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외전/ 흰 구름 위에서 (1)
탕탕, 탕.
아침 해가 채 뜨기도 전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일찍이 천마 백운상이라 불리었던 그녀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어보니 예상한 그대로였다. 천진함과 자애로움이 공존하는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운상아! 잘 잤어?”
“조사님이 이리 일찍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능히 그러했을 테지요.”
“쓰읍, 언니한테 누가 그렇게 대하랬어.”
짐짓 엄한 말투를 흉내내면서 여인이 몸을 비집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몸을 휙 돌려 백운상과 마주했다.
“조사님이 아니라 령 언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백운상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일월령 조사님.”
“······도대체 어른 말을 왜 이리 안 듣는담?”
백운상 자신보다도 몇 살이나 앳되어 보이는 여인이 툴툴거렸다.
천마신교의 개파조사이며 전설적인 고금제일인 시천마 일월령.
허나 그조차도 여인의 진실한 정체는 아니다.
얼핏 듣기로는 선계에서도 아주 지위가 높은 신격이라 했다.
‘파견이라는 게 있단 말야?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서 수습하고 오는 건데······, 나는 그거 하러 갔던 거야. 성화.’
‘하면 신교를 창건하신 이유도-’
‘그건 이야기가 좀 복잡한데. 원래는 성화만 못 나가게 해 두면 되는 거였거든? 근데 그으, 거기 황제가 못살게 구는 사람들 챙겨주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지 뭐야.’
곤란한 듯이 웃는 여인의 얼굴로 살가운 감정이 읽혔다.
어디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백운상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잘 대해주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맞다. 너 이름은 뭐야? 아직 그것도 몰랐네.’
‘속세에서는 백가 성에 호를 운상이라 하였습니다.’
‘운상. 백운상. 멋지다. 나는 그쪽에 있을 때는 일월령이라는 이름을 썼어. 내 것도 멋있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조사님.’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실은 내가 이름이라는 게 없거든? 맨날 잠만 잤기도 하구, 다들 나를 어려워해서 에둘러 부른단 말야. 그럴 필요 없는데. 아무튼 네가 백운상이면 나는 앞으로 일월령이야. 응. 그게 좋겠어. 앞으로는
령 언니라고 불러야 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조사님.’
‘······혹시 너 나 마음에 안 드니?’
‘그럴 리가요.’
‘정말이지? 그러면 나 사는 곳 바로 옆에서 나랑 같이 살아!’
그리 함께 지낸 지가 벌써 보름을 넘었다. 일월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해가 밝기도 전에 백운상의 거처를 찾아왔다.
별달리 하는 것은 없었다. ‘느이 하계에는 이런 것 없지?’라면서 요상한 맛이 나는 곡차를 가져오거나 신비로운 영물들을 집으로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일월령이 행한 모든 일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백운상이 낙담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이리 찾아와서는 건너편 야트막한 동산에 소풍을 가자 졸라대는데······,
마음은 고마우나 솔직히 백운상으로서는 조금 귀찮은 심정이었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좋지만 굳이 바깥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백운상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산행은 되었습니다. 나가기가 싫군요.”
“그래? 응, 운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러면 으음. 뭘 해야 한담······?”
초장부터 계획이 흐트러진 일월령이 서운한 내색도 없이 무엇을 더 해줄지를 고민했다.
해서,
“대신에······.”
“으응?”
백운상은 일월령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실은 그녀 자신도 가장 좋아하는 그것.
“제가 옛날 이야기나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옛날’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일월령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풍 같은 건 벌써 안중에도 없이 백운상에게 물었다.
“옛날 이야기? 무슨 이야기인데?”
“하가놈과 제가 처음 어찌 만나게 되었는지는 말씀드린 적이 없지요?”
“응. 그랬지? 근데 말하기 괴로운 거면 나 안 듣고 싶은데.”
말에 깃든 배려심이 기꺼웠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백운상이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도 숨기고 사느라 갑갑했으니까요.”
“그래······?”
