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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천마인데 나는 무림맹주-71화 (71/130)

71. 견적도 내보고 말이지.

인생을 살다보면 이따금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러한 것들에는 저마다 원인과 해결책이 달리 있지만 도무지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케이스 역시도 존재했다.

그건 바로 울다가 멈춰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경우.

지금 이수민이 정확히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으흑, 으흐으윽.”

흡사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처럼 서럽게 울어제끼는 이수민의 울음소리를 해석하자면 대강 이런 뜻이었다.

‘창피해 죽을 거 같아······!’

현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한 제 3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러했다.

스물여섯 살 성인 여성이.

열네 살짜리 여자애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오열을 한 이유는 열네 살짜리 여자애가 스물여섯 살 성인 여성을 피해다닌 것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며,

피했던 이유는 스물여섯 살 성인 여성이 열네 살 여자애의 아버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결코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추태들이다.

‘이제 다 끝이야······.’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게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울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마음이 많이 진정됐을 때.

차라리 그때라도 바로 떨치고 일어났다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처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몰래 시계를 본 바로는 이미 오열한 지 십 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이제와서 쿨한 척해봐야 죽도 밥도 안 될 터.

결국 호랑이 등에 매달린 것처럼 계속 울음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천천히 그치는 거야.’

이수민은 정교하게 호흡을 조정해서 울음소리를 줄여나갔다.

“으흐응! 으흐, 흐으. 후우우.”

마침내 거짓 한숨을 쉬면서 이수민이 고개를 올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지현과 눈이 마주쳤다.

‘어?’

뭐랄까.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뜻밖의 호재에 이수민의 두뇌가 고속회전을 했다.

‘혹시 이거 수습 가능한 거야?’

눈물을 닦으면서 이수민은 시나리오를 하나 계획했다.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유지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미안해. 언니가 못 볼 꼴을 보였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수민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아냐. 언니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이제······, 지현이 귀찮게 안 할게.”

“네?”

이수민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등을 돌린 상태이긴 했지만 표정관리는 해야 했다.

“나는 진짜로 괜찮은데-”

“아냐. 지현이한테도, 유수현 씨한테도, 지현이 어머님한테도 너무 미안해. 이제 연락도 안 할 거고 귀찮게 안 할게. 그러니까 지현이는 나 같이 못난 언니는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언니! 사부님!”

유지현이 달려들었다.

등 뒤에서 이수민을 꼭 껴안았다.

“언니. 나 괜찮아. 내가 괜히 피하고 심하게 대해서 미안해요. 화 풀어요. 응?”

“아냐. 화난 거 아냐. 언니가 화를 왜 내. 언니는 그냥 미안해서······.”

“진짜 괜찮대도? 그리고 나 여기 집 어딘지도 아는데. 언니가 나 피하면 매일 찾아올 거야. 맨날 벨 누르고 문 두드리고 귀찮게 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나 안 본다고, 그런 말하지 마요······.”

유지현이 칭얼거리며 내뱉는 숨결이 등에 닿았다.

이수민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가 성공적으로 먹힌 기쁨과,

유지현과의 관계가 회복된 기쁨과,

하무린에 대한 원망과,

유수현에게 품었던 감정과······.

많은 것들이 뒤섞여서 웃으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왔다.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다시 우려내고 사부와 제자가 함께 앉았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있잖아······. 나 사실은 언니가 나 좋아하는 줄 알았어.”

“응?”

“그으, 아까 좋아하는 사람 있냐구 물은 그거요.”

유지현이 차마 입 밖에 꺼내기도 부끄럽다는 듯 몸을 베베 꼬았다.

이수민은 황당한 가운데서도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랬어?”

“응. 근데 나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 그래서 좀 무서웠어요. 미안해요, 사부님.”

유지현은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이수민을 피한 이유를 제법 그럴듯하게 둘러댄 것이다.

안쪽 방의 정체만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방의 내용물을 생각하면 여전히 옅게 오한이 스치긴 했지만 다른 오해는 모두 풀렸으니까.

아까 놀랐던 것에 비하면야 그 정도쯤 사부의 사랑이라고 생각 못할 것도 없었다.

