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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72화 (72/130)

72.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만약에 성화를 없애버릴 방도가 있다고 한다면 오늘이 최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그 성가신 불덩어리와 지현이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다.

마법사 계집애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거나 주인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면 이야기가 간단하지.

애 엄마도 나도 성화를 탐내는 것처럼 연기를 해뒀으니까.

놈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넘겨받는 척한 후에 그 불덩어리는 아예 없애버리는 거다.

물론 진행과정에서 적절한 협잡질과 무력행사가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거야 자신 있다.

어차피 우리랑 마주친 시점에서 저놈들한테 선택지는 딱 두 가지만 존재한다.

맞고 건네주거나.

아니면 좀 많이 맞고 나서 두 손 모아 고이 바치거나.

그 두 가지 말고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힘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잔머리 굴린다고 해 봐야 뭘 어쩌겠어.

머릿속에 아무리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해도 엄연히 유효기간이라는 게 존재한다.

원래 그런 건 딱 처맞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다.

근데 추격전이 좀 오래 걸리긴 하네.

애 엄마가 적당히 여유를 주는 건지 마법사 기집애가 요리조리 도망을 잘 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만큼 쉽게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힘을 쭉 빼고 애 엄마가 이끄는 대로만 몸을 맡기고 있다가 물었다.

“쟤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글쎄? 자꾸 방향을 바꾸긴 하는데······,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응. 따라가다 보면 저쪽에서 알아서 멈출걸?”

애 엄마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차피 절대로 못 떨궈내.”

***

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며 천유화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 찰거머리 같은 년놈들!’

아까 호숫가에서는 정말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흠씬 두들겨 맞은 탓에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여자가 큰 동작으로 내지른 주먹이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치아 몇 개가 본래 머물렀던 자리를 이탈하는 와중에 겨우 찾아낸 찰나의 빈틈.

온몸의 마나를 박박 긁어모아서 혁련휘 일행을 데리고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쯤 했으면 그만 따라올 때도 됐잖아!’

물론 천유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빌어먹을 년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화라는 것을 이제는 사마군 전원이 안다.

저쪽 입장에서는 실마리를 잡은 상황에서 그리 간단히 놓아줄 리가 없겠지.

사실 지금 거리를 좁혀주지 않는 것만 해도 상당한 후유증을 각오하고 펼치는 마법이었다.

그나마도 시간벌이를 하는 것에 불과했고.

‘어떻게 하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성화를 숨겨둔 곳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

성화는 성화대로 빼앗기고 그 후에는 살인멸구 당할 게 뻔했다.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필요했다.

무언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천유화가 골몰하던 중, 뒤에 달고 가던 진태호가 갑자기 손가락질을 하며 기겁했다.

“어? 저기 쫓아온다! 보인다고!”

“이런 쌍!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누가 몰라서 늦게 가는 거 같아? 좀 닥쳐봐요!”

“······.”

“한 마디만 더 해봐요. 오라버니만 버리고 가면 우리 더 빨리 도망칠 수 있으니까.”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천유화였지만 결단코 진심은 아니었다.

누구 하나라도 버리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 함께 살아나가는 게 최선이었고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가장 먼저 죽는 건 천유화 자신이어야만 했다.

‘천유화, 생각해. 생각해내라고!’

그때 혁련휘가 말했다.

“유화. 내가 남아서 시간을 번다.”

“네?”

“형님!”

“오라버니!”

나머지 세 사람이 놀라서 외쳤다.

하지만 혁련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공중에서 저놈들을 잡아둘 수 있는 건 유화와 나 두 명이지만 유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남는 건 나밖에 없지. 내 말이 틀렸나?”

“안 돼요!”

마나를 쥐어짜내면서 가속하는 와중에도 천유화가 도리질을 하며 거칠게 외쳤다.

하지만 혁련휘는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비령과 태호는 유화를 잘 보좌해줘라.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천유화가 마나로 혁련휘를 구속하려 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입신경의 고수인 혁련휘의 움직임을 묶을 수는 없었다.

금세 자유로워진 혁련휘가 추격자들이 쫓아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울분을 담아서 진태호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으아아! 진천군 이 개자식만 안 만났으면!”

그리고 천유화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진천군?’

이미 혁련휘는 공간이동 마법에서 반쯤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천유화가 외쳤다.

“큰 오라버니! 잠깐만! 잠깐만요!”

아랑곳않고 혁련휘가 한 발을 내딛으려 했다.

급해서 제정신이 아닌 천유화가 입에서 나오는대로 내뱉었다.

“이 대머리야! 귀 먹었어? 잠깐 기다리라고!”

“······뭐지?”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말해봐라.”

왠지 혁련휘의 목소리에 냉기가 묻어나는 것 같았지만 상황이 다급한 탓일 것이다.

천유화가 말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죠?”

나머지 세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천유화가 설명을 이었다.

“이거 다 진천군 그놈 때문에 망친 거니까 그놈이 해결하게 만들자구요.”

***

“진천군 어딨어! 진천군 데려와!”

갑자기 속도 줄여서 어디 산 중턱에서 내려서길래 이제 포기한 줄 알았는데······.

촐싹거리게 생긴 남자 멀대 놈이 다짜고짜 하는 말이 저랬다.

우리 천군이?

여기서 걔 이름이 왜 나와.

내가 답했다.

“개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 성화 있는 곳으로 안내해. 그러면 살려는 준다니까?”

“아, 글쎄! 진천군 안 오면 못 간대도!”

“몇 대까지 맞으면 그 소리 안 나오나 보자.”