푹신한 침상에 일월령과 나란히 앉은 백운상이 이렇게 서두를 떼었다.
“제가 아직 운상雲上이라는 호를 쓰기 전, 백희령이라 불릴 때의 일입니다.”
***
끼이익.
드넓은 공간 반대편의, 마찬가지로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가장 높은 곳의 옥좌에 앉아 있던 천마 위지혁은 무심한 눈길을 보냈다.
마침내 문이 활짝 열리고,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위지혁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한 듯이 올곧고 당당한 걸음.
권태로웠던 위지혁의 얼굴로 옅게 불쾌감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온 이가 위지혁을 올려다보고 얼굴을 마주했다.
이제 갓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인.
본디 새하얬을 의복은 검붉은 피로 절여져 있었다.
위지혁이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꼴이 아주 우습구나.”
“어디 이놈만 하오리까.”
여인은 왼손을 들어 보였다.
머리칼을 움켜쥔 잘린 목이 들려 있었다.
위지혁은 그 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
자신의 첫 번째 제자이자 사사로이는 혈육이 되는 위지소의 머리였다.
그 목을 들고 있는 이는······, 마찬가지로 위지혁의 제자인 백희령.
천마신교 소교주.
고금제일무재.
그리고.
불과 약관의 나이로 천하제일세 천마신교의 제일가는 권력을 손에 넣은 자.
그녀가 인사처럼 말했다.
“이 멍청한 놈이 사부께서 농으로 하신 말을 정말로 믿었나 보더이다.”
“농이라, 농이라······.”
위지혁과 위지소가 계획한 모든 것이 저 계집에게는 그저 장난에 불과했던가.
무공으로만 따진다면 백희령은 아직 위지혁에 미치지 못했다.
적어도 팔 한짝은 내주어야 하겠지만 능히 목을 거둬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모든 면에서는, 백희령은 이미 위지혁을 뛰어넘었다.
교내의 지지세력. 심계. 만인을 따르게 하는 권위.
고작 나이 스무 살 먹은 여아가······.
위지혁이 조소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구나.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교주 위를 넘겨주랴?”
만약 여기서 백희령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위지혁은 두말않고 결전을 치를 심산이었다.
홀홀단신이라 하나 진원지기까지 끌어다 쓴다면, 어쩌면 동귀어진까지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백희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 옥좌. 불편해서 나는 싫소이다.”
“······뭐라?”
백희령은 손에 들고 있던 머리통을 툭 던졌다.
동그란 머리통이 바닥으로 데구르르 굴렀다.
“한 두어 달 나갔다 올 터이니 사부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시지요. 옥좌를 다지시건, 제가 쓰기 좋게 바꿔놓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오만하구나. 참으로 오만해.”
“지금 아니면 어디 마음 편히 유람이나 해보겠습니까. 언짢으시더라도 사부께서 이해해주시지요.”
아직 강호무림은 백희령을 모른다.
그러니 백희령의 말대로 자유로이 외유를 한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으며, 위지혁은 그것이 자신에 대한 시한부 선고이기도 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의자. 돌아왔을 때는 편한 걸로 바뀌어 있으면 좋겠소이다. 그리하면 해마다 사부께 찾아뵈며 문안인사 올리도록 할 터이니.”
그리고 백희령은 몸을 돌려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피칠갑을 한,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이 부복하며 물었다.
“목을 대령할까요?”
“놔두거라. 노인네 정리할 시간 정도는 주어야지.”
“하지만······.”
“비록 못난 작자이기는 하나 사형이라고 있는 놈 모가지를 자른 날이다. 사부까지 구천으로 보내면 사람들이 나를 어찌 보겠느냐.”
“······.”
“연아.”
“네, 주군.”
‘연아’라고 불린 여성. 백희령의 직속 호위이자 심복인 경해연이 즉시 답했다.
백희령이 장난스레 일렀다.
“너는 나랑 잠깐 강호에나 다녀오자꾸나.”
“주군. 그것은 너무······.”