‘맞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사부님이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으면 그렇게까지 하셨겠어?’

유지현은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망가지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괜찮아. 언니는 지현이랑 이렇게 다시 얘기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데.”

“히히. 나도요.”

지금껏 오해했던 미안함까지 담아서 유지현이 이수민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수민은 손으로 유지현의 머리칼을 쓸어줬다.

“머리 꽤 길었네?”

“응. 방학 때까지 길러서 염색도 하구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이쁘게 할 거야.”

“언니랑 같이 갈까?”

“아, 나 용돈 받는 걸로는 모잘라서 엄마랑 같이 가기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도 있었다.

이수민이 유지현의 아버지인 유수현을 좋아한다는 것.

더군다나 존재 자체만으로 이수민에게 자괴감을 안겨줬던 차수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골키퍼 있는 곳에 골 한 번 넣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건 아니지만, 자기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것에 유지현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가 이수민은 두려웠다.

“미안해. 내가 괜히 이상한 마음 가져서-”

이수민은 일단 사과부터 하려고 했다.

한데,

“으응. 아마 괜찮을 거예요.”

의외로 유지현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괜찮아?”

이수민 본인이 생각해도 전혀 안 괜찮은데 어떻게 유지현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표정이 태연한 걸 보면 그냥 달래주려고 하는 말은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유지현이 이유를 설명했다.

“왜냐하면 엄마 이미 알 걸요?”

“······아신다고?”

이미 안다니.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유지현이 말을 이었다.

“응. 이런 일 가끔씩 있었어.”

“가끔 있었다고?”

이제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수민이 되물었다.

“그게요. 전에 진짜 어엄청 예쁜 언니랑 친하게 지낸 적 있는데 나한테 맛있는 거도 많이 사주고 그랬다? 근데 나 휴대전화 안 가지구 있을 때 아빠 걸로 게임하다가 그 언니가 되게 길게 메시지 보낸 걸 모르고 봤거든요? 놀래서 바로 엄마한테 일러바치니까······, 엄마가 엄청 화냈어.”

‘엄마가 엄청 화냈다’

한 줄 짜리 문장에 왜 이렇게 오한이 드는지는 이수민 자신도 몰랐다.

“막 큰 소리 내는 거는 아니구요. 이거는 직접 봐야 알아요.”

“그으, 화내신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 언니 한 번도 못 봤어.”

“······.”

“엄마가 나 놀랬을까봐 설명을 해주는데 나도 눈치가 있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그 언니 말고도 많았어. 친해졌다가 갑자기 연락 안 되구.”

이수민은 저절로 몸이 들썩거리는 걸 느꼈다.

왠지 당장 가서 죄를 실토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유지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서 엄마는 알고 있을걸요? 근데 엄마가 수민 언니랑 잘 이야기해 보고 화해하라구 했단 말야. 그러니까 괜찮아.”

“응······.”

감사와 창피함과 무력감을 한 데 느끼며 이수민이 고개를 떨궜다.

“아무튼 너무 안 미안해도 돼. 나도 말 안 한 거 있단 말야.”

“말 안 한 거?”

“으음. 내 생각에는 사부님이랑 나랑 대화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 나 그것도 진짜 최근에 알았다?”

“뭘?”

유지현이 눈가를 좁히며 묘하게 추궁하는 어조로 말했다.

“사부님 사실은 언니오빠들이랑 사이 안 좋았지.”

“언니오빠들?”

“왜애. 휘 오라버니랑 태호 오라버니랑, 비령 언니랑 유화 언니. 나는 그것도 몰랐어요. 완전 바보 같아.”

유지현이 약간의 원망과 자책을 담아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수민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애써 떨림을 감추며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와.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맞나봐.”

오늘 겪었던 사건들로 인해서 두뇌가 이미 예열을 끝마친 상태였다.

몇 가지 단서만으로도 진상을 맞춰갈 수 있었다.

‘최근에 알았다면 계기가 있었을 거야. 지현이랑 이미 만난 거야!’

소름이 확 돋았다.

‘비밀로 하라고 했겠지. 그래서 지현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던 거고.’

그리고 유지현은 이수민과 사마군이 충돌했다는 걸 모른다.

