 각오를 해야 할 일이었지요.”
“······사실 나는 정파니 마교이니 하는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오.”
하무린이 털어놓은 말.
백희령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찌하다 정파무림에 적을 두었으나 낮에 누이가 말한 것처럼, 그들과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니겠소? 누이는 무인의 협을 말했으나······, 나는 촌놈이라 그런 거창한 것은 잘 모르오. 그저 사람 몇이 좋아 무림맹에 있는 것이고 그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면 족하다 생각하오.”
그리고.
하무린이 열기를 담아 말했다.
“해서 백 소저와 계속 얼굴을 맞대는 것만이 지금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라 하겠소이다.”
“제가 무림맹을 떠나달라 한다면요?”
“상관없소이다. 어차피 고작 일 년을 있었을 뿐입니다.”
“먼 곳으로 가자고 한다면요?”
“백 소저가 있는 곳이 제가 있을 곳이니 오히려 바라는 바입니다.”
백희령은 잡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하무린의 걸음이 멈췄다.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간 백희령은 몸을 돌렸고, 하무린과 눈을 마주쳤다.
그믐날이라 깜깜한 밤 중에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음을 그들은 알았다.
“만약에, 만약의 일이지만······. 제가 마도의 계집이라 한다면? 그렇다면 어찌하시겠나요.”
“······!”
하무린이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백희령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정正을 말하는 자는 정正이 아니고, 협俠을 말하는 자 협俠이 아닌 법이라.’
해서 정파무림 따위에 미련이 없다 말하는 하무린이야말로 가슴속에 올바름과 협을 품고 있음을 백희령은 알았다.
신교의 사람과 정파의 사람이 같은 사람이나, 또한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토양 위에 품어낸 뜻.
하무린은 ‘고작 일 년’이라고 했으나 뒤집어 말하면 단 일 년으로 품어낸 단단한 마음이었다.
무인이기를 그만둘 수는 있다.
먼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허나 신교로 끌어들이는 것만은 여의치 못하리라.
백희령은 그리 결론을 내렸고, 이어서 결정했다.
하무린에게 다가가서,
발끝을 세우고,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다시 떼어지고 하무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허공에 떠 있는 듯이 멍한 표정에 백희령이 웃었다.
“농담이었답니다. 제가 마도의 계집이었다면 지금 소협과 이리 거닐 수 있을까요.”
“······놀랐소이다.”
하무린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그리고 백희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방금의 입맞춤은 농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요.”
“백 소저······.”
말없이 두 사람이 다시 입을 맞췄다.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져 실낱같은 달빛도 새어들지 않았다.
옷고름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
어두운 밤길을 밟아나가며 남궁영령은 흐뭇한 생각을 했다.
‘무린이 그 아이가 잘하고 있으려나?’
이름은 모르고 성씨가 백 씨라는 것만 들었을 뿐이지만 훌륭한 여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남궁영령이 생각하기에 그만하면 하무린의 짝으로 합격점을 줄 만했다.
괜히 자신이 조바심이 들어 몇 마디 조언을 과하게 건넨 것에 대해 하무린에게 타박을 듣기는 했지만.
‘이해심이 많은 사람인 듯했으니 필시 앞으로도 잘 해나갈 테야.’
남궁영령은 각오를 다졌다.
아끼는 동생이 귀히 찾은 인연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맡은 임무를 오늘, 자신의 선에서 끝내야 하겠다고.
‘경이 그 아이가 정리를 잘 해주었지.’
낮에 발품을 많이 팔았는지 남궁영령이 건네받았을 때는 맹에서 받아온 정보가 훨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인들이 동정호 근처에 숨었다는 가정하에 짚어준 몇 군데.
남궁영령은 그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먼저 찾았다.
처음 두 번 허탕을 쳤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렇잖아도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으슥한 폐가는 달빛이 없어 더욱 적막해 보였다.
남궁영령은 은밀한 발걸음으로 바깥 벽에 귀를 댔고, 새어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지 말고, ······거라.”
“그리 하겠습니다.”
둘 모두 여인의 음성이었다.
앞선 것은 젊었고, 단호했다.
뒤에 이어진 노파의 목소리는 쩔쩔매는 투였다.
‘척살령이 붙은 자가 분명······.’
동남동녀의 정혈을 갈취한다는 늙은이였으니 쩔쩔매는 노파가 그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어린 쪽은······?’
늙은 마두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이라면 필시 보통 인물이 아닐 터.
남궁영령은 우선 폐가에서 멀찍이 떨어져 추이를 지켜보았다.
노파의 무공수위야 기껏해야 일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두려울 것이 없지만 어린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폐가의 문이 열렸다.
남궁영령의 눈이 찢어질 듯이 크게 떠졌다.
‘저 사람······!’
낮에 봤던 사람이다.
백 소저의 호위로 있던 여인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여인은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남궁영령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일단은 늙은 마두부터 사로잡아야 했다.
취조를 하든 무얼하든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낀 남궁영령이 폐가로 돌입했다.
노파가 경악해 대응하기도 전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대검으로 단번에 팔다리를 잘라냈다.
혈을 짚어 비명을 지르는 것은 막았고 이제 죽지 않게 지혈을 할 차례였다.
그리고. 다시 혈도를 짚기 위해 남궁영령이 몸을 숙인 순간.
등 뒤로 불에 덴 듯이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
고통을 참으며 남궁영령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깊이 베였어······.’
멀리 자리를 뜬 줄 알았던 여인이 어느새 남궁영령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흘린다.
“이리 일찍 찾을 줄은 몰랐구나. 늦었다면 서로 좋았을 터인데.”
남궁영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상처가 깊었으며, 눈앞의 여인이 뿜어내는 기세는 만전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여인이 낮게 읊조렸다.
“일찍 왔으니, 가는 것도 일찍 가거라.”
검붉은 기를 두른 칼이 남궁영령을 향해 휘둘러졌다.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던지며, 남궁영령은 되뇌었다.
‘무린아······!’
하무린의 시큰둥한 말투와 무심한 얼굴이, 다가오는 검격 위로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