“되었다, 되었어. 너는 잔걱정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야. 내가 대비를 다 해놓았으니 걱정 말거라. 우리 좋은 경치 구경도 좀 하고, 다녀와서는······.”
백희령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선언하듯이 이었다.
“그때는 교주 자리는 내가 가져야겠다. 바빠지면 지금보다야 덜 지루하지 않겠느냐.”
“네, 주군!”
기쁨에 찬 대답.
백희령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동정호라는 곳이 그리 절경이라던데, 거기를 한 번 가보아야겠구나······.”
***
제갈세가 직계이자 정파 후기지수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기재 제갈경은 생각했다.
‘무릇 사람이란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자와 그리 하지 못하는 자로 나뉘는 법이지.’
제갈경 본인이 판단하기에 자신은 전자였다.
그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그리고 다시금 생각했다.
‘무릇 사내란 가만히 있어도 여인의 시선을 잡아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도 나뉘는 법이다······.’
제갈경 본인이 판단하기에 자신은 후자였다.
하지만 후자라고 해서 낙심할 것은 없다.
가만히 있을 때 시선을 끌지 못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허나 의문점이 하나 남는다.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자가, 가만히 있어도 여인의 시선을 압도적으로 잡아끄는 자와 함께 한다면.
그때는 과연 어떻게 되는가.
제갈경은 오늘 그 답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죽쒀서 개 준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로구나······.’
동정호 주변에서도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누각.
제갈경은 한 명의 사내와, 두 명의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가장 값이 비싼 4층을 통째로 빌리고 앉아 있었다.
말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하 소협. 그 이야기 한 번만 해주실 수 있나요? 비무행의 다섯 번째에서 절영문의 권일환 대협과 비무하실 때-”
“와아, 이 술 아주 맛있네요. 하 오라버니, 이것 한 번 드셔보세요.”
‘돈은, 돈은 다 내가 냈다고······!’
저잣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아리따운 두 소저를 발견하고 자리를 함께 하자 제안한 것도 자신이다.
열과 성을 다해 설득한 것도 자신이다.
데려와서는 가장 높은 4층에서 비싼 요리와 술을 시키고 분위기를 한껏 띄운 것도 제갈경 자신이다.
‘근데 왜 저 새끼만······!’
제갈경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옆에 자리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표정이 지루해 보였다. 이 자리가 지루할 수 있다는 것도 제갈경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제갈경은 속으로 읊조렸다.
‘하무린 개새끼······.’
천룡 하무린.
사승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허나 그 위명만은 온 강호를 떨어울렸다. 고작 스물한 살 나이로.
열여덟 나이로 강호에 출도해 이 년여 동안 서른세 번의 비무행.
강호에 이름난 명숙들을 상대로 전승.
이후에는 무림맹에 입맹해 최연소 대주직을 맡으며 승승장구.
한 세대 후의 천하제일인이 확실시되며, 지금도 정파무림의 무인을 꼽을 때 스무 명 안에 들어가는 절세의 고수.
제갈경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옥처럼 빛나는 하무린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흘겨보며 제갈경은 자신의 옹졸한 마음을 달랬다.
‘그래. 이 모든 것이 내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니라. 어찌 사내의 가치가 용모에만 있겠는가.’
“노력이 부족해, 노력이······.”
“뭔 소리야.”
여인들이 옆에서 종알대는 것에는 대꾸도 않던 하무린이 대뜸 물었다.
제갈경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니, 아니다. 너는 너대로 살아라, 나에게는 내 나름대로 사는 방법이 있으니.”
“네가 오자고 해놓고는 왜 궁상을 떨고 있냐, 이 말이다.”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하무린이 여인들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소저들. 여기 이놈. 내 친구에게는 오랜 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나치게 머리가 좋아서 생긴 병이라오. 저 혼자 머리통을 굴리고는 저 혼자 중얼댄다 이 말씀이오이다.”