방금 이야기를 꺼낸 게 증거다.

그 정도로는 유지현 본인과 사마군이 만난 사실을 알아챌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추측이 전부 맞는다면······.’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사부님. 왜 그래요?”

“잠깐만 지현아. 언니가 급하게 연락할 데가 있어서.”

이수민은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

제법 성가시네.

싸움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상대는 대머리와 멀대 둘.

이쪽은 나 한 명.

수적으로 열세에다 저쪽은 인질까지 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조건을 따져보면 저번보다 훨씬 낫다.

대머리보다도 오히려 더 성가셨던 마법사 계집애도 지금은 없고, 그때도 이수민이라는 인질이 붙잡혀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십 분 안에 정리가 가능했다.

내가 아무리 전성기에 비해 형편없이 감각이 무뎌졌어도 대머리 저놈 제압하는 데 넉넉잡아 일백 초식이면 충분하다.

멀대 둘한테 한 명당 십 초식씩 더 쳐주면 백이십 초식.

인질이 둘인 것까지 감안해도 이백 초식. 삼백까지는 안 간다.

그러니까 성가시다고 느낀 것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뭐랄까.

설렁설렁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척하는 게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간단 말이지.

한 차례 공방이 펼쳐진 후에 사마군과 내가 거리를 벌렸다.

곁눈질로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마법사 계집애는 애 엄마한테 흠씬 두들겨맞고 있었다.

내가 도발하듯 말했다.

“그래 가지고 되겠냐?”

“······.”

“얌전히 성화 넘겨주고 깔끔하게 너네 손으로 무공까지 폐하면 살려는 드릴게. 어때?”

내 빈틈을 엿보면서 대머리가 물었다.

“역시 성화가 목적이었나?”

“그렇지. 옛날부터 뭐하는 물건인가 흥미가 있었거든.”

“허면······, 전대 교주를 함정에 빠뜨리고 황군까지 개입해 신교를 핍박했던 것도 네놈 소행인가?”

응? 이건 또 뭔 소리래.

그거는 너네 세대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일어난 일이잖아.

왜 나한테 그러냐.

대머리 이 새끼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면 나를 아주 전생부터 암약해 온 흑막 비스무리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굳이 내가 나서서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지.

“글쎄? 맘대로 생각해라.”

“이 개자식!”

대머리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 멀대 둘이서 분을 못 이겨서는 나한테 욕지거리를 했다.

귀를 후비적대면서 답했다.

“됐고, 뒈지기 싫으면 성화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거절한다.”

이제 다시 싸움이 이어질 차례였다.

적당히 두들겨주고, 궁지로 몰아가는 게 포인트였다.

아마 애 엄마도 슬슬······.

콰아앙!

쏜살같이 날아온 인영이 땅에 메다꽂혔다.

안 봐도 뻔하지.

마법사 계집애였다.

대머리와 멀대 둘이 놀라서 그 앞을 막아섰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마법사 계집애가 다급히 외쳤다.

“다들 몸에 힘빼요!”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감으로 느껴진다.

잡히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사마군 놈들이 멀어지고 있다.

“오빠.”

어느새 왔는지 애 엄마가 내 옆에 섰다.

말을 길게 할 여유가 없어서 우철이에게 일렀다.

“알아서 풀고 집에 가라!”

오늘 우애에 상당히 타격을 입은 사촌지간 두 명이 놀라서 고개를 끄덕인다.

애 엄마에게 물었다.

“따라갈 수 있겠어?”

“응. 그러라고 일부러 놔준 거잖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애 엄마와 내 몸이 허공에 떴다.

그리고 아까 사마군 놈들이 모습을 감춘 것과 비슷하지만, 좀 더 빠르게 날았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주변 풍경이 일그러진 듯 보였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고작 저 네 놈 잡으려고 나랑 애 엄마까지 같이 나선 게 아니지.

그럴 거였으면 나 혼자 왔으면 그만이니까.

우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성화 그 빌어처먹을 불덩어리를 실물로 한 번 보는 것.

보는 김에 겸사겸사 아예 없애버릴 수 있는지 견적도 내보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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