움찔하며 뒷걸음질치면서도 멀대가 다시 한 번 외쳤다.

“이게 그냥 하는 말 같냐? 성화고 자시고 진천군이 있어야 한다니까! 어차피 우리 없으면 성화는 찾지도 못할 텐데. 시체에다 물어보면 그거 참 잘도 알려주겠네!”

멀대가 지금 당장이라도 자결할 것처럼 손을 자기 목에 갖다댄다.

“이야. 이거 골 때리는 새끼네?”

무시하고 그냥 쥐어패야 할지 말하는 대로 따라줘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오빠.”

애 엄마가 내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아.”

썩 내키지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

이대로는 진전이 없을 것 같다.

“좋아. 한 번 들어나 보자. 대체 걔는 왜 부르라는 건데?”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마법사 계집애가 나섰다.

“말 그대로야. 진천군이 지금 상태로 있는 이상은 너희는 절대로 성화를 못 가져.”

“그러면 지금 걔가 그거야? 신녀인가 뭔가 하는 무당.”

마법사 계집애가 다시 입을 닫았다.

내가 말했다.

“세상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너 사실은 완전히 돌대가리구나?”

천군이가 신녀면 이놈들은 이제 아무 필요도 없잖아.

우리 똘똘한 치코리타가 성화 찾아서 넘겨주면 그만인데.

팔을 붕붕 돌리며 선언했다.

“요 미꾸라지 같은 놈들아. 너흰 이제 죽었어.”

그러자 마법사 계집애가 어깨를 부들부들 떤다.

겁에 질려서 저러나 싶었던 차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게 뇌까렸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뭐?”

“이 비열한 자식!”

마법사 계집애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진천군 그 아둔한 작자가 신녀? 웃기지 말라 그래! 그년은 하릴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뿐이야! 자기 의지로는 통제권을 갖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해! 내가 제어해 주지 않으면 너희는 절대 성화를 못 가진다고!”

“······.”

오늘로 확신했다.

이수민한테는 뭔가가 있다.

어떤 우주적 존재의 악의 같은 게 그놈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잖아······.

“닥치고 진천군 데려와! 그리고 우리 안전이 확보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해줘!”

아이고, 천군아.

가엾은 치코리타야.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타는 쓰레-

터억.

내가 속엣말을 끝내기 직전에 애 엄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오빠. 그러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걔한테 무슨 죄가 있겠어.

하마터면 불쌍한 우리 수민이를 타는 쓰레기라고 부를 뻔했다. 조심해야지.

그나저나 상황이 적잖이 곤란해졌다.

이수민이 지금 할 일 없이 노닥거리는 게 아니다.

나랑 애 엄마가 집 밖에 있는 거 안 들키게 지현이를 잡아두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빼오냔 말이지.

일단 연락이라도 해 봐야 하나?

휴대전화를 켜보니 안 그래도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 있었다.

모두 이수민한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거니까 바로 받더니 다짜고짜 나한테 물었다.

<어떻게 됐어? 설마 벌써 죽인 건->

“아냐.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저놈들이 네 얼굴 좀 봐야겠다는데.”

<나를 왜?>

“설명할 시간없어. 너 와야 된다는데 올 수 있냐? 그리고······, VIP는 지금 뭐하고 계셔.”

VIP라고 해 봐야 또 누가 있겠어.

우리 딸 말하는 거지.

이수민이 답했다.

<지현이는 아까 잠들었는데.>

그거 참 다행이구만.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순조롭게 감싸고 있었다.

“그러면 너 누구한테 안 들키게 조심해서 빨리 와라. 여기 위치 보내줄 테니까.”

전화를 끊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사마군 놈들을 쳐다봤다.

“곧 온다니까 기다려봐. 허튼 수작 부리는 거면 각오하고.”

사실상 반쯤 속아주는 거긴 했다.

정말로 절차가 있으면 조심하긴 해야지.

모르고 불장난하다가 사고 나면 안 되니까

***

이수민은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누워도 공간이 남는 넓은 침대를 유지현 홀로 차지하고 있었다.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는 게 누가 업어가도 모를 것 같았다.

이수민은 손을 뻗었다.

곧은 손가락이 유지현의 수혈을 짚었다.

‘다행이야.’

아까는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모른다.

유지현이 이미 사마군과 만났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실은 지금도 유지현은 비밀로 하고 있지만 이수민 스스로도 놀랐던 예리한 추리력으로 알아낸 사실이었다.

‘만약에 내가 못 알아챘으면······.’

혹은 알아챘다 해도 늦어버린 것이었다면.

유수현이 일처리를 다 끝내고, 사마군이 차원을 건너든 삼도천을 건너든 이 땅에 두 발 딛고 서 있을 수 없는 신세가 됐다면······.

아마도 유지현은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마군을 찾아나섰겠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들켰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자신을 찾는다고 한다.

당장은 절대 죽이지 말라고 언질을 줘놨으니, 도착해서 유수현과 상의하면 뭐라도 수가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수민은 집을 나섰다.

수혈까지 짚어뒀으니 유지현은 아침이 되어서나 일어나겠지만 혹시 몰라서 쪽지까지 남겨뒀다.

<언니 잠깐 편의점 갔다올게. 혹시 잠 깨면 연락해줘?>

가장 안쪽 방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고, 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대비했다.

‘오늘 다 끝내는 거야. 지현이랑 오해도 풀렸으니까. 내일부터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희망에 찬 이수민의 뒷모습.

찰칵,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몇 초 후.

침대에 누워 있던 유지현이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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