“아니, 내가 언제-”
“보시다시피 이놈이 오늘 또 크게 병이 도진 모양인데, 데려가 의원에게 보여야겠소이다. 오늘은 그만 자리를 파할까 하는데,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라오.”
여인들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히 포권을 한 하무린은 곧장 제갈경의 목 뒤 옷깃을 잡고는 밖으로 끌고나왔다.
제갈경이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 무공보다도 오히려 여인을 보는 눈이 더 높겠구나. 저 소저들도 마음에 안 차디?”
“마음에 차고 자시고, 내가 경치 즐기며 술 마시러 온 것이지 여자 꼬여내려고 온 것이더냐? 그럴 거면 굳이 이 먼 데까지 유람을 왜 오겠냐.”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맹에 많은데.”
“하무린 개새끼······.”
퍼억!
제갈경의 뒷통수를 한 번 세게 후려친 다음 하무린이 쾌활하게 말했다.
“됐고, 술이나 좀 더 마시자. 오호라, 저기가 괜찮겠네.”
하무린이 눈짓으로 길가 쪽의 허름한 객잔을 가리켰다.
“오늘 한 번 죽어라고 마셔보자. 이번엔 내가 살 테니 금전 생각은 하지 말고.”
“저곳 음식을 거덜낸다고 해도 금전 걱정 들 일은 없겠구만.”
구시렁대면서도 제갈경은 하무린과 함께 객잔으로 향했다.
한창 점심 때라 빈 탁자와 의자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우선 간단한 요리와 술 두 병을 시킨 후 소채를 집어먹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멀찍이서 들려오는 소에 제갈경이 말을 건넸다.
“하가야, 들리냐?”
“뭐가.”
“지금 네 얘기 나오고 있는데.”
그제서야 하무린도 객잔 구석의 매화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늙수그레한 노인이 술잔을 쭉 들이키며 말했다.
“해서 그때 하무린, 하 소협이 마교주 위지혁과 마주했지요. 천하오대고수를 앞에 두고서도 당당한 하 소협의 기상이 이루 말할 데가 없이-”
제갈경이 웃으며 물었다.
“정말로 그때 안 무서웠냐?”
“무섭긴. 주위 절반이 맹 사람들이었는데.”
제갈경이 다시 물었다.
약간의, 아주 약간의 질시를 담아.
“그럼 만약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주했는데, 마교주가 칼을 뽑았다면? 그래도 안 무서웠겠냐?”
하무린이 대수롭잖은 듯이 답했다.
“그때는 무서울 틈이 어딨냐. 싸워야지.”
약관을 한 해 넘긴 나이로 천마신교의 교주와 겨루겠다는 말을 입밖에 내고, 그것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사실.
제갈경은 이럴 때마다 눈앞의 친우가 사실은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이기지 못하는데?”
“그래. 팔 한짝 정도. 그 정도 되겠네.”
“그걸로 된단 말이야?”
제갈경이 이해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팔 한 짝 잃고 마교주에게서 살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하무린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답했다.
“팔 한짝 이상은, 지금은 좀 모자란데.”
“그러니까 그 말이······.”
도망치는 데 팔 하나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죽자고 싸우면 마교주의 한 팔 정도는 가져갈 수 있다는 말.
제갈경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술잔을 비웠다.
하무린이 이어 이야기했다.
“물론 지금의 이야기지. 삼 년. 삼 년만 있으면 팔다리 하나씩은 가져갈 수 있다. 오 년 있으면 혼자 거동 못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리고 십 년 후라면······.”
하무린이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땐 이거지.”
“······미친놈.”
“정말이라니까? 그 새끼 생각보다 싸움 못해.”
“됐고, 술이나 마셔라.”
이후 별다른 대화 없이 그저 술잔을 채우고 비우는 일이 반복됐다.
이따금 둘 중에 한 명이 무언가를 말하면 다른 한 명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도.
그리고.
이미 만취한 제갈경에 이어 하무린이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그때.
매화자의 이야깃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이곳 동정호에 천하제일미가 나타났다는 소문, 들어들 보셨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